넵. 제 이야기입니다.

  퇴근하고 걸어가다 작은 횡단보도에서 길을 건너는데, 반대편에서 헤드라이트 불빛이 보였습니다. 고개를 돌려 보니 비보호 좌회전을 받아서 오는 차가 저를 향해 돌진하고 있네요. 평소에는 '그깟 자동차 사고쯤, 폴짝 뛰어서 피하면 되지'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그런 상황이 되자 마치 달려오는 차 쳐다보는 고라니처럼 몸이 굳어버리더라고요. 몸은 움직이지 않는데 머리 속에 온갖 생각들만 마구잡이로 떠올랐습니다.

  '저 차는 왜 나한테 달려오지?'
  '앞을 안 보고 있나? 내가 안 보이나?'
  '속도를 안 줄이네? 저러면 안 되는데?'
  '멈추겠지? 설마 그대로 부딪히진 않겠지?'
  '어? 진짜 사고나는 거야?'

  그리고 쿵.

  몇 바퀴 데굴데굴 굴러가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더군요. 잠시 후 간신히 정신을 차려 보니 사람들이 저를 둘러싸고 구경하고 있더라고요. 아스팔트 바닥에 누워 있는데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아. 머리는 안 아프네. 크게 안 다쳤나보다.' 그 다음은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나. 민망하게...'였습니다. 억지로 상체를 세워 보니 죽을 만큼 아프지는 않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119 구급차에 실려 바로 옆에 있던 병원 응급실로 향했습니다. 그러니까 대략 100미터쯤 떨어진 병원으로요. 무릎이 아프다고 하니 엑스레이를 찍습니다. 온갖 자세를 취해 가며 다리만 열 몇 장이나 찍더라고요. 그런 후 다시 응급실로 내려와 상처를 소독했습니다. 우와. 저는 세상에서 가장 아픈 게 무릎팍 까지는 것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까진 무릎팍을 알콜로 소독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아프더라고요. 아무튼 그렇게 양쪽 다리 상처를 치료하자 경찰 아저씨가 와서 소곤거리며 알려주었습니다.

  "운전자가 음주는 아니더라고요. 방금 전에 측정했습니다."

  원래 그런 걸 알려주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얌전히 알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잠시 후 당직 의사분이 와서 부러진 데는 없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디 부러진 데도 없는데 응급실에 누워 있으니 몹시 쪽팔린다....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고낸 차주분이 하도 부산스럽기에 그냥 보험사에서 잘 처리해 줄 거니까 걱정 안하셔도 된다고 알려준 후, 낑낑거리며 원무과로 갔습니다. 대인접수 번호 받아서 처리하고 다음날 진료 예약 잡고 차주분이 잡아준 택시 타고 집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와이프에게 떠벌렸죠. 당신 아침에 나쁜 꿈 꿨다고 하더니 딱 맞았다. 액땜한 거다. 정말 대단하다 하고요. 헛소리하는 걸 보니 괜찮은 것 같다는 와이프의 진단을 받은 후 푹 자고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출근도 했어요.

  사고난 다음날에 몸이 본격적으로 아프다더니, 그게 진짜인 줄 몰랐습니다.

  지금 앉아 있는데 목부터 어깨 등 허리 엉덩이까지 죄다 쑤십니다. 밤 사이에 누군가가 저를 두들겨패고 갔나 싶을 정도로 욱신거리네요. 어디 크게 다친 데는 없는 것 같은데 온몸이 뻐근해서 빨리 못 걷겠습니다. 아무래도 병원을 가 보긴 해야겠어요.

  오후 두 시 병원 예약인데 이제 곧 출발해야겠습니다. 다들 차 조심하세요~


ps. 깜빡 잊었네요. 얼른 나으라고 응원해주신 분들, 얼른 병원 가라고 독촉해 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