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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22/01/13 09:37:42
Name 착한아이
Subject 내가 겪었던 좋은 사람들 (수정됨)
(반말체 양해 부탁드립니다)


요즘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하찮아지는 것만 같다. 물론 내가 꼰대라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소심한 성격인데 진취적이지도 못해서.. 많은 논쟁에 끼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약간 온라인이 무섭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서 내가 어떤 사람을 겪었던가, 어떤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던가 하고 떠올려봤다. 조금이나마 사람 간의 온정을 추억 속에서 느껴보고 싶기도 했고, 오랜만에 연년생 영아 둘다 일찍 자서 여유가 생겨서 딴짓좀 하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물론 사람은 항상 좋은 사람일  수 없다. 내게 좋은 사람이 네게는 나쁜 사람일 수 있다. 그래서 무작정 '좋은 사람'을 찾기는 어려웠지만, 그래도 '어떤 사람의 좋았던 점'은 무궁무진하게 생각해낼 수 있었다.


1. 남편
  우리 남편은 큰 실수도 있었고, 나에게 상처를 준 적도 있지만, 반대로 나를 무척 행복하게 해주고 나의 마음을 안아주기도 한 사람이다. 내가 남편을 가장 '좋은 사람'이라고 느꼈던 건 교통사고가 났을 때였는데, 상대 차와 직선으로 들이받으려는 순간 핸들을 틀어 운전자인 본인 쪽으로 돌리고 나를 보호해줬다.

  사실 남편은 ???하며 전혀 기억하지 못했는데, 나는 그 짧은 순간에 남편의 고민과 손동작까지 슬로우모션으로 봤다. 사실 나도 긴가민가했는데(하하..) 폐차 사진을 보니 확실히 운전석 쪽으로 틀어서 박은 정황이 뚜렷하게 보였다. 사람은 사고가 날 때 본능적으로 본인을 방어하기 때문에 조수석에 카시트를 놓지 않는다고 하던가? 나는 그 날 이후로 남편이 좀 잘못하는게 있어도 최선을 다해 용서했다. 임신했을 때 뭐 좀 사오라고 헀더니 투덜거린 것도 용서했다. 진짜임.


2. 시부모님
  우리 시부모님은 말을 진짜 필터링 없이 할 때가 있어서, 고부갈등에 고통받아 본 피지알러라면 PTSD가 찐하게 올만한 말을 여럿 하신 바 있다. 예를 들어  첫 애 낳고 첫날 면회 와서 "야 너 이제 살 좀 빼야지, 나중에 애가 놀림 받으면 어쩌냐? 운동해, 운동." 하신다던지, 시어머니가 "청소 좀 하고 살아 너네 집 거지 소굴 같아."라고 하신다던지. 이것보다 임팩트 있는 말들도 있지만, 심의 문제로 조절한다.

  아무튼 남들이 충격적으로 생각할 말들을 많이 들었는데 뭐가 좋은거냐고 묻는다면, 말은 거칠어도 행동에 늘 배려가 있다는 점이 좋다. 특히 나는 저런 말을 들을 때 꾹 참고 남편을 찌르지 않는다. "엄마 뚱뚱하다고 놀리는데 울기만 하면 자식이고 뭐고 줘 패야죠! 지 엄마 욕을 하면 주먹부터 나가야죠!"라고 한다던가, "어머님처럼은 맨날 청소 못해요. 그냥 거지로 살래요. 하하하"하고 능글거린다던가. 그러면 가끔 말대꾸한다고 짜증시내긴 해도 거의 대부분 맞는 말이라고 수긍하시거나 같이 깔깔 웃어 넘기시고, 하다못해 화장실 청소나 애들 미끄럼틀 설치까지 와서 도와주신다. 연년생 때문에 쩔쩔매다 주말마다 데리고 가면 손에 물 한번 안 묻히고 잠 자게 해주시고, 애들과 놀아주신다. 어떻게 저렇게 진짜 딸처럼 지내느냐고 시댁 친척들이 하나같이 부러워할정도로 나는 시부모님의 좋은 면이 더 많이 보이고 정말 좋다.

  사실 제일 중요한 점은 시부모님이 남편한테도 차이 없이 필터링 없다는 거다. 나한테만 그런거면 차별받거나 무시당한다는 기분에 진짜 화나기 마련이지만, 그냥 원래 그런거면 사실 화가 잘 안난다. 우리 시어머니 말씀으로는 아들들만 키우면 엄마는 전사가 되고 입이 험해진다고 하신... 근데 어린이집 교사할때도 아들만 셋인 부모들은 뭔가 딸만 셋인 부모들과 전혀 다른 느낌이 나긴 했는데... 모든 아들가진 부모가 그런건 절대 아니지만, 좀 시크한 면모가 돋보이긴 했던것 같다(본인 혼자 뛰다 넘어져서 다리가 부러져서 우리는 큰일 났다고 울고불고 cctv 미리 구건 찾아놓고 긴장하면서 알리는데 정작 부모님은 세상 침착함. 그리고 다음주에 집 소파에서 뛰다가 팔부러져서 옴...)


3. 사랑하고 존경하는 우리 대학/대학원 교수님들.
  예전에도 쓴 적 있지만, 나는 모교 대학/대학원을 나왔고 유아교육학과 출신이다. 우리 교수님들은 제자한테 정말 화나셨을 때 "이게 뭐니?" 정도 하실 뿐, 나쁘다 못한다 같이 부정적인 용어를 쓰시질 않았다. 울면 달래주고, 못한다고 하면 떠먹여주시고, 밥도 지어 먹여 주시고... 석사논문 디펜스 할 때 내가 덜덜 떨자, 교수님들이 걱정하면서 내 손에 사탕을 쥐어주고 천천히 하라며 우쭈쭈 해주셨다. 컴공과 친구랑 얘기하다가 이 얘기 나왔는데 소설쓰지 말라는 소리 들었... 아무튼 대학교 들어가자마자 한분 남은 부모를 잃고 미성년자로 완벽한 소년소녀가장이 된 나에게 교수님들은 정말 부모 같이 좋은 분들이었다.


4. 내 친구 A
  사실 한살 언니인 친구 A는 언제나 입이 무겁다. 절대 말을 가볍게 전달하지 않고, 호불호를 세게 표현하지 않는 대신 실제로 호불호가 심하지도 않다. 감정기복이 있는 나와는 다르게 침착해서 나에게 아주 가끔 해주는 조언이 정말 힘이 된 적이 많다. 지금도 연락을 하면 특별한 용건이 없더라도 반갑고, 기분이 좋다. 나의 고민과 어려움을 함께 이해해주는 동반자 중 하나로 느껴질 만큼 숙성된 와인처럼 깊은 맛이 있는 좋은 사람이다.

--

사실 이것말고도 여럿 떠오른다. 하지만 이를 적기엔 여백이 부족하다..가 아니라 왠지 나만 기분 좋은 자랑글이 되고 있는 것 같아서 여기서 멈춘다. 하지만 머릿속에 끊임없이 좋은 사람이, 좋았던 일이,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 사실 아이를 키우고, 아이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을 때 엄마의 마음은 침잠하고, 온라인의 날선 모습들은 왠지 나에게도 향할 것 같아 무섭기도 하다. 하지만 생각하고 돌이켜보면 나에겐 좋은 시간도 좋은 사람도 많았던 것 같다.

물론 불행한 사건을 논하자면 끝도 없을 것이다. 내가 말도 하기 전에 친엄마가 도망간 것, 계모에게 학대 받은 것, 너무 어린 이복 동생들과 할머니를 건사해야 했던 소년소녀가장(가정이 아니라 가장이 맞는 시기였음)이었던 것, 담임 시키고 견습이니까 초봉 70만원 준다던 원장님, 아직도 가슴에 비수로 꽂혀있는 어떤 학부모의 비아냥거림, 하루에 16시간 일하게 하고는 '애들을 사랑하면서 돈 얘기를 어떻게 하냐'는 말을 곧이곧대로 듣던 호구 같은 시기, 아직도 우울,불안증 약을 먹는 것 등등...

그럼에도 내가 만난 사람에게는 좋은 점이 있었고, 그걸 생각해내는 건 너무나도 즐거운 과정인 것 같다. 그럼으로서 그런 사람의 장점을 겪을 수 있는 내 자신의 존재감도 올라가는 것 같고, 조금이나마 평소보다 더 행복해진다. 사실 어떻게 상대가 좋은 사람이기만을 바랄까? 내가 좋은 면이 많은 사람이어야 같이 좋은 면이 많은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것이고, 내가 더 긍정적이어야 상대도 더 정직하게 다가올 수 있을 터인데.

아무튼 나는 그렇다. 그렇습니다.
이걸 읽는 피지알러, 당신이 겪은 좋은 사람은 누구인지 궁금합니다.

* 손금불산입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3-10-27 00:05)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 게시글로 선정되셨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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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곤타이가
22/01/13 10:05
수정 아이콘
주변의 좋은 사람을 발견하고 좋은 사람 소개글을 써주신 당신도 좋은 사람입니다. 감사합니다. 따뜻해지네요
김제피
22/01/13 10:06
수정 아이콘
제 생각인데, 글 쓰신 분이 좋은 사람이라서 좋은 사람이 주변에 보이는 겁니다.

마음이 가난해서 꽁심이 생기면 좋은 걸 좋은 걸로 보지 못해요.
及時雨
22/01/13 10:28
수정 아이콘
좋은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참 아름답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분들과 함께 하는 행복한 삶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바부야마
22/01/13 10:38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22/01/13 11:04
수정 아이콘
마음이 따뜻해지는 글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22/01/13 11:05
수정 아이콘
약 10년 전 홀로 오스트리아 호수 마을 할슈타트에 여행을 갔을 때 일입니다.
여행 전 인터넷으로 대충 위치만 알아보고 갔던 저렴한 숙소가 비수기여서 그런지 문을 안열더라구요.
마을에 몇 개 없는 숙소가 학생 혼자 묵기에는 비용이 너무 비싸서, 호기롭게 노숙을 결심하고 벤치에 해가 저물 때까지 앉아있었습니다.
저녁 바람이 차게 느껴질 때 쯤, 한 부부 여행객이 저에게 본인들과 함께 숙소를 쓰지 않겠냐며 제안해왔습니다.
돈을 모아 매년 여행을 다니는 게 낙이라던 까탈로니아인 부부, 제가 겪은 좋은 사람 하면 먼저 떠오르는 사람들입니다.
이후로 많은 곳을 다녀봤지만 어째서인지 단 하룻밤을 머물렀던 그 곳에서의 기억이 가장 또렷하게 남아있습니다.
감자크로켓
22/01/13 11:06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주위에 함께하는 좋은 분들을 생각하고 감사하는 그 마음이 정말 멋지십니다. 저도 제 주위의 감사한 분들을 생각하고 사랑해야겠습니다.
22/01/13 11:13
수정 아이콘
글쓴이가 좋은 사람인 것은 알겠습니다.^^

늘 행복이 가득하고 더 좋은 인연이 늘어나시길 바랍니다
진산월(陳山月)
22/01/13 11:31
수정 아이콘
닉네임 그대로 참 착하신 분 같습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
22/01/13 11:50
수정 아이콘
글이 참 좋습니다. 진짜임.
메타몽
22/01/13 12:04
수정 아이콘
주위 사람들의 장점을 잘 보시는 분이군요

예쁜 마음씨 좀 얻어가겠습니다!
22/01/13 12:23
수정 아이콘
행복한 삶을 누리고 계시네요. 부러울 따름입니다..
쉽지않다
22/01/13 12:26
수정 아이콘
콩심은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난다
메모네이드
22/01/13 12:27
수정 아이콘
나를 아프게하는 사람들 만큼이나 나를 기쁘게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인 것 같아요.
좋은 분들과 둘러싸여 지내는 착한아이 님도 분명 그분 들께 좋은 사람일 거예요. :)
따뜻한 이야기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더 길게 써주세요. 더 많은 좋은 사람들 이야기가 듣고 싶어요!
22/01/13 12:37
수정 아이콘
좋은 분 곁에는 좋은 사람만 모이는 법이죠. 행복하신 것 같아 부럽습니다!
천마도사
22/01/13 12:47
수정 아이콘
따뜻한 글 고맙습니다. 오늘 하루가 행복할 것 같아요!
Hammuzzi
22/01/13 13:30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주변에 고마운 사람들이 참 많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환기가 되네요. 항상 좋은 사람들과 행복이 함께 하시길 빕니다.
레이미드
22/01/13 15:45
수정 아이콘
'... (전략) ... 아무튼 나는 그렇다. 그렇습니다.
이걸 읽는 피지알러, 당신이 겪은 좋은 사람은 누구인지 궁금합니다.'
이 글 작성해준 글쓴님이 오늘 제가 겪은 좋은 사람입니다.
뉴스나 주변을 관찰하고 겪으면서 인류애가 짜게 식는 순간이 참 많은데..
그럴 때마다
news.kmib.co.kr/article/list.asp?sid1=prj&sid2=0070
이 사이트의 기사들을 보면서 저 스스로를 어르고 달래고는 합니다. (특정 언론사를 홍보하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오늘 이 글을 만난 게 저에게는 큰 행운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2/01/13 15:56
수정 아이콘
반대로 사고 날 때 목숨을 던질 각오를 안하고는
임신했을때 투덜대는 건 용서받지 못하는 겁니까
크크크
-안군-
22/01/13 17:49
수정 아이콘
좋은 사람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이 모이기 마련입니다.
글쓴분도 좋은 분이신 듯 하네요.
22/01/13 21:44
수정 아이콘
남편분 얘기 마지막보고 웃었네요 크크 저도 좋은 사람 옆에 좋은 사람이 있다 생각합니다. 본인이 좋은 사람이기에 다른 사람의 좋은 점들을 더 잘보게 되거든요. 잘 읽었습니다.
라흐마니
22/01/14 00:54
수정 아이콘
고갈된 인간애를 채워주는 글이군요. 이런 글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요즘 분위기가 너무 삭막해요...
루카쿠
22/01/14 09:48
수정 아이콘
좋은 사람 주변에는 역시나 좋은 사람들이 있는 건 과학과도 같죠. 어딜 가든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욕구는 누구나 있게 마련인데, 쉽진 않은 것 같아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22/01/14 13:48
수정 아이콘
저도 제 가장 친한 친구한테 많이 의지하는 면이 있어서 가장 먼저 떠오르네요
22/01/15 12:43
수정 아이콘
산모에게 해줘야하는 말은 당연히 '살 빼' 가 아니라 '고생했다' 라는 말이여야합니다.
하지만 출산 후 호르몬의 급격한 변화로 체중변화가 생기는것은 사실이고, 그때 약해진 연골과 뼈는 갱년기와 맞물리면 고질병이 되기도 합니다.
시부모님의 발언이 배려가 없었다는점에 대해서는 절절히 공감하지만 갈등을 유발하기 위한 목적으로 하신 발언은 아닐겁니다.
간단한 유산소 운동이라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치아와 연골, 눈은 정말로 돌이킬 방도가 없으니까요. 마음이 따뜻해지는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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