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워딩이 있는 짤방을 본 적이 있다. 오늘도 유게에서 본 것 같기도 하고. 대개 할머니가 보는 손주 등으로 제목이 붙여지는 이 짤방에 있는 강철 로봇은, 내게 외할머니가 늘 말씀하시던 대사를 그대로 읊는다. 너무 많이 먹고 다녀 가끔 부산에 내려가 찾아뵐 때마다 몇 키로씩은 쪄서 갔었던 것 같지만, 외할머니에게 난 늘 영양실조 직전의 손주였을 뿐이었다. 강철로봇이 인간을 가여이 여기는 것처럼.
대개 그런 어린 시절 기억이 있을 것이다. 난 정말로 배가 부른데, 내게 밥을 떠먹여주는 주체를 위해 짐짓 맛있는 척 밀어넣어야 했던 경험. 사실 본인에게는 먹는다는 느낌보다 배때지에 억지로 낑겨 넣는다는 느낌이 좀 더 합당할지도 모르지만. 뭐 여튼 내 외할머니는 항상, 밥 먹었어요. 아까 많이 먹었어요 라는 내 의사표현에는 아랑곳없이 억지로 식사를 차려내시고는 내 옆에 앉아 과일을 깎으시며 식탁 앞에 엉거주춤 어쩔 줄 모르고 앉아있는 외손주를 향한 걱정들을 쏟아내시곤 했다. 밥은 잘 챙기묵나. 잠은 잘 자나. 힘들진 않나.
그리곤, 끝에는 항상 아무 말 없이 우셨다. 홀로 서울에 올라가서 자주 보지 못하는 손주에 대한 걱정 때문이셨으리라. 할머니 집을 나설 때도, 허리가 좋지 않으셔서 보호대를 항시 착용중인 까닭에 당신 스스로 계단을 내려가기에도 벅차신 할머니는 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난간을 붙들고 서 계셨다.
그래서, 무서웠다. 언젠가는 할머니 집의 문을 열고 들어설 때, 할머니가 계시지 않으면, 할머니의 포근하고 편안한 체취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을 때가 오면 어떡해야 할지 더럭 겁이 났었더랬다.
2008년 1월, 외할머니의 부고를 전해 들었을 때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정신없이 서울에서 부랴부랴 부산으로 내려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장례식장이었고, 철없는 손주는 식장에서 눈물 한 방울 제대로 흘리지 않은 채 할머니를 그렇게 떠나보냈었다. 아니, 그랬던 것이라고 생각했다. 외할머니의 영정과 함께 당신이 임종하신 집에 당도하기 전까진.
집에 들어서는 순간 할머니 냄새가 났다. 할머니의 영정사진을 보면서도, 친척들이 서럽게 우는 모습을 보면서도 눈물을 꾹 참던 철없는 외손주는 집에 들어서는 순간, 생애 마지막으로 맡는 할머니 냄새를 끌어안고 엉엉 울고야 말았다. 나는, 그 냄새를 아직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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