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버는 승리한다.
비트가 5천만원대로 떨어졌다. 나는 코인충이다. 거래소들의 평가액을 대충 훑어보았다.
대충 천만원 정도가 깨진거 같다. 하지만 걱정마라. 평가액은 평가액일 뿐이다.
기계적으로 매수 주문을 걸어놓는다. 하지만 쫄린다. 현재가 보다 조금 더 밑에 걸어놓는다. 난 키워서 먹는 편이다.
몇몇 주문은 체결되고 몇몇 주문은 무시당한다. 반등이다. 나의 포트폴리오 중 일부 코인은 엊그제 매도 했던 가격까지 올라왔다.
그렇다고 그 가격에 팔 순 없다. 난 이미 그 가격에 팔았던 적이 때문이다. 나의 매수 매도 규칙에 따라 최근 매도 가격의 윗 가격에 계단식 매도를 걸어놓는다.
이제 앱을 종료한다. 내가 본다고 오를것도 아니며, 내가 본다고 내려갈것도 아니다. 나는 괜찮다. 나의 평가액은 이미 +500% 이상이다. 존버는 승리한다.
지인의 청첩장 모임에 나왔다. 결혼을 결정한 이유에 대해 질문했다. 한달 뒤 남편이 될 지인은 본인이 생각하는 가정의 형태와 와이프가 될 사람의 배려, 본인의 노력 등을 이야기한다.
사실 마음에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그러나 서로를 위한 그들의 노력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몇년을 만났냐고 물어보았다. 4년이라 하였다. 존버는 승리한다.
모임에 흡연자들이 대다수라면 조금은 심심하다. 평소라면 따라나가 노가리라도 까겠지만 오늘은 비가온다. 국물이나 떠먹으며 술이나 깨야겠다.
인스타그램을 켰다. 새로운 사진이 떴다는 작은 알림이 보인다. 익숙한 얼굴과 낯설은 얼굴이 섞여있다. 그녀에게 새로운 남자가 생겼다.
잠시 뇌에 퍼즈가 걸린듯한 느낌이 들었다. 격렬한 우울감이 찾아온다. 그래도 다행이다. 지금 4인 테이블엔 나 혼자 뿐이다.
나는 그녀를 존버하고 있다. 어쩌면 그녀는 나의 포트폴리오 중 유일한 파란색일지도 모르겠다.
그녀를 정리하지 못하는건, 절대로 손절은 하지 않는다는 나의 투자 성향 때문일까, 아니면 그녀라는 종목에 대한 믿음일까.
마음이 매우 흔들린다. 집에 도착해도 여전하다. 맥주를 연거푸 마셨지만 기분이 몽롱해지는 것과 동시에 마음에 벽돌이 쌓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머리속에 말들이 가득하다. 카톡 메세지 창에서 쉬프트 엔터를 치려다 실수로 엔터만 치게 되면 전송이 되어버린다. 역시 할 말은 별도의 메모장에서 정리하는게 안전하다.
감정에 휩쓸린 나의 편지는 꽤나 절절하다. 그런데 아마 내가 읽기에만 절절할 것이다.
이미 우리는 헤어졌고, 꽤나 많은 시간이 흘렀고, 그녀에겐 새로운 남자가 생겼다. 난 왜 그 누구에게도 의미없는 나의 마음을 배설하고 있는가.
문득 투자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어떤 종목이든 내가 산 가격보다 내려갔을 때 판다는 것은, 단순히 손절에 이은 또다른 매수에 대한 도전일 수도 있겠지만 나의 일시적인 잘못된 투자를 인정하는 의미 또한 가지고 있다.
우리는 헤어지고 나서도 마치 친구처럼 만나왔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그녀를 친구라고 생각한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나는 반등을 기다리는 매수자였다.
판단은 서질 않고 미래는 보이지 않는다. 그녀라는 종목은 다른 종목으로 갈아 탈 수도 없고 물을 탈 수도 없다.
다만 그녀에게 새로운 남자가 생긴 지금이 나에겐 지하실처럼 느껴진다. 물론 지하실 밑 멘틀이 있을 수도 있다.
이제 나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존버할것인가. 손절할것인가.
작별을 고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운명을 느낄 여자를 만나는 것은 어렵다.
존버는 승리한다. 그런데 승리는 어디서부터이며, 얼마나 버텨야 존버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나의 존버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지만 걱정마라.
화승 갈끄니까아.
---
감사합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