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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08 00:13
우리나라는 중국과의 관계에 힘을 많이 쓰다 보니 그 밖으로 돌릴 여력이 부족했던 것 아닐까요? 반대로 일본은 지리상 뒤를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마음놓고 대륙을 노릴 수 있었고요.
19/01/08 00:33
바다 건너는 정복전쟁은 엄청난 국력이 소요되는 일이죠. 북쪽 중국왕조and이민족을 견제해야 하는 나라로선 그럴 여유가 없었을겁니다.
결정적으로 바다랑 친해야 그런 원정이 가능한데 바다랑 친한걸로 따지면 동아시아에서 일본 따라갈 나라가 없어요.
19/01/08 00:34
신라구 같은 사례를 보면 한반도 세력도 하면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고 할 수 있겠죠.
그런데 정규군 차원에서의 원정을 고려하게 되면, 한반도 세력의 수군이 일본 세력의 수군을 이기게 된 것은 고려 후기까지 가야 가능했던 것으로 압니다. 임진왜란 때의 이미지와 다르게 고려 후기 이전에는 왜구들의 수군이 무서워서 육지에서 왜구를 맞는 방어 전략을 펴자고 할 정도였고요. 아울러 바다 건너 원정은 배를 대규모로 만들고 병참도 준비해야 하는 등, 국가적 대사가 되어야 할텐데 북방 세력과 항시 대결을 벌이던 구도의 한반도에서 일본 원정을 준비할 수 있을 여력은 있었을 것 같지가 않습니다. 실제로 한반도 세력의 국가가 본격적으로 일본으로 원정군을 보낸 것은 화포를 바탕으로 한 수상 전력 확보 및 북방으로부터의 걱정이 없어진 상황, 즉 이성계가 권력을 잡은 후의 고려 말기 및 조선 초기의 몇 차례가 있는데... 대표적인 쓰시마 정벌만 하더라도 왜구의 주 병력이 한반도에 있는 수군 기지를 치고 있는 사이 빈집털이를 가서 왜구의 본진을 턴 것이고, 대마도주를 상대로 이긴 것이 아니니까요. 오히려 대마도주가 직속 병력을 이끌고 방어전에 나선 후에는 조선군이 이기지 못했으나, 어차피 왜구의 본진은 다 털었으니 목표는 달성했던 셈이었고...
19/01/08 01:28
노리는 적이 워낙 많으니 여력이 없었다고 하는 게 맞겠군요. 신라시대보면 오죽했으면 왕이 본인의 릉을 바다에다 만들었을까 싶었는데 말이죠.
19/01/08 00:37
그냥 지극히 개인적인 소설입니다만
굳이 바다건너가며 섬을 정벌하러 갈 이유가 없지 않았을까... 일본의 대륙진출을 하려했는데 대륙과 가장 가까운 곳이 우리나라였을뿐.... 이라 생각합니다. 일본→한국→중국순으로 진출을 해야지 역순은 딱히 유인이 없어보이네요
19/01/08 00:54
저도 섬나라의 종특이라고 생각이 들긴합니다만 그래도 영국은 프랑스 지배를 100년 가량 받은 적이 있었죠. 그것 때매 영어에 불어의 영향이 많이 남아있는 이유기도 하구요.
19/01/08 01:18
노르만 왕조 시기를 프랑스 지배를 받은 걸로 보기는 좀 애매하지만... 아무튼 그러고 보니 노르만도 있고 바이킹도 있고 (더 전에 로마도 있고;) 일본이랑은 좀 다르네요.
19/01/08 00:48
일본은 세력을 뻗치기 위해서 한반도를 침략해야 할 명분이 충분했지만
반대로 한반도에 있던 국가들은 굳이...? 라는 입장 차이가 있던 것 아닐까요.
19/01/08 01:07
사실 삼국시대부터 군사력 면에서 한반도가 일본을 압도한 적은 역사적으로 거의 없엇던 것 같습니다.
신라는 초기부터 왜구에 자주 시달렸고, 백제는 군사적으로 일본에 기댄 적이 많았죠. 고구려는 왜구를 털었지만 어디까지나 지상에서 턴 거고...
19/01/08 01:10
원하지 않아서라는 이유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일본보다 한국이 더 가까운 그 대마도조차 조선은 원하질 않았거든요.(https://www.youtube.com/watch?v=di9YEz3UWZE&index=28&list=PLMVkaEHUCNifZmtAbntsh2QWizZosBhsg&t=0s - 토크멘터리 전쟁史 대마도 정벌 편) 경상도에 복속하길 청했어도 조선은 싫었죠.
세종의 4군6진(https://www.youtube.com/watch?v=Oi_kyWG5QVU&index=19&list=PLMVkaEHUCNifZmtAbntsh2QWizZosBhsg - 토크멘터리 전쟁史 여진정벌 중 일부)도 신하들의 반대가 심했다고 합니다. 그 땅 가져서 뭐에 써먹냐는 논리였고, 세종은 국경을 확실히 그어야한다는 입장이었었죠. 고려 때 왜구에 털린 이유 중 하나도(https://www.youtube.com/watch?v=fvMAiSam-2s&index=29&list=PLMVkaEHUCNifZmtAbntsh2QWizZosBhsg - 토크멘터리 전쟁史 고려 왜구 중 일부) 고려의 주적은 북방민족이라 거기에 신경을 써 제대로 된 수군을 육성하지 못한 게 큽니다. 또 여러가지를 봤을 때 조선이 특히 그랬기도 했지만 상업에 큰 관심이 없는 것도 이유 중 하나일 거라 생각합니다.
19/01/08 03:53
본토는 몰라도 대마도는 진짜 가치가 하나도 없는 땅입니다. 저 방송에서 기자분은 무슨 대마도의 상업적 가치 운운하고 그러면서 조선은 감각이 그렇게 없었을까 하며 한탄하던 거 같은데 대마도는 현대조차도 일본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 중 하나고 과거에도 지금에도 상업적 가치는 거의 없는 지역입니다. 땅이 너무 척박해 농업으론 인구부양이 안 되니 어쩔 수 없이 조일중개무역으로 콩고물 얻어먹으며 사는 지역이 가깝습니다.
진짜 무슨 상업 만능주의도 아니고 부산에서 일본 본토까지 얼마나 된다고 땅도 척박해서 사람도 살기 힘든 땅을 활용할 바엔 무역을 한다고 쳐도 그냥 부산을 키우는 게 조선 입장에선 훨씬 더 경제적이죠.
19/01/08 01:31
당시 기준, 해로보다 훨씬 용이한 육로에 말썽거리 or 교역 및 사대 상대인 중국이라는 대국이 있어서겠죠.
삼국지나 문명 해보면 나라 하나 상대하는 건 어떻게든 할만한데, 하나만 더 생겨도 죽을 맛이니 여력이 없어서 라고 봐야할 듯 합니다. 일본은 문명으로 치면 구석지에 있었던 거죠. 통일이 된 상태라면, 한쪽 방향으로만 영역 넓혀도 되는.
19/01/08 01:33
가장 큰 이유는 '필요없어서' 입니다. 전쟁의 패턴을 단순화시키면요. 각 지역에 사람을 랜덤하게 뿌리면 스타팅이 비옥한 경우도 있을 것이고, 척박한 경우도 있을 겁니다. 그러니 전쟁이란 건 대체로 척박한 스타팅이 걸린 사람들이 비옥한 스타팅에 걸린 사람들을 공격하고, 비옥한 스타팅에 걸린 사람들은 이를 방어하는 형태가 됩니다. 비옥한 땅이 스타팅인 사람이 거는 전쟁이란 건 '완전히 박살내서 후환을 없게하는' 형태가 되니까 자주 일어나기 어렵죠.
한사군이 설치된 적이 있고, 수, 당이 쳐들어 온 적이 있긴 합니다만, 우리나라도 대체로 비옥한 땅이라(땅보다는 기후 탓이죠.) 북방의 기마민족의 침략에 시달리거나 왜구의 노략질에 시달렸죠. 이건 국력의 문제라기보다 스타팅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유럽을 기준으로한다면 훈족이나 몽고족의 침입하고 바이킹을 여기에 대입할 수 있겠죠. 인접한 지역에서 동시대에 유의미한 기술차이가 있을 경우에도 전쟁이 벌어지는데, 이런 면에서는 한국이 기술적으로 유의미하게 앞서 본 적이 없었다고도 할 수 있겠죠.
19/01/08 01:34
별개로 고려말부터 괴롭혔던 왜구는 해적집단이지 국가의 군사력이 아니죠. 현시점에 비교하면 마피아라고 봐야죠.
그리고 우리의 경우도 장보고가 있긴 했습니다.
19/01/08 02:27
한반도 통일왕조들 모두 해외 원정을 시도한적이 극히 드뭅니다.
그 몇번도 대륙쪽에 정권이 바뀐틈을 타서 야금야금 밀고 올라간게 전부죠. 육지로 붙어있는곳도 그러한데,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건..
19/01/08 09:38
여몽연합군이 일본에 넘어갔다가 태풍을 만나서 실패하긴 했지만 일본 내에서 꽤 흉악하게 놀았다고 알고있습니다
이게 우리 교과서에는 고려가 몽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침략에 동참했다가 태풍을 만나 실패라고만 기록되어있는데 고려인들이 나서서 규슈지역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간거라 당시 일본에 상당히 큰 충격을 줬던걸로 압니다
19/01/08 10:27
단군조선+고구려 > 만주에 대한 수복 의지, 대륙에 대한 염원
이 부분이 민족 전체에 뿌리 깊게 내려져 있었고, 거기에 더해 끊임없는 북방 세력의 압력 + 중국 왕조에 대한 견제 혹은 외교 등에 몰두해야만 하는 특수성이 작용한 결과가 아닐까 합니다. 바다는 이용하면 좋은 것 뿐이지, 바다를 타고 나가서 뭘 해보려는 의지 또는 상황 또한 부족했다고 보고요. 여담으로 일본의 국력이 어느 시점에서 한국을 넘어섰다 > 이 말만큼 의미 없는 말은 없는 듯 합니다. 18세기 조선의 국력 또한 (전반적으로 따지면) 유럽 국가들 수준에 못지 않았다 라는 내용도 많죠. 하지만....다 아시다시피 아무 의미 없게 제국주의 국가에 털린 건 한국, 일본, 중국 3국 다 마찬가지입니다. 일본만 변화가 빨라서 결과가 달랐던 거지....한 국가의 국력을 객관적으로 표현하는 기준은 현대에서나 가능할 뿐, 근세와 근대는 (전 세계적인 교류가 없었다는 차원에서)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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