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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8/02 00:18
질문에 답하기 이전에, 가장 기본적인 이야기부터 해볼까요? 서사학의 개념에서는 현대소설과 같은 허구적 서사물을 보통 "Story"와 "Discourse" 층위로 나눈답니다. 즉, 허구적 서사물을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할 때, 그 전달하고자 하는 바의 "무엇을"에 해당하는 것이 스토리라면, "어떻게"에 해당하는 것이 담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장르적인 의미로 "현대소설"을 구성하는 자질들을 보여주는 것일까요? 자연히 추상적인 스토리의 문제라기 보다는, 형식으로서의 담화적인 요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라네님의 "'이야기'를 얼마나 잘 독자에게 전달하느냐 문제"에 대한 인식은 정확합니다. 바로 전달하고자 하는 스토리를 어떻게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하느냐에 대한 궁구가 담화의 층위에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예술성과는 별개의 문제일까요? 애초에 우리가 문학을 통해 미적 체험을 하게 되는 원인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부터 지속되어온 이러한 질문에서 우리가 어느 정도 찾아낸 대답은 하나의 이야기에는 그 미적체험을 이끌어내는 데에는 그에 적합한 형식의 문제가 분명히 개입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즉, 추상적인 스토리를 단순히 전달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것으로부터 미적 감동을 이끌어낸다는 것은 그 스토리에 적함한 담화의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입니다. 문학의 예술성과 순수성이라는 것은 얼마나 지적이고 아름다운 문장을 적어내느냐보다는 그 문장들을 어떻게 배열하고 이를 어떤 플롯으로 이어나갈 것인가의 형식적 문제를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존의 소설에서 정제되어왔던 전통적 작법의 문제를 존중하는 이유라 할 수 있습니다. 작가들이 은연중에 이러한 현대소설의 틀을 따르고 있다면 거기에 좀 더 독자들로하여금 그 미적 감동을 이끌어내기 용이한 장점들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질문에 대한 답을 드려볼까요. 1. 현대소설의 흐름은 중구난방이며, 비단 국내소설에 한정지어 말씀드리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앞서 "담화의 문제"는 점점 더 의식있는 작가들에 의하여 연구되고 있는 분야이며, 서구의 소설들(특히 포스트모던 계열)의 감화를 받은 국내의 젊고 재능있는 작가들 또한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자기 나름대로의 방식대로 적용해나가고 있는 와중입니다. 한마디로 라네님의 현재 생각보다는 좀 더 다양한 시도들이 실시간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이는 신인작가들보다는 비교적 기성작가들에 의한 작업이며, 그러한 점에서 등단을 목표로 하는 작가지망생들에게는 적합하지 않다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그렇게 단정하기도 어려운 일입니다. 앞서 강조하였듯이,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 미적 감동을 위해서는 그에 가장 적합한 담화의 기술이 요구되는 것이니까요. 이를 뒷담침 해줄 허구적 서사 내부의 내적 논리에만 어긋나지 않는다면 형식 상의 실험 자체를 무조건적으로 부정적으로 볼 수는 없겠지요. 2. 제 분수를 넘어서는 문제이기에 대답하기 어렵군요. 3. 한국문학은 폐쇄적이지 않습니다. 아니, 전제 자체를 바꾸겠습니다. 문학이란 본질적으로 폐쇄적일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문학의 절대적인 전제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시길. 현대소설이라는 것은 한국의 자생적인 문학장르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죠. 학계에서도 이견이 분분한 부분이기는 하지만, 지금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현대소설"을 과거의 고전소설과의 발전으로 설명하는 것은 무리일 수 밖에 없고, 분명 서구적 장르의 이식으로 보는 것이 맞으며, 이것은 뒤늦게야 한국에 뿌리를 내린 것입니다. 즉, 현대소설은 현재 한국에서도 빠른 속도로 자기갱신화되고 있는 장르입니다. 이 빠르게 변화를 거듭해왔고 지금도 변화중인 있는 한국 현대소설의 지형도를 과거의 것부터 어렵게나마 그려나가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형편이니, 앞으로의 양상은 더욱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라네님이 현대 한국소설에서 폐쇄성을 느끼신다면 저로서는 지나친 상대적 박탈감이나, 조금은 편협한 시각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감히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말씀드리는 김에 더욱 주제 넘게 말씀드리자면, 더욱 더 많은 소설들을 읽고 이러한 발전적인 고민들에 더욱 많은 시간들을 투자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문학은 학계에 의해 좌우되지 않습니다. 문단에 의한 평가는 최소한의 기준이겠죠. 그 또한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결국에 문학은 독자에게만 남습니다. 수용미학에 의하면 오히려 절대적으로 작품은 작가보다는 독자에 의하여 완성됩니다. 라네님이 오히려 더욱 행복한 독자가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그 독자가 원하는 소설은 어떠한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전달하는 소설일지를, 행복하게 생각하면서 건필하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힘내세요. ^^
09/08/02 00:30
Bar Sur님// 약간은 급하게 쓴 글이라 잘 정리가 안되었는데 너무나 정성껏 리플을 달아주셔서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확실히 군전역한지 얼마 안되서 견식이 좁은 건 인정하구요, 문창과라서 문창과 테두리 안의 것만 배우자라는 안일한 생각이 있었던 과거와 달리 이렇게 관련분야가 아닌 여러사람의 의견을 듣고 싶었는데 많은 부분 공감이 가면서 참고가 되는 군요. 감히 요즘은 글을 쓴다 대답하질 못 하겠으며, 글을 쓴다고 펜 혹은 키보드위에 손을 올리기만 할 뿐 아무 생산도 못 하는 지금 시점에서 Bar Sur님의 글은 안도감 비슷한 것을 주셨습니다. 그렇군요. 제가 편협한 것으로 끝나는 거라면 전 너무나 자신있게 깨고 나아갈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답변 감사합니다.
09/08/02 01:25
음.. 한가지 말씀드리면『최순덕 성령충만기』라는 작품은 이기호 선생님의 단편집이구요,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가 그 이후에 나온 작품집이에요. 최근 『독고다이』 라는 산문집도 내셨는데 관심있으시다면 꼭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추가적으로 질문 주신 부분에 대해서도 곧 짤막하게 리플 달도록 하겠습니다.
09/08/02 16:43
화성특급님// 아이고오, 사실 작가를 눈여겨 보지 않고 작품만 낼름 읽어버리는 습성이 여기서 나오는 군요.
실제로 서점에서 읽고 맘에들어 사서 읽고는 책장에 고대로 모셔놓은 지 오래되서 착각했네요;; 수정수정.. 굳이 작가를 마음에 들어하는게 아닌 작품을 맘에 들어하는 쪽이지만 찾아서 봐야겠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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