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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06/19 03:14:03
Name 분리수거
Subject [일반] The Shape Of Punk To Come

오넷 콜맨은 가난했습니다. 
20세기 중반에 어느 흑인이 가난하지 않았겠느냐마는, 구두를 닦던 당찬 흑인 꼬마였던 콜맨은 꿈에도 그리던 색소폰을 구매합니다. 그의 나이 14살 때의 일이지요. 재능이란 건 어디 가지도, 쉽게 숨길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콜맨은 고등학교 시절에도 특유의 음악적 재능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쏟아져나온 콜맨은 고향 텍사스부터 LA, 뉴 올리언스등의 많은 재즈 밴드들의 색소폰 주자를 겸해 돈되는 잡일을 도맡아가며 근근히 살아가게 됩니다. LA에서는 백화점 엘리베이터 보이를 하기도 했죠.

한 시대의 색소폰 연주자 정도로 사라질 수도 있던 그를 발견한 건 모던 재즈 콰르텟에 있던 퍼시 허스와 존 루이스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존 콜트레인의 아방가르드 앨범에도 참여하게될 같은 똘끼를 가진 돈 체리와 친구들을 소개해주고, 58년 Something Else!!!! 라는 대망의 데뷔앨범을 발표하게 됩니다. (느낌표를 4개 붙여야합니다. 3개도, 5개도 아니라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Tomorrow is the Question!이란 이름의 2집을 발표하게 되죠.

하지만 여전히 아방가르드적인 표현에 우호적이지 않던 사람들은 콜맨의 음악을 외면합니다. 언제나 콜맨의 주위에는 소수의 평론가만이 전위적 음악이 지닌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었고, 익숙하지 못했던 사람들은 제대로 된 화음도 없이 멋대로 불어대는 콜맨의 연주를 버티지 못하고 박차 나가버렸습니다. 그리고 59년 그의 가능성을 알아본 대형 제작사중 한 곳인 애틀란틱 레코드에서 그의 기념비적인 앨범, The Shape Of Jazz To Come을 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The Shape Of Jazz To Come는 프리재즈란 이름을 알리는데 가장 상징적인 앨범이지만, 그 시작을 거슬러 올라가면 50년대부터 전위적인 뮤지션들에 의해 이미 수차례 시도되었습니다. 콜맨에 이르러서 시작된 두드러진 점을 정리하자면, 콜맨의 재즈는 의도적으로 피아노나 기타같은 화성을 제외했습니다. 베이스, 드럼, 코넷, 그리고 콜맨의 색소폰이 전부죠. 또한 콜맨은 앨범 전체에 기존에 존재하던 프레이즈나 라인들을 이곳저곳에 뒤섞어 짜집기해 배치했습니다.  멜로디나 템포 역시도 정해놓지 않아 콜맨이 불면 나머지가 맞춰가는, 콜맨의 무질서함의 철학이자 광기를 쏟아부었던 앨범이었죠. 여담으로 콜맨이 작곡해서 넣은 유일한 스탠더드는 "Lonely Woman" 뿐입니다. 아방가르드 재즈를 알리는 상징적인 앨범으로써, 이 앨범은 빛이 납니다. 





그리고 30년이 지났습니다. 91년 메탈과 아바의 땅으로 익숙한 스웨덴에서 Refused라는 펑크밴드가 결성됩니다. 
그리고 그들이 98년에 발매한 3집 앨범의 제목이 바로 The Shape Of Punk To Come이었죠. 

Refused라는 밴드의 시작을 이야기 해보지요. 거친 스웨덴의 10대 꼬마였던 데니스 락센은 드럼을 칠줄아는 같은 또래의 데미브 샌드스트롬을 만나 Refused를 결성합니다. 그리고 존 브락스트롬, 크리스토퍼 스틴을 끌어들입니다. 다만 크리스토퍼 스틴은 96년이 되어서야 들어왔는데, 이유는 베이스를 나머지 멤버가 거의 칠줄 몰라 공연을 할 때만은 객원 베이스를 불렀다 썼고, 나머지 멤버들이 베이스 주자가 필요했음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모두가 스웨덴의 가난한 노동자 집안 출신이었고, 마이너 쓰렛, 블랙 플래그같은 펑크음악에 심취해있었으며 그들이 주장하던 펑크정신을 거부감없이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주제인 The Shape Of Punk To Come라는 제목의 영감은 콜맨만이 아니라 또 다른 밴드에서 얻어오게 되었습니다.
지금 설명하게 될 The Nation Of Ulysses라는 밴드죠.
 


이들은 앞서 언급했던 마이너 쓰렛이 활동하던 Dischord 레코드의 밴드중 하나였습니다. 리더인 이안 스베노니우스를 포함한 멤버들은 극좌성향을 지향하고 있었죠. 레이건과 보수들에게 커다란 X를 먹이고, 일상화한 자본주의에게 역시 X를 먹이고, Ulysses의 이름아래 젊은이들이 락앤롤이라는 수단으로 뭉쳐서 평범한 삶을 파괴하고 메세지를 퍼뜨리기를 바랬죠. 그리고 자신들의 사상을 관객들에게 관철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언제나 남자의 땀이 가득찬 펑크 공연장에 저 앨범 커버처럼 양복을 빼입고 공연장을 뛰어다녔습니다.. 그리고 위에 소개한 Play Pretty For Baby의 14번 트랙을 오넷 콜맨의 아방가르드함을 존경하는 의미로 The Shape Of Jazz To Come이라고 지었죠. 

이들은 자신들을 스스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진지하게 건방지고, 경건하게 불경하며, 싸가지없으며 도덕적인" 



다시 Refused의 앨범 이야기로 돌아오지요. 펑크를 자주 들어보셨던 리스너시거나, 이 글을 읽으며 이들의 초기작에 관심을 갖고 유튜브에서 플레이해보신 분들은 이 앨범의 정체성에 대해 조금 의문을 가지실 수도 있습니다. 발매 당시 유행했던 NOFX 아래의 스케이트 펑크같기도 하고, 파워코드를 마구마구 지지기도 하며, 어설프게 그런지를 따라하기도 할뿐더러 가지가지 연설과 음원들이 짜집기 되어 있습니다. 마치 오넷 콜맨이 프레이즈를 마구마구 뒤섞고, 스트라빈스키가 불의 제전으로 평론가들을 농락할 때처럼요.

이들은 2집앨범을 발표한 이후 유럽 하드코어계 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게됩니다. (사실 1집과 2집도 상당히 훌륭한 앨범들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원래 꿈꾸던, 마이너 쓰렛등의 Dischord 선배들이 부르짖던 저항과 멀어진 무늬만 하드코어 펑크밴드이며 스스로 인기에 영합하는 밴드가 되어가고 있지 않았나 자책하게 됩니다. 이에 이들은 하드코어 펑크로서의 개념을 유지한 채 당시 유행하던(자신들이 대중영합적이라고 생각한!) 음악들에서 영감을 따와 조롱하는 음악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앨범에 수록곡들은 이들의 고민이 여실히 드러나는데, Tannhäuser/Derivè는 민요와 현악기를 고의적으로 섞었고, The Deadly Rhythm은 슬레이어같은 메탈밴드들의 진행을 그대로 따왔으며 , New Noise는 중간중간 빅비트스러운 진행이 엿보입니다. 가사는 끊임없이 펑크스러운 정신을 내뿜고, 하드코어 펑크라 불릴만한 요소는 다른 음악들을 마구마구 뒤섞다 보니 자연히 소거되어 버렸죠. 

이 앨범은 하나의 커다란 X입니다. 그것도 호박으로 만든 달콤한 맛을 잊게 만드는 떫은맛이죠. 이들은 단순히 저항을 부르짖는 것이 아니라 오염된 자신에게 그 엿을 먹이고, 자신들이 만들어냈던 음악들마저 모두 조롱합니다. 

이후 Refused는 이 앨범을 발표하고 머지않아 스스로 밴드를 해산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앨범을 리뷰한 언론사들에게 자신들의 사진을 모두 태워달라고 요청하죠. "멍청한 리포터들과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란 말을 남긴채요. 어쩌면 스스로 쌓아올린 권위들을 부정하던 이들이 만들어낸 마지막 앨범이, 펑크 정신에 가장 근접한 앨범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이 앨범은 음악적 완성도 이상으로, 자기파괴와 자유의 상징으로서 기억될만합니다.




그리고 작년, Refused가 재결합해 올 6월 말 그들의 복귀작인 Freedom을 발매할 계획입니다.
얼마전, 가장 자유롭고 창조적이며 파괴적인 작품들을 남겨준채 우리 곁을 떠난 오넷 콜맨을 추모하고, 
곧 돌아올 건방진 밴드를 기억하기 위해 적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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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andertal
15/06/19 09:27
수정 아이콘
음악 잘 들었습니다...^^
마스터충달
15/06/19 09:45
수정 아이콘
펑크를 정말 좋아합니다. 좋은 음악과 좋은 뮤지션을 알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즐겁게삽시다
15/06/19 12:36
수정 아이콘
와 슈퍼 고퀄 글이네요.
아침에 지하철에서 잠깐 보고 펑크라면서 재즈글인가? 이러고
이제야 정독 하고 있는데 refused 멋있네요.
락 스피릿이 살아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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