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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0/05/07 02:14:06
Name 앎과모름의차이
Subject [일반] 아빠의 삶. 나의 삶. 후회할 만한 방황. (수정됨)
# 아빠의 삶.

저희 집은 네 식구지만 저희 집에는 세 사람이 삽니다.

수많은 상처를 남기며 형이 독립한 일도 이제 3년이 됩니다.

상처의 근원은 제가 젖을 떼기도 전부터 시작된 형과 아빠와의 불화입니다.

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이고 어떻게 풀 수 없는 문제였습니다.

그 둘의 싸움에 있어, 저는 제3자니까요.

10년의 터울이면, 형이 아니라 또 하나의 아빠입니다.

형은 썩 행복한 인생을 산 것 같지는 않습니다.

군대 최전방을 가고 4수하고 대학교를 두 번 옮기고 원하지 않는 과에서 겉돌고...

아빠의 분노에 찬 변론을 빼더라도, 그 중 상당 부분은 아빠의 강요가 주요한 원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형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더군요.

형이 DD대에 들어갔을 때, 아빠의 핸드폰에 저장된 형 번호의 이름이 "엄준식"에서 "DD대 엄준식" 으로 바뀌었다고. (가명)

아빠는 그런 사람이야. 그 말을 읊조리는 형의 말투엔 닳디닳은 체념이 묻어 있었습니다.


저는 돌이켜보면, 행복한 인생을 산 것 같습니다.

영재교육을 시킨 제가 과고를 떨어지고 일반고에서 그저그런 성적표를 받았을 때도 아빠는 혼내시지 않으셨거든요.

적어도 트라우마로 남을 일은 없었습니다. 제가 놀랐던 게 가족여행을 갔을 때 아빠가 큼지막한 나무가지를 찾아서 "말 안 들으면 이걸로 혼을 낸다!" 하며 장난기로 말하셨던 적이 있었는데, 저는 그게 체호프의 총처럼 한 번은 쓰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 나무는 사라졌고, 그 말은 가져왔을 때부터 상당한 시간 동안 그 나무가 한 번도 쓰이지 않아서 잊혀졌다는 뜻입니다.

엄마도 항상 저에게 응원과 격려를 보내 주셨던 기억이 많습니다. 제가 아무리 무감각해도 그게 사랑이라는 건 압니다. 받은 것만큼 되돌려 주지 못해 항상 미안합니다.

그런데 왜 아빠는 형에게는 그렇게 엄격하시면서 나에게는 관대하실까...?

뇌리에 자리했던 이 커다란 질문을 물어볼 때마다 아빠는 "형은 장남이라서 엄격하게 대했다" "형을 키우면서 경험이 쌓여서 너를 키울 땐 다르게 대했다" 라고 했지만...

제 생각엔 그것보다 더 큰 이유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해결되지 않는 의문들을 뒤로 한 채로 저는 평균 3등급의 수능 성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됩니다.



# 나의 삶.


그리고 저는 형의 권유로 고용노동부에서 진행하는 IT 국비지원 교육을 참여하게 됩니다.

거기서 자바를 배웠습니다.

public class HelloWorld {                                //HelloWorld라는 public한 class 안이다.
    public static void main(String[] args) {                //프로그램이 실행하는 메인 메소드이다.
        System.out.println("HelloWorld");                //HelloWorld라는 글자를 프린트한다.
    }
}

으하하하! 그때 적었던 메모입니다. 지금 글 쓰려고 자바 코드 다시 꺼내 보니까 너무너무 하찮고 또 재미있네요. 왜 재미있는진 모르겠지만;;;

하튼 배우면서 느낀 것은, "프로그래밍이 너무 재미있다"

사실 돈을 받고 프로그래밍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주고 프로그래밍을 해도 괜찮지 않나 할 정도로 재미있었습니다.

이때의 제 주요한 고민은 "내가 이것을 직업으로 삼아야 하나" 였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진짜로 재미있는 것이 아니라 고3 생활에서 해방되고 처음 본 것이기 때문에 재미있는 것일 수도 있고,

아직 기초 과정이라 쉬워서 재미있는 것일 수도 있었습니다. 나중에 어려워지면 포기하지 않을까 하고요.

하지만 6개월 동안 과정을 진행하고 프로젝트까지 진행한 후 "이걸 내 직업으로 삼아야겠다" 라고 마음을 먹게 됩니다.

그리고 학원을 졸업하고 취직장소를 알아보는데, 그때 형이 개발자 한 분을 소개시켜 줍니다.

그 개발자분의 조언으로 한 코딩 부트캠프를 들어가게 됩니다.

부트캠프에서 코딩하는 건 학원에서 코딩하는 것과 달랐습니다. 학원에서는 강사님이 아시는 것 이상으로 알 수가 없었는데, 이곳에선 주변 사람들과 함께 코드 리뷰를 하고, 페어 프로그래밍을 하고, 프로젝트를 하니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코딩을 했습니다.

부트캠프에서 어찌어찌 하다 보니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게 되고, 그 부트캠프에 인턴 형식으로 취직을 하게 됩니다.

한두 달 후엔 계약기간이 끝나고, 진짜 취업을 하게 됩니다. 이력서를 넣고 포트폴리오를 작성하고 취업할 곳을 알아봐야 합니다.



자, 이제 아빠가 제시한 두 가지 선택지로 돌아올 시간입니다.

아빠가 재수를 하라고 닦달하지 않고 기다린 이유?

제가 프로그래밍을 하면서 너무 재미있어해서, 아빠도 흡족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냥 대학을 가면 뭐 할지도 모르면서 시간을 낭비하게 되는데, 제가 좋아하는 것을 찾게 되면서 대학에 가도 성장할 수 있는 비전과 방향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 5월, 코로나 사태로 수능이 12월로 미뤄지게 됩니다. 또한 고3 개학도 13일로 미뤄지게 됩니다.

이에 부모님의 생각, 이것은 기회다. 재수생에게 최고의 어드밴티지다.

즉 첫 번째 선택은, 이 인턴 기간이 끝나자마자 기숙학원에 들어가서 반수를 하고 대학에 가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얻게 될 이점은 대학이고,

제가 포기해야 하는 것은 1년 3개월의 공부와 취업 기회입니다.

아빠는 너가 취직해서 사회로 나가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시선이 분산될 텐데,

그러면 수능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고 대학이 점점 멀어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공부하기 힘들어진다는 말을 하시면서요.

그러니 대학을 간다면 이번 년도밖에 기회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선택은, 취업을 하고 고졸로 커리어를 쌓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얻게 될 이점은 프로그래머로서의 성장이고,

포기해야 할 것은 부모님의 지원 (즉 독립) 과 가정입니다.

왜 가정을 포기해야 하나구요?

프로그래밍(정확히는 웹 개발)을 배우면서 저는 제 자신에 대한 믿음을 되찾았습니다.

제가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고 제 힘으로 주변의 칭찬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은 제 자존감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정에서도 좀 더 사람 구실을 하게 되었습니다. 엄마의 집안일을 도와주고 ( 이렇게 말하면 이전엔 안 도와주었다는 이야기인가? 할 수 있는데, 고등학교때 저는 쓰레기였습니다. 쓰레기가 사람 구실을 하면 더 눈에 띄이는 법이죠 ) 방 청소를 하고 쓰레기를 버리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빠의 말을 경청하고 긍정적 피드백 (동의한다는 손짓, 등...) 을 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엄마의 말대로라면 저는 가정의 구심이 된 것 같습니다.

제가 없으면 엄마와 아빠는 같이 살 이유가 없습니다.

따라서 제가 이 선택을 하면 가정을 파괴하는 것이 됩니다. 또한 불효자가 되겠죠.


저는, 지금 결정을 내린 상태입니다.




# 아빠의 삶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아빠의 인생이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빠는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내가 살아오면서 보았던 아빠의 선택들. 행동들.

그 이유를 찾고 싶었기도 했고,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낳은 사람이 아빠인데 정작 아빠의 인생에 큰 관심을 가지고 살아온 것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엄마의 인생도 궁금했습니다.


아빠는 고아 장남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빠는 삼수 끝에 GG대에 입학하게 됩니다.

미술을 전공하던 엄마를 만난 후, 아빠는 독일로 유학을 가게 됩니다.

엄마는 아빠 뒷바라지를 하기 위해 본인의 꿈이었던 미술을 포기합니다.

아빠는 독일에서 박사 학위를 따고 돌아와 교수가 됩니다.


이 정도가 고등학교 때 제가 아는 아빠의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이 과거에 맞춰 저는 아빠를 해석했습니다.

아빠는 아주 큰 시련을 딛고 피나는 눈물으로 교수가 되셨다
그러다 보니 자신은 노력해서 GG대에 합격했는데 자기보다 좋은 조건을 가졌으면서 성에 안 차는 대학에 합격한 형이 언짢아 보일 수 있을 것 같다.


이 해석은 문제가 있었고, 저는 이 해석을 내면화한 결과
아빠의 말이 전부 비슷한 레퍼토리로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제 맘대로 아빠를 평면화시키고 저울질한 것 같습니다. 정작 아빠의 말은 듣지도 않으면서요.


어느 날, 저는 아빠를 해석하기를 그만뒀습니다.
아마 형의 고통에 공감하는 시도를 그만둔 때였을 것입니다.

미안해요 형.
저는 형만큼 아빠한테 엄격하게 대해지지 않았어요.
전 아빠 그대로를 받아들일 거에요.

그래서 왜 미안해?

형이 겪었던 고통들을 공감해 줄 수 없어서요.

그런 고통은 원래 남과 나눌 수 없는 거야.

걱정했던 것과 달리 짧은 대화였습니다. 저는 형에게 하고 싶은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아빠의 말을 들으려고 했습니다.

아빠와 엄마의 행복했던 기억들 그리고 추억들이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그 때 아빠는 어땠어요. 그 때 엄마는 어땠어요.

이전에 말해주지 않았던 밝은 기억들이 부모님의 언어로 쏟아졌습니다.

대학 잔디밭에 앉아서 얘기하던 기억. 그날의 따뜻함. 기분좋은 나른함.

낯선 독일 생활. 그곳에서 아이를 키우며 의지했던 둘. 일상에서 가끔씩 나누던 개인적인 감정들이.

이것을 형이 경험하지 못했구나. 따뜻함을 형은 경험하지 못했구나. 형의 인생엔 차가움이 가득했구나.

전 누구도 원망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빠가 그런 선택을 준 이유.

아빠가 그런 선택을 한 이유.

아빠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

그것을 좀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아빠가 간 고등학교에서 공부 잘하는 애들은 다 은행에 취직하는 것이 정상적인 루트였습니다.

그런데 아빠는 공부를 계속 하고 싶었고 대학에 가고 싶었다고 합니다.


아빠에겐 두 가지 선택이 주어졌습니다.

하나는 은행에 가는 것입니다.

아빠는 장남이었고 아빠 밑으론 3명의 동생들이 있습니다.

아빠가 취직해서 돈을 벌지 않으면 동생들은 누가 먹여 살립니까?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그리고 쉽사리 할 수 없는 희생입니다.

또 하나는 대학에 가는 것입니다.

미친 짓입니다.

여기는 상고고 누가 여기서 재수해서 대학에 갈 생각을 합니까?

자기보다 어린 동생들을 보고 알아서 살라고 하란 말입니까?

게다가 좋은 대학에 갈 것이란 보장은 또 어딨습니까?

그런 선택을 했다간 선생님들도 다 야유합니다. 미친 놈이라고.



그런데 아빠의 고등학교엔 수학? 영어?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그 선생님이 아빠의 인생을 바꾼 말을 해주게 됩니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네 꿈을 포기하지 마라"


그리고 아빠는 선택을 했고, 그것으로 얻은 것과 희생한 것이 있습니다.

아빠는 이기적인 사람일까요?

희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가 어떻게 감히 판단하겠습니까.

아빠가 그런 선택을 하신 덕에 제가 삼시세끼 굶을 걱정 없이, 새벽 1시 30분에 방을 빼라고 난리치는 집주인이 나타날 걱정 없이 지낼 수 있는 건데요.

아빠의 메시지는 자명합니다.

고졸로 계속 돈을 벌면서 형의 빚을 갚는 삶을 살지 마라는 거죠.



# 나의 삶


어릴 때 저는 오랜 시간 동안 바다를 바라보면서

바닷소리와 파도결의 패턴을 찾아보려고 했습니다.

있을 듯 하면서 결국엔 없었습니다.

인간의 마음도 아마 그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깊은 바다 안에 내가 내면화한 생각들이 쌓이고

그 감정들은 가끔씩 분출해서 제 추한 면을 드러냅니다.



노랫말처럼,

지금이 아닌 누군가, 여기가 아닌 어딘가, 나를 받아줄 사람이 있을까요.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저 자신도 저를 잘 모르는데

남의 마음을 손바닥 뒤집듯 볼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모순이겠죠.

저 또한 아빠의 마음을, 엄마의 마음을, 형의 마음을 다 알지 못합니다.


다만 제가 오직 아는 것은

지금의 순간에 제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이냐는 겁니다.

그리고 후회하지 않을 만한 선택이면 좋겠습니다.

정말 제 마음에서 우러나온 선택이요.

"너가 너를 믿기 때문에 이런 결정을 할 수 있었던 거야. 설령 틀렸더라도, 이건 큰 발전이야"

라고 말할 수 있는 선택이요.


그러나 저는 압니다. 저는 후회할 겁니다.

20살 인생, 독립도 처음 해봅니다. 취업한 직장에서도 원하는 만큼 즐겁지 않고, 원하는 만큼 결과를 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무시받고 가치를 짓밟힐 수도 있습니다. 그 말들에 상처를 입지 않을 정도로 저는 강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 형은 저를 이끌어준 사람이고 저를 정말 사랑하지만, 형의 빚이 저희 관계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면 훨씬 안 좋은 결과로 귀결될 것입니다.

이 선택을 함으로써 저에게 많은 힘든 일들이 닥쳐올 때마다, 저는 이 선택을 한 것을 후회할 겁니다.

그래도 지금의 저는 제가 즐거운 것을 계속하고 싶고,

그러니 후회할 만한 방황이라고 생각합니다.






뭐 그래도... 20살이면, 방황하기 늦은 나이는 아니잖아요!
설령 진짜 불운이 연속으로 터져서 망해도 2~3년 정도는 여유가 있는 나이에요. 시간이 있다구요. (이렇게 생각하다 인생 망한 사람 많음)
인생 뭐 있어 즐겨!
아 새벽에 갑자기 뽕이 터져서 글을 몇 자를 써제낀 거야? 저번에 그랬듯이 생각 없이 글쓰기 버튼을 누릅니다. 여러분 안녕히 주무시고 올해 잘 지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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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uralist
20/05/07 02:21
수정 아이콘
누군가의 가정사에 어떤 말을 하는 것도 두렵습니다만 힘내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선택은 그르지 않습니다.
딱총새우
20/05/07 02:22
수정 아이콘
잘읽었습니다. 아름다운 글이네요. 글쓴이 맘을 잘 지키면서 가족들과 행복해지시길 바랄게요.
20/05/07 02:31
수정 아이콘
화이팅입니다.
잘 모르는 사람의 인생을 내 기준에서 판단하여 평가내리기는 쉽지만
그 사람에 대해 알면 알수록 평가를 내리기가 힘들어지죠...
글쓴이 님도 남들이 뭐라하던 자신만을 위한 삶을 위한 결정을 내리고 살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결론적으로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남을 위하는 길이 될것이라 믿습니다..
유리한
20/05/07 02:41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고졸 개발자로서 (정확히는 전역후 복학을 안한거지만) 쓸데없는 첨언을 하나 드리자면..
방통대라도 다니세요 흐흐
학벌은 솔직히 크게 필요는 없는데 학력이 발목 잡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연봉에서 불이익을 받는다던지 지원자격이 안되서 원서를 못낸다던지..
하다못해 해외취업하려고 해도 졸업장 없는게 걸림돌이 되기도 하거든요.
근데 그게 귀찮긴 해서.. 저도 방통대 편입 10년만에 학사를 땄어요 흐흐
펠릭스30세(무직)
20/05/07 02:42
수정 아이콘
우와 대단한 글이다! 라고 읽다가... 아 잠만 스무살? 스무살? 아놔. 좀 놔봐봐. 야 나 말리지마!

이 사이트에서 20대의 고민은 사실 어느정도는 웃음거리로 치부됩니다. 그 이유는 다들 그 삶을 살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 그게 의외로 별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대학의 문제조차. 저는 30살까지 인간쓰레기로 살았지만 지금은 나름 1인분을 하며 소년(뭐래 이 미친놈이)가장으로서 부모님을 부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 누님과 자형은 전문대 출신인데 저보다 더 경제적으로 잘 살고 있지요.

진짜 후회할만한 방황입니다. 생각보다 인생은 길고 의외로 기회는 있는 법이니까요.

물론 기회가 있다는 거지 결과가 있다는건 아니긴 하지만. 그럼에도 도전 할 가치는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짧은 식견으로 첨언하자면 힘들게 한 방황은 어떤 형태로던지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게임과는 다르게 인간에게서 경험치라는 존재는 진짜 강려크한 스탯이거든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인간을 망치는건 힘들지 않은 방황인 것 같습니다. 저는 항상 두려웠던게 제가 지금 어리버리한 게 아니라 나중에 나이들고 어리버리 한 거 였습니다. 지금도 가장 무서운건 이 나이를 먹고 어리버리 한 것이구요. 인생 헛살았어..... 그래서 전 방황은 좋다고 생각합니다.

화이팅.
-안군-
20/05/07 03:16
수정 아이콘
20년차 개발자입니다(...) 글쓴님이 살아오신 날 만큼 개발을 했군요;;;
뭐 글쓴님의 결정에 대해서 왈가왈부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저 역시 중학교때 처음으로 16비트 컴퓨터로 게임을 만들어봤고, 수없이 많은 게임의 바이트코드를 까뒤집으면서 희열을 느끼던 풋사과가 40넘어 배불뚝이 개발자가 되기까지의 삶에 전혀 후회는 없습니다. 크게 성공하지도, 그렇다고 폭삭 망하지도 않았지만, 저도 제 나름대로 이 일에 자부심을 느끼며 살고 있거든요.

딱 하나 꼰대질(?)을 하자면, 기왕에 개발자의 길을 가시게 되셨다면 절대로 배움을 멈추지 마세요. 자고 일어나면 뭔가 새로운게 튀어나와 있는게 이 바닥입니다. 5년, 10년 지나면 우리나라 커뮤니티에선 더 이상 뭔가 얻을 수가 없고, stackoverflow와 github를 뒤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겁니다. 글로벌 시대고, 우리 상대는 옆 회사의 개발자가 아니라 실리콘밸리의 미친XX들이에요. 그런 마인드를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D
피터 파커
20/05/07 07:16
수정 아이콘
딴 일 하다 개발자가 된지 5년 되었군요. 저도 제 제 직업 참 좋아합니다. 재밌어요 하핫 다만 너무 늦게 시작한 탓에 조금 일찍 시작했으면 어땠을까 했는데, 초스피드로 빨리 시작하시는 분이 계시는 군요. 어차피 필요한 것이 있으면 그 때 해도 늦지 않습니다. 하시고 싶으신 것 하세요. 응원합니다!!
회전목마
20/05/07 07:43
수정 아이콘
20살에 이런생각을 정리할수 있다니 대단하십니다
코딩은 잘 모르지만 글쓴분은 어딜가더라도 통하실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superiordd
20/05/07 07:56
수정 아이콘
입시 성적을 소위 서울 주요대, 지거국에 합격할 수준이시면(정시든, 수시든) 대학 도전을 권하고 싶습니다. 대학을 입학하는 게 도움은 됩니다. 나중에 중퇴해서 그만두더라도요. 그리고 어떤 분이 말씀해주셨듯, 방통대 등 학사 학위는 가지고 있는 편 없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간혹 학사 이상이라는 자격 조건에 걸림돌이 될 수 있거든요.
20/05/07 08:31
수정 아이콘
좀 먹먹하기도 하고 제가 글쓴이님 나이에...를 비교하게 되네요. 크크. 곧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인데...선택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큰 의미는 없다고 생각해요. 첫째는 뭘 선택해도 내맘대로 흘러가지를 않기 때문이고 둘째는 그렇기 때문에 파도처럼 밀려드는 현실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것이 쌓여서 어떤 결과물이 만들어지는데 이것은 선택 이후의 것들이거든요. 그 선택이 탁월했냐 그렇지 않았느냐는 나의 노력과 운에 달려 있고 결과론적 해석이라 생각합니다. 어떤 선택이든 후회가 있고 납득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대학을 가셔도 결국 프로그래머로 가실 수도 있고, 프로그래밍을 하다가 대학을 가실 수도 있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 서 있을 수 있습니다. 어느쪽을 결정했든 뒤돌아 보지 마시고 지금 하루하루를 성실히 채워나가시기를 바래요. 그리고 형님께도...평안함이 깃들길 바래봅니다. 좋은 글 감사하고 거친 세상 함께 잘 살아보아요.
비밀의문
20/05/07 08:55
수정 아이콘
중간정도쯤 읽다가 이건 추천을 눌러야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습니다.
응원합니다. 저 역시도 20대에 숱한 방황을 하다가 30대에 겨우 제 자리로 돌아온 경우라
많이 응원 하고 싶습니다.
아웅이
20/05/07 09:06
수정 아이콘
나이 불문 재력 불문하고 학력이나 학벌 컴플렉스를 가진경우를 꽤 많이봤어요.
초중고 동안 쌓아온게 있으시다면 일단 대학 문을 열어보는게 어떤가 합니다.
어떤 선택이건 후회 없으시길 바랍니다.
20/05/07 09:32
수정 아이콘
후회는 선택에 하는게 아니라 과정에 하는것이라고 하더라구요.

어떤 순간이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은 충분히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20살이라는 젊은 나이라면 더 마다할 것도 없구요. 물론 좋아하는 일이라도 힘들어지는 순간이 있겠지만 그것도 충분히 고민하고 이겨내시길 바랍니다.
이웃집개발자
20/05/07 11:00
수정 아이콘
응원합니다.
붕어가시
20/05/07 12:06
수정 아이콘
글 잘 읽었습니다. 일단 대학을 잘 골라 가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응원합니다.
20/05/07 13:16
수정 아이콘
형의 빚을 갚는다는 게 뭔지..
암튼 빠른 취직이 갑이에요
조미운
20/05/07 13:48
수정 아이콘
일단 많은 고민을 하고 한발자국 더 나아가는걸 응원합니다.

그 이외에 현직 개발자로서, 빠르게 현업으로 뛰어드는것(=고졸 개발자)과 대학교로 진학하는것 사이의 결정에 대해 제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결론적으로는 진학을 추천 드립니다. 개발을 업으로 삼겠다면 앞으로 몇십년동안 이 일을 하시게 될꺼에요. 몇년 더 빨리 현업에 뛰어드는건 큰 의미가 없습니다. 취직을 한다면 부트캠프에서 느끼셨던것처럼 더 실용적인 뭔가를 만드는 경험을 하실 수 있을꺼에요. 하지만 결국 전문인으로서 깊이를 가지기 위해 가져야할 지식들은 학위를 취득하면서 배우는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니 대학교 진학은 자율적으로 재밌는것(=컴퓨터 공부)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것이라고 볼 수도 있죠.

개발자는 넘쳐 납니다. 고졸 개발자라고 한계가 있지는 않습니다. 단 충분한 깊이를 위해서는 고졸 개발자든 정규 과정을 거친 개발자든 비슷한 지식을 습득해야 하고, 포괄적인 습득의 질과 양에 있어서 정규 과정(=대학교 진학)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당장 돈을 벌어야할 필요성이 있는게 아니라면, 대학생이라는 시간을 특권처럼 누리고 향후 개발자 커리어의 폭을 넓게 가져갈 수 있는 기회로 가지시길 추천드립니다. 전공(=컴퓨터)과 관련된 배움을 차치하고서도, 대학생이라는게 참 좋기도 하구요.
OilStone
20/05/07 14:02
수정 아이콘
(수정됨)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이미 오래 전 아재의 반열에 들어섰는데, 제 20대에 글쓴이만큼 치열하게 고민하고 방황했었나 돌이켜 보게 됩니다.

어느 덧 남들은 대부분 부럽다고 할 만한 직장과 삶을 영위하게 되었지만, 나이를 점점 먹어 갈수록 스스로 만족하고 있고 행복한가?라는 질문을 계속 되뇌이게 됩니다.

이런 고민의 근원은 내가 진정으로 뭘 원하는지 내 인생에 뭐가 중요한 가치인지 깊이 사색하지 못한채 남들이 좋다고 하는 길을 좆아오면서, 그 안에서 같은 길을 걷는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성과를 내고 성취한 것을 가지고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고 나름 적성에 맞다고 착각하며 자위해 왔기 때문일 겁니다. 20대에 했어야 하는 고민을 30 후반에 와서 하고 있지요.

뭐 어찌되었든 글쓴이의 선택에 "일해라절해라"하고 싶지는 않고, 응원합니다. 성인인 이상 자신의 결정에 책임지면 되는 거니까 타인의 선택은 언제나 존중하려고 하고, 다만 의사결정에 있어서 그 누구든 여러 사람들에게 고민을 공유하고 조언을 들은 뒤 종합해서 스스로 결정하셨다면 그에 대해 후회가 없으리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저는 고민을 타인과 공유하지 않았고, 멘토가 될 수도 있었던 주변 많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아는 것이 전부고 내 생각대로 하면 된다는 오만과, 더 많은 정보를 모으고 여러 의견을 들어보려고 노력하지 않았던 과거를 후회합니다. 도움을 줄 수 있고, 참고할 만한 관점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주변의 어른들뿐만 아니더라도 친구들, 비슷한 길을 가고 고민했던 인생선배들, 여기 댓글 주시는 분들이나 관련 도서들 심지어 유튜브 영상도 있겠네요.
자루스
20/05/07 22:27
수정 아이콘
그런데 왜 아빠는 형에게는 그렇게 엄격하시면서 나에게는 관대하실까...?
뇌리에 자리했던 이 커다란 질문을 물어볼 때마다 아빠는 "형은 장남이라서 엄격하게 대했다" "형을 키우면서 경험이 쌓여서 너를 키울 땐 다르게 대했다" 라고 했지만...

키워보니까 알겠더라구요.....이 부분은 너무 마음에 콕 박히네요...
그리고 그 말속에 정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고 싶은것 하세요. 반대로 후회가 적을것 같은것을 하세요. 어차피 둘다 댓가가 있다면 그것이 적은 쪽으로 가세요.
둘다 할 수 있다면 둘다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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