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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7/08/24 14:15:10
Name 글곰
Subject (과학) 그건 아주 바보 같은 생각이예요!
  닐스 보어. 덴마크 출신 물리학자.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역사에 남은 위대한 과학자. 아인슈타인이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를 반대하며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라고 말했을 때, 그의 친한 친구이자 경쟁자였던 닐스 보어는 이렇게 말했다. "신이 뭘 하든 간에 간섭하지 말라고."

  미국에서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이 한창이던 1940년대 중반, 당대 물리학의 거두였던 닐스 보어가 로스 알라모스에 나타났다. 과장을 섞어 말하자면 당대 물리학자의 절반이 모여 있던 그곳에 아인슈타인을 제외하고는 비할 대상조차 없는 위대한 자가 강림한 것이었다.

  당시 물리학자라는 자들이 어떤 존재였느냐 하면, 대략 십대에 대학에 들어가서 대충 논문 쓰고 이십대 초중반에 박사 딴 후 서른 전에 교수가 되어 아무도 알아먹을 수 없는 강의를 하던 정신나간 천재들이었다. 그러나 그들 중에서도 닐스 보어는 특출난 존재였다. 심지어 그의 제자 오토 프리슈는 닐스 보어를 만났던 때를 회상하며 '신이 내 코트 단추를 만졌다'라고 할 지경이었으니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 만하리라.

  그런 닐스 보어가 왕림하니 세상에 자기 홀로 잘난 줄 알았던 천재들조차도 다소곳하게 고개를 숙였다. 누군가가 헛기침을 한 후, 로스 알라모스의 과학자들을 괴롭히던 난제 하나를 조심스레 꺼내 공손히 들이밀었다. 닐스 보어는 한참 동안 골똘히 생각하다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내 생각으로는......"

  침묵이 좌중을 뒤덮었다. 수십 명의 물리학자들이 그의 입을 주시하며 귀를 곤두세웠다. 닐스 보어는 자신의 논지를 전개시켜 갔고, 그 누구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마침내 말을 마친 닐스 보어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런 것 같은데,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 때 뒤에서 누군가 손을 번쩍 들었다. 사람들의 이목이 쏠렸다. 그 손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건 그가 고작 스물네 살에 프린스턴에서 박사를 마치고 젊다 못해 어린 나이로 맨하튼 프로젝트에 참가하고 있는 천재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가 유명한 것은 그가 실로 괴짜이기 때문이었다. 하라는 연구를 하는 대신 금고 여는 법을 스스로 연구하여 남의 금고를 열고 다니고, 툭하면 기묘한 악기를 연주하고, 검열을 피하기 위해 아내와 암호문으로 된 편지를 주고받고, 정문의 보초를 피해 개구멍으로 숙소를 빠져나가는 등 그의 행동거지는 괴짜들이 모인 로스 알라모스에서도 특히 도드라졌다. 그의 이름은 리처드 파인만이었다.

  파인만이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그건 아주 바보 같은 생각이예요!"

  그렇게 이십대 중반의 젊은이는 당대 물리학의 거두를 정면으로 들이받았다.


  
  그날 밤, 닐스 보어는 숙소에서 사색에 잠겨 있었다. 그의 아들 오게 보어는 아버지의 생각을 방해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잠시 후 닐스 보어가 아들을 불러 말했다.

  "너 나중에 연구하다 벽에 부딪히면 아까 그 친구하고 상의해라. 내 말에 예, 예 하고 대답하는 것밖에 모르는 멍청이들보다 훨씬 나을 거다."




-닐스 보어 : 1922년 노벨물리학상 (원자의 구조에 대한 보어 모델)
-리처드 파인만 : 1965년 노벨물리학상 (양자전기역학)
-오게 보어 : 1975년 노벨물리학상 (핵자 구조 연구)



ps) 삼십대 중반의 칼텍(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교수로 있던 시절, 시카고 대학은 그를 스카웃하기 위해 파인만이 원래 받던 월급의 몇 배나 되는 거액을 제시했다. 파인만은 대답했다. 와오 멋지군요! 그 돈이면 아파트를 하나 사서 애인에게 주고 온갖 비싼 물건을 선물할 수 있겠어요! 그리고 나는 집 밖에서는 애인을 생각하고 집에 와서는 아내와 싸우겠죠. 저는 불행해질 테고, 물리 연구는 하나도 못 하게 되겠군요. 그러니까 그 제안은 거절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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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템플러
17/08/24 14:18
수정 아이콘
쉘든이 현실세계에 있으면 저런 느낌일까요? 크크
Galvatron
17/08/24 15:05
수정 아이콘
쉘든은 디락에 가깝죠.... 간간이 파인만 코스프레를 하긴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폴 디락....
걸스데이
17/08/24 14:23
수정 아이콘
그러니까 파인만이 애인이 있다는 겁니까?
17/08/24 15:09
수정 아이콘
첫 번째 아내와 사별 후 여자 후리고 다니는 바람둥이가 되었습니다. 이후 결혼을 두 번 더 하게 됩니다.
카바라스
17/08/25 18:35
수정 아이콘
첫번째 부인과 나름 절절한 사랑을 했는데 사별하고는 그냥저냥.. 3번째 부인은 스위스에서 세계여행 하고싶어하던 여자를 꼬시고 가정부로 데려와서 나중에 결혼..
치킨이 먹고 싶다
17/08/24 14:23
수정 아이콘
쉘든?
둥실둥실두둥실
17/08/24 14:26
수정 아이콘
역시 파인만씨는 농담도 잘하시네요!
人在江湖身不由己
17/08/24 14:27
수정 아이콘
I'm fine, man~!
꾼챱챱
17/08/24 15:08
수정 아이콘
앤쥬?
17/08/24 15:09
수정 아이콘
I'm fine, man. Thank you.
츠라빈스카야
17/08/24 14:39
수정 아이콘
그래서 저때 바보같다고 까인 그 논지는 무엇에 대한 거였...나요?
유리한
17/08/24 14:55
수정 아이콘
찍먹 부먹이요
17/08/24 14:56
수정 아이콘
그건 사실 어러저러한 이론과 가설들에 기반한 이러이러한 내용이지만, 공간이 모자라 적지 않겠습니다.(단호)
17/08/24 15:12
수정 아이콘
모릅니다. :)
덴드로븀
17/08/24 15:27
수정 아이콘
The Pleasure of Finding Things Out 라는 책 내용을 뒤져봤더니 각색이(?) 좀 되긴 햇네요 크크
보어가 아들시켜서 파인만한테 전화 한다음 찾아가서
We have been thinking how we could make the bomb more efficient and we think of the following idea.” I say, “No, it’s not going to work, it’s not efficient, blah, blah, blah.” So he says, “How about so and so?” I said, “That sounds a little bit better, but it’s got this damn fool idea in it.” So forth, back and forth.
이랬다네요...
운동화12
17/08/24 15:06
수정 아이콘
와우...just 와우...
마술사
17/08/24 15:07
수정 아이콘
파인만씨가 애인을 만들지 않아서 대학1학년생들에게 일반물리를 가르칠수 있었군요!?
오빠언니
17/08/24 16:18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웃겨요
17/08/24 16:27
수정 아이콘
"그런데 여보야, 이 편지는 부칠 수 없을 것 같아. 왜냐하면 바뀐 당신의 주소를 내가 몰라서 말이야."
리처드 파인만이 아내를 결핵으로 잃고 얼마 후에 쓴 편지의 마지막 구절이라죠.
17/08/24 16:35
수정 아이콘
감동적인 구절이죠.
그런데 이후 수많은 여자를 섭렵하고 결혼도 두 번 더 한 파인만니뮤...... 제 감동 돌려주세요.ㅠㅠ
웃겨요
17/08/24 16:36
수정 아이콘
카오쓰를 쓴 데이비드(?) 글릭이 파인만 평전을 썼습니다. 제목이 천재! 그거 읽어봤는데, 제 생각으론 아내를 잊기 위한 몸부림? 뭐 그런 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그래서 더 가슴이 아프더랍니다. 감동 회복 되셨습니까, 크크크?
cluefake
17/08/24 16:43
수정 아이콘
오, 저도 물리학을 배우면 파인만처럼 인기있어진다는 거군요. 물리를 배워야..
17/08/24 16:56
수정 아이콘
얼굴이 파인만처럼 생기셨고, 말솜씨도 파인만처럼 좋으시고, 노벨상도 하나 따시고 하면......
홍승식
17/08/25 12:38
수정 아이콘
두,세번째는 어찌어찌 해결하더라도 첫번째가 안되잖아욧!!
산적왕루피
17/08/25 12:52
수정 아이콘
일단 파인만처럼 결혼을 해야...
17/08/24 16:50
수정 아이콘
과학사를 좋아해서 보어와 파인만 사이의 해당 일화를 다룬 책도 많이 봤는데 바보같은 생각이라고 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네요. 혹시 출처가 어딘지 알 수 있을까요?
17/08/24 17:02
수정 아이콘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 입니다. 당연히 읽어보셨을 것 같지만요. 물론 그 책에 저대로 적혀 있지는 않습니다.
마침 위에 덴드로븀 님이 '발견하는 즐거움' 원서를 찾아서 달아 주셨네요.
17/08/24 17:31
수정 아이콘
그렇군요. 저 책은 저도 읽었는데 제 기억이 잘못됐을 수도 있겠네요.
켈로그김
17/08/25 19:39
수정 아이콘
"그건 아주 호불호가 갈리는 생각입니다. 그렇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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