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례본 -
훈민정음이 창제된 지 거의 3년만인 세종 28년(1446) 음력 9월 상한에 발행한 훈민정음 해설서인데, 1책으로 된 목판본이다. 이 훈민정음 해례본의 한자는 해행서체, 한글은 돋움체 획형으로 나타냈다. 국보 70호인 이 책은 1940년 경북 안동에서 발견되어 현재 서울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세계 기록 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 책의 한글 글꼴 특징은 자형을 정사각형에 가깝고 서선의 굵기가 일정하며 수평, 수직으로 서선 방향을 나타냈다.
해례본 상주본은 뭔가요?
그리고 안타까운기사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2/10/2012021000090.html?r_inside
2008년 7월 경북 상주시의 배씨는 문화재청 인터넷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다. '집에서 고서적 한 권이 나왔는데 국보 문화재로 지정 받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며칠 뒤 TV를 통해 "국보 70호인 훈민정음과 동일한 판본이 상주에서 발견됐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한국국학진흥원 임노직(50) 연구원이 감정을 맡았다. 국보로 지정된 간송본보다 종이 상태가 양호하고 '오성제자고(五聲制字攷)'란 책 제목이 붙어 있었다. 또 임진왜란 이전 책을 본 사람이 적은 음운학적인 주석도 보였다. 문화재계는 깜짝 놀랐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그동안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훈민정음이 방송에 공개된 지 10일 만에 또다른 '주인'이 나타났다.
상주의 골동품상 조모(67)씨가 "배씨가 고서적 두 상자를 30만원에 사가면서 해례본을 함께 넣어 몰래 가져갔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배씨는 "우리 집에서 나왔다"고 반박했다. 두 사람은 절도와 무고 등으로 맞고소를 했고 물품 인도를 청구하는 민사소송이 이어졌다. 형사 사건은 소유권이 결정되지 않아 무혐의 처리됐다. 민사소송은 배씨가 변호인 없이 3년여 이어진 뒤 지난해 6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배씨가 훔친 것이니 조씨에게 돌려 주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배씨는 꿈쩍도 않았다. 그 사이 해례본은 행방이 묘연해졌다. 검찰과 법원이 세 차례 배씨 집 등을 강제집행하고 압수수색했지만 찾아내는 데 실패했다.
검찰은 지난해 9월 배씨를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그는 해례본이 어디 있는 지에 대해 계속 함구하고 있다. 검찰은 지난달 26일 결심 공판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의 소재를 밝히지 않고 범행을 부인하는 등 죄질이 나쁘다"며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문화재청은 "훈민정음 해례본의 가치를 굳이 따진다면 1조원 이상으로 판단된다"는 의견을 냈다.
상주본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또 어떤 상태일까. 이 책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현재로선 수감된 배씨뿐이다. 기자는 3일 상주경찰서 유치장에서 그를 만났다.
- 훔친 게 아닌가.
" 훔쳤다면 문화재청에 뭐하러 지정 신청을 했겠나. 공개하기 1년 전부터 심상치 않음을 알고 들여다 본 책이다. 그냥 두면 위험하겠다 싶어 문화재로 지정받으려 했는데 …."
- 왜 소중한 문화재를 낱장으로 뜯었나.
"해례본은 실로 꿰매졌다. 실은 종이보다 약하다. 실이 삭아 그런 상태가 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해외 밀반출을 걱정한다.
"나는 적어도 그런 일은 없다."
- 해례본은 어디에 두었는가.
"여기 오고부터 모른다. 능력 밖의 일이다."
- 훼손될 위험은 없나.
"거기에 대한 책임은 못진다. 뺏고 보자는 것인데 … 불상사 난다면 난 책임 못진다."
- 어떻게 하면 좋겠나.
"무죄로 풀어 놓고 시작해라. 실망시키지 않도록 노력할 생각 있다. 굴복해서 내놓을 수는 없다."
경찰은 현재 배씨의 집 주변을 유력한 상주본 소재지로 추정하고 있다. 상주본이 나온 배씨 집을 찾았다. 집 마당과 마루·처마 등에 골동품과 고서적이 나뒹굴어 금방이라도 귀신이 나올 것같은 집이었다. 혼자 집을 지키는 배씨의 형은 "그동안 동생이 살던 집이어서 그 책은 본 적도 아는 것도 없다"고 말했다.
대구지법 상주지원은 9일 오전 10시 배씨 사건에 대해 선고한다. 이날 판결은 상주본의 운명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