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17/09/16 05:20:48
Name 신불해
Subject 한고조 유방이 자신을 암살하려던 관고를 용서하다




초한전쟁이 끝난 후, 전쟁을 펼치면서 여러 인물들이 세웠던 공과 그 인물들이 거느렸던 세력에 따라 그들 모두는 공신으로서 대우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공신들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공신들이 이성왕(異姓王), 즉 '유씨가 아님에도' 왕이 되어 황제에게 충성하는 일종의 봉건 군주로서 군림하던 인물들입니다. 한신, 경포, 팽월 같은 사람들이 그들 입니다.



이성왕의 대체적인 특징은 대부분 각자가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한신이야 훗날 모든 권한을 잃어버리고 회음후로 떨어져버리긴 했지만 처음에는 강력한 군사력을 지녔고, 팽월은 전쟁 내내 자신이 거느렸던 게릴라 군단이 있었으며, 경포 역시 구강왕으로서 별도의 세력이 있었고 항우에게 크게 당한 후에도 자신을 따르는 세력이 있었습니다. 소하나 장량 같은 사람들이 아무리 공이 많다고 한들, 이들은 기본적으로 유방의 부하일 뿐이지만, 이성왕이 된 사람들은 엄밀히 따지자면 유방과 '동맹관계'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제후왕들의 명단을 살펴보면 특이한 이름이 한 사람 있습니다. 바로 조나라 왕 장오(張敖)라는 인물입니다. 



장오는 별다른 세력이 있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전쟁 중 눈에 확 띄는 공을 세운 인물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오는 왕이 되었는데, 이는 장오의 아버지인 장이(張耳)라는 인물 때문이었습니다.



8QDuYdu.jpg

상산왕 장이




장이는 아직 진나라가 천하 통일을 하기도 이전이었던 시절, 전국 사군자 중 한 사람이었던 신릉군(信陵君) 위무기(魏無忌)의 문객으로 활동했던 당대의 명사입니다. 출생년도를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초한전쟁이 한참 펼쳐지던 시기엔 아무리 적게 나이를 잡아도 최소한 60세 이상, 좀 더 많이 잡으면 80세 직전까지 잡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아무튼 이렇게 오래 활동하며 명망도 있었고, (심지어 아직 거병을 하기도 이전, 날백수에 불과하던 유방이 그 명성을 듣고 얼굴이나 한번 보자고 장이의 집에 와서 그를 만난 적도 있었습니다) 이후 초한전쟁에선 라인을 기가 막히게 타서, 유방이 가장 힘들었던 시절, 즉 '팽성전투' 에서 유방이 항우에게 대패 당하고 서위왕 위표 등 다른 제후왕들이 편을 바꾸고 항우에게 도망가거나 하던 때에도 유방을 위해 힘을 써 큰 공을 세웠습니다. 그 유명한 한신이 북벌을 감행하며 대성공을 거둘때도 부장으로서 종군하여 큰 공을 세우기도 하는등, 여러모로 적지 않은 활약을 했던 인물입니다.




 항우가 18제후왕을 분봉할때부터 장이는 상산왕(常山王)으로 임명되어 본래 왕으로서 대우 받던 사람이기도 했고, 유방이 힘들때에도 그 옆에서 같이 함께한데다(사실 상황상 장이의 지인이었던 진여라는 인물이 반대쪽에 머물면서 장이를 죽이려고 하는지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게 새옹지마로 작용했습니다), 결정적으로 한참 전쟁이 펼쳐질때 조나라 지역을 평정한 한신이 "지금 막 얻은 조나라 지역이 반발하지 않게 하려면 장이를 조나라 왕으로 임명하는게 좋겠다." 며 유방에게 권했고 유방이 이를 허락하여 장이는 조나라 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장이가 고령 탓에 곧 사망하게 되면서 장오가 이를 이어받게 됩니다.





VBl9Pfn.jpg


춘추전국시대 조나라 지도. 당연하게도 한나라가 개국된 후 제후왕들의 관할 아래 있던 봉국의 정확한 영역은 이것과 동일하진 않으니 그냥 대략적으로 '어느즈음에 붙어 있다' 정도만 참고하시면 됩니다.






 자, 아무튼 장오는 아버지 덕에 왕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장오는 노원공주(魯元公主)와 결혼했는데, 노원공주는 유방과 그의 부인인 여후의 딸이었습니다. 황제의 딸, 그것도 다른 후궁도 아니고 황후인 여후와의 사이에서 나온 딸과 결혼했으니, 그 무서운 여후로부터도 제법 비호를 받는 사위로서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다만 그렇다쳐도 황실의 권위를 세우고 막 개국한 제국에게 있어 불안요소를 제거하여 나라를 반석에 올려놓으려는 것이 황제로서 유방이 서게 될 자연스러운 스탠스였을테고, 별도의 세력을 거느리며 군사력을 가진 이성왕은 그런 유방에게 있어 눈엣가시임엔 분명하니 한번 잘못 걸리면 왕위를 잃어버리는 게 문제가 아니라 목숨이 위태로운 판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산전수전 다 겪은 한신, 팽월, 경포 등에 비해 장오는 백전노장인 유방에게 있어 하룻강아지 같은 애송이에 불과하니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손을 보는 것 역시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은 다른 누구보다도 장오가 가장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장오는 허튼 마음은 품지도 않고, 유방이 "죽어라" 하면 죽는 시늉도 하면서 납작 엎드리며 예우를 다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조심해도 어느날 일은 터지고 말았는데...




UVuUJMK.jpg




조용히 살기만을 바랬던 장오의 바램과는 달리 BC 200년, 황제 유방과 그를 수행하는 진평, 하후영 등 제국 최고의 중진들이 휘하 군단을 이끌고 조나라를 거쳐가는 일이 생겼습니다. 황제가, 그것도 군사까지 몰고 오는 길이다보니 자연히 장오로서는 긴장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혹시라도 유방을 맞이하면서 실수를 저지를까 걱정되었던 장오는 왕이 된 체면에 불구하고 직접 앞치마를 걸치고, 소매까지 걷어올린 모습으로(趙王朝夕袒韝蔽) 음식이 나오는 주방 등을 계속 관리하며 세심하게 챙겼고, 유방이 당도하자 황제이자 장인어른으로서 유방을 대하며 그야말로 더 이상 공손할 수 없을 정도로 유방에게 온갖 예를 다했습니다.



그러나 장오에게는 불운하게도, 이 당시 유방의 심기는 대단히 불편한 상황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유방이 난데없이 조나라 땅에 군사를 이끌고 나타난 이유가, 조나라보다 북방에 있는 '흉노' 와의 전쟁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흉노의 묵특 선우와 펼친 '백등산 포위전' 에서, 유방은 상대의 유인책에 말려들어가 고통스러운 패배를 맛 본 직후였습니다.




황제가 나서 직접 친정했던 전투에서 엄청난 대패를 당한 직후였으니, 유방의 심기가 좋았을 리 없습니다. 여러모로 심기가 불편했던 유방은 장오가 온갖 극진한 예를 다하며 대접해도 뚱하게만 있었습니다.



유방은 장오가 온갖 음식을 가져다줘도 본채만채하고 아예 두 다리를 상 위에 떡하니 올려두고(高祖箕踞), 사위인 장오에게 "이 놈, 저 놈" "이 X끼, 저 새X" 하고 불러대며 무례의 극치를 보였습니다.(詈甚慢易之) 사람들 앞에서 장인어른에게 개쪽을 당한 장오는 그저 송구스럽다며 더 굽신굽신 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고 모욕당한 당사자인 장오보다도 더 분개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장오의 아버지, 장이떄부터 그 곁을 지킨 조나라의 중신들이 그들이었습니다.



Xoa0Gr2.jpg

유막둥이 이 간나구 놈을 죽여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장이의 호걸들이 지었을 표정. 짤은 삼국지13의 양부.





앞서 장오의 아버지 장이가 초한전쟁 때는 이미 나이가 최소 60살은 넘었던 인물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자연히 그런 장이를 따르던 인물들 역시 나이가 많았는게, 게중에서 조나라의 재상 직을 맡고 있던 관고(貫高)와 조오(趙午) 등의 사람들은 나이가 예순을 훌쩍 넘어 장오는 물론이거니와 유방보다도 나이가 더 많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전국시대와 진나라의 탄압시기, 초한쟁패기를 거치며 온갖 풍파는 다 겪었는지라 기질적으로도 혈기등등한 호걸들이라고 할만했습니다.




자연히 이런 노령의 호걸들 눈에는 자신들이 모시는 장오가 유방에게 설설기며 모욕당하는게 눈에 찰리가 없었고, 관고와 조오를 중심으로 한 10명의 중신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우리 젊은 왕이 너무 유약하구나! 어찌 이런 꼴을 참는단 말이냐." 하며 장오를 찾아가 '반란' 을 일으킬 것을 종용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반란도 아니고 직접적으로 '죽이겠다.' 고 이야기했습니다.



“지금처럼 천하의 호걸들이 함께 봉기하는 상황에서는 응당 능력 있는 사람이 먼저 왕이 되는 법입니다. 지금 대왕께서 황제를 몹시 공손하게 섬기었는데도 황제는 무례하게 대하고 있으니, 우리가 마땅히 대왕을 위해 그를 죽이겠습니다!” (夫天下豪桀並起, 能者先立. 今王事高祖甚恭, 而高祖無禮, 請為王殺之)



까딱했으면 한나라 초기에 '조나라의 반란' 이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번했지만, 당사자인 장오는 그 말을 듣자 화들짝 놀라 다음과 같은 말로 이를 거부합니다.


"공들께서는 어찌하여 그런 그릇된 말을 하시는 겁니까? 일찍이 우리 아버지께서 나라를 잃으셨을때 오직 황제의 힘을 입어 나라를 되찾을 수 있었으며, 그 덕이 우리 후손들에게까지 미치고 있으니 제가 누리는 털끝만한 것도 모두 황제폐하의 힘에 의한 것입니다. 경들께서는 부디 다시는 이와 같은 말을 입 밖에 내지 마십시오." 



그렇게 말하며 장오는 손가락을 물어 뜯어 피를 흘리면서 '다시는 내 앞에서 이런 소리 하지 마라.' 는 의사를 격렬하게 표시했습니다. 



장오를 떠난 보낸 후, 관고 등은 "우리가 잘못했구나! 우리 왕은 덕행이 있는 분이셨다. 남의 은덕을 배반하지 않으실 분이다." 라며 "왕이 너무 유약해서..." 운운했던 자신들의 태도를 반성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방을 죽여서 분을 풀려는 생각을 거두진 않았습니다.



"우리들의 뜻은 황제가 우리의 왕을 모욕한 것을 원망해 황제를 죽이려 한 것이지, 어찌 우리의 왕을 더럽히는 일을 하려는 것이겠소? 이 일이 성사가 되면 그 공을 왕께 돌립니다. 만약 일이 실패하면, 그 책임은 온전히 우리들이 지도록 합시다!"




그리하여 경천 동지의 '유방 암살 계획' 이 수립되었습니다. 관고와 조오 등은 꼬박 1년 간 유방을 죽이기 위한 작전에 전념했습니다. 1년의 기다림 끝에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BC 199년, '한왕 신' 의 반란이 발생함에 따라 유방은 직접 군단을 이끌고 동쪽으로 출진했고, 돌아오는 길에 박인(柏人)이라는 곳을 지나가기로 계획되었습니다. 관고는 박인에서 유방을 죽이기로 결심합니다.



Gm2FFKW.jpg




계획대로라면, 박인의 숙소에서 유방이 잠에 들면, 미리 그 숙소의 이중벽에 숨어 있던 자객들이 튀어나와 유방을 죽이기로 계획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날, 박인에 도착한 유방이 뜬금없이 옆사람에게 묻기를,



"이 곳의 이름이 뭐냐?"


"박인이라고 합니다만?"


"박인, 박인... 박인이라고 하면 '남에게 핍박받는다' 라는 뜻이 아니냐? 여기서 자면 재수가 없을 것 같다. 그냥 계속 가도록 하자." 



이렇게 유방이 숙소에서 자지 않고 그냥 밤길을 계속 가게 되면서, 숨겨놓았던 자객들은 아무 쓸모가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황제를 확실하게 죽일 수 있는 기회가 그렇게 많지도 않았기에, 계획이 한번 어긋나지자 다음 거사일을 잡기도 쉽지 않았는데...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꽁꽁 숨겨 놓았던 계획 역시 점점 새나가게 됩니다. 결정적으로 관고와 원한관계였던 사람이 우연찮게 이 계획을 알게 되어, 옳다구나 하고 조정에 이를 신고하게 되었고, 황제 암살 음모라는 대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자 관련자들은 모조리 소환되어 조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관고 등은 물론이고, 일이 성사되면 가장 큰 득을 볼 조왕 장오도 소환되었으며, 장오의 처첩과 자식들까지 전부 소환되었습니다. 연관성만 입증되면, 그대로 삼족이 멸해질 상황이었습니다.





참고로 여기서 잠깐 전한 극초기에 삼족이 연좌되는 범죄에 걸렸을 경우 처벌이 어땠는가를 '한서 : 형법지' 에서 찾아보면...




漢興之初,雖有約法三章,網漏吞舟之魚。然其大辟,尚有夷三族之令。令曰:「當三族者,皆先黥,劓,斬左右止,笞殺之,梟其首,菹其骨肉於市。其誹謗詈詛者,又先斷舌。」故謂之具五刑。


한조(漢朝)가 처음 훙기하였을때, 비록 약법삼장(約法三章)이 있었지만 그 법망은 매우 허술하여 배를 삼킨 큰물고기가 뼈자나갈 수 있는 그물과 같았다. 그러나 그 사형의 규정 가운데는 여전히 삼족을 멸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그 영에서 이르기를 "삼족에 죄가 이를 경우에 해당하는 자는 모두 우선 경(黥) 형을 가하고, 코를 베고(劓), 양쪽의 발을 베는(斬左右止) 형에 처한 다음에, 채찍으로 떄려 죽이고(笞殺之), 머리를 효수하고(梟其首), 시장에서는 그 살과 뼈를 절여서 젓갈을 만든다. 그 중 천자를 욕하거나 비방한 자는 먼저 그 혀를 자른다." 고 쓰여 있다. 때문에 삼족의 형은 오형을 갖추었다고 일컫어지고 있다. 





즉 죄가 삼족에 달할 경우 우선 얼굴에 "넌 죄인이다" 라고 표시를 하고, 코를 베어버리고양쪽의 발목을 모두 잘라서 걷지도 못하게 한다음, 채찍으로 문자 그대로 죽을때까지 때리고, 머리를 잘라서 전시해놓고, 최후로 살과 뼈를 모두 갈아서 젓갈로 만들어버린다는 겁니다. 이런 엄청난 형벌을 당하며 자포자기하거나 실성해서 욕이라도 하면, 바로 그 자리에서 혓바닥도 잘라버립니다





참고로 '형이 확정되어서 죽을때' 이렇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확정이 되기 전까지 '조사' 할때는 어떻겠습니까. 인권 개념도 현대에 비하면 극히 희미하고, 하물며 '황제 암살 음모' 이니 만큼 손속에 사정을 둘 리도 없는데다 조사가 진척이 없으면 조사하는 사람도 끌려갈 판이니 그 '조사' 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지옥의 광경이 되리라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이치입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당초에 암살 음모를 계획했던 사람들 중 조오를 비롯한 10여명은 그 자리에서 바로 자살해버렸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끌려가서 지금 현대인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문을 당한 뒤에 코, 발목, 다 잘려나가고 채찍으로 얻어맞고 젓갈이 될 바에야 최대한 빠르고 신속하고 고통 없이 죽는 게 훨씬 나은 일이니 말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이 십여인은 '앞을 다투어' 자살했다고 합니다(十餘人皆爭自剄)



하지만 죽지 않고 남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주동자 중 한 사람인 관고였습니다. 관고는 홀로 분기탱천해서 남은 관련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공들에게 이 일을 시킨 사람이 누구였는가? 왕께서는 참으로 아무것도 우리에게 지시한 것이 없으셨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왕 역시 체포되었는데, 공들이 모두 죽어버리면 누가 우리 왕이 반란에 연류된 것이 아니라고 밝히겠는가?"



 즉, 모두들 편하게 다 죽어버리면 그 누구도 장오의 무죄를 증명해줄 사람이 없습니다. 누군가는 남아서 장오는 결코 반란에 협조하지 않았다고, 이 일은 자신들이 꾸민 일이라고 밝힐 필요가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관고는 자기가 그 역할을 하기로 결심하고 장오와 함께 수레에 타서 장안으로 끌려갔습니다.



 한나라 조정에서는 장오를 끌고가면서, "만약 조나라의 사람들 중 장오를 수행하러 따라오는 사람이 있다면 모두 극형에 처하겠다." 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그러자 전숙(田叔), 맹서(孟舒) 등의 10여인은 스스로 죄수복을 입고, 머리카락을 깎고, 목에는 무거운 쇠칼까지 찬 뒤 "우리들은 수행자가 아니라 조왕의 노비일 뿐이다." 라면서 칼을 찬 채 장안까지 걸어서 따라왔습니다.



 일행이 장안에 도착한 뒤, 관고는 도착하자마자 옥관에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한 일일 뿐이며, 왕께서는 전혀 모르는 일이오!" (獨吾屬為之, 王実不知)



 자기 입으로 자기가 주동자라고 하니, 옥리는 바로 관고를 중심적으로 고문하면서 배후가 있으면 실토하라고 강요했습니다. 과연 고문은 먼저 자살한 사람들이 자살한 이유가 있을만큼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는데, 기록에서는 이렇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옥리가 수천 대의 곤장을 치고, 쇠로 살을 찔러 그의 몸이 더 이상 때릴 곳이 없을 지경이 되었어도 관고는 끝내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吏治榜笞數千, 刺剟, 身無可撃者, 終不複言)



 그 평균연령이 훨씬 낮던 그 옛날에 이미 예순을 넘긴 고령이었던 관고는 그야말로 온 몸이 걸레조각이 될 정도로 두들겨 맞고 온갖 쇠가 살갗을 뚫고 찔러오며 고깃덩어리가 되었으면서도 장오와의 연관은 모조리 부정하면서 버텼습니다. 관고가 두들겨 맞으면서 시간을 벌고 있을때, 친딸인 노원공주의 남편인 장오를 구하려는 여후는 "우리 딸 때문에라도 장오가 반란을 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 며 유방을 만류했지만, 유방은 그런 여후에게 벌컥 화를 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그 녀석이 천하를 얻게 되었다면, 당신 딸 같은 여자가 어찌 한 두 명이겠소!" (使張敖拠天下, 豈少而女乎)



 그러면서 여후의 설득을 콧방귀로 들으며 무시하던 유방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도 장오와의 연관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한참 후에 정위(廷尉)가 관고를 문초한 사실을 이야기하며 '관고가 모든 연관을 부정하고 있으며, 오직 자신이 한 일이라고 하면서 아무리 고문을 해도 더 입을 열지 않고 있다.' 고 보고하자, 아무러한 유방도 솔직하게 감탄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https
 "와, 그 놈 진짜 징한 놈일쎄 진짜. 보통놈이 아니네."





  "실로 장사로다! 혹시 그를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이 여기에 없느냐? 조사가 아니라 사사로이 물어보도록 말이다." (壯士! 誰知者, 以私問之)


 
 그 말에 중대부(中大夫)인 설공(泄公)이라는 사람이 나섰습니다.



 "관고는 신과 같은 동향인이라 평소에 알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명예와 도리를 중히 여기는 사람으로 결코 믿음을 저버릴 사람은 아닙니다." (臣之邑子, 素知之. 此固趙國立名義不侵為然諾者也)
 


 설공은 유방에게 받은 황제의 부절(符節)을 가지고 관고가 갇혀 있는 감옥으로 그를 만나러 찾아갔습니다. 처참한 꼴로 앉아 있던 관고는 설공이 부르자 그제서야 겨우 고개를 들고 입을 열었습니다.



 "설공인가?" (仰視曰:「泄公邪?」)


 
 설공은 그렇다고 하면서 넝마가 된 관고를 보며 위로했고, 어느정도 이야기가 오고가자 "정말로 조왕이 시켜서 음모를 꾸민건 아니냐" 고 물어봤습니다.

 

 "이보게. 사람으로 태어난 정으로서 어찌하여 자신의 부모와 처자를 아끼지 않는 사람이 있단 말인가? 지금 나는 삼족이 모두 사형 당할 죄를 선고 받았네. 내가 어찌하여 거짓으로 왕과 내 부모를 바꾸려고 하겠는가? 그저 진실로 대왕께서는 모반하지 않았고, 우리들이 했기 때문에 이러는 것일세." (人情寧不各愛其父母妻子乎? 今吾三族皆以論死, 豈以王易吾親哉! 顧為王実不反, 獨吾等為之)



 그리하여 어쨰서 음모를 꾸몄는가,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가, 전개 과정은 어떠한가를 모두 이야기 했고, 설공이 그 청취내용을 유방에게 보고하자 유방은 조왕 장오를 석방했고, 다만 그의 관할에서 이런 사건이 나온 것을 문제삼아 조왕 직을 뻇고 대신 선평후(宣平侯)로 삼았습니다. 장오로서는 목숨을 건진건만도 천만다행이으니 조나라 왕 작위 따위가 아까울게 아니었습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실제로 음모를 꾸민' 관고였습니다. 하지만 유방은 조사를 하면서 관고의 호걸스러움과, 그가 엄청난 고통을 당하면서도 신의를 지키기 위해 결코 장오를 팔아먹지 않은 기개를 높이 샀습니다. 유방은 관고를 아까운 사람이라고 여기고, 결국 전대미문의 결정을 내립니다. 유방은 관고를 조건없이 석방했습니다.



 고금천지에 군주 암살 음모를 꾸미고, 그 음모가 발각되어 분쇄되고, 그 세력이 모조리 제압당하고 제압가능한 상황에서도 조건 없이 풀어주는 사례는 극히 드물었을 겁니다. 유방은 설공을 보내 그 소식을 관고에게 알려주게 했습니다. 설공을 관고를 만나 그간의 사정을 다 설명하고 조왕이 풀려났다는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장왕(장오)은 이미 석방 되었소." (張王已出)



 그러자 관고는 기뻐하면서(貫高喜),



 "우리 대왕께서 정말로 석방되셨는가?" (吾王審出乎)



 "그렇소(然)."



 기뻐하는 관고를 보면서 설공은 말을 이었습니다.



 "황제께서는 그대를 훌륭한 사람이라고 여겨셔서, 사면 하기로 결정했소이다." (上多足下, 故赦足下)



 지옥같은 고문실에서 빼주고 자유를 찾게 해준다고 한 이야기지만, 관고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습니다.



 "내가 몸이 성한 곳이라곤는 한군데도 남아 있지 않으면서도 진작에 죽지 않으려고 했던 것은, 우리 대왕께서 모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서였네. 그런데 지금 왕께서는 석방되셨네. 나의 책임은 다한 셈일세.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네. 하물며 난 신하로서 임금을 시해하려 하는 마음을 가졌었네. 그런데 이제와서 무슨 면목으로 다시 군주를 섬긴단 말인가? 설사 황제께서 나를 죽이지 않는다고 하셔도, 어찌 내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을 것인가?" (所以不死一身無餘者, 白張王不反也. 今王已出, 吾責已塞, 死不恨矣. 且人臣有簒殺之名, 何面目複事上哉! 縦上不殺我, 我不愧於心乎)



 말을 마친 관고는 고개를 들고 그대로 혈관을 끊어서 자결해버렸습니다. 관고의 이 행동으로 인해 그 이름은 당대 천하에 유명한 이름이었다고 합니다. 



 한편 방금전까지 황제 암살 음모 사건의 몸통으로 의심받다가 풀려난 장오는 곧바로 유방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노비로 떨어뜨리면서까지 황제 암살 음모라는 대역죄에 몰린 자신을 따라온 10명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유방은 그 말을 듣고 전숙, 맹서 등의 사람들을 직접 만나 대화했고, 그들의 절개와 능력이 뛰어나다고 판단하여 그들을 모두 군수나 혹은 각 제후왕의 승상에 임명했습니다. 하루전까지 반역에 연류되었다는 의혹을 받은 사람들이 갑자기 중용을 받았던 겁니다. 



 장오를 따라왔던 이들 10여명의 자손들은, 유방 사후 효혜제, 여후, 한문제, 한경제에 이르는 시간 동안의 풍파와 정치투쟁에도 불구하고 2천여석이 넘는 녹을 받을 정도로 번성했다고 합니다. 여러 개국공신들이 까딱하는 실수로 목숨이 날아가는 살벌한 개국 초기에, 삼족이 멸해질 반란에 연류되고도 오히려 자손이 번성한 사례는 이 경우를 제외하면 정말로 극히 드물지 않을까 싶습니다.



* 라벤더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7-12-29 14:56)
* 관리사유 : 좋은 글 감사합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서현12
17/09/16 05:38
수정 아이콘
다 읽고 든 생각인데 이건 무슨 중국판 추신구라인가요.;;
17/09/16 05:47
수정 아이콘
지독한 고퀄리티의 글이로다....!
항상 잘 읽고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돈 내고 봐야할 듯...)

혹시 사학쪽 전공이신지요??
신불해
17/09/16 08:23
수정 아이콘
아닙니다.
17/09/16 06:04
수정 아이콘
충의가 어마어마 하군요. 쓸데없이 움직여서 화를 불러일으킨거 보면 과잉충성으로 삽질한거 같은데 끝까지 책임을 진건 비장하기도하고 대단하네요.
과잉충성으로 관고와 함께 암살을 모의한 사람들이나 극형을 감수하고 장오를 수행한 10명의 충의을 보면 장오나 장이의 인망도 대단했나 봅니다.
보통블빠
17/09/16 06:39
수정 아이콘
유방의 시대는 제후국에서도 저런 인재풀이 넘처나는 사기적인 시대군요...
klemens2
17/09/16 06:41
수정 아이콘
박시백 조선실록 만화 보면 곤장 버티는 인물 몇 없던데, 참 대단하네요.
토니토니쵸파
17/09/16 06:53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앙골모아대왕
17/09/16 08:26
수정 아이콘
역사를 재미있게 풀어주시는군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권력투쟁은 참 무서워요
설탕가루인형형
17/09/16 08:33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숙청호
17/09/16 09:21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옥리가 수천 대의 곤장을 치고, 쇠로 살을 찔러 그의 몸이 더 이상 때릴 곳이 없을 지경이 되었어도 장오는 끝내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 이 부분의 '장오'는 '관고'가 아닌가요? 오타인듯 해서..
신불해
17/09/16 10:30
수정 아이콘
수정했습니다
17/09/16 09:40
수정 아이콘
곤장 한대만 맞아도 누구든 기겁해야 정상인 수준인것 같은데 정말 의지가 대단하네요
공도리도리
17/09/16 10:10
수정 아이콘
재밌게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17/09/16 10:22
수정 아이콘
잘 배우고 갑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마스터충달
17/09/16 10:47
수정 아이콘
유방은 정말 기분파라는 느낌.
17/09/16 12:04
수정 아이콘
그렇죠. 모반죄를 범한 괴철도 자기가 보기에 사리에 닿는 말을 하니까 풀어주는 대범함을 보이기도 했었구요. 재밌는 사람입니다.
티모대위
17/09/16 12:07
수정 아이콘
정말 기분파이긴 한데, 기본적으로 다른 군주들과 궤를 달리하는 관용을 지닌 것 같습니다.
아무리 기분파라도 보통은 모반을 계획한 이들을 저렇게 감싸안을 수는 없겠죠.. 여기서는 심지어 자기를 죽이려 했었고..
마스터충달
17/09/16 12:12
수정 아이콘
관용의 기분파라 다행이네요. 불관용의 기분파라면 폭군이 됐으려나요?
어른이유
17/09/16 11:22
수정 아이콘
재밌게 잘봤습니다 초한지를 아직 보지는 않았지만 정말 재밋네요 유방 별나요
17/09/16 11:41
수정 아이콘
닥추입니다 정말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17/09/16 12:01
수정 아이콘
마지막 관고의 멘트에 전율이... 정말 재밌게 읽고 갑니다
티모대위
17/09/16 12:05
수정 아이콘
대단한 글 감사합니다. 이런 글을 볼수있어서 피지알 합니다.

유방이라는 사람의 그릇은 정말이지 넓은 것 같습니다. 한고조로 추앙받으며 많은 일화를 남긴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관고의 충의는 정말... 전설적인 수준이네요..
17/09/16 12:50
수정 아이콘
왕을 이렇게 따르는무리가많으니 황제들이 스트레스가 엄청 심하긴하겠네요. 무슨일을벌일지모르니까요 . 황제는 외롭고 고독하다는 말이 갑자기떠오릅니다
개발괴발
17/09/16 13:53
수정 아이콘
뭐 고제에게는 역사상 둘도 없을 명신들이 수두룩했으니...
적어도 고제는 외로웠을지는 잘 모르겠네요.
Lord Be Goja
17/09/16 15:13
수정 아이콘
예전 중국에는 이렇게 의리와 충의가 많았는데 왜 현재는.... 하긴 장자를 보니 인이 없어지면 의를 찾게되고 의가 없어지면 예를 찾게되며 예마저 없어지면 지를 찾는다고 되어있으며 충신이 보이는 사회는 불충으로 가득차있어서 눈에 띄는것이라고도 하니
..수많은 왕조를 겪으며 인의지사들은 비참하게 끝나는걸 목격했고 예의 시대는 모택동때 끝났으니 이제 자기 똑똑한거만 남겠군요.
모리건 앤슬랜드
17/09/16 17:29
수정 아이콘
이와중에 쥐뿔도 군벌도 공로가 큰것도 아니면서 친구라서 연나라 왕이된 노관 그대는 대체......
귀여운호랑이
18/01/09 15:34
수정 아이콘
유방이 아닌 사이코패스 학살마 항우가 통일을 했더라면 당시 중국 인구 반은 생매장 당하고 삶겨서 죽고 그랬겠죠.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2900 [이해] 강릉기행 [37] 새님17818 17/09/29 17818
2899 유게 말라리아 글 관련 약간의 더하기 [39] 여왕의심복10664 17/09/25 10664
2898 [단편] 초식남의 탄생 [46] 마스터충달16037 17/09/17 16037
2897 타이거! 타이거! : 게나디 골로프킨-사울 카넬로 알바레즈 전에 대해 [36] Danial12171 17/09/17 12171
2896 한고조 유방이 자신을 암살하려던 관고를 용서하다 [27] 신불해13037 17/09/16 13037
2895 원말명초 이야기 (22) 제왕의 길 [20] 신불해10019 17/09/24 10019
2894 원말명초 이야기 (21) 운명의 아이러니 [12] 신불해8932 17/09/21 8932
2893 원말명초 이야기 (20) 교두보 마련 [14] 신불해7580 17/09/19 7580
2892 원말명초 이야기 (19) 천조(天助), 천조 [9] 신불해7796 17/09/17 7796
2891 [의학] 19세기 외과 혁신 [48] 토니토니쵸파16491 17/09/14 16491
2890 고기의 모든 것, 구이학개론 #4 [37] BibGourmand12419 17/09/12 12419
2889 (번역) 직업 선택에 대한 조언 [72] OrBef25182 17/09/12 25182
2888 "유방, 소하, 한신, 조참, 팽월 같은 잡것들보단 우리가 낫지!" [35] 신불해19413 17/09/12 19413
2887 헤비급과의 스파링 [43] 삭제됨17379 17/09/10 17379
2886 샴푸 냄새 [29] 자몽쥬스12982 17/09/08 12982
2885 원말명초 이야기 (18) 주원장, 일생 일대의 위기 [16] 신불해9563 17/09/09 9563
2884 원말명초 이야기 (17) 화주의 지도자 [14] 신불해8029 17/09/06 8029
2883 원말명초 이야기 (16) 칼날 위의 충성 [11] 신불해7495 17/09/05 7495
2882 핵무기 재배치의 필연적 귀결에 대한 무모한 설명 [119] Danial14288 17/09/04 14288
2881 모닝 감성에 쓰는 룸웨이터 썰.txt [53] 위버멘쉬22315 17/09/03 22315
2880 나는 미쳤었다... [110] WhenyouRome....18163 17/08/31 18163
2879 원말명초 이야기 (15) 모여오는 인재들 [8] 신불해8178 17/09/04 8178
2878 원말명초 이야기 (14) 주원장, 일어서다 [27] 신불해9167 17/09/02 9167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