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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1 22:47
질문과는 상관없지만, 혹 저랑 같은 지방 국립C 대학교 다니시는지..??
제 동기들도 이번에 수업 들으면서 빨치산의 딸 읽는다고 정신없던데 말입니다.;;
08/10/21 22:50
글쎄요. 베트남의 경우를 보면 포기할 수도 있을지도?
하지만 50년대의 특수성을 감안해 보면 쉽게 놓지는 않았을듯.. 한반도마저 공산화되면 아시아는 일본을 제외하고는 다 소련/중국 밭이 될 판이었으니
08/10/21 23:51
지금 당장 주권이 있는 국가도 갖가지 이유를 들어 들쑤시고 있는 미국이 과연 과거에는 그러지 않았을까요? 물론 소련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하지만 mchoo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극동아시아에서 상대적으로 약했던 자본주의 진영의 힘을 생각한다면 미국쪽이 조금은 더 절박했을 수도 있을거란 생각은 드네요. 일단은 베트남의 경우야 반전여론이라던지 많은 국내외적 상황이 어느정도 힘을 실어준 면도 있었겠지만 세계대전이 끝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대는 조약이라던지 명분이라던지 이런건 그냥 텍스트에 불과했을수도 있는 때였을겁니다. 특히나 미국, 소련같은 양 진영의 괴수들에게는 그냥 종이쪼가리였겠죠. 연합군의 이름으로 들어온 미군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게 어떻게 연합군이었겠어요.
글쓴분께서 말씀하신대로... 그 당시의 상황은 분단이 필연적이었다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시대였던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사실 자본주의 진영에서는 남한이라도 공산화되지 않은 것이 기적과 같은 상황이죠.
08/10/22 01:56
미국의 전쟁 참전은 미국 입장에선 당연하고 어떠한 일이 있어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일이었다면 중국에 있어서의 한반도 개입은 그보다는 좀 더 유연했다고 할까요.. 휴전 후 중국 군사령관의 말에 따르면 미국의 중국 본토 공격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란 걸 철저하게 확신한 후에 개입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당시 미 대통령이 맥아더의 중국 공격 제안을 반대했었죠.
그리고 북한이 전쟁 발발 약 1달 내에 한반도와 그 주변 해상을 완전히 장악하는 시나리오가 아니라면 연합군 상륙을 저지할 힘은 없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연합군의 개입 결정은 전쟁 직후 거의 바로 이루어졌으니까요. 북한군은 전력의 대부분을 전쟁 초기에 모조리 투입했기 때문에 낙동강 전선에서 더 밀고 내려가지 못할 즈음에 이미 북한군 단독으로의 공산화는 힘들어졌죠. 미국이 중국 본토 폭격을 불사하면서까지 한반도 민주주의 수호에 대한 강력한 의지가 있었다면 통일도 가능했다고 생각하지만.. 중국이 개입한 이후부터는 사실상 분단이 필연적이라고 봐야겠지요.
08/10/22 02:09
랩교님// 반대로 남한군 역시도 단독으로 공격을 저지할 힘이 없었습니다. 어차피 한국전쟁은 양 진영의 수장끼리의 대리전장이었습니다. 남한이 힘이 없었다 북한이 힘이 없었다의 이야기는 의미가 없다는 말이지요. 중국은 단지 한반도 전체가 자본주의화 되어서 자신들의 방패막이가 사라지는 것을 원치 않았을 뿐이죠. 그런 의미에서 참전의 성과를 볼 때 분명 정확한 판단이었습니다.
그리고 한반도 민주화 수호라.. 그렇다면 미국은 민주화 수호에 적극적이었고 소련은 그렇지 않았다는 말인데요, 미국이 과연 남한의 민주화에 관심이 있었는지 그 이후의 역사를 따져 보면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민주화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수호라고 말씀하시려는 걸 잘못 말씀하신거라 믿겠습니다.^^
08/10/22 02:23
님 말이 다 맞고 제가 그걸 부인한 적도 없습니다만.. 민주주의 수호란 말이 왜 틀렸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6.25 전쟁은 중국과 소련의 사주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김일성의 독단적 의지가 매우 강했기 때문에 일어난 거라 생각합니다. 만약 미국의 중국 본토 폭격이라는 전제가 깔렸다면 중국은 개입을 꺼려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말을 한 겁니다.
08/10/22 03:20
아아.. 네에..^^ 랩교님 말씀에 딴지를 걸려고 드리는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정말로요. 다만 제가 드리고자 하는 이야기는.. 그 당시 북한의 김일성이나 남한의 이승만이나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있는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정도의 차이를 따지자면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그걸 논할 이유도 없고 어차피 오십보 백보니까요. 굳이 이야기 하자면 이승만은 당시 북진통일론을 주장하면서 무력으로 북한을 점령하길 원한다는 것을 공공연히 드러내었고 실제로 38선 부근에서 무력 충돌이 굉장히 잦았습니다. 김일성의 독단이 전쟁을 일으켰다면, 그 이전에 이승만이 먼저 전쟁을 일으켰을수도 있다고 봐야 할 정도로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었구요.
어쨌든 중국 본토 폭격의 전제가 깔렸다면 중국이 개입을 꺼려했을 수도 있다는 말씀에는 동감합니다. 그랬다면 어찌됐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겠지요. 다만 민주주의에 대한 이야기는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적인 기준이 서로 다를수는 있으나, 당시 이승만 정권하의 남한이 정말 민주주의를 지향하였는가, 또 미국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진영만이 민주주의를 이야기 할 자격이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드린겁니다. 그래서 자본주의에 대한 수호라는 말이 더 맞지 않느냐는 말씀을 드린거구요. 별로 어렵지도 않은 이야기를 제 부족한 말솜씨 때문에 오해를 드리게 된 것 같습니다. 그 점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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