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e |
2002/09/20 05:42:14 |
Name |
황무지 |
Subject |
단상 ; 떨림 |
떨림
1
내 손가락이
내 피부에 눈을 뜬
지향성의 감각이
언제부터 요동하고
손을 떨고 팔을 떨고
마음까지 떨게 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마음은 눈동자에서, 손끝에서 자란다
나는 차라리
이후의 것을,
아직 보지 못한 세계와
아직 흐르지 않은 시간을 기억하고 싶다
아직 흐르지 않은 시간과
아직 드러나지 않은 풍경들은
내 눈길 밟아 걸어오고
내 숨길 위로 걸어오고
내 손가락 끝에서 태어날 것이다
마음의 흔들림이 있어서
비밀은 틈으로 새어나간다
육신과 영혼의 틈으로 새어나간다
시선과 숨길의 흔들림따라 나간다
말해 주겠다
2
시간은 둘로 나뉜다
세계는 둘로, 하늘은 둘로 나뉜다
내가
그대를 보기 전과 보고 난 후의 시간
우리가
만나 이야기 하기 전과 그 후의 시간
하늘은
비가 오거나 오지 않거나
눈이 오거나 오지 않거나
해가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둘 중의 하나
(하나씩)
농담이 아니다
내 손가락 끝은
꽃잎과 대화하고
대기의 흐름을 붙든다
(가끔씩이지만)
3
모든 마음은
그냥 그대로 멈추어 있는 마음과
흐르는 마음으로 나뉜다
그래서
마음의 뿌리이자 마음의 끝가지인
내 손가락은
마음의 흐름을 붙잡고 싶다
내 것이 아닌 마음들
붙잡고 싶다
마음은 너무 크거나 너무 작아
너무 빠르거나 너무 느려
붙들 수 없고
(손가락 사이로 스르륵 흐르는 바람처럼)
날카롭거나
뜨겁거나
굵거나 가늘은 시선마저도 마음을
붙들 수 없어
시간의 흐름 속으로 가라앉았다가
떠올랐다가
시간과 함께 흐른다
늙지 않을 것이다
욕망하기보다는
사랑한다면
그렇다면 말이다
(모든 노화는 욕망과 함께 온다)
4
알게모르게 마음이 구겨지고
마음을 구기고
구겨진 마음의 주름살들
그 요철들을 타고 시간이 후다닥 달려가고
어쩌면 나는
이미
늙어버렸을지도 모른다
|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