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sports.news.nate.com/hissue/list?isq=10954&type=c&mid=s0106&page=2
김태균의 타격은 어쩔티비
나는 결과론을 신뢰하지 않는다. 타격에서는 특히 더 그렇다.
어떤 코치는 선수를 붙들고 “이 영상을 좀 봐. 네가 홈런 칠 때 모습이야. 봐봐. 이렇게 치잖아? 바로 이거야.
이거”라며 호들갑을 떤다. 코치가 보여주는 영상을 보면 기가 막히다.
어디 선수뿐인까? 심지어 초등학생이 홈런을 치는 모습도 배리 본즈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결과가 다른 타격을 보자. 헛스윙하는 타자의 영상은 죄다 이상하다.
투수의 손을 떠나 홈플레이트로 날아드는 투구의 속도와 구종, 궤적은 모두 다르다. 비슷한 게 있을지언정 똑같은 공은 없다.
타격은 선제공격이 아니다. 투수가 던진 질문에 답하는 행위, 즉 대응이다. 그러니까 같은 폼으로 스윙할 수 없다.
‘좋은 타격’은 분명 존재한다. 개인의 신체조건에 잘 맞고, 기술적으로 완성도 있는 스윙이 있다.
‘좋은 타격’은 그걸 찾는 과정이지, 특정한 장면일 수는 없다.
https://sports.news.nate.com/view/20230106n03293?mid=s0106&isq=10954
힘을 70% 써야 90%가 나온다
‘치고 싶은 욕심 다음’으로 버려야 할 것은 ‘세게 치고 싶은 욕심’이다.
실전 경기에서 100%의 힘으로 스윙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타자에게 세게 치고 싶은 욕심이 있기에 필요 이상의 힘을 쓰기 마련이다.
그러면 120%의 힘을 사용해 오버 스윙을 하게 된다.
불필요한 힘이 들어가면 스윙 리듬이 깨져 방망이가 빠르게 돌아가지 않는다. 게다가 스윙이 퍼져 나와서 타이밍도 늦어진다.
나는 타석에서 내 힘의 60~70%만 활용하려고 했다. 그렇게 의식해야 실제로는 80~90%의 힘을 쓰는 거 같았다.
일단 근육에서 힘을 빼고 하체의 균형을 먼저 잡아야 한다. 그리고 스윙의 타이밍과 궤적에 집중하는 편이 효과적이다.
살살 치라는 뜻이 아니다. 힘을 잘 이용하라는 거다. 이건 타자뿐 아니라 투수도 마찬가지다.
골프나 다른 스포츠의 원리도 같다. 복싱이나 종합격투기를 봐도 알 수 있다.
주먹을 꽉 쥐고 때린다고 강펀치가 되는 게 아니다. 가볍게 빵 때리는 거 같은 펀치가 빠르고 정확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야구를 했던 내가 물리수업을 열심히 들었을 리 없다.
그래도 타격에 대해 고민하면서 알게 된 아주 기본적인 물리법칙이 있다.
힘은 물체의 질량과 가속도의 곱(F=ma)이다. 배트의 무게(m)와 가속도(a)가 스윙의 힘을 결정하는 것이다.
https://sports.news.nate.com/view/20230109n02752?mid=s0106&isq=10954
흔히들 ‘공 보고 공 치기’라는 말을 많이 한다. 타석에 서면 복잡한 생각을 멈추고,
눈에 보이는 공을 방망이에 맞히는 것에만 집중하라는 의미다. 얼마나 간명한 표현인가.
나도 ‘공 보고 공 치기’를 하고 싶었다. 그게 가능하다면 타격은 별로 어렵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가능할지 몰라도, 적어도 나는 아니었다.
투수가 던지는 공은 타자에게 점(點)으로 보인다. 잠시 후 또 다른 점으로 보인다.
이게 몇 번 반복되면 공은 어느새 포수 미트 안으로 들어가 있다.
투구가 선(線)으로 보인다면, 스윙 궤적과 만나게 하기 수월할 거다. 그게 아니어서 타격이 어려운 거다.
그러니까, 타자는 공을 보고 치지 않는다. 무슨 궤변이냐고 할지 모르겠다.
공이 투수의 손을 떠난 이후에는 타자가 시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매우 제한적이다.
점(공)을 보고 투구 궤적을 예측해야 한다. 타이밍을 잡고, 스윙을 시작하고, 수정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은 0.4초 안에 이뤄진다. 그러니 공을 보고 칠 수 없다는 거다.
타격하기 전에 자신의 스윙을 갖춰야 하고, 공이 보이면 본능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그건 확고한 자기 타격이 있어야 가능하다. 타격을 완성하는 건 치열한 연구와 훈련의 결과다.
https://sports.news.nate.com/view/20230217n03871?mid=s0106&isq=10954
문대느냐, 때리느냐
선수들은 타자들의 유형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한다. ‘문대는 타자’와 ‘때리는 타자’다.
문댄다는 어감이 썩 좋지 않다. 과거 감독님이나 코치님들은 이 단어를 부정적인 뉘앙스로 썼다.
‘제대로 때리지 못한다’는 뜻을 담았다.
내 생각은 다르다. 잘 문댄다는 건 콘택트 존이 넓다는 의미다.
코스를 가리지 않고 어느 공이든 배트에 맞히는 걸 선수들은 문댄다고 표현한다.
이전 연재에서 설명한 인 앤드 아웃 스윙도 배트를 타자 몸에서 바깥으로 밀어내는 메커니즘이기 때문에 문대는 것처럼 보인다.
KBO리그 최고의 타자로 성장한 이정후 선수(키움 히어로즈)가 고타율을 유지하는 비결 중 하나가 바로 ‘문대는 타격’이다.
이정후 선수는 론치 포지션에서 임팩트까지의 거리를 짧게 만드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리고 어떤 투구에도 대응할 수 있는 스윙 궤적을 만든다.
자기가 예측한 것보다 공이 조금 늦거나 빠르게 날아와도 어떻게든 배트에 갖다 댄다.
2022년 정규시즌에서 이정후 선수의 헛스윙%가 3.0(KBO리그 2위)에 불과했던 비결이다.
이정후 선수는 히팅 포인트를 최대한 많이 만든다. 타이밍이 다소 늦어도 스윙 궤적이 어느새 피칭 궤적과 만난다.
반대로 타이밍이 빠른 경우에는 (왼손 타자의) 오른손을 앞으로 길게 뻗어내며 스윙의 결을 만든다.
요약하면 ‘짧게 나와서 길게 내뻗는’ 느낌이다. 이런 스윙은 공과 배트가 만나는 구간이 길어서 정확성이 높다.
다만 힘을 모았다가 폭발하기 어렵기 때문에 파워가 분산되는 약점이 있다.
그런데 지난 4년 동안 이정후 선수의 홈런은 6개→15개→7개→23개로 증가했다.
그의 두 팔은 정확성을 높이는 데 여전히 최적화돼 있다.
여기에 허리와 엉덩이 회전력을 키워 장타력까지 향상했다.
두 가지를 다 잘하기 쉽지 않은데 이정후 선수는 정말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 또 그걸 이뤄내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했다고 들었다.
한 손이냐, 두 손이냐
찰리 로와 테드 윌리엄스는 폴로스루에 대한 견해도 다르다.
로는 ‘한 손 스윙’을 강조했다. 배트를 두 손으로 꽉 잡고 휘두를 때의 회전 반경을 생각해 보자.
타자의 팔과 배트가 원의 반지름을 이룰 것이다. 로는 이 회전을 크게 만드는 게 좋다고 주장했다.
로는 임팩트 후 (오른손 타자의) 오른손을 방망이에서 떼라고 조언했다.
그러면 배트를 왼팔이 쭉 펴지면서 스윙의 회전 반경이 커진다.
이런 스윙은 궤적을 평평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히팅 포인트를 더 많이 만들 수 있다.
이런 타격은 스윙 스피드도 더 빠르다고 로는 주장했다.
또 타구에 역회전을 만들어 비거리를 늘릴 수 있다고도 했다. 로의 설명만 들으면 ‘한 손 스윙’이 정답 같다.
윌리엄스는 다르게 말했다. 임팩트 구간에서 두 손을 감으라(rolling, 오른손 타자의 오른손을 비틀라)고 했다.
윌리엄스는 ‘양손 스윙’을 강조한 것이다.
사실 난 이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고민하지 않았다. 한 손을 놓느냐, 두 손으로 치느냐는 선택은 상황에 따라 달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피칭과 스윙의 타이밍이 잘 맞았을 땐 ‘양손 스윙’이 이상적인 것 같다.
그러나 타이밍이 항상 잘 맞을 순 없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스윙 타이밍이 빨랐을 때,
예를 들면 패스트볼이 아니라 변화구가 날아올 땐 달리 대응해야 한다.
이미 스윙을 시작했는데 공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앞에 있다면 한 손(오른손 타자의 오른손)을 놔야 한다.
배트를 던지듯 앞으로 쭉 밀어내야 스윙 궤적이 커져 공을 맞힐 수 있다.
물론 이 경우 타구에 힘이 충분히 실리지는 않을 것이다.
가끔 좋은 타이밍으로 타격할 때도 한 손을 놓는 경우가 있다. 스윙의 가속도를 높이기 위해서 그럴 때 그렇다.
그러나 이 스윙을 잘 보면, 임팩트가 이미 끝났다. 힘이 충분히 실린 상태에서는 한 손을 놓아도 상관없다. 발레를 해도 괜찮다.
https://sports.news.nate.com/view/20230214n03049?mid=s0106&isq=10954
https://v.daum.net/v/20200909060139836
강속구의 시대, 한국 야구는 왜 소외됐나
https://v.daum.net/v/20200916060147441
속도보다 지속 가능한 성장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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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이볼은 목표인가 결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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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격은 불가능에 대한 도전..난 타자를 믿는다
https://v.daum.net/v/20201014060144296
류현진은 '피치 터널'을 어떻게 활용하는가
https://v.daum.net/v/20201021060134829
류현진·매덕스는 타자의 0.045초를 훔친다
https://v.daum.net/v/20201028060133196
구창모는 '볼끝'이 좋은 게 아니다
https://v.daum.net/v/20201104060208467
트레버 바우어 '공이 긁히는 날'을 만든다
회전수보다 중요한 건 '회전 효율'
지면과 수평축 수직 무브먼트 높여
회전 분석해 투구폼 바꾸는 사례도
데이터 해석력, 선수의 중요한 기량
https://v.daum.net/v/20201111060135980
난 후배들을 잘 못가르쳣다
정말 중요한 건 선수들과 진심으로 소통하는 것이다. 그들을 당당한 프로 선수로 대하고, 그들의 얘기를 들을 준비가 됐는지 나 자신에게 묻게 된다. 선수들의 인생을 건 도전을 내가 선배로서 충분히 도왔는지 반성하게 된다.
야구를 공부할수록 느낀 건, 난 선수들을 잘못 가르쳤다는 점이다.
선수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줬다는 말이 아니다. 선수들의 눈높이로, 최신 이론과 데이터를 통해 선수들을 충분히 납득시켰느냐고 물으면 사실 할 말이 없다.
내가 그라운드를 떠난 지 몇 년이 흘렀다. 그사이 난 ‘각동님’으로 불렸다. 2012년 KBO리그로 온 박찬호에 대해 조언을 해달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팔각도가 조금 벌어져 있더라”고 말한 게 화근이었다. 박찬호는 내가 늘 강조하는 하체 이동을 나무랄 데 없이 잘하고 있었다. 그래서 미시적인 부분을 말한 것인데, 아시아인 MLB 최다승(124승) 투수 박찬호를 ‘감히’ 가르치려 한다는 오해를 받았다.
투수 교체가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몇 번의 성패로 야구는 끝나지 않는다. 기본을 잘 지키고, 원칙을 따르면 결국 이길 수 있다. 그건 팀이 가지고 있는 시스템이자 매뉴얼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상호 신뢰라고 생각한다. 작전은 실패할 수 있다. 그러나 구성원 사이에 배려와 믿음이 있다면, 작은 실패를 딛고 결국 성공할 것이다. 그게 승리로 가는 길, 팀과 리그의 가치를 높이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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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야구를 떠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야구 공부도 계속할 것이다. 다시는 선수들을 잘못 가르치지 않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