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05/11/13 10:12:45
Name redtea
Subject [공모] PGM <2>


이 소설은 '픽션' 이므로 현존 인물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1층 창고문이 끼익 열리며 재훈이 지친 듯 걸어나왔다. 창고속을 몇 일 동안이나 뒤져 보았지만 '키'는 없었다. 물론 흰 플로피디스켓은 몇몇 있었다. 그것을 손에 꼭 쥐고 문을 열어보았지만, 단 한 번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재훈은 머리에 묻은 먼지를 탁탁 털며 2층으로 올라갔다. 오늘 프로리그 플레이오프가 있으니 남아있을 팀원들은 없을 것이었다. 팀원들은 이제 재훈과 지훈에게 신경쓰지 않았다. 가끔 눈이 마주치거나, 부딪쳤을 때 살짝 웃으며 인사를 할 뿐, 말을 걸어오지 않기 시작했다. 그들은 매일 바빴다. 연습, 연습, 휴식, 대회출전, 연습, 연습, 연습............ 태민이 보았던 예전 재훈의 모습도 이랬을까?


2층의 연습실 문을 밀고 들어간 재훈은, 일단 태민이 사용하던 컴퓨터를 조사해보기로 했다. 혹시 뭔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혹시나 하고 본체를 쳐다보았건만, A드라이브에는 아무것도 꽂혀 있지 않았다.


"......도대체......"


재훈은 한숨을 내쉬며 컴퓨터 전원을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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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없는 거실에서, 지훈은 혼자 밥을 먹고 있었다. 아까 경기 때문에 팀원들이 우루루 나간 지 한참 후, 갑자기 재훈이 뚜벅뚜벅 2층으로 올라가는 바람에 깜짝 놀라 체할 뻔 했다.


'......'


지훈은 처량하게 밥을 한 숟갈 떴다. 순간, 창문으로 비쳐 들어오는 노을빛이 발갛게 바닥에 얼룩졌다. 지훈은 한참동안 창문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어차피 나갈 수 없는 곳. 미련만 가져서는 좋을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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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창문 좀 그만 쳐다봐요. 창문 뚫어지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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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지훈은 갑자기 뭔가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듯 멍한채로 앉아있었다. 아까, 바로 아까 떠올랐던 그 말..... 그 목소리는 뭐지?


지훈의 머릿속에 누군가가 떠올랐다. 박태민이다. 이 목소리는 박태민이야. 그런데, 왜 내가 박태민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는 거지? 난, 단지 TV 경기 재방송만 보고 알았던 건데...... 직접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눈앞에, 태민의 모습이 흐릿하게 왔다갔다했다. 소파에 앉아 뭔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태민의 모습, 거실과 계단 사이를 천천히 오가며 무언가 중얼중얼거리는 모습, 문 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돌려 문을 여는 모습...... 지훈은 말도 안 돼는 이 환상에 입이 다물어지질 않았다. 그리고 문을 열고 나가던 태민이 지훈을 향해 돌아보는 순간, 이 모든 환상은 순식간에 산산조각 깨어지듯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뭐,뭐야?..... 지훈은 뭔가에 홀린 표정으로 현관을 쳐다보았다. 내가 왜...... 이 장면을 기억하고 있지? 나는...... 본적이....... 없는데...... 왜 이렇게 생생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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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바탕화면에는 별 게 없었다. 연습실 안의 모든 컴퓨터가 그렇듯이 스타크래프트가 깔려 있고, 인터넷 익스플로어와 내 문서, 내 컴퓨터 아이콘만이 덩그러니 남이 있을 뿐이었다. 재훈은 실망하지 않고 샅샅히 뒤져보기 시작했다.


오래지 않아, 재훈은 수상한 파일을 발견했다. 패스워드가 걸린 폴더가 딱 하나 있었던 것이다. 태민이 숨겨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패스워드가 문제였다. 태민에게 패스워드와 관련된 거라곤 한 번도 들은 적 없던 재훈이었다. 당연히 알 리가 없었다.


'박태민', '플로피디스켓', '키'...... 다 아니었다. 바로 눈앞에 있는데, 이렇게 놓쳐버릴 수는 없었다. 재훈은 이리저리 생각해보다가, 문득 컴퓨터 모니터 화면 구석에 빨갛게 써 있는 글자를 발견했다.


'P......G.......M......'


무엇인가의 약자같기도 한 이 글자는 너무 작아서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의 크기였다. 재훈은 설마 하는 마음으로 패스워드에 PGM을 쳐 넣었다.


'잠금이 해제되었습니다.'


라는 메시지와 함께 폴더가 열렸다. 재훈은 침을 꿀꺽 삼키고 찬찬히 훑어보았다.


폴더 안에는 단 하나의 아이콘만이 존재했다. '흰 플로피디스켓' 모양의 아이콘....... 흰 플로피디스켓? 재훈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프로그램이, 바로 그가 그렇게도 찾아헤매던 '키'였던 것이다. 재훈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겨우겨우 아이콘을 더블클릭했다. 순간, 본체 쪽에서 '달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재훈이 천천히 내려다본 본체에, 눈부시게 하얀 플로피 디스켓이 꽂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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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바로 '그들' 인가요?


-그래, 네 이름......박태민이라고 했었지. 어째서 시키는 대로 하지 않은 거지?


-우리들도 자아가 있어요. 시키는 것만 하다 보면 당연히 좋을 리 없지 않나요.


-그래서, 그래서 어쩌겠다는 거야?


-사람들에게 알리겠어요. 증거도 있으니까, 사람들이 믿어줄 거에요. 그러니까, 이런 일은 그만해줘요.


-사람들이 알아봤자 뭐가 나아지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 우리들이 맘만 먹으면 하루도 안 되어 너희들을 모두 죽일 수 있어. 알았다고 해도, 고민만 생길 뿐이야. 너희들의 운명이 원래 그런 거라고.


-모든 사람들에게는, 진실을 알 권리가 있어요. 그게 아무리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해도요.


-말이 통하지 않는 놈이군. 사회를 위해, 너는 죽어야 해. 미꾸라지 한 마리 같은 너 때문에 모든 것이 망쳐지게 둘 순 없지.


-찾을 수 없을 거에요. 이미 IP를 숨겼으니까.


-아니, 분명히 떠 있는 걸? GO 숙소라..... 곧바로 가겠다.



'뭐,뭐? 어떻게 안 거지? 난 매일 IP를 숨겨놓는데, 어째서...............


어찌했던 일단, 여기서 벗어나야겠어. 재훈형에게 이야기하고 가야겠지......'


태민은 비틀거리며 컴퓨터 앞에서 일어났다. 새하얀 플로피디스켓을 손에 꼭 쥔 채로. 그는 몇 분 후면 밖으로 나갈 것이다. 재훈 형에게는 이야기 해 주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 세계의 진실에 대해서......


아니, 적어도 재훈 형에게만은 선택권을 주자.. 태민은 일부러 모니터 옆에 아주 작은 글씨로 PGM을 적어놓았다.


'여기까지 찾아낸다면...... 진실을 가르쳐줘도 괜찮겠지......'


태민은 얼른 펜을 놓고는 1층으로 뛰어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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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훈은 A드라이브에 플로피디스켓을 살짝 밀어놓고 내컴퓨터로 들어갔다. 심장이 쿵쾅쿵쾅되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 안에 무슨 내용이 있길래, 태민이 이것을 이용해 밖으로 나갈 수 있었던 걸일까.


A드라이브를 읽어내리는 두르르륵 소리가 끝나자마자 창이 하나 떴다. 경고창이었다. 재훈은 섬짓 놀란 마음을 쓸어내리고, 찬찬히 읽었다.


'이 디스켓을 휴대하고 다닐 시, 모든 이상 증세가 해결됩니다. 문이 열릴 것이고, 연습을 할 수 있을 것이고, 바깥 세상과의 연결과 자신이 원하는 행동 모두 가능합니다. 옛날의 평범하던 생활로 돌아가는 것이 행복하다면, 취소를 눌러주세요.

그러나, 진실을 알고 싶다면 확인을 눌러주세요. 확인을 해도, 물론 취소할 때의 어드벤티지는 그대로 남습니다.'


진실? 재훈은 눈을 크게 떴다. 이 플로피 디스켓을 굳이 열어보지 않아도 재훈은 이제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었다. 게임을 하고, 경기에 나가고, 외출도 하고...... 하지만 진실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진실? ...... 진실......진실이라......


사실, 재훈도 왜 갑자기 자신이 밖으로 나가지 못했었는지 미칠 정도로 궁금했었다. 하지만, 이런 경고문까지 나오는 것을 보면 진실은 아마 재훈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무게일 지도 몰랐다. 하지만, 진실을 알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재훈은 천천히 '확인'을 클릭했다. 순간, 자동으로 IP를 숨기는 프로그램이 작동되었고, 한 인터넷 페이지가 떴다.


'http://www.pgm.com/main.htm'


그러나, 이 페이지는 찾을 수 없는 페이지라고 뜰 뿐이었다. 재훈이 뭔가 잘 못 되었나 싶어 다른 곳을 클릭하려는데, IP숨김 프로그램이 일을 완료하자마자 페이지의 내용이 바뀌었다. 뭔가 빽빽이 적혀 있는 글자.


아무도 없는 가운데 침묵 속에서 소리라고는 재훈이 읽어내려가며 중얼거리는 소리가 전부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재훈이 벌떡 일어나더니, 힘없이 다시 주저 앉았다. 엄청난 충격을 받은 듯 재훈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심장이 터질 듯 뛰고 있었다. 손은 주체할 수 없을 만큼이나 덜덜덜 떨리고 있었다.


아냐...... 아냐...... 그,그럴 리가 없어...... 희미하게 재훈의 중얼거림이 방 안에 울렸다. 죽은 듯 가만히 있던 재훈은 견딜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이럴 수는 없어!! 없다고!! 어떻게...... 세상에 이런 일이......"


재훈은 서둘러 연습실 문을 쾅 열고는 쏜살같이 1층으로 내려갔다. 마침, 지훈이 화장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어? 형?"


"이럴수가...... 지훈아. 나...... 너무 큰 걸 알아버렸어."


"네? 뭐가요?"


"태민이가 누구에게서 도망을 쳤는지, 왜 우리가 나가지 못하는지...... 다, 모두 다 알겠단 말이야!"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지르는 재훈 때문에 지훈이 깜짝 놀랐다. 그렇게도 조용하던 재훈 형이 도대체 뭤 때문에 이렇게......


뭔가를 말 할 듯 입을 벌리던 재훈이 천천히 입을 다시 닫았다. 아직은 안 돼. 일단...... 조금 더 조사를 해야 하겠지.


"......아냐. 아직은 때가 아니니까 조금 더 있다가 이야기해줄게."


재훈은 다시 터벅터벅 2층으로 올라갔다. 지훈은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갸우뚱했다. 순간, 갑자기 머리가 쑤시기 시작했다. 엄청난 고통에, 지훈은 옆에 있던 탁자를 짚고 간신히 서 있었다. 찌푸린 눈 앞에 뭔가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눈 앞에 다시 환상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지훈은 힘겹게 눈을 크게 뜨고 환상을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지켜보았다.


허겁지겁 내려오는 태민. 그리고 영문을 모르는 재훈. 태민은 뭔가 이야기하려다가, 고개를 살짝 젓고는 다시 계단을 터벅터벅 올라가고 있었다. 똑같다. 똑같아...... 아까 재훈의 행동과 이 환상은 똑같았다. 지훈이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환상은 다시 소리없이 사라졌다.


똑같다. 똑같아. 그 때와 똑같아. 지훈은 환상이 왜 나타나는지도 모른 채 아까 재훈의 행동과 환상을 비교해보고 있었다. 지훈은 입술을 깨물며 곰곰이 생각했다. 재훈과 태민의 행동은 놀라운 정도로 똑같았다. ......잠깐. 그럼...... 재훈도 태민처럼 사라지는 건가?


--------------------------------------------------------------------------


재훈은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아까 읽은 글 말고도 많은 메뉴가 있었다. 그것들 중 하나를 클릭해보려는 찰나, 갑자기 커다란 채팅창이 떴다. 깜짝 놀란 재훈에게, 채팅창의 글은 엄청난 공포로 밀려들어왔다.


'찾았다!!!!!!!!!'


'우리를 위협하는 진실을 알아버린 너. 10분 안에 찾아가 널 처형하겠다.'


경악한 재훈은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른, 얼른 여기서 도망쳐야 한다. 그런데, 이상했다. 분명 아까는 IP숨김 프로그램이 작동중이었는데, 지금은 꺼져 있었다. 하지만 재훈에게는 이런 것을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그는 얼른 플로피디스켓을 꺼내들고 1층으로 쿵쾅쿵쾅 내려갔다. 지훈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무슨 일이냐는 듯 쳐다보았다.


"......너도 같이 나가자. 그들에게 걸리면, 나도 물론이고 너도 죽을거야."


"..'그들' 이요?"


아무것도 모르는 지훈을 거의 강제로 끌고 온 재훈은, 지훈이 플로피디스켓을 잡게했다. 그러니까, 한 개의 작은 플로피디스켓을 두 사람이 양쪽에서 잡고 있는 모습인 것이었다. 재훈은 한 번 크게 심호흡을 하고 지훈에게 말했다.


"절대 플로피디스켓에서 손 놓지 말고 잘 따라와. 놓치면 죽어."


"......네..."


지훈은 어리둥절하긴 했지만, 플로피디스켓을 꾹 눌러잡았다. 재훈은 재빨리 손잡이를 잡고 힘껏 밀었다. 순간,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지훈은 충격에 멍하니 서 있었다. 문이 열렸다. 이제......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기쁨에 차 있는 지훈을 재훈이 얼른 끌고 밖으로 나왔다.


"얼른..... 얼른 여기서 도망쳐야 돼."


"도대체 왜 도망가는 거에요? 이유라도 가르쳐 주세요, 네?"


정신없이 어디론가 걸어가는 재훈에게 지훈이 약간 짜증을 내며 말을 걸었다. 오랜만에 밖으로 나와 기분이 좋은 지훈이었지만, 어디론가 계속해서 걸어가는 재훈이 이상하기만 했다.


"이 플로피디스켓이 있으면, 우리는 평소로 돌아갈 수 있어. 연습도 할 수 있고, 밖으로 나갈 수도 있고."


지쳤는지 재훈이 힘겹게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발걸음은 멈추지 않고 있었다.


"물론 이 디스켓과 연결되어 있어야만 가능해. 이 디스켓과 떨어지게 되는 순간, 우리는 예전으로 돌아가게 되고, 운나쁘면 죽을 수도 있는 거야. 지금 상황에서는."


순간, 멀리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마침 퇴근시간이었던 것이다. 재훈은 신경도 쓰지 않고 계속 말을 하고 있었다.


"이 디스켓은 동시에 비밀도 담고 있어. 우리가 왜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건지에 대한 해답."


사람들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재훈은 말소리를 줄였다.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더 이야기해줄게. 일단 가자."


순간, 사람들의 파도가 그들을 덮쳤다. 지훈과 재훈을 플로피디스켓을 꼭 잡고 떨어지지 않도록 붙어서 이동했다. 그러나 이리저리 끼이는 통에 어떻게 해보지도 못하고 중간에 꼭 갇혀버리고 말았다.


"이 손 놓지마!"


"아,알았어요."


사람들이 계속 밀고오자, 지훈과 재훈은 팔을 높이 들어올렸다. 밑으로 내렸다가 지나가던 사람들의 힘에 밀려 손을 놓쳐버릴까봐 일단 팔을 들어올렸던 것이다. 그랬더니, 사람들 중 일부의 흐름이 지훈과 재훈 사이를 지나가기 시작했다. 지훈은 팔이 아팠으나, 계속해서 팔을 들어올려 사람들의 머리위로 플로피디스켓을 올려놓고 있었다. 물론 재훈도 팔이 아플 것이다.


사람들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지훈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머리의 땀을 닦았다. 놓으면 죽는다는 말에 겁이 나 땀이 흥건할 때까지 놓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재훈이 어디있는지 보기 위해 재훈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았지만 아직 사람들에게 묻혀 잘 보이지 않았다. 다만 플로피디스켓을 잡고 있는 팔만이 사람들의 머리위로 보일 뿐이었다.


순간, 갑자기 지훈과 재훈 사이를 지나가던 사람들 중 하얀 손이 불쑥 튀어나왔다. 지훈은 생각도 못했던 일에 멍하니 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하얀 손은 이리 저리 사람들의 머리를 더듬더니, 플로피 디스켓을 잡고 있던 재훈의 손에 닿았다.


"!!!! 형!! 꼭 잡아요!! 제가 그리로 갈께요!!"


깜짝 놀란 지훈이 소리를 빽 질렀다. 그러나 사람들을 뚫고 건너까지 가기에는 너무 힘들었다. 이리저리 비집고 들어가며 하얀 손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 하얀 손은 재훈의 손목을 꽉 쥐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또다른 하얀 손이 사람들 위로 쳐올라왔다.


지훈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알 것 같았다. 재훈이 저 사람을 피해서 도망 왔던 것일까? 어쨌든 얼른 재훈을 구해야 했다. 재훈의 말대로라면, 여기서 재훈이 플로피디스켓을 놔 버리면 재훈은 죽을 것이다.


한 하얀 손이 재훈의 손목을 잡고 있는 동안, 다른 하얀 손이 플로피디스켓을 잡았다. 그리고는 두 손으로 재훈을 플로피디스켓에서 떼어놓으려는 듯 힘을 쓰기 시작했다.


"형!!!!"


그러나 재훈에게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아마 손이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온 힘을 다 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하얀 손도 포기할 생각은 없어보였다. 재훈의 손이 점점 미끌리기 시작했다. 땀 때문이었다. 지훈은 자신도 모르게 덜덜 떨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사람들은 더 이상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지훈이 다시 인파를 뚫고 재훈에게 가려는 순간, 뚝 하는 느낌이 플로피디스켓을 통해 지훈의 손으로 전해들어왔다. 재훈이 플로피디스켓을 놓친 것이다.


재훈의 버둥거리는 한 손과 하얀 두 손. 하얀 손은 재훈의 팔을 휘어잡고 사람들 속으로 집어넣었다. 이제, 재훈이 어디있는지 조차 알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 순간, 어디선가 삐익삐익삐익 하는 경고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어디선가부터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이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러나 지훈은 경고음이고,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고, 중요하지 않았다.


"형!!!!! 대답 좀 해 봐요!!!!"


하지만 아무 대답도 없었다. 다만 사람들의 잡담 소리에 의해 묻혀버릴 뿐이었다. 지훈은 힘이 쭉 빠져 플로피디스켓을 잡은 손을 내렸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 플로피디스켓을 꼭 움켜잡았다. 다시 몰려드는 사람들의 흐름에 지훈은 점점 더 멀리 밀려났다.


지훈은 목이 쉬도록 재훈을 불렀다. 지훈은 두려웠다. 재훈이 금방이라도 죽어 싸늘한 시체가 되어 눈 앞에 나타날 것만 같았다. 지훈은 덜덜 떨면서 다시 한 번 재훈을 불렀다.


"형!!!!!!"



--------------------------------------------------------------------------



하얀 손이 손목에 감겨 재훈을 따라오고 있었다. 재훈은 이미 플로피디스켓을 놓쳐 버렸다. 저기 멀리서 보이는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 아마 재훈을 잡기 위해 오는 것일 것이다. 이미 죽은 목숨. 재훈은 몸부림 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도대체 이 흰 손은 뭐란 말인가.


사람들을 뚫고, 하얀손의 주인이 나타났다. 순간, 재훈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너!!!!!"


"안녕."


그 사람은 싱긋 웃어보였다. 이 사람은...... 재훈이 아는 사람이었다.


"도대체 어째서 이런 짓을.....'


재훈이 이를 갈며 소리질렀다.


"재미있잖아."


재미있다고? 사람들을 죽이는 게 재밌어? 재훈은 이해하지 못한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이렇게 재미있는 세상을, 진실을 아는 사람들은 꼭 깨버리려고 한다니까. 진실을 알아야 하느니, 뭐니 하면서. 난 내 세상을 지킬 거야."


재훈은 한탄하듯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왜 미리 몰랐지? 이 사람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자. 그럼 잘가. 다신 못 보겠네."


그는 인파속에 묻혀 자연스럽게 사라져갔다. 그와 거의 동시에, 재훈의 뒤쪽에서 검은 팔들이 나와 재훈을 붙잡았다. 재훈은 체념하듯 눈을 감아버렸다.



--------------------------------------------------------------------------



인파가 차츰차츰 줄어들고, 지훈은 서둘러 사람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재훈은 어디에도 없었다.


"......형......"


지훈이 잦아든 목소리로 재훈을 불렀다. 아무 대답도 없었다. 사람들이 모두 지나간 후, 길에 남은 것은 지훈과 플로피디스켓, 둘 뿐이었다.




* homy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11-25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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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ongSaMa
05/11/13 10:40
수정 아이콘
허 -_- 저 사이트 무서워서 못열어보겠어요. 귀신나오는거 아닌지;;
아케미
05/11/13 10:47
수정 아이콘
으아아아악, 이거 갈수록 대박인데요. 기대 가득입니다.
못된녀석...
05/11/13 13:49
수정 아이콘
공포,스릴러인가요...??
알수없는 분위기가 긴장이 되게 하네요.
쓰루치요
05/11/13 15:17
수정 아이콘
와........잼잇당.....~~~ 굿~~~!!!!
유신영
05/11/19 09:55
수정 아이콘
흐흐.. 재미좋네요~
미이:3
05/12/07 00:59
수정 아이콘
엄청 긴장하면서 읽었어요; 후우
늦게 읽으니까 몰아서 읽을 수 있어서 좋네요 ^^;
재훈선수가 아는 사람이 누군지 궁금합니다-
앞으로도 건필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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