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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왔다.
덥고 습하다.
나에게 여름은 힘든 계절이다.
흐린 날이 오래도록 지속되는 일도 잦고, 겉잡을 수 없이 땀이 나기도 한다.
비오는 날도 많다. 나는 비오는 것도 싫어한다.
지치는 나날을 반복하다가 어느 새 아무것도 못 하게 되는 상태에 빠진다.
나는 이걸 ‘물 먹은 상태’ 라고 표현한다.
우울과 불안에 시달린다.
‘물 먹은 상태’가 되면 더욱 심해진다.
나도 정상적으로 살던 때가 있었다.
남들처럼 회사에 다니고, 멀쩡히 사회생활을 하며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다.
몸에 탈이 났다.
무리한 스케쥴 덕이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회사를 그만 두게 되고 그때부터 커리어가 꼬여갔다.
돈이 필요해 몸닿는 대로 일을 했지만 대부분의 회사는 한 곳에 오래 몸담지 못한 사람을 원하지 않았다.
돈을 여러 번 떼어먹혔다
자꾸만 움츠러들게 되었고
어두운 곳이 편해졌다
우울증은 사람에 따라 여러 종류의 형태로 나타난다.
어떤 사람은 자해를 하고,
어떤 사람은 원나잇을 하고,
어떤 사람은 폭식을 하고,
어떤 사람은 귀신을 본다.
나는 더러운 집에 산다.
히키코모리는 아니다. 주변에서 보면 멀쩡한 사람이다.
일용직이지만 일도 하고, 외출도 곧잘 하며 밖에서도 밝은 척을 꽤 잘 한다.
하지만 집은 엉망진창이다. 특히 여름이 심하다.
한 번 물건을 바닥에 놓다 보면 쓰레기는 삽시간에 쌓인다.
내일은 정말 청소해야지,
내일은 정말 정리라도 해야지,
내일은 정말 침대 위라도 치워야지.
그러다가 보면 내 주위는 온통 쓰레기다.
업체를 불러도 기겁할 양이 된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명 쓰레기집에 사는 사람들의 집을 청소해주는 유튜브를 봤다.
자극적인 썸네일을 내세우며 청소를 해 준다.
사람들은 신청자를 나무라며 현실적인 조언을 한다.
대부분 맞는 말이다. 나도 알 것이고, 본인들도 알 것이다.
단지 그렇게 하지 못할 뿐이다.
우울이 잡아먹는 에너지는 생각보다 크다.
약을 먹어도 최악을 막아줄 뿐
몸은 쉽사리 움직이지 않고 움직이더라도 쉽게 지친다.
침대와 책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배달음식의 비중이 높아지고 살이 찐다.
배달음식을 치우지 못하고 벌레가 꼬인다.
살이 찌니 더 몸을 움직이기 힘들어진다.
진퇴양난의 상황이 되는 것이다.
또 여름이 왔다.
덥고, 습하고, 그래서 무력하다.
내가 잘 참지 못하는 것이 있다. 냄새와 벌레다.
오늘은 그 두가지가 너무 심해 몸을 일으켰다.
아니,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은 채
물티슈 한 통과 쓰레기봉투를 챙기고 냄새의 근원을 찾기 시작했다.
쌓인 쓰레기가 너무 많아 집을 발레하듯이 다녔다.
쓰레기 더미를 파며 재활용품을 분리했고 벌레 둥지를 찾았다.
버리지 못한 배달 음식 용기에 간간히 달라붙은 찌꺼기가 있었다.
초파리의 습격에 시달려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둥지에 있는, 그 참깨를 닮은 무수한 알들
그리고 몇 초 안돼 윙윙대며 부화하는 초파리들.
조금 울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지?
우울증은 당뇨병과 같다.
완치되지 않는다. 눌러놓는 것이다.
그래도 꾸준히 눌러놓다 보면 조금은 익숙해진다.
다스리는 방식을 깨닫는 것이다.
그러다가 무너지면 또 무너지는 거고,
또 괜찮을 때가 오면 눌러놓는 거고. 뭐 그런 거다.
오늘 나는 총 다섯 개의 참깨밭을 수확하고,
20리터 쓰레기 봉투 7개를 갖다버린 후
점심 때 잠들었다가 지금 일어났다.
불행히도 오늘같은 청소를 열흘어치는 더 해야
어느 정도 집이라고 할 수 있는 상태가 될 것 같다
내일도 내가 참깨밭 수확을 할 수 있을까?
장담할 수 없다.
그래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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