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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5/03/01 21:34:28
Name meson
Link #1 https://pgr21.com/freedom/103283
Subject [일반] 한국문화콘텐츠의 두 수원지에 대하여 (수정됨)
한국풍의 심오한 세계를 구축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희망은, 당연하기에 특별히 언급되지 않는 전제를 가지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그런 세계상이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죠. 예컨대 중국의 무협이나 일본의 찬바라에 대응되는 [ ‘한국을 대표할 만한 장르’ ]가 없다는 불평은 유구합니다. 그러나 만일 한국풍의 장르라는 구분이 고유한 특질과 뚜렷한 국적성으로 특징지어지는 것이라면, 이러한 인식은 재고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돌아보자면 ‘누가 봐도 한국적인’ 장르가 일단 두 가지는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

1. K-POP 연예계물

image
(종종 무협소설에 비유되었던 웹소설 후회프듀)

아이돌은 서구에서 유래한 개념이지만 K-POP 아이돌과 같은 형태의 연예인은 일본을 거쳐 한국에서 완성된 것이며, 현재도 한국을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BTS가 미국에서 성공한 이후 이러한 형태의 아이돌이 한국을 본산으로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어졌으며, 설령 외국에서 프로듀싱하더라도 대체로 ‘한국식’이라는 말이 붙습니다. 왜냐하면 [ K-POP 아이돌의 시원(始原)이 한국일 뿐 아니라, 그 선발이나 활동 관습이나 팬덤 문화와 같은 제반 요소들이 모두 한국 현대문화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 조형되었기 때문이죠. ] 이것은 작품의 배경이 어디이든 사무라이가 나오면 모두 일본적 요소로 인식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여기에 더해 소속사와 그룹별로 나뉘는 다종다양한 양태와 4세대를 거치며 축적된 아이돌판의 전통들은 이 장르를 손쉽게 비역사화시켰고, 그 결과 K-POP 아이돌을 다루는 연예계물은 [ 마치 무협의 그것을 연상시키는 나름의 세계관을 완비할 수 있었습니다. ] 체계가 있고, 문법이 있고, 참고할 만한 현실의 전거 또한 있으나, 현실 역사를 따라갈 필요는 없이 자립이 가능한 그런 세계관 말이지요. 이런 이야기공간을 갖춘 K-POP 연예계물은 분명 한국문화가 산출한 가장 대표적인 ‘한국적 장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2.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물

XL
(스타크래프트를 모르고 봐도 재미있었던 만화 에쒸비)

아이돌과 마찬가지로 서구에서 유래했으나 한국에서 발전하여 독특한 형태로 확립된 개념이 있다면 아마도 프로게이머일 것입니다. 서구의 프로게이머들이 여러 대회를 투어하며 상금을 획득하는 방법으로 활동을 이어갔던 것에 비해, [ 한국에서는 시즌제에 기반한 정규 리그와 방송을 통한 팬덤 형성이 최초로 나타났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 당연히 오늘날에는 세계적으로 이러한 형식의 프로게이머 리그가 정립되어 있으므로 e스포츠 리그 자체가 한국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 효시에 해당하는 스타크래프트 1 리그만큼은 사실상 한국에서만 장기적으로 볼 수 있었고 한국문화에서 차지하는 지분 역시 상당했다고 이야기되지요.

그렇기에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를 다루는 창작물은 그 배경이 한국으로 전제되어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 스타크래프트 1 리그에서 명멸한 빌드와 전술, 선수들 사이의 라인과 대립 구도, 게임단의 운영과 팬 문화를 비롯한 모든 요소들이 오로지 한국 리그에서만 참고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 비록 이러한 이점과는 별개로 스타크래프트 자체에 저작권이 설정되어 있는 까닭에 창작물에 등장시키기 어려울 수 있다는 단점 역시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물은 상당수 존재하며 대체로 고유명사를 조금씩 변형시켜 저작권 분쟁을 방지하는 수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물 또한, 나름의 클리셰와 비역사화된 세계관을 갖추었다는 점에서 ‘한국적 장르’로 칭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여기까지 조망한 다음 생각해 본다면, 이러한 ‘한국적 장르’들은 물론 무협이나 찬바라에 대응되는 한국적 장르를 바라는 사람들이 상정하던 형태의 장르는 아닙니다. 전통한국이 아니라 현대한국을 반영한 장르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일찍이 제가 ‘한국-민족-문화의 정체성에 대한 소고’에서 이야기한 한국 전통의 공유문화적 특성을 인정한다면, 어쩌면 ‘한국적 장르’의 탄생은 한민족이 시야에 넣은 세계의 범위가 지구와 일치한 뒤에야 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꼭 그렇다고만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어쨌든 K-POP 연예계물이나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물이 한국적 장르일 수 있다고 고려하고 나면 혹 한국 아이돌사(史)나 한국 스타크래프트 리그사(史)를 잘 아시는 분들이 자료 제공 차원에서 새로운 저술을 남겨주실 수도 있다고 생각되므로, 이렇게 몇 자 적어 봅니다. (갑자기 [ 프로토스 연대기 ]의 V편이 보고 싶어져서 쓰는 글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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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ymaster
25/03/02 05:10
수정 아이콘
스타 프로게이머 물 하니까 기억나는 작품 하나가 있네요. '불멸의 게이머'라고 지옥으로 간 스타 아마고수 청년이 지옥에서도 스타 대회가 펼쳐진다는 것을 알게 되어 우승에 도전한다는 그런 작품이었는데... 연재 중에 군대를 가게 되어서 끝 부분을 못 읽고 간 게 많이 아쉽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읽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네요.
엘케인
25/03/03 09:57
수정 아이콘
아, 저는 그 '환상의 테란'이었나? 임요환+김대건이 주인공인 단편 생각했었는데요.
그때 문피아는 없었지만 게임큐 게시판에 좋은 글들이 참 많았었는데...
이정재
25/03/02 15:37
수정 아이콘
게임판타지하고 재벌물이 생각나네요
25/03/03 00:10
수정 아이콘
전자는 드라마로 잘된 케이스가 꽤 있고
후자는 몇몇 시도하다가 망했던걸 본거 같네요
25/03/03 14:27
수정 아이콘
그들이오다?였나.
외계인이 쳐들어오고 인류의 존망을 걸고 스타대결하는거 있었는데... 소싯적에 봤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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