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2/10/03 21:17:27
Name meson
Subject [일반] [역사] 한민족은 어디에서 왔는가
※뇌피셜입니다. 재미로 읽으시면 됩니다.

한국인이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을 때, 단군을 떠올리지 않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끝내는 것은 더욱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한국의 민족을 대한민국에서는 한민족이라고 하지만, 북한에서는 조선민족이라고 하고, 중국에서는 조선족(혹은 조선민족)이라고 하고, 일본도 조선민족을 씁니다. 한편 영어로는 코리안(Ethnic Koreans)입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한(韓), 조선(朝鮮), 고려(高麗)라는 세 가지의 틀이 있으며, 셋 모두 한민족의 근원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셋의 연원과 관계입니다.

일단 한민족의 원형에 대한 통설을 보면, 중국 기록에서 요동(만주)~한반도 일대에서 북방계 종족들은 통틀어서 예맥이라고 불렀고, 남방계 종족들은 통틀어서 한이라고 불렀습니다.
따라서 한(韓)의 출처는 여기에서 시작합니다.

이후 예맥과 한은 인구 이동에 의해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문화적, 언어적 유사성을 갖추게 됩니다. 그리고 신라의 고조선 유민 시조설이나 백제의 부여 계승의식에서 알 수 있듯이, 문화적 영향력은 예맥 쪽이 대체로 우위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예맥으로 묶이는 수많은 종족들을 다 통일한 나라가 등장하니 바로 고구려입니다.
물론 정확히 따지자면 고구려 자체는 맥족이고, 예족은 구별했다는 정황이 있는데, 애초에 예족 자체도 부여, 옥저, 동예 등을 싸잡아 대충 부른 호칭이라는 말이 있어서 다 부정확합니다.
정확한 것은 어쨌든 고구려는 예맥을 통일했고, 한의 일부도 다스렸고, 그러고 나서 정식 국호로 고려를 채택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고려(高麗)의 출처는 여기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고구려는 이렇듯 잘 나가면서 점차 요동(남만주~한반도) 전역에 대한 배타적 패권을 꿈꾸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맥한 통일론으로, 광개토대왕릉비(물론 여기는 한인과 예인을 굳이 구분하는 인식도 아직 남아있음이 확인되지만)에서 백제와 신라가 속민이라 주장한 것으로 실체를 찾을 수 있습니다.
고구려식 천하관이 이렇기 때문에, 그 유명한 광개토대왕릉비의 신묘년조 기사도 현재는 일본이 실제로 한반도를 침공해 점령한 게 아니라, 고구려에게 백제와 신라가 반항하는 것을 일본의 사악한 술수 때문이라고 주장해서 자신들 천하관의 모순을 방지했다는 설이 정설이 되었죠.

그리고 그 천하관의 영향을 직통으로 받았던 나라가 있었으니, 바로 신라였습니다.
이 점이 중요한데, 통일을 시도하기 위해서는 능력만큼이나 의지도 필요합니다. 고구려의 경우에는 그게 천손의식이었고, 그 천하관을 ‘동이’의 신분으로나마 접했던 신라 왕실은 비슷한 것을 떠올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백제의 경우에는 이런 대망론이 눈에 잘 띄지 않는데, 왕실의 정체성이 직접적인 천손이 아니어서 그랬을 수도 있고, 그냥 기록이 적어서 안 보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상적 토대와 통일중국의 등장이라는 상황이 맞물려 신라가 대동강 이남을 정치적으로 장악하면서, 마침내 삼한일통론이 등장하게 됩니다.
사실 삼국통일전쟁 당시의 신라는 백제를 안 죽이면 자기가 죽는 상황이라 딱히 대망론 때문에 전쟁한 것은 아니었다고도 할 수 있지만, 어쨌든 통일 이후에는 틀림없이 삼한일통론이 강조됩니다.

물론 여기서 생각해 보면, 그럼 예맥한 일통론이라고 해도 되는 걸 왜 삼한일통이라고 하느냐는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 현대 한국인의 불평불만, 즉 고구려 땅은 손톱만큼 차지해 놓고 무슨 삼국통일이냐는 그 문제의식과도 연결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신라 왕실도 바보가 아닌데, 평양도 제대로 못 통치하면서 당당히 예맥한 일통이라고 하기에는 면이 잘 서지 않았을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일통은 일통인데 일통의 대상을 현실에 맞게 (그리고 경주에서 통치해야 되는 왕실의 사정과 기호에도 맞게) 다소 바꾸어 버립니다.
이에 따라 어느 순간부터 예맥 이야기는 줄어들고, 대신 삼한이 삼국과 등치됩니다. 이것은 곧 고구려가 마한과 동일시되기 시작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http://www.yasinmoon.com/news/articleView.html?idxno=32794)

[ 엎드려 듣건대 동쪽 바다 밖에 삼국이 있었으니 그 이름은 마한, 변한, 진한이었습니다. 마한은 고구려, 변한은 백제, 진한은 신라입니다. ]
- 삼국사기 열전 최치원전 https://db.history.go.kr/item/compareViewer.do?levelId=sg_046r_0030_0100

저 말을 하면서도 최치원이 과연 정말로 저렇게 생각했느냐는 의문이긴 한데(후한서 동이열전만 봐도 고구려와 삼한은 다른 카테고리로 나옵니다...?) 아무튼 신라의 입장은 저러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재미있는 점이, 안승(고구려 부흥군을 하다가 신라에 투항한 그 안승입니다)의 보덕국이 세워지는 곳이 익산 금마저, 금마산입니다. 그리고 금마저가 어디냐 하면 마한의 수장이었다는 건마국(고조선 준왕의 망명해서 세웠다는 그 나라입니다)의 위치로 비정되는 곳입니다.
그러니까 고구려계 제후국을 마한 자리에다 세워 놓음으로써 고구려=마한 설을 밀어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봐도 옛 마한 영역으로는 들어오지 못한 발해를 ‘고려’로 인정하지 않기도 훨씬 수월했던 것이죠.

물론 이래 버리면 고구려가 마한, 신라가 진한이니 백제는 자동으로 변한이 되고, 가야는 그냥 공중분해됨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사관이 워낙 뿌리깊어서 조선시대까지도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삼한이 발전해 삼국이 되었는 줄로 알았습니다.
당연히 후대에 논란이 있긴 했지만, 대부분 고구려가 변한이냐 마한이냐의 논쟁이었지, 설마 삼한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별로 없었습니다.

[ 견훤(甄萱)이 태조(太祖)에게 올린 글에 이르기를 “옛날에 마한이 먼저 일어나고 혁세(赫世, 혁거세)가 일어나자 이에 백제(百濟)가 금마산(金馬山)에서 나라를 창건하였다.”라고 하였다.
최치원(崔致遠)이 말하기를 “마한은 려(麗)요, 진한은 라(羅)이다.”라고 하였다. (···) 요즘 사람들이 더러는 금마산을 두고 마한이 백제로 되었다고 하지만 이는 대체로 잘못이다. ]

- 삼국유사 기이편 마한 https://db.history.go.kr/item/compareViewer.do?levelId=sy_001r_0020_0040_0010

물론 당나라에서 죽은 고구려인들의 묘비명에 요동삼한인이라고 되어 있는 것을 근거로, 고구려도 후기에는 한(韓)과의 친연성을 강조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근데 이건 중국인이 잘 모르고 저렇게 쓴 거라는 설이 있어서 불확실합니다.
게다가 요동삼한은 요동과 삼한이지 반드시 삼한만을 뜻하는 게 아닌데, 삼한일통론으로 변하고 나면 요동 이야기는 사라지고 삼한(三韓)만 부각됩니다. 물론 그럼에도 고구려가 요동에 있었다는 것은 후대에도 꼬박꼬박 언급하는데, 이런 모순을 극복하는 것이 바로 삼한일통이라는 프로파간다였던 것입니다(?)

물론, 생각해 보면 같은 고구려라고 해도 요동반도, 국내성 일대, 평양 일대, 한성 일대, (후에 빼앗기지만) 한강 일대, 함경~강원도 일대, 남만주 일대, 말갈족 거주지역 등은 전부 습속이 조금씩이라도 달랐을 것이 유력하게 추론됩니다.
그리고 신라의 판도에 들어온 구 고구려 영토는 어쨌든 마한이랑 제일 가깝고 한(韓)과 가장 많이 섞인 지역이었을 것이므로, 삼한과 제일 동질적인 지역이었고, 그래서 사실은 별 거부감 없이 마한 계승의식을 가졌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이 영향으로 인해 고구려가 통합했던 예맥인들 중 대동강 이북 사람들은 (신라의 외면과 함께) 발해에 참여합니다. 이것은 하나의 단절이며, 나중에라도 고려에 내투하지 않은 사람들은 이후 한국사의 호흡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신라는 삼한일통 의식을 힘들게 선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실질적으로는 골품제 카르텔을 놓지 못해서 지방을 소외시켰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당연히 지방세력의 이반을 불러옵니다.
개인적으로는, 원래 있었던 고구려나 백제의 유민의식이 이러한 중앙과 지방의 대립을 매개로 더욱 증폭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그래서 진골 귀족들의 아귀다툼으로 신라의 지방통제력이 약해지자 각지에서 유력자들이 들고 일어나며, 그중에서도 (둘 다 신라 출신이 유력한) 궁예와 견훤은 각각 고구려와 백제의 계승의식을 드러내며 두 국가의 국가정체성이 상당히 남아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물론 궁예는 나중에 마진, 태봉 등으로 국호를 개칭하며 안 어울리는 고구려 계승의식을 그만두려고 했는데, 왕권 강화로 생각되나 흐름을 읽지 못했다는 점에서 광증의 일환으로 보기도 합니다. 어쨌든 이를 비롯한 여러 이유들로 궁예에게 실망한 패서호족들은 왕건을 옹립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패서 지역에서는 상당한 정도의 고구려 유민의식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고구려 땅이었기도 했고, 신라가 제대로 통치하지 못하고 반쯤 방치했던 땅이기도 했죠.
이로써 고려의 이름이 200여 년 만에 다시 정치의 중핵으로 진입합니다.

물론 이름이 고려였어도 왕건이 도로 예맥 이야기를 꺼내든 것은 아니었고, 삼한 역사관을 그대로 따라갑니다. 물론 예맥한 통일론이든 삼한일통론이든 통일을 해야 한다는 것은 동일했고, 삼한일통론을 퍼뜨린 보람이 있어서 고려 역시 대망론을 품고 후삼국을 통일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이런 것을 보면, 신라의 삼한일통은 비록 불완전하기는 했어도, 예전에는 전혀 통일의식이 없던 지역들을 하나로 묶어본 경험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일단은 고려 역시 자신들이 ‘삼한을 통일’했다고 인식했으니까요.

그러나 고려가 해낸 재통일의 의미는 더욱 큰데, 일단 무엇보다 고구려계(로 추정되는) 귀족들이 대두했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한(韓)계 집단의 경우에는 어차피 한반도 남부에 계속 있었기 때문에 한민족의 조상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 더 어려운 반면에, 예맥계 집단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은데, 바로 이 고려의 건국으로 인해 고구려적인 문화와 고구려 계승의식이 크게 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소위 ‘고구려적인 문화’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이설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어쨌든 고구려에 뭔가 고유한 생활방식이 있었고 이것이 만주의 여러 북방민족은 물론 중국 한족과도 달랐음은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이것은 유목민족들의 풍습처럼 중국 문화에 대하여 열세인 문화도 아니었으며, 정주국가의 문화였고, 오히려 고구려 문화가 한족 인구조차 주도적으로 동화시켰습니다. (수도가 평양이었고, 요동성에서도 주몽을 숭배했습니다.)
이러한 뚜렷한 정체성이 있었기 때문에 고구려 유민들이 필사의 탈출을 통해 발해를 세웠고, 발해가 망한 뒤에도 장장 200여 년에 걸쳐서 거란이나 여진에 반대하는 부흥운동이 일어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대개의 한국인이 주장하는 바는, 바로 위 같은 ‘고구려적인 문화’가 고려의 후삼국 통일로 말미암아 고려 문화의 한 축을 이루게 되며, 발해 유민의 흡수로 더욱 강화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고려의 강역 역시 요동과 함경도는 구경만 한번 해본 수준이고, 평양도 폐허였던 것을 재건했다는 말이 있는 것으로 보아, 발해가 가져갔던 예맥계 인구를 다 흡수했다고는 빈말로라도 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때 갈라진 두 집단의 차이점은, 요동(만주)의 예맥계 인구는 200여 년 뒤에는 한족, 여진족 등에 동화된 반면에, 한반도의 예맥계 인구는 고려라는 이름으로 정체성을 계속 보존해 나갔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설령 예맥한이라고 하지 않고 삼한이라고 하더라도, 고구려적인 문화는 최소한 세 축 중 하나가 되는 것이지, 어딘가에 흡수되거나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은 아니게 됩니다. 어쨌든 고려는 삼국사기를 편찬했으며, 틈만 나면 고구려 계승의식을 드러내었고, 발해를 형제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므로 이때에 이르러 한민족의 형성은 거의 완료되었고, 단지 민족화만이 아직 끝나지 않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비로소 화려하게 조명받는 이름이 바로 조선(朝鮮)입니다.

[ 삼가 성지(聖旨)를 받들었는데, 그 조칙에, ‘동이(東夷)의 국호(國號)에 다만 조선(朝鮮)의 칭호가 아름답고, 또 이것이 전래한 지가 오래 되었으니, 그 명칭을 근본하여 본받을 것이며, 하늘을 본받아 백성을 다스려서 후사(後嗣)를 영구히 번성하게 하라.’
(···) 실로 이것은 종사(宗社)와 백성의 한이 없는 복(福)이다. 진실로 중앙과 지방에 널리 알려서 그들과 함께 혁신(革新)하게 할 것이니, 지금부터는 고려(高麗)란 나라 이름은 없애고 조선(朝鮮)의 국호를 좇아 쓰게 할 것이다. ]

- 조선왕조실록 https://sillok.history.go.kr/id/kaa_10202015_001

조선이 주목받은 것은 고려의 대몽 항쟁기부터인데, 그 이유로는 국민 통합이 주로 거론됩니다. 몽골군에 맞서 단합해야 하는 것도 그렇지만, 이 시기에 삼국 부흥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백제나 신라라면 몰라도 심지어 ‘고려’에 반대하는 ‘고구려’ 부흥운동이 일어나기까지 하는데, 서경 세력이 중심이 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고려는 신라와 달리 전국의 귀족들을 다 중앙에 등용했고, 이 덕분에 좀 약해졌다고 해서 지방에서 할거하는 호족은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뭔가 문제가 있다고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국민들의 통합성을 강조하기 위해 부각되는 공통시조가 바로 단군입니다. 물론 평양에 단군에 대한 전승이 있기야 있었겠지만, 이것이 삼국유사나 제왕운기 등에 실리는 것은 고려 후기입니다.
물론 고조선 자체만 보면 예맥은 몰라도 삼한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가? 라는 의문이 들지만, 어쨌든 준왕이 진국을 세워서 삼한의 모태가 되었다(혹은 진한의 모태가 되었다)는 기록이 존재하기 때문에, 대충 한반도는 다 고조선계에서 시작했다고 믿으면 못 믿을 것도 없었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인식할 때 좋은 점은, 분리주의 운동의 사상적 기반이 억제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국호가 고려여도 고구려 부흥 운동이 일어나는 판에 그게 효과가 있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분리주의 운동이란 언제나 어중간한 정체성이 아니라 강렬한 정체성을 요구하곤 합니다.
즉, 이름은 고려면서 고구려적이지 않은(신라적인) 요소가 섞여 있는 것보다는, 아예 조선이라는 더 근본 있는 정체성을 끌어와서 ‘전부 조선에서 나왔고 조선으로 도로 통합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 조선의 집권세력은 어쨌든 판을 다시 짜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상징적인 의미에서라도 국호를 바꾸긴 해야 했습니다. (이것은 동아시아 천하의 전통 중 하나인데, 일본은 만세일계를 표방해서 혼자 국호가 그대로입니다.) 거기에 어울리는 것은 마침 대두되기 시작한 조선이라는, 근본 있으면서도 새로운 느낌을 주는 이름이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이렇게 정체성을 갈아끼운 조선시대에는, 종친을 옹립하겠다는 역모는 많았어도 삼국을 부흥한다는 식의 반란은 없었고, 심지어 고려부흥운동도 딱히 없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몽골, 홍건적, 왜구 등의 전국적인 침공을 거치며 운명공동체 의식이 공고해졌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완성된 조선의 민족집단은 훈민정음을 통해 정체성을 더욱 강화했고, 양란을 거치며 담금질을 겪었고, 조선 말에 이르면 다시 일신할 필요가 있다고 하여 대한(大韓)이 강조됩니다. 이것은 물론 삼한일통론의 잔재(삼한을 합쳤으니 대한)인데, 그런다고 섭섭해할 예맥족은 이미 다 사라진 뒤였습니다.
그 다음에는 일제 강점기가 찾아왔고, 조선인(혹은 대한인)의 민족은 더욱 더 강력한 담금질을 겪게 됩니다. 그때가 되면 이미 민족주의 시대기도 하죠.
그리하여 오늘날에는, 아직까지 한반도의 민족집단의 대다수가 (한민족이라는) 단일한 실체라는 것을 해체하려는 조류는 없습니다. 그 명칭에 대한 이설은 존재하지만 말이죠.

따라서 여기까지 살펴본 뒤에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면, 한(韓)이 전 한반도를 대변할 수 있는 이유는 신라가 삼한일통론을 통해 삼한의 범위를 확장시켰기 때문입니다.
또 고려(高麗)가 전 한반도를 대변할 수 있는 이유는, 신라가 확장한 삼한을 실질적으로 묶어낸 것이 고려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백제는 늘 그렇듯이 소외되지만, 가야의 소외에 비할 바는 아닙니다.)
그리고 조선(朝鮮)이 전 한반도를 대변할 수 있는 이유는, 삼한에서 3이라는 구분을 없애고 한 몸처럼 융합한 것이 조선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된 뒤에는 아예 3을 떼 버린 채로 공간적 느낌만 살려서 대한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며, 한이라고만 해도 되는 지경에 이릅니다.
한민족은 거기에서 온 것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가요?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구리사는너구리
22/10/03 21:29
수정 아이콘
조선도 마지막에는 대한제국으로 '한' 을 강조했는데.. 나중에 언젠가 통일된다면 국호가 어찌될지 궁금합니다.. 한vs고려 중 한이 우세할 것 같습니다..
근데 한은 중국에도 같은 한자의 한이 있어서. 스탄 같은 나라 부족의 의미인가도 싶고
22/10/03 21:46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는 이미 제시된 적이 있었던 고려연방(코리아연방)이 제일 무난하다 싶긴 합니다.
22/10/03 22:14
수정 아이콘
사실 그냥 흡수통일일거라 별다른 논쟁거리가 못 될겁니다. 독일도 국기 논쟁 그런거 없었죠.
지니팅커벨여행
22/10/03 22:41
수정 아이콘
한이 우세할 것 같긴 하지만 외국에서는 대부분 고려(코리아)로 부르고 있어서 영문명의 기원이 된 고려로 돌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죠.
재간둥이
22/10/04 13:56
수정 아이콘
고려라는 이름이 무난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단군의 조선이 고조선이 됐던 것처럼 왕건의 고려는 고고려라 불리겠네요. 꾜려
자연스러운
22/10/04 00:11
수정 아이콘
Korea 와 한 을 둘다 고려한
-고려한- 이 좋겠네요
소믈리에
22/10/04 03:57
수정 아이콘
서리한...어둠한...고려한?

Let them come... Koreamourne hungers.
지니팅커벨여행
22/10/04 15:21
수정 아이콘
그럼 영어 국명이 Considering으로 바뀌어야 되겠군요!
22/10/04 06:43
수정 아이콘
이명복이 황제를 자칭하려고 보니,
황제란 왕을 임면하는 사람인지라,
"삼한을 아우르는 제국"이라는 표현이 필요했습니다.
구리사는너구리
22/10/04 07:31
수정 아이콘
그러네요 칭제하려면 제후국이 필요하긴 했네요..
따질건 잘 따져가면서 했네요..
22/10/03 21:50
수정 아이콘
약간 쓸데없는데 묘한게, 신라 -> 고려 -> 조선으로 넘어가면서 각나라의 주도세력의 지역이 신라고 고구려 백제를 다 망라한게 재밌네요

신라는 말할것도없이 경주쪽중심이고,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하며, 조선은 전주이씨 전주! +함경도
22/10/03 22:07
수정 아이콘
생각해보면 기반은 분명 함경도일 텐데도, 정작 나중에는 함경도는 버려지고 전주를 더 쳐주기도 한 것 같더군요.
VictoryFood
22/10/03 21:52
수정 아이콘
예맥과 숙신의 경계가 예전에는 명확했을까가 궁금하긴 합니다.
교과서에서는 신라의 삼한일통 후 예맥계인 고구려 유민과 숙신계인 말갈족이 합쳐서 발해을 건국했다고 배웠는데요.
한 - 예맥 - 숙신 의 관계가 (한 - 예맥) - 숙신 일지 한 - (예맥 - 숙신) 일지 말이죠.
사는 영역으로 보면 한족은 한반도 남쪽에서 좀 떨어져 살았고 예맥과 숙신이 만주에서 부대끼면서 살았을테니까요.
22/10/03 22:06
수정 아이콘
숙신을 퉁구스어족이라고 생각하면 의외로 차이가 커서 알아서 구분했을지도 모릅니다.
개인적으로는 고구려와 말갈의 관계가 러시아와 카자크족의 관계(근데 이제 말이 안 통하는)와 비슷했다고 봅니다.
국수말은나라
22/10/03 21:57
수정 아이콘
그냥 넓게보면 몽고족 여진족 진한 변한족이 섞여서 한민족으로 봅니다 중국의 한족과는 성질이 다르고 일본의 왜족과도 다른...
바람돌돌이
22/10/03 22:10
수정 아이콘
신라는 성골 문화에서 보듯이 왕족은 이민족이었을 가능성도 있을 것 같습니다. 지도층이 폐쇄적인 혈연을 유지하려는 것은 왕권을 다른 핏줄에 넘기지 않기 위해서인데, 신라 성골문화는 자기 핏줄을 중요시 여긴다기 보다는 성골이라는 집단을 중요시 여기는 걸로 보이고 이건 이민족이 지배계층이 되었을 때 자주 나타나는 모습이죠.
이리떼
22/10/04 09:49
수정 아이콘
고조선계 유민들이 세운 나라가 신라이고, 그 유민들이 오기 전부터 진한 세력권 안에서 살아가던 이들과의 단절 의식이 드러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신라가 세워질 때 변한을 전부 통합한 상태로 세워진 것도 아니고, 경주 일대에서 농사 짓던 고조선계 유민들의 작은 6개 마을이 합쳐 나라를 세운 뒤 주위 소국들을 병탄해나갔기 때문이죠. 이 과정에서 아주 재밌는 기록들이 나타나는데 신라와 왜 양쪽 국가들의 서로에 대한 어마어마한 증오와 전쟁입니다. 백제도, 주위 변한 소국도, 가야도 아닌 하필 바다 건너에 있는 일본에 대한 증오말이죠. 심지어는 수도가 포위된 적도 있죠. 이는 알렉산더 보빈의 학설에서 추론해볼 때 한반도 남부 일부에 잔존해있던 고 일본어계 화자(이들 중 먼저 바다를 건너 규슈에 간 이들이 초기 야마토를 세우는 도래인이라고 생각합니다.)들이 신라와 계속해서 전쟁을 벌였고 그 영향이 바로 소위 극우 일본이 말하는 임나일본부설이겠죠. 남한 잔존 고일본어 화자들의 식민지가 바로 규슈 일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리떼
22/10/04 09:50
수정 아이콘
물론 이건 제 망상에 가까운 가설입니다.
계층방정
22/10/03 22:10
수정 아이콘
한 가지 재미있는 가설이 한(韓)은 가야의 고대 중국식 음차라는 것입니다. 이게 사실이면 삼한일통 역사관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진 가야가 사실 한의 근본이란 거니까요.
국수말은나라
22/10/03 22:11
수정 아이콘
김유신?
아케이드
22/10/03 22:31
수정 아이콘
아프리카에서 왔다는 게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죠
깃털달린뱀
22/10/03 22:41
수정 아이콘
고대 로마인도 결국 동아프리카에서 기원했는데...
이것이 과연 우연일까요?
아케이드
22/10/03 22:42
수정 아이콘
우연이 아닌 필연이죠
한국이 로마 그 자체니까요
아브렐슈드
22/10/04 11:21
수정 아이콘
트위치에서 왔으면 화질 개 구릴뻔했는데 참 다행이죠
류지나
22/10/03 22:41
수정 아이콘
재밌네요. 본문을 제가 이해했는지 되새겨볼겸 본문의 내용을 제가 이해한대로 늘어놓아 보자면...

삼국시대에는 명백히 서로의 천하관이 존재했었고 이것이 충돌하고 있었기에 하나의 민족 형성이라고 보기엔 무리였음.
영토가 작은 신라가 삼국시대의 승리자가 되면서 민족 통합의 명분이 필요해짐, 그래서 내세운 것이 '삼한의 통일'

그러나 여전히 고구려, 백제 민족의식은 사라지지 않았고 이것이 발현된 것이 후삼국 시대
고구려의 뒤를 잇겠다며 나선(국명도 같은) 고려가 등장하여 후삼국시대를 통일하며 기존 신라가 받아들이지 못했던 고구려계 민족도 수용하게 됨.

고려의 등장으로 민족주의만 빠졌지 거의 하나의 민족이라는 의식은 발현된 상태.
고려를 엎어버리고 나선 조선은 다시금 등장할 고려 부활 기치 등을 억누르기 위해 아예 완전히 새로, 근본중의 근본인 '조선(고조선)'이라는 개념을 꺼내옴.

조선이 성공적으로 민족을 묶어내며 신라 시대때부터 유지해내려오던 '삼한'과 합쳐저 '한민족'이라는 개념이 형성.
22/10/03 23:38
수정 아이콘
사실 본문의 요지만 따지자면...

고구려: 예+맥+마한 일부를 통일. 예+맥+한 통일론으로 최초로 삼국을 아우르는 공동체를 상상.
신라: 삼한+예맥 일부를 통일. 고구려 땅의 태반이 날아간 관계로 예맥한 일통이라고는 못 하고, 고구려를 마한과 등치시켜서 삼한일통론 주장. 고구려는 이때부터 예맥이 아니라 한과 연결됨. 근데 정작 신라는 중앙정치에 지방세력을 배제해 잘 섞이지 않았고 결국 멸망.
고려: 전국의 지배층을 귀족사회로 편입시켜 통일성이 높아짐. 고구려적 문화를 부흥시켜 문화정체성의 한 축으로 격상. 근데 줄어들긴 했지만 유민의식이 아직 있었고, 이름이 고려인 이상 연상작용을 피할 수 없었음.
조선: 삼국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어느 한쪽이 아닌 공통시조를 강조. 이로써 유민의식이 소멸했으나 지역이 삼한이라는 인식은 남음.
대한: 삼한을 합쳐 대한. 삼한에 걸려 있었던 정치적 의미가 퇴색된 뒤라 단물 다 빠진 조선의 이미지를 대신할 신선한 이칭으로 사용할 수 있었음.

이 정도가 됩니다.
League of Legend
22/10/04 03:10
수정 아이콘
오호..
22/10/04 07:41
수정 아이콘
(수정됨) 신라 6촌중 양산촌이 얻은 성이 "이씨"이며, 경주 이씨입니다.

이명박이 경주 이씨를 자처하고, 이재명 또한 그러합니다. (이재명, 이재용 항렬이 같음.)
국수말은나라
22/10/04 09:30
수정 아이콘
이병철 이건희 이재용인데 이병철은 어디에도 없네요?
그리고 돌림자가 끝에서 가운데로도 쉬프팅 되는건지?

그나저나 좌파 맨 왼쪽과 우파 제일 오른쪽 항렬이 같은건 재밌네요
헌트쿡
22/10/04 18:42
수정 아이콘
돌림자는 항렬별로 가운데나 끝 한군데에 사용하죠. 이명박씨는 39대로 가운데에 '상'자 돌림이고 이재명씨는 41대로 가운데에 '재'자 돌림입니다. 이건희씨는 40대 '희'자 돌림입니다.
이명박씨가 족보에 올리는 이름과 실제 사용하는 이름이 다른 경우일 뿐입니다.
국수말은나라
22/10/05 11:03
수정 아이콘
아 제 질문은 같은 종친상에서 항렬이 내려가면서 가운데 끝이 서로 바뀌냐는거였습니다 그리고 이병철은 맞지 않아서 물어본겁니다
22/10/04 12:20
수정 아이콘
삼한이 예맥과 대립되는 좀 더 한정적인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기원적으로 보면 맞는데, 그 자체가 좀 현대적 사고방식이고 당시 용례로는 달랐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123620
"그러나 6세기 이후부터는 그 삼한의 실체와 다른 후대의 역사 인식이 전개된다. 즉 삼한은 한반도 중남부 지역에 대한 역사가 아닌 요하 동쪽과 한반도 지역 전체의 역사로 인식된 것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삼한이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이기도 했다. 중국에서 삼한이라는 명칭이 요하 동쪽의 동이 지역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이게 된 이유는 기자조선과 연결 지어 삼한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의 이러한 삼한 인식은 신라에 그대로 전해졌다. 신라 사료에서는 7세기 후반 이후의 자료부터 삼한의 용례가 나타난다. ... 그러나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삼한이 곧 삼국을 의미하는 용어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삼한을 곧 삼국이라 인식하며, 삼한과 삼국을 일대일로 대응시키는 사례는 9세기 말에 가서야 나타난다.
한편, 고대 일본에서도 8세기 초반부터 한반도 지역 또는 그 지역에 있었던 삼국을 삼한이라 부른 것이 확인된다. 이와 같이 삼한이라는 명칭은 역사성과 함께 고대 동아시아 세계에서 한반도 지역을 가리키는 용어로 널리 쓰인 보편성을 가지고 있었다."

삼국지 좀 읽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원래 중국의 지명 또는 종족에 대한 명칭은 그렇게 엄밀하지 않고 대유법과 그 반대 방식을 막 섞어서 써요. 이를테면 어떤 지역이나 나라를 부를 때 과거에 그 지역에 있던 범위가 다른 나라 이름을 가져와서 부르거나, 그 나라의 한 지역 이름을 부르거나 등등. 요즘 식으로 보자면 네덜란드인 한명이 왔는데 로마에서 왔다 라는 서술도 가능한 거죠. 로마=유럽이었으니까. 뭔가 좀 격을 높이고 싶다거나 오히려 격하하고 싶다거나 또는 독자에게 연관된 어떤 고사를 상기하게 하고 싶다거나 등등 다양한 문맥적인 목적이 지리적 엄밀함보다 더 중요한 글쓰기 방식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그런 것에서 춘추필법도 나오고.. 암튼 말이 좀 샜는데

요점은 삼한일통론에 그러한 정치적 의도가 있었을 개연성은 충분히 있으나, 삼한이라는 말이 예맥족+한족의 강역 전체를 포괄하는 말로 쓰인 건 오히려 중국에서 한국으로 수입된 용례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신라에서 삼한을 막연한 강역적 의미가 아니라 삼국에 일대일 대응시키게 된 것은 그로부터도 수백년 지나서인데 이는 아마도 의식적인 정치적 작업이라기보다는 흔히 있는 역사적 혼동일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라는 것.

중국에서 기자조선의 문화권으로 인식했던 것처럼, 한반도에서는 또 진국이 고조선의 후예라는 인식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기도 하죠. 진국과 진한을 혼동하는 서술들도 간간이 있는데 진국은 진한과는 다르고 삼한 전체를 통칭하는 명목적이거나 상징적인 개념에 가까웠던 것 같은데, 고조선의 준왕이 최초의 진왕가 또는 마한왕가(건마국)를 열었다는 설도 있고 마한에서 가장 강성하던 목지국에게 밀려서 목지국의 진왕이 곧 명목상 삼한의 맹주를 맡게 되었다는 설도 있고 뭐 그런 것 같습니다. 어쨌든 그런 식으로 고조선-준왕-건마국-목지국의 계승 과정을 통해 (https://namu.wiki/w/%EA%B1%B4%EB%A7%88%EA%B5%AD) 보여지는 지배층의 지리적, 계층적 이동을 어떻게 해석할지가 '조선'과 '한'의 정치체제/혈족성의 변증법을 현대 한국인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가늠하는 꽤 중요한 부분일 것 같군요.
자급률
22/10/04 14:08
수정 아이콘
진한쪽 초기 묘제같은거 보면 실제로 고조선과의 연관성이 좀 보인다고 전에 들은것 같기도 한데...뭐 물론 연관성이 보인다고 진한이 곧 진국으로 치환될 수 있는건 아니겠지만요.
22/10/04 16:23
수정 아이콘
그게 진한이 아니고 제가 위에 나무위키 링크 걸어놓은 목지 이전 마한의 중심이었던 걸로 추정되는 건마(또는 한마) 얘기일 겁니다.
자급률
22/10/04 16:58
수정 아이콘
사로국쪽 초기 묘제를 보면 서로 상이한 두가지 양식이 병존하는 시기가 한동안 관측된다더라고요. 그래서 하나는 조선계 유이민 계통 하나는 선주민 계통 아닌가 추측한다고...
22/10/04 18:37
수정 아이콘
고조선계 유민의 자취와 북방 문명의 유입은 삼한 곳곳에서 발견되는데, 준왕의 남하 및 건국이라는 문헌기술과 고조선계 집단의 소규모 국가형성이라는 고고학적 성과의 연결 자체는 별 무리없이 받아들여지는 것 같더군요. 마한이라는 데 합의가 있을 뿐 그게 건마인지 목지인지 진국인지 영영 확실하게 밝혀지지는 않을 수도 있지만요. 뭐 신라도 고조선 유민과 한계 원주민이 같이 건국했다고 하고 백제는 고조선계 부여계 한계까지 섞여서 혼란스러울 정도니 예맥계 고(구)려와 한계 백제신라의 종족적 경계란 것 자체가 후대에 생겨난 환상일 수도 있고요. 뭐 사실 한반도 남부와 북부라고 해봐야 중국이나 미국으로 보면 좀 큰 주나 성 내부에서 벌어지는 사이즈의 역사니..
가라한
22/10/04 14:49
수정 아이콘
상고사에서 예족이나 맥족이란 말이 가끔 나오면 이게 뭔가 했는데 이런 뜻이었군요. 하나 배워 갑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22/10/04 16:37
수정 아이콘
예맥한...그리고 좀 더 섞였겠죠.
예, 매칸더입니다. 어쩐지 노래가 좋더라니
소믈리에
22/10/04 23:08
수정 아이콘
본문도 댓글도 잘 읽었습니다
진짜 흥미롭네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공지 [정치] [공지] 정치카테고리 운영 규칙을 변경합니다. [허들 적용 완료] [124] 오호 20/12/30 176378 0
공지 [일반] 자유게시판 글 작성시의 표현 사용에 대해 다시 공지드립니다. [15] empty 19/02/25 278182 7
공지 [일반] [필독] 성인 정보를 포함하는 글에 대한 공지입니다 [51] OrBef 16/05/03 404344 27
공지 [일반] 통합 규정(2019.11.8. 개정) [2] jjohny=쿠마 19/11/08 259764 3
97256 [일반] 남성 직장인 3명 중 2명 “한국 사회에 구조적 성차별 있다” [10] lexicon2288 22/11/27 2288 4
97255 [일반] 배달도시락 1년 후기 [54] 소시6085 22/11/27 6085 88
97254 [일반] 좋은 미드 2개 추천하고 갑니다. [11] This-Plus3710 22/11/27 3710 7
97253 [일반] 늘 그렇듯 집에서 마시는 별거 없는 혼술 모음입니다.jpg [23] insane5619 22/11/27 5619 13
97252 [일반] IVE의 After Like를 오케스트라로 만들어봤습니다. [6] 포졸작곡가2010 22/11/27 2010 13
97251 [일반] [팝송] 카이고 새 앨범 "Thrill Of The Chase" 김치찌개931 22/11/27 931 0
97250 [일반] [성경이야기]외로운 사사 삼손이 태어난 배경 [6] BK_Zju1612 22/11/27 1612 11
97249 [일반] CGV가 주었던 충격 [31] 라울리스타8258 22/11/26 8258 26
97248 [일반] 맥킨지 보고서-승리하는 다양성 [116] kien.7146 22/11/26 7146 4
97247 [일반] (스포)사채꾼 우시지마 감상 10권까지 감상 [31] 그때가언제라도4774 22/11/26 4774 3
97246 [정치] 광림교회 김선도 원로목사 소천, 김선도 목사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 청원 [56] SAS Tony Parker 8289 22/11/25 8289 0
97245 [정치] VOA "한국의 독자핵무장 여론이 점차 주류화" [119] 숨고르기8447 22/11/25 8447 0
97244 [일반] 인어공주 논란, 우리는 가상이 아닌 현실을 볼 수 있을까? [203] Taima8937 22/11/25 8937 23
97243 [정치] 빈곤 포르노에 추가된 타임라인 [106] Flow9949 22/11/25 9949 0
97242 [일반] 나이브스 아웃 2: 글래스 어니언 보고왔습니다(노스포) [9] 흰긴수염돌고래3572 22/11/25 3572 4
97241 [정치] 유동규 관련 대장동 재판에서 벌어진 사건 [21] 삭제됨5205 22/11/25 5205 0
97240 수정잠금 댓글잠금 [정치] 순진한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 [184] brothers12481 22/11/25 12481 0
97239 [정치] 경호 로봇개와 과학경호 [74] CV4880 22/11/25 4880 0
97238 [일반] 르세라핌의 antifragile을 오케스트라로 만들어보았습니다~ [14] 포졸작곡가2655 22/11/25 2655 14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