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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속 나무위키 문서 2.3. 가정의 패전 인용"그런데 여기서 마속은 제갈량의 명령을 무시하고 길목에 세워야 할 방어진지를 산 꼭대기에 세우는, 전쟁사상 다시 없을 바보짓을 한다.부장 왕평이 필사적으로 말렸지만 이마저도 무시해버린다."
18/10/30 22:50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56&aid=0010635010
아 김용 작가가 오늘 타계했군요.. 영웅문을 무협 입문작으로 삼았던지라 안타깝습니다.
18/10/30 23:40
위소보는 즉시 무릎을 꿇었다.
"소신 위소보가 성지를 받드옵니다." "황상께서는 분부하셨소. 이번에는 그대가 서서 성지를 받되 무릎을 꿇고 큰절을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으며, 또한 스스로 소신이라 칭하지 않도록 분부하셨소." 위소보는 크게 의아하게 생각하며 물었다. "그것은 어떠한 이유 때문이오?" 온유방은 말했다. "황상께서 그렇게 분부하셨소. 그렇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전하는 것이오. 도대체 어떠한 이유인지는 그대가 황상을 뵙게 되면 여쭤 보도록 하시오." "황상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그는 몸을 일으켰다. 온유방은 한 누런 봉투를 그에게 내밀며 말했다. "그대가 뜯어보시오." 위소보는 두 손으로 받아서 봉투를 뜯어 한 장의 누런 종이를 꺼냈다. 온유방은 왼손으로 등롱을 들고 누런 종이를 비췄다. 위소보는 종이 위에 여섯 폭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첫 번째의 화폭에는 두 어린아이가 땅 위를 뒹굴면서 서로 비틀고 싸우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과거 강희와 자기가 씨름하듯 무공을 겨루는 광경이었다. 두 번째의 화폭은 어린애들이 오배를 잡으려 했고 오배가 강희에게 달려들려고 하는데 위소보가 칼로 오배의 배를 찌르는 장면이었다. 세 번째의 장면에는 한 명의 소화상이 한 명의 노화상을 업고 도망을 치고 있었고, 그 뒤에는 육칠 명의 남자들이 칼을 들고 뒤쫓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가 청량사에서 노황야를 구출하던 광경이었다. 네 번째의 화폭에는 백의 여승이 허공에서 덮쳐들어 검을 뻗쳐 강희를 찔러 죽이려고 하는데 위소보가 그의 앞을 가로막고 대신 일검을 막는 광경이었다. 다섯 번째의 화폭에는 위소보가 자녕궁 침전에서 가짜 태후를 땅바닥에 눕혀 밟고 서서 침대 위의 진짜 태후를 부축해 일으키는 광경이었다. 여섯 번째 화폭에는 위소보와 나찰국의 여자, 몽고의 왕자, 늙은 라마가 일제히 한 늙은 장군의 땋은 머리를 붙잡고 늘어지고 있었는데 그 장군의 옷차림으로 미루어 볼 때 바로 평서왕 오삼계였다. 이것은 위소보가 계책으로 오삼계의 연맹군을 흩어지게 한 것을 이야기하는 그림이었다. 강희는 뛰어난 그림 솜씨를 지니고 있었다. 이 여섯 폭의 화폭은 정말 생동감 있게 그려져 있었다. 다만 강희는 오삼계와 갈이단 왕자, 상결라마, 소비아 공주 네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 모습들은 닮지 않았지만 나머지 인물들은 하나같이 비슷하게 그려져 있었다. 더욱이 위소보의 짓궂은 모습은 더없이 닮았다고 할 수 있었다. 여섯 폭의 그림에는 글은 한 글자도 쓰여 있지 않았다. 위소보는 물론 이것이 자기가 세운 여섯 가지의 큰 공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강희와 장난삼아 무공을 겨룬 것은 공로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강희는 마음속으로 그 일을 잊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신룡교를 폭격했던 일, 가짜 태후를 잡았던 일, 오응웅을 잡았던 공로는 이 일들과 비교해 볼 때 말할 가치조차 없는 일이었다. 위소보는 그와 같은 여섯 폭의 그림을 보고는 그만 멍해져서는 눈물을 흘렸다. (그가 이토록 많은 시간을 허비해 가면서 이러한 여섯 폭의 그림을 그리고 나의 공로를 기억하고 있다니, 이것은 나의 잘못을 탓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온유방은 한참 동안 기다리더니 말했다. "그대는 똑똑히 보셨소?" "그렇소." 온유방은 두 번째의 봉투를 뜯고는 말했다. "황상의 밀지를 선포하겠소." 그는 한 장의 종이를 꺼내더니 읽어 내려갔다. "소계자, 제기랄! 그대는 어디로 갔는가? 나는 무척 그대가 그립구나. 그런데 네 녀석은 정도 없고 의리도 없이 나를 잊었단 말이냐?" 위소보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나도 잊지 않았지요. 정말 잊지 않았소이다." 중국에서 삼황오제(三皇五帝) 이래로 황제의 성지 중에 제기랄, 이라는 상스러운 말을 쓰고 황제 스스로 나라고 칭한 예는 아무래도 강희의 이 밀지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18/10/31 13:37
일전에 어떤 젊은 여성분이 녹정기 감상문을 적은 걸 봤습니다.
그 분 말로는 초반에 강희제와 위소보 캐미가 너무 좋아서 브로맨스 즐기는 기분으로 보기 시작했는데, 점점 가면서 내용이 산으로(?) 가더랍니다. 그래도 어찌어찌 또 그 캐미는 나름대로 괜찮아서 죽 보다가.... 그 위소보가 일곱 아내를 동시에 탐한 '그 사건'에서 딱 기분 잡쳐서 놨다고. 크크크 그래도 녹정기의 정체성은 강희제와의 브로맨스였어야 했다고 열변(?)하시던... 크크크 사실 보인도 반 개그로 말한거였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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