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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07 23:19
신일고 출신으로, 90년대 말에 일본에서 데뷔하고 1~2년정도 준수한 마무리/선발투수로 활약하다가 부상당하고 내리막, 2005년쯤 국내에 돌아와서 한화에 입단했으나 미미한 활동을 하며 은퇴했습니다.
일본야구 해설은 아직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0/10/07 23:22
고려대 에이스였던 걸로 기억해요. 언제지? 고연전 때 연대가 이기고 있었는데 고대 에이스가 나옵니다~ 해서 봤더니 그게 조성민이었고, 고대가 역전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그 경기로 조성민 팬이 되었으나 국내에서 볼 수는 없었죠. 흑...(당시는 지금처럼 케이블이나 인터넷이 활성된 때가 아니라 조성민 경기를 보기가 조금 어려웠어요.)
10/10/07 23:44
음...조성민선수는 임선동선수와 함께 73년생중 최고의 기대를 받는 투수였습니다.(물론 지금와서 보면 가장 대단한 동기는 박찬호) 실력도 실력이고 외모도 출중한 선수였습니다.
고려대 졸업후 일본 요미우리자이언츠에 진출해 첫해 준수한 성적을 남기면서(아마 2점대 방어율에 10승 이상 기록하고, 세이브도 했을겁니다.) 엄청나게 기대를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부상과 코치와의 불화때문에 결국 5~6년만 뛰고 은퇴를 선언합니다. 그리고 사업과 연예계활동을 하다가 고 최진실씨와 결혼. 그렇지만 최진실 폭행사건, 이혼, 사업실패등으로 몰락(이라는 단어를 쓰기는 좀 어렵지만....)하게 됩니다. 이후 재활의 신 김인식 감독님에 의해 계약금도 없이 한화로 입단해 1군까지 올라와 꽤 괜찮은 피칭을 했지만 결국 은퇴. 선수생활을 마무리 짓고 해설등의 일을 하십니다, 사회인 야구 코치도 한다고 하네요
10/10/07 23:47
기록도 기록이고.....당시 요미우리에서 조성민에 대한 기대도 대단히 컸습니다.
전성기가 아마 98시즌일텐데, 일본에서의 그 반 시즌만큼은 포스가 대단했죠. 근데 시즌 도중에 부상.....
10/10/08 01:56
순간포스론 프로야구선수중 역대최고입니다.
전반기에 7승6패였는데 완투승이 여러번이었고,완봉승도 있었습니다.(6완투 3완봉이네요) 막판에 3연패를 당했는데,7이닝2실점, 완투하며 3실점을 허용하며 당한 패배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센트럴리그는 투수가 타격을 하는 리그였는데,처음 2경기동안 7타수7안타를 기록했습니다. 일본에서의 통산타율이 3할초반입니다. 44타수 15안타였죠.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야구선수중 가장 안타까운 선수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엄청난 실력과 굉장한 스타성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유리몸과 부적절한 마인드로 포텐셜을 터트리지 못한 케이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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