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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4/09/03 07:04:35
Name 계층방정
Link #1 https://brunch.co.kr/@wgmagazine/69
Subject [일반] 소리로 찾아가는 한자 29. 나나니벌 라(蠃)에서 파생된 한자들

우레 뢰(雷, 畾)에서 파생된 한자들 중, 가는실 멱(糸)이 붙은 가둘 류(纍)의 축약형인 여러 루(累)를 거쳐서 파생된 글자들로 소라 라(螺)와 노새 라(騾)가 있다. 이 두 글자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현재의 형태는 일종의 속자로 본자가 따로 있는데, 그 본자의 형태가 유사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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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글자 모두 부수는 속자와 본자가 동일하고, 나머지 부분도 서로 동일하다. 없을 망(亡), 입 구(口), 달 월(月), 무릇 범(凡)이 합한 듯한 뭔가 특이하게 생긴 한자다. 앞으로는 이 한자를 蠃-虫라고 쓰겠다. 다만 왼쪽의 蠃는 소라 외에도 '나나니벌'이라는 뜻이 있고, 한국어문회의 한자급수시험에서도 이쪽으로 나온다.


螺와 騾보다 蠃와 驘가 근본 있는(?) 한자임을 입증하듯이 저 특이하게 생긴 한자는 갑골문에서부터 등장한다. 금문에서는 계집 녀(女)와 결합한 찰 영(嬴)의 용례가 더 많으므로, 이 두 한자의 과거 형태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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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이름·나나니벌·소라·노새 라의 변천. 


소전과 현재 형태는 복잡하기만 할 뿐 대체 뭔지 알아볼 수 없는 글자인데, 갑골문과 금문에서는 어떤 동물의 형태를 본떴다는 것은 분명히 알 수 있다. 무슨 동물인지를 모르는 게 문제일 뿐. 이 동물은 여러 마디가 있고, 발이 많이 있거나 발이 아예 없고, 머리가 있고, 귀나 더듬이 같은 게 머리에 달려 있다. 금문에서는 몸이 펴지기도 하지만 갑골문이나 금문에서는 대부분 몸이 동그랗게 말려 있다. 참고로, 금문의 嬴에서 동물 빼고 나머지 부분은 女에 해당한다.


《설문해자》에서는 '혹자는 짐승 이름이라 한다.'라는 모호한 설명만 달려 있기 때문에 학설이 분분하다. 왕온지(王蘊智)는 용을 닮은 신수라 했는데, 초나라 간백문자를 보면 용 룡(龍)과 닮아 보인다. 일본의 한 블로그에서도 이 한자에서 파생된 嬴이 중국의 고대 8성 중의 하나라는 점을 들어 씨족을 나타내는 신수라는 설을 지지하고 있다.


이학근(李學勤)은 《자원》에서 동그란 몸은 소라나 달팽이가 동그랗게 말린 모습을 뜻하고 머리에 붙은 것은 더듬이를 뜻하는 것으로, 둥근 껍데기가 있는 연체동물인 소라나 달팽이를 가리킨다고 보았다. 나중에 달팽이는 冎(살발라낸뼈 과)를 더해 蝸(달팽이 와)로 분화했고, 소라는 累(여러 루)를 더해 螺로 분화했다. 두 한자의 음은 고대 한자 기준으로 유사한데, 이는 나중에 나올 나나니벌을 과라(蜾蠃)라는 연면사로 부르는 것에서도 엿볼 수 있다.

또 다른 설은 나나니벌의 상형이라는 것으로, 몸은 날개가 달린 날씬한 나나니벌의 몸매를 본뜬 것이고 머리에는 더듬이가 달린 모양이라는 것이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나나니벌을 한자로 과라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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蠃-虫의 뜻으로 추정되는 짐승인 소라.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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蠃-虫의 뜻으로 추정되는 또 다른 짐승인 나나니벌.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한편, 이 글자는 노새를 뜻할 수도 있는데, 아무리 봐도 저 짐승이 노새 같이 보이지는 않고 노새를 뜻하는 말과 소리가 같아서 가차한 것으로 보인다.


짐승이름·나나니벌·소라·노새 라(蠃-虫, 급수 외 한자)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다음과 같다.

(蠃-虫)+羊(양 양)=羸(야윌 리): 이수(羸瘦), 피리(疲羸) 등. 어문회 준특급

(蠃-虫)+果(열매 과)=臝(벌거벗을 라): 나물(臝物), 과라(果臝) 등. 어문회 특급

(蠃-虫)+虫(벌레 훼)=蠃(나나니벌 라): 과라(蜾蠃), 수라(須蠃) 등. 어문회 특급

(蠃-虫)+馬(말 마)=驘(노새 라): 여라(驢驘), 육라(六驘) 등. 급수 외 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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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이름·나나니벌·소라·노새 라에서 파생된 한자들.


(蠃-虫)의 해석이 분분하기 때문에 (蠃-虫)에서 파생된 한자들의 해석도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나나니벌처럼 날씬한 데서 羸가 나왔을 수도 있고, 소라나 신수처럼 동그란 동물에서 臝가 나왔을 수도 있다. 臝는 벌거벗다 외에도 동그란 열매인 하눌타리를 가리키는데, 위에서 나온 과라(果臝)가 바로 하눌타리다. 이외에도 약하게서있을, 위축될 라(䇔)라는 한자도 있고, 논병아리 라(鸁)라는 한자도 있는데, 각각 날씬하다와 동그랗다 쪽에 속한다.

위에서 이미 소라 라와 나귀 라는 (蠃-虫) 대신 累를 쓰는 더 간단한 글자가 대체하고 있다고 했는데, 벌거벗을 라도 마찬가지로 果(열매 과)를 쓴 裸를 더 많이 쓰고 있다. 臝에서 果 대신 衣(옷 의)를 쓴 글자도 있다.


이상의 관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나귀란 뜻은 가차이므로 제외했다.

66d5b6f734d98.png?imgSeq=34046(蠃-虫)에서 파생된 한자들의 의미 관계도.


요약

蠃는 나나니벌 또는 소라를 뜻하며, (蠃-虫)는 신수, 나나니벌, 소라, 노새 등의 뜻으로 추정된다.

(蠃-虫)에서 羸(야윌 리)·臝(벌거벗을 라)·蠃(나나니벌 라)·驘(노새 라)가 파생되었다.

(蠃-虫)는 파생된 한자들에 날씬하다 또는 동그랗다의 뜻을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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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beralist
24/09/03 09:20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진시황으로 유명한 춘추전국 진나라 국성이 영씨인데, 한자 모양이 굉장히 특이해서 어디서 튀어나온건가 했더니 유래가 여기 있었네요.
24/09/03 11:09
수정 아이콘
가르쳐 주셔서 고맙습니다.
소라야 그렇다 쳐도 나나니벌에까지 글자를 만들어붙이다니... 좀 많이 한가했나봅니다.
+ 24/09/03 12:44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장수말벌에 관한 한자는 없죠?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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