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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6/14 02:23
1. 1번 같은 경우는 지역감정이죠. 당시 김대중씨이 호남쪽이었고 김영삼씨이경남, 부산쪽이고 노태우씨가 경북 대구였고, 김종필씨가 충청은 장악한 상태에서 서울을 누가 먹는냐에서 나뉘는 것이죠. 최종결과로 노태우가 800 김영산이 600 김대중이 400 김종필이 100만이 나왔다고 기억합니다. 만약에 양김이 단일화에 성공했다고 한다면 단순하게 계산해도 이기는 것이었죠..하지만 둘다 대통령에 대한 욕심을 포기 못하는 현실이었죠.
그리고 5공화국 드라마를 보면 선거 전날 칼기 폭파 사고 범인의 압송하고 하루 종일 그에 관한 뉴스를 방송하면서 공안정국이 형성되고 부동층이 노태우 쪽으로 확기우게 되죠..양김도 칼기 떄문에 몇백만표를 잃었다고 자평하였죠..
08/06/14 02:29
가즈키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놈의 지역감정 때문이였군요...흑흑
그런데 경상도가 둘로 갈라졌는데도 불구하고 이기다니... 나름 지지층이 있었나보네요. 공안정국이 형성되면서 노태우 쪽으로 기울었다는 것은 그 때 전두환 정부는 보안면에서는 국민들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뜻인가요? 아 그리고 칼기 폭파 사고는 어렴풋이 사실이 아니라고 배웠는데요. 그렇다면 노태우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일어난 일인가요...?;;;;;; 지나친 생각인가요?
08/06/14 04:10
사실 정치와 광주사건에 무관심한 일반인들에게 전두환시절은 의외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왜 그러나고 물어보면 물가랑 치안은 확실하게 잘했기 때문이라고 말하죠. (치안은 보도통제때문에 잘한것처럼 보일 뿐일지도. 봉고차 납치 인신매매가 기승을 부린 시대였는걸요. 하지만 물가는 확실히 잡았나봅니다. 고 정주영회장의 회고록에도 5공은 경제인들에게 고통의 시대였다고 하니까요.) 그런 사람들의 표도 한표입니다. 그런 표들이 노태우를 밀어준거죠.
08/06/14 08:13
전두환시기의 경제는 굉장히 호황이였습니다.
일단 경제가 떨어질 수가 없는 분위기였습니다.-_-; 3저호황에 한국역사상 최고라는 경제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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