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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6/09/04 01:03:23
Name 연아짱
Subject 라디오에서 우연히 들은 노래 - When I'm sixty-four
<object width="425" height="350"><param name="movie" value="http://www.youtube.com/v/ZmZycpJSwac"></object>



10km의 속도도 채 내지 못한 채 엉금엉금 기어가는 간선도로 한복판
머리는 지끈지끈, 숨이 탁 막히게 갑갑한 퇴근길 라디오에서 잊고 지내던 노래가 나온다

Will you still need me?, Will you still feed me?, When I'm sixty four~~

흥겹고 아기자기한 소품같은 노래
내가 64세 노인이 되어도 여전히 나를 필요로 하고, 여전히 나를 먹여주겠냐고 투정하면서도
소소한 미래의 일상생활을 그리고, 손자 셋을 무릎에 앉힌 그녀를 상상하는 정겨운 노래
이 노래를 듣자니, 나는 무엇이 그렇게 바쁘고 힘들어 그렇게 좋아했던 노래 한곡을 듣기 힘들었을까는 생각이 절로 든다



지난 6월 18일은 팝 역사상 가장 고대하던 생일이었다
흥겨운 멜로디에 사랑하는 이와의 정겨운 64살 미래를 그린 팝의 고전 When I'm sixty four의 작곡가이자, 위대한 비틀즈의 멤버
폴 매카트니가 올해로 64세가 되기 때문이었다

청년 매카트니는 자신이 휴즈를 갈면 그녀가 스웨터를 짜고, 일요일 아침이면 차를 타고 나가고, 정원을 가꾸고 잡초를 뽑는 64세의 미래를 꿈꾸었지만
64세의 매카트니는 그렇지 못했다
2번째 처 헤더와 이혼을 했고 위자료 문제가 대두되어 보통 골치를 썩힌 게 아니니 말이다 (주1)
심지어 이혼과 연과지어 When I'm 64를 개사하여 그를 조롱하는 기사가 영국의 신문에 실리기도 했으니 참 짜증이 났을거다
이벤트를 잘 만들고 대중 앞에 나서길 좋아하는 그가 기념비적인 자신의 64세 생일에 이렇게 칩거하고 있는 것만 봐도
그의 심적 고충이 얼마나 클지 상상이 간다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그룹을 주도한 일원이며, 전 세계의 사랑을 받고, 어마어마한 부를 손에 쥔 그이지만
청년 시절 바라던 소박한 꿈을 이루는 것조차 그렇게 어려운가 보다

아니.. 오히려 너무 거대해진 그가 되었기 때문에 이 작은 희망을 이루기가 어려운 건지도...
폴도 정신없이 노래만 부르다 보니 어느새 감당할 수 없는 위치에 올라버린 자신을 보고 이룰 수 없음을 직감했는지
노래에서도 '64세에도 당신을 사랑하겠어요~~'라는 닭살 멘트를 날리기 보다는
'머리가 벗겨진 64세가 되어도 당신은 나를 필요로 할 건가요?' 라고 의미심장하게 묻고 있질 않은가?



머리가 굵어지면서 나 하나쯤 없어도 세상은 잘만 흘러간다는 걸 깨닫게 되면서
다른 한 편으로 나 없이 잘 흘러가지 못할 사람을 갈구한다
그래서 64세에도 나를 필요로 할 거냐고 묻는 건
곧 늙어서 내가 없어지면 나를 그리워 하겠냐는 질문과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다
죽을 때 옆에서 울어줄 사람 하나 없는 것이 슬픈 일이 듯이
64세의 나이에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없는 것도 슬프긴 매한가지이다

폴은 64세의 생일을 어떻게 보냈을까?
가족들을 자택으로 초대해 바베큐 파티를 벌이던 중 surprise party가 벌어졌다
자녀와 손주들이 애비로드 스튜디오에서 조지 마틴의 아들의 작업을 맡아 "When I'm 64"를 녹음한 테입이 연주된 것이다 (주2)

내 이 소식을 접했을 때 기자는 매카트니를 구원한 건 노래라고 했지만
내가 보기에 그를 구원한 건 가족이었다
그의 생일에 비틀즈의 "When I'm 64"가 울려퍼졌다면 그건 조롱이었겠지만
그의 자녀들의 "When I'm 64"가 노래되었기에 구원일 수 있었다
그의 64세엔 그를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었다




이 세상의 크고 작은 기쁨과 행복들을 해부하면 할수록 진정한 가치는 기본적인 것에 있다
그 가치들은 심지어 숨어 있지도 않고 뻔하게 세상에 드러나 있다
그리고 세상에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부유하건 가난하건, 똑똑하건 멍청하건, 힘이 있건 없건....
참... 그 기본이 어렵다

난 기본은 하고 있을까?
하긴.. 내가 기본을 운운하기엔 아직 백년은 먼 것 같다

나도 그녀에게 한 번 물어 보고 싶다
Will you still need me?, Will you still feed me?, When I'm sixty four










(주1) 현재 논의되고 있는 위자료의 규모는 최소 900억원에서 최대 3600억원이라고 하니 골치아플만 합니다
(주2) 애비로드 스튜디오는 비틀즈의 녹음이 이루어진 곳이며, 조지 마틴은 비틀즈의 프로듀서로 '제5의 비틀즈'라는 별명이 있는 전설적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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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새비
06/09/04 01:32
수정 아이콘
에고 폴이 완전 할아버지군요.
그가 한국에 오면 무조건 가려고 했는데 사실상 불가능하겠군요.
그 위대한 팝음악 최고의 앨범인 페퍼상사의 한 부분인 것만으로도...
연아짱
06/09/04 01:36
수정 아이콘
아마 그가 이혼만 안 했으면 올해 분명히 투어를 했을 겁니다
64세가 되는 의미있는 해이기도 하고 실제 올해말에 아시안 투어가 계획되었다는 루머가 있었으니까요
요새 한국의 공연러쉬를 생각하면 아시안 투어 때 들렸을 확률이 매우 높지요
근데, 이혼 때문에 폴이 요새 완전히 지쳐있다는군요 허허
연새비
06/09/04 01:37
수정 아이콘
폴이 온다면 만사를 제쳐두고 갈 사람 많을 겁니다.
은근히 비틀매니아가 한국에도 많지요.
Something
06/09/04 02:11
수정 아이콘
저 노래를 13살인가 16살에 작곡했다고 하죠 ㅡ.ㅡ!
체념토스
06/09/04 08:44
수정 아이콘
에구 폴아저씨... 이젠 폴할아비구나.. 건강하길 빌어요~
06/09/04 12:50
수정 아이콘
연새비님 / 폴이 온다면 만사를 제쳐두고 갈 사람 여기 한 명 더 있습니다.
Sophie~♡
06/09/04 16:28
수정 아이콘
비틀즈의 대곡들도 좋지만 이런 소품 스타일의 노래들이 더 좋아요. 이 노래로 프로포즈를 받는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하곤 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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