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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5/30 00:27
본문에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항상 저게 당시의 미의 기준이라는 해석을 실제로 학계에서 내놓은 건지, 그렇다면 그런 해석은 어떤 과정에서 나온 건지 궁금하긴 하더군요. 하지만 검색조차 해본 적이 없음.
18/05/30 02:00
잠들지 못하고 글을 쓰고 있던 인문학도가 궁금하시긴하다니까 한번 아는대로 말해보겠습니다. 야식은 못 먹었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Venus_figurines 비너스 상은 빗살무늬토기처럼 하나의 발굴된 유물이 아니라 구석기 시대 유럽 유적지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유물 '종류'입니다. 즉 상당히 넓은 지역의 공통 조상이나 공통 문화권이 남긴 하나의 눈에 띄는 성공한 유행이자 예술양식이었다는 것이지요. 비슷한 예시로는 일본의 토우 https://en.wikipedia.org/wiki/Dog%C5%AB 가 있는데요. 특정 문화권의 시기에 만들어지다가 바로 다른 문화권이 우세해지자 그만 만들어졌습니다. 도대체 왜 그런 식으로 생긴 것이 그리도 만들고 싶었는지 정확히 말해주는 증거는 같이 안 남았다는 것도 비슷합니다. (고고학이나 인류학에서 고대 유물의 창조 원인을 추리해내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제 전공이 아님을 미리 밝힙니다. 다만 주술 이야기라면 제가 좀 배운 분야라 그 쪽 관련해서 한번 말해볼께요.) 다만 선사시대 (즉 글씨가 없어서 기록이 없는 시대) 인류가 실용적이지 않은 이유로 조금이라도 '미적'인 것을 만든다면 백프로 종교나 후대에 종교가 될 것의 원형을 위한 물건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동굴 벽화를 원시인들이 왜 그렸을까요? 배고프다, 사냥을 잘하고 싶다, 잘된 사냥을 그려두고 싶다, 잘된 사냥을 그리고 연습을 해볼까, (반복해서 벽에 창을 던지다보니 정말로 잘 던지게 된다) 아니 그러면 이런 그림 자체에, 아니면 이런 행위 자체에 단순히 반복말고도 다른 변수가 (신성한 힘이) 있어서 내가 잘 되는 것은 아닐까? 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이 벽화에 통합적으로 들어가있는 것입니다. 당연히 노력을 투자하고, 정신적으로 훈련하며, 육체적으로 반복하다보니 사냥이 잘 됬을 것입니다. 아니면 그냥 운으로 한 번 성공했던가요. 그러면 원인을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니 먼젓번에 그림을 그린 것인 것일테니(?) 창 연습할 때 던지는 위치나 방향이 어디였는지, 그 전에 하는 행동이 (몸을 씻는 다던가) 무었이었는지, 사슴 그림을 어떤 재료로 어떤 식으로 그리는지, 등등의 문제에 대해서 나름대로 해석을 했을 것입니다. 이것은 원인이고 이것은 원인이 아니다. 그러면서 주술과 원시종교가 탄생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양한 주술의 도구와 원시종교의 도구가 등장했을 것이니 아마도 동굴 벽화와 비너스 상이 같이 포함될 것입니다. 즉 이것이 예쁜 것이다 / 이것은 가치가 있는 것이다 / 나는 이렇게 되고 싶다 / 이것은 내가 원하는 일이 일어나게 해준다 / 이것을 숭배해야한다 / 이것은 번식에 유리한 특성을 가진 사람의 모형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추정에 불과하지만 다른 요소들과 어울린다는 점에서 합리적이지 않은 추정은 아닐 겁니다.) 이라는 개념들이 구분되지 않고 뒤섞여있는 작품이 바로 저 석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유럽인들은 어쩌다가 주술과 종교의 탄생이 궁금해졌을까요? 정답은 유럽인들의 제국들이 '원시'와 '미개'의 근원을 따지는 것에서 현대의 학문이 거의 모두 정립되었기 때문입니다. 서아프리카 원주민을 노예로 부리면서 유럽인들은 아프리카인들의 우상숭배가 '어째서 미개한지' 학문적으로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악의적인 해석과 자기정당화 끝에 위에 적힌 주술의 근원에 대한 추리가 담긴 책 "황금 가지" (https://ko.wikipedia.org/wiki/%ED%99%A9%EA%B8%88%EA%B0%80%EC%A7%80) 같은 그나마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책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이것과는 별도로 종교개혁 이후 네덜란드 같이 신교도가 우세한 지역에서는 신에 대한 과학 (즉 신학) 이 배제된 '인간에 대한 과학'을 대학교 안에 별도 과목으로 두기 시작하면서, 인류학, 인문학, 종교학의 초기 형태가 다져졌습니다. 그래서 신대륙과 아프리카의 원주민들을 무시할 수 있으면 충분했던 주먹구구식 일개 주장들이 대학교에서 가르침과 논쟁의 대상이 되는 '학문'이 되면서 유럽에서 온갖 근대학문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에 영국의 인도정벌은 인도언어와 인도종교에 대한 연구에서 비교언어학과 비교종교학을 통해 인도-유럽어족이라는 알고보니 백인들과 북인도 아리아인들이 같은 조상에서 시작되었기에 기초적인 문법구조가 동일하며, 하늘에 계신 만물의 아버지라는 원시신을 공통적으로 가진다는 대발견으로 이어지고요. 귀찮은 검색보다 더 좋은 맞춤형 답변이었기를 바랍니다.
18/05/30 09:58
그런데 그 '종류' 중에서도 하필 딱 이 비너스만 유명해서..
막상 그 종류의 다른 비너스들을 보면 이렇게 머리 크고 배나온...-_- 형태는 별로 없고 가슴크고 엉덩이큰, 가장 큰 공통점은 '엉덩이가 크다'라고 정리할만한 형태가 많습니다. 따지고 보면 딱히 현대의 미적감각에서 그렇게 완전히 벗어나는 형태도 아님... 가장 이질적이라고 할만한 이 '빌렌돌프의 비너스'만 특히 더 유명한 것은 어떤 의도가 숨어있다고 볼 수도 있는거죠. 링크해주신 비너스 페이지의 밑에서 하나하나 찾아보면 이 빌렌돌프의 비너스만큼 미적감각이 다르구나 라고 느껴지는 물건은 막상 별로 없어요. https://en.wikipedia.org/wiki/Venus_of_Lespugue https://en.wikipedia.org/wiki/Venus_of_Doln%C3%AD_V%C4%9Bstonice https://en.wikipedia.org/wiki/Venus_of_Brassempouy 물론 지금은 너무 마른 걸 좋아한다지만 사실 빼빼마른 걸 가장 좋아하는 건 오히려 여성취향이지.. 남성들의 취향은 별로 그렇지도 않죠. 적당한 풍만, 특히 큰 골반 좋아하는 건 일반적인 취향아닙니까.
18/05/30 18:30
사실 이런 답변에서 저는 '보편성'에 의거한 해석을 드릴 수 밖에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저는 이 동상이 다른 동상과 확연히 다른 종류로 분류될 만큼 독창적이지는 않은 존재라고 생각되네요. 토우도 그렇고 단지 유행이 좀 튀는 것이었을뿐?
18/05/30 00:39
2만년전에는 저게 진짜 미의 기준이었을걸요. 최소한 부와 능력의 기준은 될 듯. 잉여생산력이 없는 시절에 몸에 축적할 수 있는 사람은 사실 지금으로 치면 상위 1%의 초능력자라서.
저런 조상이 진화한 형태가 바로 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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