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6/03/15 13:53:07
Name aurelius
Subject [일반] [역사] 18-19세기 초 일본의 해외방비론
흔히들 페리의 흑선 사건 이후, 또는 메이지 유신 이후에서야 일본이 외부 세계에 대해 눈을 떴다고 알려져 있는데 사실 일본의 외국인식과 이에 대한 지식은 1700년대부터 상당했습니다.

이를테면 아라이 하쿠세키는 1715년에 이미 서양 선교사를 심문하면서 얻어낸 정보를 체계화한 저서 <서양기문>을 저술하고 서양의 다양한 민족, 정치제도, 주요 국가들의 역사, 그리고 지리를 소개합니다.

그리고 19세기에 들어서 서양 선박이 더욱 자주 출몰하자 위기의식은 점점 확산되었고 이에 대한 대비책을 모색하기 시작합니다.

이른바 <해방론>이라는 것인데요, 바다로부터 오는 위협에 대해 방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시기 논자 중에는 서양이 일본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점을 들어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역, 신수공급 등이지 일본 점령에 있지 않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았는데 해방론자들이 이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자와 야스시라는 인물은 <신론> (1825년 저) 이라는 저서에서 일본에 대한 서양의 침략위기를 강조하면서,  서양의 출현을 안이하게 보려는 논자들에 대해 일일이 반박했습니다.

첫째, 오호츠크 연안에 당도하여 일본의 북부 도서지역에 출현하기 시작한 러시아에 대해 그들이 쌀을 구하러 오는 것에 불과하다는 논자에 대해 아이자와는 러시아인은 원래 쌀을 먹지 않으며, 쌀은 일본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데 굳이 일본 연안에 오는 것은 군사적 침략을 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둘째, 서양의 선박은 어선이나 상선이라서 전투를 벌일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서양 선박은 언제라도 전함으로 변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기 떄문에 방심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셋째, 일본에 접근하는 서양인들을 은혜로 대한다면 분쟁을 피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인도, 동남아시아 등을 생각할 때 서양의 침략의도는 이미 수백 년 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조금의 은혜를 베푼다고 감복할 자들이 아니라고 반박했습니다.

(여기서 놀라운 건, 인도와 동남아가 서양의 식민지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넷째, 사양이 설령 침략한다 하더라도 일본은 정예군대를 보유하고 있으므로 걱정할 것이 없다고 하는 주장에 대해서는 일본이 무사전통이 있다고는 하나 이미 200년 이상 실전경험이 없고 서양의 전법은 과거의 것과는 이질적인 것이어서 대응하기 힘들다고 주장했습니다.

다섯째, 서양은 일본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있기 때문에 많은 병력을 동원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침략하더라도 병력은 소규모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 아이자와는 서양은 기독교라는 강력한 종교가 있기 때문에 이를 가지고 일본의 무지한 백성을 포섭한다면 일본 내부에 응원세력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반론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아이자와는 세계정세를 중국 고대의 전국시대에 비교하면서 세계가 7웅의 각충장으로 변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 7개의 강국은 청, 무굴제국, 페르시아, 오스만 튀르크, 신성로마제국, 러시아 그리고 일본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아이자와가 무굴제국이나 오스만튀르크 그리고 신성로마제국(아이자와가 글을 썼던 1825년 당시 신성로마제국은 나폴레옹이 이미 멸망시키고 없었지만...)이라는 나라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과 일본을 그 7개 강국 중의 하나라고 여겼다는 점입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그가 군사공격이나 전투방법에 대해서는 서술하지 않고 이러한 위기상황에서 일본이라는 국가는 무엇인가, 그리고 일본이라는 국가에 民을 어떻게 일체화시킬 것인가에 대해 서술하면서 고민했다는 것입니다.

그의 사상과 인식은 후일 요시다 쇼인에게 계승되었고 요시다 쇼인은 다시 메이지 유신의 주역들에게 그러한 문제의식을 전수했습니다.

이처럼 일본은 중국과 영국 사이에 아편전쟁이 일어나기 10년도 전에 서양을 위험하고 위협적인 존재로 판단했고 이에 대비해야 한다는 인식을 했습니다.

동시대 중국이나 조선은 서양에 대해 상대적으로 별 생각이 없었던 반면, 일본은 왜 이렇게 과장스럽게까지 느껴질 정도로 위협을 느꼈다는 게 흥미롭습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스테비아
16/03/15 14:15
수정 아이콘
오...신기하네요. 저 책도 당대에는 음모론 정도로 받아들여졌겠죠. 그렇다고 음모론들을 믿을 필요는 없지만요 흐흐 좋은 글 감사합니다!
16/03/15 14:18
수정 아이콘
네덜란드라는 창구가 있었던 덕분일까요. 재밌네요
기니피그
16/03/15 16:41
수정 아이콘
시각이 참 독특한 국가에요 정한론이 나온 이유도 '반도는 일본을 방어하는 완충지대로서 필요하다.' 라는 시각이였으니.
Anthony Martial
16/03/15 17:20
수정 아이콘
재미있네요 잘 읽었습니다
엘케인82
16/03/15 17:32
수정 아이콘
저런 시야가 가능했던 이유중에 중국 중심의 조공무역에 왕따당하고 있었던게 중요하게 작용하게 되었던 것같습니다. 덕분에 네덜란드를 통한 자유무역을 먼저 경험하게 되었으니 피드백이 빨랐겠죠
겨울삼각형
16/03/15 19:04
수정 아이콘
중국이나 조선이 서양에 무관심하거나 무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19세기 제국주의 산업혁명의 흐름이 너무 빠르고 거셌기 때문에 대응하지 못했던것이지요.

19세기초 서양의 제국주의의 물결에 자유롭던국가는 전말 한중일 세나라 뿐이었고 그 세나라를 모든열강들이 노리고 있었습니다.

역설사게임인 빅토리아가 거의 완벽하게 당시 상황을 재현하고있습니다.
16/03/15 19:37
수정 아이콘
정확히 찌른 부분들이 확실히 있네요
절름발이이리
16/03/15 23:50
수정 아이콘
한국이나 중국 쪽은 침략의 역사 태반이 육상을 통해 이뤄져 왔기 때문에, 육상으로 쳐들어오기 힘든 세력에 대한 위협감이 떨어진거죠. 반대로 일본은 침입 = 해상공격 뿐이었고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64130 [일반] [3.16] 김치찌개의 오늘의 메이저리그(이대호 1타점 적시타) [2] 김치찌개3656 16/03/16 3656 0
64129 [일반] <삼국지> 유비가 즉위한 것에 대한 의의. [1] 靑龍4050 16/03/16 4050 6
64128 [일반] 한국의 장바구니 물가는 왜 유달리 비쌀까? [35] santacroce11566 16/03/16 11566 41
64127 [일반] 봄맞이(?) 신발 대 추천 [159] aura17396 16/03/16 17396 18
64126 [일반] [WWE/스포] 2016/3/14 RAW 데이브멜처 팟캐스트(펌) [27] 피아니시모5410 16/03/16 5410 0
64125 [일반] 캐치 유 타임 슬립! - 9 튜토리얼(끝) (본격 공략연애물) [6] aura4003 16/03/16 4003 3
64123 [일반] 이세돌 대 알파고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5번기 관전 후기 [54] 홈런볼11827 16/03/16 11827 14
64122 [일반] 3회 사소한 지식 경연 대회 기부 후기입니다. [11] OrBef4362 16/03/16 4362 21
64121 [일반] 미 공화당의 대선후보 마르코 루비오가 대선경선후보에서 사퇴했습니다 [40] Igor.G.Ne9061 16/03/16 9061 0
64120 [일반] 일본, 섭정의 역사 - 1 [52] 눈시10634 16/03/16 10634 9
64119 [일반] 출사 : 삼국지 촉서 제갈량전 21 (외전 : 맹덕) [35] 글곰4900 16/03/16 4900 58
64118 [일반] 인공신경망과 알파고 - 알파고는 어떻게 동작하는가?(1) [13] 65C0210191 16/03/15 10191 11
64117 [일반] 독일언론에서 긁어오기 - 알파고(4) [2] 표절작곡가6061 16/03/15 6061 7
64116 [일반] 후일담 - 테러방지법과 대한변호사협회 [33] 烏鳳8627 16/03/15 8627 2
64115 [일반] [바둑] 인공지능의 도전 제5국 - 알파고 불계승 [65] 낭천15453 16/03/15 15453 2
64114 [일반] 잡채밥 [10] 라디에이터5360 16/03/15 5360 6
64113 [일반] [WWE/스포] 최후의 부자의 역반응과 무반응 [51] 피아니시모6778 16/03/15 6778 1
64112 [일반] 브라질: 300만 명의 시위대와 금융시장 랠리가 원하는 것은? [10] santacroce6493 16/03/15 6493 13
64110 [일반] [역사] 18-19세기 초 일본의 해외방비론 [8] aurelius5510 16/03/15 5510 2
64109 [일반] [야구] 한화 이글스, 용병 투수 알렉스 마에스트리 영입. [26] 레이오네7310 16/03/15 7310 0
64108 [일반] [연애] 옛날글에 후기 와 이불킥 사건입니다. [26] 사신군8413 16/03/15 8413 1
64107 [일반] CGV 가격 정책 바뀌고 처음 예매한 후기... [55] 카스트로폴리스10144 16/03/15 10144 2
64106 [일반] 검정치마/제시의 뮤직비디오와 레드벨벳/GOT7의 티저가 공개되었습니다. [6] 효연덕후세우실4970 16/03/15 4970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