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06/04/23 00:31:42
Name unipolar
Subject KBS에서 임선수를 보고.
(여러가지 관점에서 생각할 것도 있고 지적할 점도 많은 방송이었지만, 저는 제가 늘 그랬듯이 개인적인 이야기만 쓰겠습니다.
일기처럼 써서 본의 아니게 반말투입니다. 죄송합니다.)


#1
임상실습을 앞둔 마지막 학기. 중간고사는 2주동안 집에 못 들어가게 만들었다.

새벽에 택시 타고 들어가서 샤워만 하고 나오며 부모님 얼굴은 보질 못했고

시험이 끝나서는 쳐박혀 자고 그동안 못한 개인적인 일들 한답시고 어디 말 한마디라도 나눴는지......


파워인터뷰 보려고 거실에 앉아 있으니까 내 얼굴 보겠다고 부모님께서 나오셨다.

몰래 하던 게임 들킨 것 같은 기분이었다. 화면에 비춰 주는 메가스튜디오 풍경에 마지못해 첨언하면서.

"내가 방학때 삼성동에 계속 간 이유가 저런 거야."


처음에는 내키지 않았다. 내가 설명한다고 해서 뭔지 아실까, 이해하실 수 있을까? 스타크래프트가 뭔지도 모르시는 분들인데.

그러나 그 뒤로는 한 시간 동안 굳이 많은 말을 할 필요도 땀흘리면서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정신나간 애들이나 뭔가 모자란 애들이 아니라 저렇게 멀쩡하고 반듯한 청년들이 하고 있는 일입니다.

그들의 생활, 노력, 인생이 저렇습니다.

제가 즐기고 있는 문화는 지금 저런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는 중입니다. 라고




#2
"대체 뭐 하는 거냐?" 그런 구박을 많이 받았다.

당연히, 부모님이 이해하실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설명하려고도 하지 않고 대화하려고도 않았다.


PGR에서 만들어준 팬픽 공모전 대상 상패를 받아온 날, 가방도 없고 그 상자를 감출 수도 없어서 안그래도 불안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현관문 열자마자 내게 대뜸 뭐냐고 물으셔서 나는 그냥 방으로 도망가버렸다.

붙잡혀서 상자를 열고 상패에 대해 설명하는데 그렇게 난감할 수가 없었다. PGR은 뭐고 넥서스는 뭐냐?

그 날이 처음으로 들킨 날이었다. 그동안 왜 코엑스에 다녔고 노트북 붙잡고 하던 일은 뭐였는지 실토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땐 그게 정말 괴로운 일이었다.


"네 나이에. 전공에. 학번에. 지금 뭐 하고 다니는 짓이냐?"



#3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집에 잘 들어가지도 못한 지 한달만에 이렇게 부모님과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고 함께 한 가지에 열중할 기회가 생겼던 것이다.


참으로 우연했고, 그 매개는 부모님이 처음 보시는 임요환이라는 한 청년이었다. 그렇게 유명하고 많이 알려졌다고 생각했건만 역시 이런 기회가 아니면 그를 알지 못하는 '예비인구'는 내 주변에도 얼마든지 있는 모양이었다.


신나서 설명할 수가 있었고, 들뜨고 흥분할 수가 있었다.

저기 나오는 숙소 보세요. 티원은 이런 팀이고, 이윤열 홍진호 오영종은-. 화면을 가리키고 설명하면서

나의 이 취미를 부모님과 공유하려는 시도가 처음으로, 이렇게 시작됐다.




#4
고맙습니다. 임선수


그냥 그가 보이는 웃음과 차분한 말들 만으로 내 수고가 덜어졌다.

우리 가정 말고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그의 존재가 변화의 씨앗이 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하며



누군가 나가야만 할 자리에 우리가 내보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주어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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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4/23 00:35
수정 아이콘
저도 참 감동있게 봤습니다. 임선수 화이팅!
06/04/23 00:35
수정 아이콘
반듯한 마인드를 가진 저런 프로선수의 팬이고 그선수가 하는 게임을 즐기고 보는 제가 자랑스러운 밤입니다. ^^
마녀메딕
06/04/23 00:36
수정 아이콘
마지막말 멋집니다.
가루비
06/04/23 00:39
수정 아이콘
마지막말... 그것이면 그에 대한 맘이... 조금이나마 전해지겠죠.

고맙습니다. 임요환선수.
내 꿈이 되어주어서...
나야돌돌이
06/04/23 00:39
수정 아이콘
너무 자랑스러워요
정말이지 박서가 없었다면 이스포츠가 이 정도로 성장했을까 싶습니다

제 부모님도 스타크래프트랑 이스포츠는 몰라도 임요환 선수는 압니다
영웅전설
06/04/23 00:48
수정 아이콘
와진짜 마지막줄이...
전 원래 임요환선수 팬까지는 아니였는데
오늘로서 팬 됬습니다. 난 남잔데...
풍운재기
06/04/23 00:50
수정 아이콘
마지막 줄....말그대로 오늘의 명문이군요^^
러브투스카이~
06/04/23 00:50
수정 아이콘
임요환 선수 인터뷰 멋졌습니다 ㅠㅠ
사토무라
06/04/23 00:56
수정 아이콘
정말 못말리신다니까. ㅠ_ㅠ)b
저도 부모님과 함께 봤습니다. 추게로 외치고 가야할거같네요.
땅강아지
06/04/23 00:59
수정 아이콘
차지하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힘든 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위해 더 남들보다 더 노력을 배로 하는 박서의 모습과 또 그 뒷면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힘든 모습 그리고 챙겨주고 싶지만 힘든 일정때문에 그렇지 못해서 안타까운 모습들 박서의 인간적인 모습들이 있기에 박서가 더 멋있어 보이네요 ----시청자 게시판 글중에서--
06/04/23 01:02
수정 아이콘
참으로 이상한 밤입니다.. 알고 있던 말, 기적은 노력하지않는자에게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저 나름대로 기적이라도일어났으면 바라는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실망하고 난 안된다고 되뇌이던 요즘인데, 철퇴처럼 내리치네요. 과연 난 노력횄는가.. 기적을 바란다고 당당할 만큼 노력했는가..
06/04/23 01:04
수정 아이콘
와... 글 자체도 훌륭하지만 마지막 한 줄의 글에서 나오는 힘이란... 정말 대단한 글입니다.
추게로 가야죠!~
플레이아데스
06/04/23 01:18
수정 아이콘
고맙습니다. 정말- 임요환선수도, unipolar님의 멋진 글도 고맙네요^^
태양과눈사람
06/04/23 01:33
수정 아이콘
마지막 한 줄에서 울컥 했습니다.. ㅠ.ㅠ
추게로~~~~
06/04/23 01:47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임요환선수팬은아니지만, 정말 임요환선수가 없었다면 이스포츠가 이렇게까지 성장했을수있었나 싶네요.. 스타크래프트팬으로써 정말 고맙습니다, 임요환선수..
Nada-inPQ
06/04/23 02:15
수정 아이콘
마지막 줄은 정말 훌륭하군요.
백지에 저 말만으로도 한 10년은 족히 치어풀로 쓸만합니다!!

임요환 선수의 팬은 아닙니다만, 이런 팬이 있는 임선수가 살짜쿵 부럽습니다.
막강토스
06/04/23 02:18
수정 아이콘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대략..방황할 때도 펑크내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적이 없다. 그건 팬들에 대한 배신행위다 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임요환선수 인상적이었어요. 저렇게나 반듯하고 제대로인 사람이 최고&최초라는 무거운 타이틀을 가지고 열심히 뛰어준다는게 든든하고 고맙네요. 멋져요.
추게로!
06/04/23 02:26
수정 아이콘
기적이란 단어. 스타가 프로게이머가 여기까지 온 건 정말 기적이죠... 그런 기적을 만들어 낸 임요환이란 사람.그리고 올드 프로게이머들. 참 존경스럽네요.
EnterTheDragon
06/04/23 03:09
수정 아이콘
우와,,,추게로.,,
06/04/23 06:36
수정 아이콘
추게로 갑시다-
영혼의 귀천
06/04/23 07:08
수정 아이콘
아......... 눈물 납니다.
그가 최강이기 때문에 임선수를 좋아한 건 아니었습니다.
보면 볼수록 참 반듯한, 그리고 프로라는 이름에 가장 알맞는 형태로 노력하는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항상 앞에서 모든 바람에 맞서 달려나가는게 힘들기도 하건만 그는 오늘도 맨 앞에서 달립니다.
앞으로도 계속 그의 팬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유니님의 글....정말 멋집니다.
장경진
06/04/23 08:08
수정 아이콘
마지막 문장 정말 멋집니다. 임선수 덕분에 만들어진 E-Sports가 오래오래 지속되면 좋겠습니다.
하늘 사랑
06/04/23 09:01
수정 아이콘
저도 임선수를 다시 보게 됐습니다
진짜 프로 의식으로 똘똘 뭉쳐있더군요
아마도 그런 프로의식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나 봅니다
그런 프로의식을 후배들이 본받고 더 발전시킬 수 있길 바랍니다
그양반이야기
06/04/23 09:11
수정 아이콘
마지막 글에서 결국 참았던 눈물이 나왔습니다 (나 남잔데 ㅠ.ㅠ)
추게로!!
블랙헤드
06/04/23 09:54
수정 아이콘
추게로 갑시다-
06/04/23 11:01
수정 아이콘
나서고 싶어하는 사람보다 내세우고 싶어하는 사람을 내보내자..

로마인 이야기에 많이 나오는..킁


추게 갑시다~
하리하리
06/04/23 12:25
수정 아이콘
unipolar 님 모두가 하고싶었던 말을 대신해줄수 있는 사람이 되어 주어서 고맙습니다. 추게로~
사다드
06/04/23 12:51
수정 아이콘
저도 오랜만에 부모님과 같이 TV앞에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보실때는 전 컴퓨터를 하고 있었고, 주말에는 약속으로 부모님과의 시간이 없었습니다. 같이 밥상에서 식사한 지도 오래되었더군요.
정말 저에게는 꽤나 많은 대화를 나눈 시간이었습니다.
마지막말 정말 많이 와닿습니다.
아스피린 소년
06/04/23 14:02
수정 아이콘
아 진짜 마지막 문장. 최곱니다. ㅠ.ㅠ
응큼중년
06/04/23 14:05
수정 아이콘
추게로~~ 추게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우리 요환 선수가 정장 입고 나가길 잘했단 생각이 드네요... 멋집니다... @^^@
노란당근
06/04/23 15:34
수정 아이콘
누군가가 말을 해야만 할 때에 우리의 말을 대변해 주시는 분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추게로~
06/04/23 20:16
수정 아이콘
어제 우연히 채널을 이리 저리 돌리다가 임요환 선수가 나오길래
어?어! 하다가 보게됐습니다.
임요환 선수 팬이 아니기에, 처음엔 다른 채널로 돌릴까 하다가 프로게이머가 공중파 방송에 나오다니.. 그것도 꽤 괜찮아 보이는 프로그램이라 채널을 돌리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봤습니다.
하지만 그 마음은 어느새 바뀌고 티비속 임요환 선수의 모습에 집중하고 있더군요. 말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임요환 선수의 모습도 멋있었고.
중간 중간 센스 있는 답변들까지.. 아마 임요환 선수를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충분히 호감을 가질 수 있을 정도로 꽤 괜찮았습니다.^^;

다 보고나서의 방송소감은 임요환 선수에 대한 편견이랄까..
내가 이 사람을 다른 눈으로 보고 있었던 부분이 꽤 많구나.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을만큼 좋았던 방송이였다.라고 할까요?
아무튼 재미있게.. 전혀 지루하지 않게 오히려 시간이 빨리 가는 느낌마져 들었던 방송이였습니다.^^
타조알
06/04/23 20:24
수정 아이콘
축구 시청하는 것 보다도..시간이 빨리 지나갔었던거 같습니다 ^^

임요환선수를 공중파에서 본다는것에 흥분하고
이윤석씨의 눈빛에 기뻐하고
MC분과 성공회대 교수님의 발언에 조마조마해하고..
자료화면에 등장하는 동료 선수들을 보면서 반가워하고 ..^^

너무 순식간에 흘러갔던 한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글을 보니..다시 그 감동이 살아나는듯 하네요..감사합니다 ^^
쪽빛하늘
06/04/24 10:31
수정 아이콘
요환선수 고맙습니다...

그리고 unipolar님 감사해요... 다시 한번 요환선수의 팬임을 자랑스럽게 느끼게 해주셔서요 ^^
막강테란☆
06/04/24 12:16
수정 아이콘
임요환선수 이번에e-스포츠를 대표해서 나온것에 대해 저도 기쁘고좋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너무 e-스포츠에 대해서 좋은 점만 물어봤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임선수가 생각하는 e-스포츠의 단점도 한번 물어봤었더라면... 싶습니다.
sway with me
06/04/24 12:38
수정 아이콘
제 후배이신 거 같네요. 임상실습 들어가시더라도 좋은 글 많이 남겨주세요~
추게로 갑시다~
두툼이
06/04/24 13:13
수정 아이콘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그죠?
아주아주 자랑스러워요...
always_with_you
06/04/24 13:58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임요환 선수,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IntiFadA
06/04/24 14:56
수정 아이콘
추게감입니다.....

이 글도, 임선수도...(임선수를 추천'게시판'으로 보낼 수는 없군요...^^;; 명예의 전당이라도 만들어야...)
06/04/24 16:32
수정 아이콘
짧지만 많이 생각하게 만드는 글이네요. unipolar님 글에서는 사람냄새가 폴폴 풍기는 것 같습니다.
저도 추게로 한표 외치고 갑니다.^^
06/04/24 17:26
수정 아이콘
그리고 나는 그래서 당신을 사랑합니다 ^^;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말만 찝어내신는겁니까. 볼에 홍조가 띄워지잖아요! 그래도 우리는 당신의 뒷모습을 여기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황제라기보다는 왕에 가까운, 인간적인 당신의 모습을..!!
가을토스
06/04/24 21:48
수정 아이콘
그동안 80년생을 마냥 어린애로 봤던...그런 80년생이 이토록 내자신을 되돌아보게 할 줄은 몰랐습니다....'기적은 노력하지 않는 자에게는 일어나지 않는다'라는 평범한 문구가 오늘 다시 와닿네요....'최초'라는 길을 용기있게 걸어왔던 요환선수의 앞날에 무궁한 영광이 있기를...
2000년 요환선수 카페가 만들어졌을때 초창기 멤버로 가입했던게 자랑스럽기까지 합니다..별 활동은 안하지만서도..
참...이 글 좀 퍼갈께요...
unipolar
06/04/24 22:56
수정 아이콘
개인적인 감상글을 읽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모두에게 같은 감정을 공유하게 한 것은 멀리 있지만 사실 우리와 가까운 한 사람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얀조약돌
06/05/16 20:16
수정 아이콘
아 시간을 몰라서 못 봤는데....
KBS홈이라도 가서 다시보기로 봐야 겠네요.
그나저나 unipolar님은 정말 글 잘 쓰시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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