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군에 관한 수사가 이루어지자 사건의 전말이 하나둘 드러납니다.
동부승지 이경동이 와 보고하기를,
창원군의 노비 원만, 석산, 산이를 신문해 자백을 받아냈는데 그 진술에 이르면,
홍옥형이란 자가 고읍지와 몰래 간통을 했었습니다.
고읍지는 창원군과 홍옥형, 두 사람 모두와 간통을 했었던 거였지요.
요즘으로 치면 양다리.
그런데 어느날 고읍지가 다른 여종 옥형에게 '내가 꿈에서 홍옥형을 보았다.' 라고 하니
창원군이 그걸 어떻게 듣고는 질투심과 배신감에 화가 치밀어
자신의 노비들을 시켜 고읍지를 처마에 매달아 놓고 칼로 죽이게 시켰다는 것입니다.
-_-;;; 평소 행실이 안 좋기로 유명한 창원군이었지만,
자신이 간통하던 여종의 꿈에 다른 남자가 나왔다고 사람을 죽이다니.....
어처구니가 없는 일입니다.
다음 날 아침 어김없이 왕의 경연이 있었고 당연히 이 사건이 언급됩니다.
성종이 우부승지 김승경에게,
'창원군의 집에 가 조사해보니 노비의 말처럼 정말 의심스러운 곳이 있는가.'
하고 물어보니 대답하기를,
벽 사이에 핏자국이 있었고 집에선 그곳이 개를 잡는 곳이라고 하지만,
집이 오래되어 확실치 않아도 충분히 의심스러움을 어필합니다.
이에 성종은 다시 창원군의 집을 다시 자세히 재조사 시키니,
집 안 땅에선 다량의 피가 흐른 흔적과 벽에선 피가 뿌려진 흔적을 발견하지요.
시체의 모습을 보았을 때 머리와 목사이에 살점이 남아나지 않을 정도로 칼로 인한 상처가 심했고,
그렇다면 죽였을 당시 엄청난 피가 뿌려졌었을테니 노비들의 증언과 정황상 창원군이 범인임이 상당히 유력해졌습니다.
창원군의 범인이 거의 확실해졌지만, 문제는... 창원군이 서자라지만 세조의 아들이라는 겁니다.
성종은 세조의 손자. 창원군은 성종과 나이는 비슷하지만 성종에겐 삼촌뻘의 어른이라는 거지요.
이에 압박을 느꼈는지, 성종은 밀성군(세종의 다섯 째 아들)과 월산 대군(성종의 친형) 등을 이 사건에 참가시킵니다.
2월 5일, 창원군 이성은 의금부 문밖에서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합니다.
자신이 젊었을 때부터 행실이 바르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나, 이번 일은 자신의 종들이 고문이 두려워
거짓 증언을 했다는 겁니다. 만약 자신의 죽였다면 피해자의 가족 중에서 어찌 원통함을 고하는 자가 없는 것이며,
죽여서 성밖에 던졌으면 시체가 어찌 그것밖에 상하지 않겠냐는 거지요.
발견된 시체가 형상과 나이를 보았을 때 고읍지인 건 맞는듯 보였으나,
창원군 말대로 정작 신원 확인을 확정지을 고읍지의 가족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에 성종은 아직 시체가 많이 상하지 않아 얼굴을 알아볼 수 있으니 친척을 찾아 확인하게 했려했지만,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 친지란 자가 나타나지 않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시체도 있고 증거도 있고 증언도 있는데 친척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사건을 그대로 흐지부지 끝낼 수도 없는 일입니다.
2월 7일, 우부승지 김승경이 사건에 참가한 월산대군, 밀성군, 영의정 및 삼사의 뜻을 전하지요.
창원군의 노비가 증언을 했고 살인을 한 사실과 그에 대한 증거가 뚜렷한 편이니
창원군을 신문 해 죄를 결정하기로 하자는 거지요.
이에 성종은 만약 창원군을 신문하여도 죄를 자백하지 않는다면,
증거에 의해 죄를 정해야할 것이라 말하고, 종부시(왕실 종친의 잘못을 규탄하던 관청)로 하여금
창원군을 신문하도록 명합니다.
2월 10일, 월산 대군과 밀성군은 성종에게 창원군을 처벌을 원하며,
'세종 때에 익녕군 이치(태종의 8남)가 그 노비의 불알을 깐 죄로(-_-;;;;) 제천현으로 부처(유배)되었습니다.
지금 창원군 이성이 한 짓은 참옥하기가 익녕군보다 심하고,
왕의 전교도 무시한 채 집의 수색도 거부하였으니 불경죄까지 더해진 상황입니다.
창원군의 직첩(벼슬 임명서)를 거두고 먼 지방으로 유배 보내소서' 라 아룁니다.
이에 영의정 정창손, 부원군 한명회, 좌의정 심회 등등이
익녕군은 종을 죽이진 않고 불알을 깐 것만으로도 외지로 유배당했는데,
지금 창원군의 죄는 그보다 심하니 먼 지방으로 유배보내는 게 맞다고 월산 대군의 의견에 동조하지요.
다만, 영돈령부사 노사신은 의견을 좀 달리하여,
창원군의 죄가 중하긴 하나 노비를 죽인 것이고 종묘 사직에 관계되는 것은 아니니
법령을 그대로 적용해 처벌하긴 힘들다 반박합니다.
게다가 지방으로 유배를 보내면 젊은 혈기에 창원군이 행실을 함부로하다 무슨 일을 당할 가능성도 무시할 수는 없으니
직첩만 거두고 집에 있으면서 스스로 반성하게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의견을 전하지요.
논쟁은 익녕군의 사례를 들어 이 사건은 그것보다 더 한 일인데,
오직 세조의 친아들이라는 것만 믿고 증거가 명백한데도 죄를 피하려하는 창녕군을 엄벌해야한다는 쪽과
그래도 왕실의 인물이니 용서하는듯 보이게 하면서 근처에 두며 감시하자는 쪽으로 나뉩니다.
이에 성종은 죄가 엄중하긴 하나 종묘사직에 관계되는 일도 아니고
만약 외방으로 귀양보냈다가 혹여 창원군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후에 후회할 수도 있으니,
그냥 직첩만 거두고 지금 집에만 머물게 하여 출입만을 그치는 쪽으로 하자며
월산 대군의 의견보단 노사신의 의견을 따르려 합니다.
이에 대간(임금이나 관료들의 과실을 언급하며 바로잡게 하기 위한 기관)들은
당연히 완강히 반대합니다.
지금 창원군의 죄는 그 정도가 중한데 이렇게 가볍게 처벌해버리다 후에 다른 큰 죄를 또 저지르면,
사람들이 전하께서 가볍게 처벌해 예방하지 못했음을 논할까 두렵다고요.
성종은 내일 저승들이 오면 다시 의논하여 분부하겠다 말하며 일단 판단을 보류합니다.
처음 사건이 일어났을 때 사안의 중대함을 강조하며 범인을 강력히 처벌하고자 하는 성종의 의지는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친족임이 밝혀지자 점점 약해져만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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