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12/12/09 12:28:54
Name 민머리요정
Subject [야구] 비운의 핵잠수함, 한희민
http://imageshack.us/a/img831/2369/17455445.jpg

오늘날 야구판에서는 투수들을 이렇게 구분합니다.
오버핸드, 쓰리쿼터, 사이드암, 언더핸드.
단적인 예로 들면,
정통파 오버핸드 정민철, 정통파 쓰리쿼터 송진우,
정통파 사이드암 임창용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한국프로야구판에 정통파 오버핸드가 존재할까요?
오늘날 리그에서 정통파 언더핸드라고 불리울 수 있는 선수는 단 3명입니다.
넥센의 김대우, SK의 박종훈, 한화의 정대훈 뿐입니다.

과거부터 이어오던 정통파 언더핸드 투수는,
다소 극단적인 투구폼으로 거의 마운드에 가까운 곳에서
공을 뿌리는 형태의 투수를 의미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정대현 선수까지도 언더핸드에 속할 수 없는 것이죠.

과거 빙그레 시절, 최초의 정통파 언더핸드 투수 한희민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언더핸드 투수가 점점 사라지는 추세 속에서,
과거 한희민이라는 존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줍니다.

---------------------------------------

한희민은 원래 농구선수였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도 농구를 계속하려던 중에,
농구부가 사라지고, 야구부가 생겼고, 그저 운동이 계속 하고 싶어서 시작한 것이 야구입니다.

한희민은 야구명문 세광고를 나왔습니다.
빙그레 동료였던 송진우, 장종훈이 그의 후배입니다.
고교 1학년까지도 오버했드 투수였던 그는,
새로 부임한 김승성 감독님의 권유로 2학년이 되면서, 언더핸드로 전향했다고 합니다.

결과는 대성공. 성공적으로 전향한 한희민의 호투 속에,
세광고등학교는 대구 대붕기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습니다.
3학년 때, 전국대회 트로피 하나를 더 들어올리고, 성균관대에 입학했습니다.
동기로는 해태 장채근, LG 김태원, 쌍방울 이연수가 있습니다.
이들을 중심으로 성균관대를 춘계리그 우승으로 이끌었고,
그것이 전성기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리고 대학 재학기간 중에 국가대표에 선발되었고,
발탁이 되자마자 83년 아시아 야구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했고,
84년 LA 올림픽을 비롯한 각종 대회에 꾸준히 등판을 했습니다.

지난 제 1회 06 WBC 당시에 대만 일간신문 민생보에서는 특집기사로,
대만 대표팀은 80년대 국제대회에서,
한국의 한희민에서 꼼짝없이 당했다라고 소개했을 정도로,
국제대회에서의 그의 활약은 대단했습니다.

그리고 국제대회 우승을 했기 때문에, 병역혜택까지 받게 되었고,
그것이 한희민이라는 투수가 세상에 알려지고, 위용을 떨치게 되는 시작이었습니다.



성균관대 졸업 이후, 한희민은 빙그레의 창단멤버로,
이상군과 더불어, 리그 최상위권의 원투펀치를 형성하였고,
창단 첫 해 꼴찌였던 빙그레는,
한희민이 활약한 7년간 4차례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알듯, 빙그레는 비운의 팀.
장종훈, 송진우, 이정훈, 이상군, 정민철, 이강돈, 유승안,
한용덕, 강석천, 강정길, 고원부... 그리고 김영덕 감독까지
최고의 멤버와 감독을 가지고도, 늘 해태, 롯데에 가로막혀
한국시리즈의 문턱에서 좌절하곤 했습니다.

---------------------------------------

한희민은 한국프로야구 최초의 정통 언더핸드 투수입니다.

언더핸드 투수로는 드물게 완투형 투수.

184cm에 65kg. 호리호리한 체격으로 약해보이는 외관과 달리,
특이한 투구폼, 가장 낮은 포인트에서 공을 뿌렸고,
떠오르는 커브, 떨어지는 싱커, 강인한 체력을 바탕으로,
이상군과 함께 약체 빙그레를 이끌어나갔습니다.

7시즌 80승 51패 24세이브 / 47완투 13완봉
1124.2이닝 594 탈삼진 / 방어율 3.25

완투 횟수는 역대 16위에 해당합니다.
7시즌밖에 뛰지 않은 선수의 기록이라고 한다면,
그 횟수가 얼마나 대단한 숫자인지 알수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입단 이후 3시즌동안 완투를 36회를 했습니다.

프로에 들어오면서부터 한결같았던 그의 목표는, 프로 100승을 달성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가 그의 스스로 가치를 세우는 일은, 오로지 승리, 승리 뿐이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선수층이 얇았던 빙그레에서 뛰었기에,
완투를 하는 일이 많았고, 실제로 완투도 많이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이런 경기가 있었습니다.
91년 6월 20일 시즌 전적 2승 1무 2패로 맞서던 해태와 빙그레가
광주구장에서 대결을 펼치던 그날.
9회말까지 1 - 1로 승부를 가리지 못한 두 팀은, 연장전에 돌입.
당시 최고의 투수 선동열은,
빙그레 선발 전원으로부터 18 탈삼진을 기록하며,
한 경기 최다 탈삼진을 기록했던 그날.
선동열을 상대로 해태의 타선을 틀어막았던 선수가 바로 한희민이었습니다.

결국 승부는 1 - 1 무승부.
한희민은 13이닝 완투를 하고도 승패를 올리지 못했습니다.



선수시절 한희민은 성격이 유하지 못하고, 강성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빙그레 시절 마지막은,
감독과의 불화가 극에 치닫는 상황으로 이어졌고,
급기야 경기 중에서 큰 사건이 하나 터지고 맙니다.

시즌 내내 감독과 갈등을 빚으며 2승에 머물렀던 그는,
92년 9월 17일 해태와의 대전 홈 경기에서,
4이닝 2피안타 6탈삼진을 기록하며 호투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상황 역시, 6 - 0으로 앞서고 있는 상황.
1이닝만 더 던진다면 승리투수 요건이 갖추어지는 상황에서,
투수코치가 등판하여 투수를 바꾸겠다는 의사를 전합니다.

마운드에서,
-제가 왜 내려가야 합니까? 라고 물었지만,
돌아오는 투수코치의 대답은
- 미안하다 였다고....

당시 투수들에게 1승의 가치는, 곧 연봉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선수의 생존과 관련된 아주 큰 문제였습니다.

정당한 이유를 물었지만, 감독이 바꾸라고 했다는 변명만이 되돌아왔고,
5회 한희민 선수는 마운드에 오를 수 없었습니다.
마운드는 그의 후배인 송진우에게 넘겨주게 되었습니다.

당시 감독이었던 김영덕 감독은,
해태 이강철과 다승왕 경쟁을 하고 있는 송진우에게,
다승 타이틀을 안겨주고 싶어했기 때문에, 18승을 하고있는 송진우에게,
1승을 더 안겨주기 위해서, 잘 던지고 있는 투수를 내렸습니다.

너무나도 유명한 이 사건의 당사자가 한희민이었습니다.

통산 76승으로, 100승까지 24승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남은 숫자를 23승으로 바꿀수 있는 기회에서,
이해할 수 없는 강판으로 꿈을 미뤄야했습니다.

92년 시즌이 끝나고, 한희민은 트레이드를 요구하게 됩니다.
그동안 쌓인 불만이 폭발하게 되었고, 특히 이유가 없는 강판을 수용할 수 없었던 것이죠.

그의 판단은 빙그레에서는 100승은 물론이고,
등판조차 어렵다는 결론을 내려버린 것입니다.

88, 89년 팀내 최다승, 4년 연속 12승을 거두었던 투수.
팀이 어려웠던 80년대, 가장 많은 공헌을 했던 투수 한희민은,
그렇게 팀을 떠났습니다.

LG로의 트레이드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결국 삼성으로 무명의 내야수 박철희와 3000만원을 얹어서 트레이드 되었습니다.

새롭게 시작하려는 마음으로, 삼성에서의 이적 첫해.
93년 전반기 4승 1패 3세이브, 방어율 3.38을 기록했습니다.

후반기에도 선발로도 자신이 있었지만,
코치진은 그에게 중간계투를 요구했습니다.
그것도 승리조가 아닌 패전처리로.

한희민은 다시 코치진에게 물었습니다.
- 제가 왜 패전조로 가야합니까?
돌아온 답은, 빙그레 시절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 감독이 하라면 해야지, 말이 왜 그렇게 많아?

그는 거기서 절망을 느꼈습니다.
그저 이유를 물었고, 아마가 아닌 프로선수라면,
그 정도의 이유는 알아야 된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죠.

그렇게 한희민이 물을 때마다,
한희민은 강성이나, 독불장군으로 몰렸습니다.

빙그레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삼성.
결국 감독의 눈 밖에 난 한희민은 2군으로 내려가게 되었고,
다시는 1군 무대를 밟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 아무도 모르는 사이,
대만의 준궈 베어스에 입단을 해서, 2년간 프로생활을 이어간 후,
조용히 한국에 들어와 아무도 모르게 은퇴를 했습니다.

한국프로야구 최고의 잠수함 투수로 꼽혔던 한희민의 역사는,
너무나 허무하게도, 불행하게 그렇게 사라졌습니다.



야인으로 지내던 한희민은,
야구를 잊고 살다가, 2003년 한화 이글스의 투수코치로,
2005년 기아 2군 투수코치로 잠깐 활약했을 뿐,
이후, 다시 야구판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현재는 새로운 인생을 살기 위해서,
광주 근교에 작은 오리집을 직접 공사를 하여 운영을 시작했지만,
채 2년이 되지 않아서, 지역이 수몰지역으로 판정이 나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부득이 하게 충남 계룡시로 이사하여 운영하고 계십니다.

그의 야구인생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그것도 자의에 의해서가 아닌 타의로 인해서, 복잡해졌고,
강요된 요구 속에 저항을 했던 그런 선수로 기억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다시 돌아가면 운동만 열심히 할 것 같아요. 가끔 후회합니다. 그냥 하라면 하라는 대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걸 그랬다고 말이지요.”
“아무리 소리치면 뭐 합니까. 들어주는 이가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선수가 그래요. 정말 아니다 싶어 소릴 쳐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요. 오히려 선수만 손해에요. 보복만 받을 뿐이에요. 쥐죽은 듯이 ‘꾹’ 참는 것이 현명하게 사는 방법입니다. 제 생각이냐고요? 천만에요. 그게 야구계가 바라는 '선수상(像)' 아닙니까? 그것이 세상이 원하는 '무던한 사람' 아닙니까?”

오늘날 야구판이 그렇습니다. 선수는 그저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는게 그들의 숙명입니다.

그게 숙명일 수는 있지만,
숙명이라는 말을 다르게 바라본다면, 그것은 강요일지도 모릅니다.
강성 한희민의 후회 역시 이와 같은 맥락이 아닐까요?

그의 야구인생의 마지막이 비록 프로선수로의 숙명을 받아들이지 못해,
굴곡지고, 험난해지게 되었지만, 한국야구는 기억합니다.

부당함에 저항할 수 있었던 한 명의 투수였음을 기억합니다.

----------------------------------

1세대 언더핸드투수로써,
시대의 강요된 흐름 속에서 저항한 한 명의 투수로써,
그리고 빙그레의 위대한 전설로써, 한희민 선수가 영원히 기억됐으면 합니다.

올해 한화가 레전드데이라고 해서,
여러 명의 과거 빙그레 선수들을 초빙해서 이벤트를 갖는데,
송진우, 장종훈, 이정훈, 김영덕 감독 등 흔히 알고 있는 레전드들은 초대되는 반면에,
한희민 선수는 단 한번도 언급된 적이 없습니다.

이글스가 다시한번 한희민 선수에 대해서,
재조명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한화에는 지금,
임기영, 신주영, 정민혁, 정대훈, 정재원 등....
많은 언더, 사이드암 투수들이 존재합니다.

그들에게 한희민이라는 선배가 있었음을 다시 일깨워주는 것도,
그들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도 듭니다.

그 언젠가,
레전드 데이에서 한희민이 초대되어, 이글스 레전드로 인정받아,
많은 팬들에게 다시한번 재조명받는 그날을 기다리겠습니다.

* 信主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2-12-24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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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란씨캬라멜
12/12/09 13:06
수정 아이콘
해태 팬이었던 저는, 한희민 선수가 제일 무서웠어요.
제 투구폼이 언더핸드라서, 라이벌 팀이었지만, 좋아하던 선수였죠.
좋은 글 고맙습니다.
12/12/09 13:12
수정 아이콘
우리가 흔히 아는 스타들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선수들이 아래에서 희생했어야했는지;;
이제 판도 좀 커져서 그나마 제실력으로 선수들이 올라갈수 있는 여지가 커졌지만
FA나 여러가지로 우리나라는 선수들의 권리가 좀 더 보장되야한다고 생각합니다.
(FA계약에 따른 돈이 아니라 제도나 다른 여러가지를 말하는겁니다.)
잠잘까
12/12/09 13:22
수정 아이콘
와 좋은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Practice
12/12/09 13:23
수정 아이콘
시대를 잘못 타고났네요. 저렇게 대단한 선수가 지금 나왔다면... 적어도 저런 말도 안 되는 승리 몰아주기 같은 건... 음... 아 김재박 감독님이 하셨었죠 참...
이선균
12/12/09 13:25
수정 아이콘
수많은 명문이 존재하는 pgr 자게지만 추천하려고 로긴한적은 제 인생에 로또 5등 당첨보다도 드문 일인데 간만에 글 남깁니다.
라이트 한화팬으로서 잠시나마 이상군 한희민 원투펀치 시절 회상에 젖게 해주네요.
당시에는 우리 고장(?)의 자랑이라고 수많은 어르신들한데 이야기 듣던게 생각나네요.

한편으로 글을 읽어 내려감에 따라 점점 BK가 떠오르기도 하네요.
BK는 정통파 언더핸드가 아니라 언급 안 된건가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이즈리얼
12/12/09 13:37
수정 아이콘
BK는 언더와 사이드의 중간 쓰리쿼터 언더정도로 분류합니다
민머리요정
12/12/09 13:54
수정 아이콘
다른이유가 아니라 국내파가 아니라서 언급하지않았어요. BK도 엄연한 언더핸드죠 흐흐
완전히 다른 스타일을 개척한 인물입니다 bb
이선균
12/12/09 14:45
수정 아이콘
두 분씩이나 답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글 덕분에 많이 배워가네요^^
방과후티타임
12/12/09 13:32
수정 아이콘
언젠가 광주쪽에 산에서 찻집을 하고있다는 이야기도 들었었는데,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좋지만, 야구를 원치않게 은퇴하고 좀 안타깝긴합니다.
민머리요정
12/12/09 14:23
수정 아이콘
네, 몇해전에 EBS에서 한희민 선수가 직접 차린 오리집, 십전대보탕 집을 방영한 적이 있었는데,
올해 초 수몰지역으로 지정되어서, 지금은 가게를 충남 계룡으로 옮기신 상태입니다.

본의 아니게 야구를 그만두게 되었을 때, 그 좌절감은 어땠을까요.... 참 안타까운 일이죠.
이즈리얼
12/12/09 13:36
수정 아이콘
예전의 감독들은 권위주의식 독불장군이였죠

경완옹이 4연타석홈런을치고 5연타석홈런을 기대해볼수있는상황에서 대타교체...

그러고서 하는말이 5연타석홈런 그딴거 뭐 필요하냐라고했죠

5연타석홈런은 전세계 어디가도 없는기록입니다

또 박종호선수가 사이클링히트까지 안타 하나남은상황에서 연속 번트지시 시킨것이나

장종훈선수 올스타전 은퇴경기등등 참 꼴뵈기싫은 감독입니다
스타나라
12/12/10 01:02
수정 아이콘
박경완의 연타석홈런 기록은 교체가 아닌 볼넷으로 끊어졌습니다. 이미 경기가 기울어진 상황에서 주전포수에게 휴식을 주는게 맞다고 봅니다. 이미 4연타석 홈런을 기록했고, 오늘이 아니라 내일로 미루더라도 5연타석 홈런의 기록은 이어지는 것이니까요.
이즈리얼
12/12/10 08:25
수정 아이콘
교체가 맞습니다 그리고 전세계어디에도없는 한경기 5연타석홈런기록을 앞에두고 순순히 교체되고싶은 선수가어딨을까요
이미 20-2로끝난경기에서 경기결과에 부담없이 기록을위해 기회를 충분히 줄수있었다고봅니다
abstracteller
12/12/09 13:39
수정 아이콘
대학동기인 장채근 감독이 감독하는 홍익대에 가끔씩와서 투수 인스트럭터 해주고 있다고 하더군요.

참... 언더핸드 투수는 그 매력이 있어요. 그래서 SK에 박종훈이 참 기대가 됐었는데 영점이 안 잡...
민머리요정
12/12/09 14:26
수정 아이콘
한 3일전인가요? 장채근 홍익대 감독님의 매일경제 스포츠 인터뷰 기사에서,
자신이 받아봤던 공 중의 최고가 누구였냐고 묻자, 선동열, 조계현, 이강철, 김정수 이 모두가 아닌, 한희민이라고 대답을 했더군요.

정말 긴 시간동안 호흡을 맞췄던 배터리였기도 했고, 오랜 친구여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장채근 감독 본인에게는 최고였다는 평가도 한희민 선수의 현역 시절이 어땠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죠.

실제로, 프로 입단 당시에, 장채근 선수가 한희민이 있는 빙그레로 보내달라고 구단에 졸랐다는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죠 ^^
12/12/09 13:52
수정 아이콘
첫 번째 사진은 꼭 합성같네요.
헥스밤
12/12/09 14:00
수정 아이콘
그래서 SK에 박종훈이 참 기대가 됐었는데 영점이 안 잡... (2)

아.....대현이형....종훈이 좀 키워주고 가지........
아우디 사라비아
12/12/09 14:31
수정 아이콘
실제로 그의 공을 겪었던 선수 는 정말 '삐리리"하고 "더러운" 볼끝이었다고 하더군요

제 생각에도" 더러운 구질"로는 역대급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바라는 '무던한 사람'..... 와 닿네요!!!!
12/12/09 22:09
수정 아이콘
약체 빙그레라는 말에 공감이 잘 안되네요
민머리요정
12/12/09 23:26
수정 아이콘
신생팀 당시에는 어쩔 수 없었겠죠? 여지없이, 창단 해였던 86년에는 꼴찌를 기록했고,
87년에, 이상군, 한희민 선수의 활약에 힘입어 탈꼴찌를 2년차에 했던 팀입니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새로운 세대들이 등장하기 이전이기 때문에, 약체라고 봐야 마땅한 것 같습니다.
이강돈, 이정훈, 장종훈이 같이 터져버린 90-92년을 극강으로 봐야 하고,
그 이전은, 유승안, 이강돈, 강정길이 타선을 지휘했다고 봐야겠죠......
이로보나, 저로보나, 90년대의 빙그레가, 80년대의 빙그레보다 훨씬 임팩트있고, 강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저는 그래서 상대적인 비교로나, 신생팀의 입장으로나 2가지 입장에서 약체라고 썼습니다.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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