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4/09/09 01:51:08
Name Timeless
Subject [일반] 산타할아버지가 없어?
2024년 9월 8일, 특별할 것 없는 일요일의 점심이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떡만두국 앞에서, 우리 가족은 여느 때처럼 평화로운 식사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빠, 엄마, 올해 초등학교 3학년생인 외동딸 현서. 그리고 덩치 큰 고양이 믹키와 타비는 자기들 밥은 다 먹고 식탁 주변을 서성거렸다.

그러나 이 평화로운 장면은 현서의 한마디에 속절없이 장르가 변해버렸다.

"어제 친구들이 그러던데... 산타할아버지 없어?"

그 말은 마치 예고 없이 떨어진 폭탄처럼 식탁을 강타했다. 떡을 집어 든 젓가락은 '그대로 멈춰라' 주문에 걸린 듯 허공에서 멈춰 섰다.

나는 아내의 눈에서 문자 그대로의 '동공지진'을 관찰할 수 있었다. 나 역시 그랬으리라. 우리는 말 없이 눈빛으로 긴급 소통을 주고받았다. 우리 머리 속 CPU도 풀가동 되어 달아올랐다.

나는 지금까지 수많은 역경을 이겨내 왔다. 할 수 있다!

"산타할아버지가 왜 없어? 작년에도 왔다 가셨잖아. 기억 안 나?"

아내도 재빨리 응수했다. "맞아. 올해도 오실 거야. 갖고 싶은 것 소원 빈다고 했잖아, 현서야."

현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다시 의심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근데 친구들이 그러는데, 아빠가 산타할아버지라던데?"

'아아... 이 순간이 언젠가 오리라 생각은 했지만, 하필 오늘, 맛 좋은 떡만두국 앞에서라니!'

겉으로는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며 태연한 척 답했다.

"산타할아버지는 믿는 어린이에게만 찾아오시거든. 아빠도 어렸을 때 믿었더니 친구들보다 오래 선물을 받았어. 물론 중학생 되니까 이제 어린이가 아니라서 못 받았지만."

내 대답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현서는 또다시 생각에 잠긴 후 결론을 내렸다.

"이번에는 엄마아빠한테는 말 안 하고, 산타할아버지한테만 소원 빌어볼 거야."

그 순간, 나와 아내는 이번엔 서로 눈빛을 교환할 필요도 없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그래! 그러면 되겠네!"

이렇게 오늘의 '산타 논란'은 일단락되었다. 분위기를 파악했는지 고양이들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식탁 주위를 어슬렁거렸고, 우리도 식사를 마저 이어갔다.

식사 후 현서가 방에 들어가고 나서, 아내와 나는 설거지를 하며 혹여 누가 들을까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눴다.

"깜짝 놀랐네. 이제 현서가 산타할아버지한테 뭘 원하는지 잘 알아봐야겠어."

"올해가 마지막 크리스마스일지도 모르겠네.... 다 컸다 우리 딸."

예부터 떡국을 먹으면 나이를 먹는다더니, 오늘의 떡만두국이 우리 딸을 성장시켰나 보다.
이렇게 아이는 자라고, 크리스마스의 마법은 이제 마지막을 바라보고 있다.
아직 9월이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이미 크리스마스 시즌이 시작된 것 같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전기쥐
24/09/09 01:54
수정 아이콘
"근데 친구들이 그러는데, 아빠가 산타할아버지라던데?"

이 대목에서 (두둥)하는 효과음이 들리네요 덜덜
Timeless
24/09/09 01:59
수정 아이콘
토요일에 친구 생일파티라 여러 명이서 8시간을 놀고 왔거든요.
위에 오빠나 언니 있는 친구들이 많다보니 대화 중에 나왔나 봐요.
저희 딸이 그 안에서 얼마나 당황했을지 상상하니까 재밌네요(?)
닐리리야
24/09/09 08:27
수정 아이콘
오 그럼 엄빠가 아닌 사람이 산타에게 바라는 선물을 알아내시는게 관건이겠네요. 후기가 궁금합니다. 아직 기간이 많이 남았지만
Timeless
24/09/09 09:42
수정 아이콘
저희 딸은 숨기는 거 초보라 아마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그 사이에 또 성장해서 엄마아빠를 속일지도 모르겠지만
김태연아
24/09/09 09:17
수정 아이콘
우리 아이는 모른척 넘어가주더군요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기 위해
Timeless
24/09/09 09:43
수정 아이콘
친구들이랑 대화하고 충격 먹었나 봐요.

어느 포인트일지. 1)산타할아버지가 없다고? 2)산타할아버지가 아빠라고? 3)그걸 나만 몰랐다고?
지니팅커벨여행
24/09/09 09:19
수정 아이콘
산타 할아버지한테만 빌었는데 원했던 선물이 아니었다...

.. 실제로 겪은 일입니다 ㅠㅠ
Timeless
24/09/09 09:43
수정 아이콘
같은 일은 반복된다... 올해 저희 집 크리스마스는 어떻게 될지 기대가 되네요.
제랄드
24/09/09 09:28
수정 아이콘
(수정됨) 저희 집도 아들이 대략 초3 때부터 산타의 존재를 의심하기 시작했더랬죠.
그런데 그 해 크리스마스 날 아침에...

제랄드 : 우와! 산타 할아버지가 레고를 주셨네! 좋겠다~ (내 돈... ㅜㅜ)
아들 : 헤헤~ (소근소근) 아빠, 근데 실은... 나 어젯밤에 자는 척 했는데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 놓고 가시는 거 봤음.
제랄드 : (????????) 엇, 정말? 하하...
아들 : 정말임.
제랄드 : 그렇구나~ 혹시 산타 할아버지께서 앞으로 엄마아빠 말씀 잘 들으라고 하시진 않았어?
아들 : 특별히 그런 말씀은 없으셨는데요?
제랄드 : 아 그렇구나 하하~ 하하하~


... 진짜 있나??????
그럼 부모들이 산 선물을 자기가 준 것처럼 생색만 내는 그런?
Timeless
24/09/09 09:44
수정 아이콘
산타 복장 대여나 당근해서 몰카 한 번 찍어야 할까요...
로메인시저
24/09/09 10:04
수정 아이콘
저는 쓸데없는 눈치만 좋아가지고 7살에 알아버렸..
Timeless
24/09/09 10:27
수정 아이콘
사실 저도 딸에겐 저렇게 말했지만, 4살 위 형이 있어서 이하 생략…
24/09/09 10:39
수정 아이콘
제가 20살때 친구부탁으로 유치원 산타할아버지 알바를 갔었는데 5살(믿음), 6살(긴가민가), 7살(안믿음)으로 나뉘었던 기억이 있네요.
그런데 저희 아이에게는 페이크앱으로 집 트리밑에 선물놓고 가는 흐릿하게 찍힌 산타할아버지를 보여줬었는데 괜히 보여줬었나봐요. 초2인데 아직도 믿음이 굳건합니다.
괜히 친구들사이에서 아직도 산타믿는 순진한(좋게 말해서 순진)아이로 취급받을까봐 한편으로는 걱정도 됩니다.
Timeless
24/09/09 10:49
수정 아이콘
이렇게 된 이상 서로 알고도 모르는 척 눈치게임으로 가즈아! 
The HUSE
24/09/09 10:59
수정 아이콘
저희 애도 초3인데,
작년부터 눈치챈듯 합니다.
그런데 말하면 선물 못받을까봐 모르는척 하고 있는듯.
Timeless
24/09/09 16:40
수정 아이콘
귀엽네요~ 저도 안 믿는 어린이는 선물 안 주신다고 밑밥을 깔아놨으니 치열한 눈치 싸움 예정입니다.
안군시대
24/09/09 11:14
수정 아이콘
우리 사장님 아들이 초 6이었을때 부모님이 산타는 없음을 공식 천명하였음에도 아들은 끝까지 있음을 우기면서, 이번엔 산타할아버지가 레고블럭을 사줄 거라고 주장했다던데..
로메인시저
24/09/09 12:54
수정 아이콘
똑똑한 유년.
Timeless
24/09/09 16:40
수정 아이콘
저희 딸은 아이폰 이야기하길래 엄마가 깜짝 놀래서 '산타할아버지 돈 없어!'를 외쳤...
ANTETOKOUNMPO
24/09/09 12:24
수정 아이콘
나중에 아이들이 산타할아버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아빠였다는 것을 눈치챘을때,
"산타할아버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산타할아버지는 있는데, 그 산타할아버지는 아빠의 부캐였다고 설명해주면 좋지 않을까요?"
Timeless
24/09/09 16:41
수정 아이콘
산타할아버지는 여러 아빠들의 총합이다. 나이가 어마무시하지!
니드호그
24/09/09 12:31
수정 아이콘
철 들고 나서 기억하는 첫번째 크리스마스는 유치원에 온 산타 할아버지였지요. 오늘은 루돌프가 아파서 양말을 타고 왔다는 말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지요.
그리고 다음해, 이번에도 유치원에 찾아온 산타할아버지. 그런데 어라, 할아버지 얼굴이 이렇게 생겼던가? 싶어지만 이번에도 의심스러운 생각은 전혀 안들었지요. 그런데 선물도 받고나서 맛있는 걸 먹던 도중. 옆에 있던 친구가 그 비밀을 말하더군요. 에이 그럴리가~라고 답했지요. 그런데 어딘가에 숨겨져있던 산타복장을 찾아내서 보여주더군요. 충격이 컸지요…. 30년을 훌쩍 넘긴 지금도 기억할 정도니까. 전 첫째여서 그런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없어서 그랬던걸지도요.
Timeless
24/09/09 16:41
수정 아이콘
그러면서 사회의 쓴 맛도 보고 성장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인생에 한 번 뿐인 경험이죠. 산타할아버지 매직이 사라지는 그 순간.
VictoryFood
24/09/09 12:48
수정 아이콘
산타 할아버지는 죽었어
이제는 없어
하지만 아빠의 등에, 카드에
하나가 되어 계속 살아가!!
Timeless
24/09/09 16:42
수정 아이콘
계속 살아가지 않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매년 준비하느라 힘이 듭니다...
카즈하
24/09/09 12:52
수정 아이콘
아직 먼 미래일 겁니다...

그럴거야..
Timeless
24/09/09 16:42
수정 아이콘
아직 멀고, 한편으로는 가까운 미래입니다. 아이들 자라는 속도가 이상하리 만큼 빨라서
스물다섯대째뺨
24/09/09 14:06
수정 아이콘
당연히 유게인줄 알고 덱실타 기대하면서 읽었는데...
Timeless
24/09/09 16:43
수정 아이콘
덱실타 아닙니다! 텍실타 에욧! 조만간 유게에서 보답하겠습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2252 [일반] 메이플 창팝과 BTS [42] 사람되고싶다9414 24/09/10 9414 7
102251 [일반] [역사] 천 원짜리가 다 씹어먹던 카메라의 역사 [15] Fig.19713 24/09/10 9713 15
102250 [일반] 소리로 찾아가는 한자 31. 남을 영(贏)에서 파생된 한자들 [9] 계층방정4610 24/09/10 4610 4
102249 [정치] '응급실 부역자' 블랙리스트 공개 [313] entz23325 24/09/09 23325 0
102248 [일반] 루머:스냅드래곤 8 4세대 가격 20% 인상.240달러 & 플래그십 기기 인상 전망 [21] SAS Tony Parker 5954 24/09/09 5954 3
102247 [일반] 내 인생을 강탈당하고 있습니다. [107] 카즈하15531 24/09/09 15531 100
102246 [일반] 산타할아버지가 없어? [29] Timeless6915 24/09/09 6915 24
102245 [일반] <룩 백> - 백아절현, 혹은, 그럼에도 나아가야 하는 것.(스포) [20] aDayInTheLife5616 24/09/09 5616 4
102244 [일반] 부탁을 받아들이면 의무가 발생하지만, 부탁을 거절하면 의무는 발생하지 않는다…? [21] 니드호그10308 24/09/08 10308 7
102243 [일반] (그알)비눌치고개에서의 33분, 아내 교통사고 사망 사건 [11] 핑크솔져9161 24/09/08 9161 4
102242 [정치] 탄소중립법 헌법불합치 판결과 9월 2024 기후정의행진 [46] 사브리자나7333 24/09/08 7333 0
102241 [정치] 의료..파업이 아니라 사직이라구요? [493] lexial24026 24/09/08 24026 0
102239 [일반] [팝송] 오늘의 음악 "오아시스" [4] 김치찌개4455 24/09/08 4455 2
102238 [일반] 이런저런 이야기 [11] 공기청정기4282 24/09/08 4282 3
102237 [정치] 지금이 한국 정치사의 분기점일지도 모른다 [38] meson10825 24/09/07 10825 0
102236 [일반] 땡볕에서 KISS OF LIFE 'Sticky'를 촬영해 봤습니다. ㅠㅠ 메존일각4196 24/09/07 4196 22
102235 [일반] [서평]《과학적 창조론: 창조의 복음》 - 과학적 방법론으로 창세기 1장을 독해하다 [19] 계층방정4548 24/09/07 4548 3
102234 [정치] 보수정권에서 "호남 인사 소외" 가 두드러지는 이유? [45] 헤일로8645 24/09/07 8645 0
102233 [정치] 수심위, '명품백 의혹' 김여사 불기소 권고…무혐의 처분 수순 [53] 덴드로븀7932 24/09/07 7932 0
102232 [일반] 소리로 찾아가는 한자 29. 가릴 간(柬)에서 파생된 한자들 [4] 계층방정3497 24/09/07 3497 4
102231 [일반] 사기 경험담 [24] 시무룩6943 24/09/06 6943 16
102230 [일반] 여권 재발급 도전기 [19] 계란말이5945 24/09/06 5945 4
102229 [일반] 갑자기 직원 빼가기를 당하니 허탈하네요 [120] 앗흥17502 24/09/06 17502 22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