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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5/08/19 14:14:53
Name 오타니
Subject [일반] 집에서 진행한 방탈출 놀이 - 육아만렙을 꿈꾸며 (수정됨)
집에서 진행한 좌충우돌 방탈출 놀이 - 육아만렙을 꿈꾸며 (feat. 카톡)

피지알러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에게는 자녀 셋이 있습니다. 힘듭니다.크크크.
지난 주말,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는 아이들과 함께 아주 특별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바로 온 집안을 무대로 펼쳐지는 '집콕 방탈출 게임'이었는데요. 생각보다 아이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고, 준비한 저 역시 너무나 즐거웠기에 그 경험과 소소한 팁을 나누고 싶어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자물쇠 없이 스마트폰 하나로!

보통 방탈출 카페에 가면 철컥거리는 자물쇠를 푸는 맛이 있지만, 집에 온갖 종류의 자물쇠를 구비해두기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아주 현대적인(?) 방식을 도입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스마트폰 하나를 쥐여주고, 모든 정답과 미션 전달을 저와의 카카오톡으로 진행하는 것이었죠.

헷갈리지 않도록 [모든 문제의 정답은 '4자리 숫자']로 통일했습니다. 아이들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숫자를 [카톡]으로 보내면, 저는 맞았는지 틀렸는지만 답해주고 정답일 경우 [다음 단계의 미션지(JPG 그림 파일)를 보내주는 방식]이었습니다.

물론 아이들이 출제자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산으로 갈 때도 있었습니다. 그럴 땐 첫 [5분이 지나면 카톡 텍스트로 슬쩍 힌트]를 던져주고, 이후 3분, 2분, 1분 간격으로 점점 더 구체적인 힌트를 주며 [페이스를 조절]했습니다. 한 문제에 10분 이상 막혀 있으면 즐거움이 짜증으로 변할 수 있으니까요.

이 방식의 가장 큰 장점은… 게임 마스터인 아빠는 아주 편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멀찍이 소파에 누워 유유자적 스마트폰만 확인하며 장장 2시간 30분 동안 게임을 진행했습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을 준비하는 데 1시간의 열정을 쏟아부은 것은 안 비밀입니다.)


온 집안을 무대로 하는 10단계 미션!
저희 집을 총 10개의 구역을 차례로 통과하는 동선으로 코스를 설계했습니다. []안의 내용은 제미나이의 도움을 받아 이름지었다는...

1단계: 큰방 화장실 - [알록달록 가베의 비밀]
첫 문제인 만큼 가볍게 시작했습니다. 바닥에 알록달록한 원목 동그라미 가베(장난감)들을 흩어 놓았죠. 빨강 7개, 노랑 3개, 파랑 2개, 초록 5개. 그리고 미션지에는 '첫 방탈출에 온 걸 축하해. 이곳을 나가려면 빨강, 노랑, 파랑, 초록이 필요해'라고만 적어두었습니다. 아이들은 금세 각 색깔의 개수를 세어 '7325'를 외치더군요. 순조로운 출발이었습니다.

2단계: 큰방 - [리모컨 속 암호를 찾아라]
큰방 TV 아래에는 리모컨이 있습니다. 저희 집 리모컨은 신기하게도 상하가 12칸으로 대칭을 이루는데요. 위쪽은 익숙한 숫자 버튼들이, 아래쪽은 재생, 화면 크기 등 기능 버튼들이 있습니다. 미션지에는 '⏩', '◀️', '화면크기', '⏪' 버튼의 그림만 그려두었죠. 아이들은 잠시 고민하더니, 아래쪽 기능 버튼과 위쪽의 숫자 버튼이 대칭되는 것을 확인한 뒤, 정답을 찾아냈습니다. 시간이 좀 걸리긴 했습니다!

3단계: 드레스룸 - [보이지 않는 손잡이의 숫자]
저희 드레스룸 옷장에는 색깔이 다른 손잡이들이 달려 있습니다. 흰색, 빨강, 파랑 손잡이 3개죠. 미션지에는 옷장 그림과 함께 각 색깔의 동그라미 순서를 맞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함정으로 '검정' 동그라미도 문제에 포함시켰습니다. 숫자가 4개여야 하니깐요. 아이들이 한참을 헤매더군요. 그래서 힌트로 "얘들아, 없는 건 숫자로 0이라고 해"를 알려주자마자 무릎을 탁 치며 정답을 외쳤습니다.

4단계: 부엌 - [벽에 걸린 성경 구절의 재발견]
저희 집 부엌 벽에는 성경 구절 액자가 걸려 있습니다. 그중 빌립보서 4장 6절을 활용했죠.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에 기도와 간''로, 너희 ''할 것을 감''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이 구절에는 신기하게도 숫자와 음이 같은 글자가 딱 4개 들어갑니다. 미션지에 성경책을 검색하지 말고 직접 부엌에서 찾아보라고 했더니, 이 성경구절이 벽에 걸려있는 걸 발견한 아이들의 환호성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합니다. 답은 1994였죠.

5단계: 펜트리 - [아빠의 아침 식단에 숨겨진 것]
펜트리에는 냉장고가 있습니다. 미션지는 이랬습니다. '아빠는 살이 찌기 때문에 아침마다 미숫가루, 우유, 달걀, 과일을 먹는데, 오늘은 미숫가루도 싫고, 달걀도 싫고, 과일도 싫네. 그럼 무엇을 언제까지 먹어야 할까?' 한참을 고민하던 아이들이 냉장고 문을 열고 우유를 발견하더니, 기어코 유통기한 날짜를 찾아내 정답을 보내왔습니다. 성공!

6단계: 거실 - [가짜 빙고판과 방향키의 비밀]
거실에는 노트북이 하나 있습니다. 그리고 숫자가 적힌 25칸짜리 빙고판이 있었습니다. 빙고판에는 왼쪽 젤 윗칸에서 오른쪽 젤 아래칸까지, 총 1~25의 숫자들이 연속으로 길이 이어져 있었죠. 정답은 1번에서 25번까지 가기 위해 노트북 방향키(아래, 위, 오른쪽, 왼쪽)를 총 몇 번씩 눌러야 하는가였습니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지만, 금세 길을 따라 손가락으로 움직인 횟수를 세어 정답을 맞혔습니다.

7단계: 침대방(책방) - [책 제목 속에 숨은 곱셈]
아이들 침대방 책장에는 동화책과 만화책이 가득합니다. 여기서 특정 만화책들의 권 수를 곱해 4자리 숫자를 만드는 문제를 냈습니다. 예를 들어 '흔한남매'라는 책은 미션지에 '적도 없이…'처럼 힌트를 주는 방식이었죠. 이렇게 몇 가지 책의 앞 글자를 알려주고, 해당 책들이 40권, 12권, 18권이라면 그걸 곱해서 8640 답을 만드는 식이었습니다.

8단계: 공부방 - [책상 위 보물찾기]
오랜만에 보물찾기로 분위기를 환기했습니다. 자녀가 셋이라 공부방에는 3개의 책상이 있습니다. 이 책상들에 나뭇잎 모양 스티커를 하나씩 어딘가 숨겨두었습니다. 첫째 아이 필통 속, 둘째 아이 의자 밑, 셋째 아이 연필꽂이 안처럼요. 미션지에는 첫 힌트숫자와 나이순으로 책상에서 보물을 찾아보라고만 일러주었습니다. 의자 밑에 붙여둔 스티커를 찾느라 조금 애를 먹었지만, 다 함께 힘을 합쳐 찾아내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9단계: 거실 화장실 - [한 줄기 빛에 의지한 암전 미션]
이곳은 '암전' 상태로 진행했습니다. 미리 화장실 곳곳에 첫 단계처럼 색깔 플라스틱 동그라미들을 숨겨두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전기 테이프로 대부분을 가리고 바늘구멍만 뚫어둔 손전등 하나를 쥐여줬죠. (물론 위험할 수 있는 수건 찬장 같은 윗쪽 구역은 숨겨두지 않고 제외했다고 미리 알려주었습니다.) 이번만큼은 밖에서 제가 기다릴 테니 정답을 말로 외치라고 했습니다. 작은 불빛 하나에 의지해 샴푸 밑, 바닥 구석 등을 살피며 미션을 해결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꽤나 진지했습니다.

10단계: 신발장 - [발냄새와 함께 찾은 마지막 문장]
대망의 마지막 단계. 온 가족의 신발 속에 한 단어씩 적힌 구겨진 종이를 넣어 두었습니다. 미션지에는 '발냄새가 싫지만, 발냄새 곁으로 가야 할 것 같아'라고 적었죠. 아이들이 코를 막고(?) 신발 속 종이들을 모두 찾아 배열해보니 '3년이 지나면 몇년도 일까?'라는 하나의 문장이 완성되었습니다. 다 함께 "2028년!"을 외치는 순간, 우리의 길고도 짧았던 방탈출 게임은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작은 아이디어로 만드는 특별한 추억

처음에는 그저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는데, 아이들이 온 집안을 누비며 머리를 맞대고, 소리치고, 웃는 모습을 보니 준비 과정의 수고가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거창한 준비물이 없어도, 아빠의 작은 아이디어 하나가 온 가족에게 큰 웃음과 멋진 추억을 선물해 주더군요.

혹시 주말에 아이들과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이시라면, 집안의 익숙한 공간들을 무대로 여러분만의 방탈출 게임을 한번 만들어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문제를 만들고 함께 풀어가는 과정 속에서 분명 특별한 행복을 발견하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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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주식왕
25/08/19 14:20
수정 아이콘
재밌었겠네요 고생하셨습니다 크크
저도 해보고 싶은데 아이가 없군요 흐흐
나중에 (제발) 생긴다면 이렇게 놀아보고 싶습니다
오타니
25/08/19 14:22
수정 아이콘
개꿀 빨았습니다.
미션지 뚝딱 만들고.. 2시간30분동안 누워서 놀아주기 성공.
Asterios
25/08/19 14:35
수정 아이콘
너무 재밌어 보이네요 흐흐
25/08/19 14:51
수정 아이콘
오타니도 고작(?) 이도류거늘 아이가 셋이라니 애국자십니다
25/08/19 14:59
수정 아이콘
게임 하고 싶으면 언능 애부터 만드시면 됩니다.
김퐁퐁
25/08/19 15:05
수정 아이콘
방탈출 정말 좋아하는데 저도 하고 싶은데 불러주시죠?
터치터치
25/08/19 15:25
수정 아이콘
당연하다는 듯
소파에 누워있는 사람 목을 조르고 답 불러
부터 하실 듯!
25/08/19 15:42
수정 아이콘
크크크크크크크 어쨌든 탈출했으면 성공입니다..?
25/08/19 15:37
수정 아이콘
아빠! 나도 하고 싶어요!
+ 25/08/19 16:52
수정 아이콘
와 진짜 우리집 와서 우리애들한테 좀 해주세요!!!


가 아니라 저도 해봐야겠네요 근데 할 수 있을까... 흑흑
오타니
+ 25/08/19 16:59
수정 아이콘
제가 소스를 드렸습니다만?!!!
+ 25/08/19 16:52
수정 아이콘
아 근데 혹시 자녀분들이 몇살인가요? 몇살이면 이정도 게임 가능한가 싶어서요 흐흐
오타니
+ 25/08/19 16:59
수정 아이콘
6학년(13살), 4학년(11살), 7살 입니다.
첫째, 둘째는 아빠랑 이미 방탈출카페 2회 경험 있습니다. 셋째는 그냥.. 형,누나 따라다니는거고.크크크
+ 25/08/19 17:01
수정 아이콘
음 역시 초등 고학년은 되어야겠네요.
첫째가 아직 2학년이라 힘들거 같아요 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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