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시판
:: 이전 게시판
|
이전 질문 게시판은 새 글 쓰기를 막았습니다. [질문 게시판]을 이용바랍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09/08/27 05:51
대다수의 지배적 해석은 고도(godo)가 이름에서 느껴지는 어감인 신(god)을 상징한다는 것이었지만, 작가 사무엘 베케트는 '이 연극에서 신을 찾지 말라'고 못박아 버렸지요.
블라디미르와 아스트라공이 하염없이 기다리는 '고도'는 말 그대로 '알 수 없는 그 무엇'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적절할 듯합니다. 대화에 담긴 속뜻은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풍자 같은 것은 찾지 못했고 그런 방향의 해석이 나온 적도 없습니다. 단지 무언가를 기다리는 행위, 즉 무료하면서도 초조하고, 막연하면서도 불안한 그 심리를 잘 그려낸 연극입니다. 그 무엇은 돈이 될 수도 있겠고, 구원, 성공, 죽음이 될 수도 있겠죠. (물론 갖다 붙이면 다 되긴 합니다.) 그 기다림의 심리는 비단 현재에만 있던 것은 아니지만, 현대사회에서 개개인이 박리된 세포막에 싸인 것처럼 분리된 상황에서는 그 기다림이 더욱 고독할 수밖에 없겠죠. 블라디미르와 아스트라공은 무의미한 대화들을 계속 주고받는데 이 둘이 감정적으로 소통하지 못하는 것이 그 개개인의 분리를 상징합니다. 둘 모두 불안하고 초조하지만 그 고독과 막연함을 공유하지 못하고 그저 계속 넋두리를 늘어놓을 뿐입니다. 결국 이 둘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고도가 어떤 존재인지 이 연극에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고도가 오면 어떻게 되는지, 고도가 희망의 전조인지 고도가 불길한 징조인지조차 나타나지 않습니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고도(퇴직, 죽음, 행운...)를 막연히 기다리며 살아가는 우리들이라면, 이 연극을 보면서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09/08/27 07:39
워낙 유명한 연극이고... 교재로 활용이 많이 되는 연극이니... 아마 인터넷에 치면 10페이지는 나올 듯 하네요...
대화마다 의미를 가진다기 보단 두 사람의 대화가 서로 주고받는 것이 아닌 혼자말에 가까운 점.. 그리고 고도라는게 무엇인가라는 것에 초점을 주로 맞췄던 거 같네요..
09/12/12 18:46
유유히님께서 '갖다붙이면 다 된다'는 식으로 말씀하시는 것은 좋지 않은 표현이라고 생각하구요, 정확히 말하자면 '텍스트를 기반으로 하여' 타당성을 갖춘 해석을 펼치는 것이 맞겠지요.
이 작품.. 해석이 아주 다양합니다. 그래서 재밌는 작품이기도 하죠. 어떤 것이 가장 적절하다고 하는 것은 유유히님의 관점이지요. "이게 가장 적절하다" 라고 표현하기에는, 사실 수많은 해석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제가 나름대로 이야기하는 해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각자가 다들 "내 해석이 가장 적절하다" 며 말하곤 하지만 말입니다. 신이라는 해석은 적어도 제가 들은 희곡 수업 때 타당성 있는 해석으로서 거론이 됬습니다. 각자가 믿는 신, 한번도 본적 없지만 있을거 같고, 언젠가 나타나리라 믿는 신.. 고도라는말 자체가 영어의 god와 유사성도 있고, 프랑스 지역의 아주 유명한 이름 성씨 중 하나라고도 하더군요. 사실 작가가 못박았다고 해서 그걸 그렇게 해석하지 말란 법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이 작가의 손에서 떠난 이상 그것은 독자들의 몫이 됩니다. 문학 작품들에 다양한 해석들이 있는 이유는 그만큼 다양한 관점들이 있는 것이기에 작가가 그렇게 생각했다면 그 사람은 이런 의도로 만들었지만, 나는 텍스트를 기반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고 해석하면 되는 거죠. 우리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양상을 살펴보면, 어떤 사람의 행동에 대해서 그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의도로 행동을 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다르게 해석하는 경우가 많죠. 진실과는 다르게요. 참말로 부조리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런 우리 시대의 삶의 양상과 비슷하다고 봅니다. 부조리극 하면 이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는데.. 수업때 들은 것을 거의 그대로 옮기자면, 노벨문학상을 받은 해롤드 핀터는 관객의 질문에 자신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바 있습니다. 즉 알 권리를 관객과 독자의 몫으로 돌림으로서 그들로 하여금 예측불허한 부조리한 상황에 직면하게끔 한다는 겁니다. 명쾌한 답을 안 주는 그 상황 자체가 부조리한 상황인데, 그것 자체가 작가가 의도한, 관객들 또는 독자들에게 경험시키고자한 의도된 계산일 수 있다는 겁니다. 다른 말로 이야기하자면, 우리는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명쾌하게 아냐 이거죠. 내 자신의 일 조차 명쾌히 알 수 없는 것이 우리 삶의 한 단면이라 했을 때, 그것이 부조리하다고 볼 수 있는거죠. 그런 부조리한 우리 삶의 양상을, 어찌보면 핀터는 이러한 작품을 통하여 그대로 느끼게끔 하는 전략을 구사했다고 보는거죠. 비평가들 중 이렇게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설명불가능한 핀터적 상황을 핀터레스크 시츄에이션이라고도 하는데.. 프랑스 알베르 까뮈가 말하는 시지포스의 신화.. 즉 부조리성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핀터가 그랬던 것을 보며, 새뮤엘 배켓의 이 작품도 작가의 의도와 벗어난다 하더라도 충분히 여러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래 삶의 양상이란 것도 그만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거 아닙니까? 제가 생각하기엔 작가가 그렇게 말한 이유는, 그런 해석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는 뜻이 아닌가 합니다. 너무 사람들이 그런식으로 집중적 해석을 하다보니. p.s: 고도의 스펠링은 원문을 제대로 쓰자면 godot 입니다.
09/12/12 18:47
해외 여러 비평가들의 비평이라든가 해석들을 제가 여기서 일일이 다 쓰자면 스크롤을 아마 계속 내리셔야 할 겁니다. 아무튼 그만큼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작품이라서 대작이고 명작이라고 평가받는 것이라고 봅니다.
09/12/12 18:49
실례지만 유유히님께서는 풍자라든가 다른 해석들에 대해서는 국내 자료만 찾으신건 아닌가요? 오지도 않을 무언가를 기다리고 또 집착하는 현대인의 삶을 풍자한다고도 볼 수 있고, 등장 인물들을 현대인에 대한 쓰디쓴 풍자라고 보는 해석도 나올 수 있습니다. 외국에 엄청난 비평과 논문들이 있는데 그것들을 참고하시면 작품 이해에 더욱 도움이 되실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