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산부인과에서 임신전 검사를 했던 것을 쓴 글입니다. 반말체는 양해 부탁드려요.
그 날이 밝았다. 오지 않았으면 했지만 오고 말았다. 이제 병원에 가서 내가 정상적인 ‘남자’인지 인증을 받아야 한다. 결혼, 취업을 하고 ‘표준 한국인 인생설계’에 따라 이제 아이를 갖기로 했다. 하지만 둘 다 나이가 있어서인지 생각보다 잘 생기진 않았다. 어릴 적에는 순수한 문학소년으로만 살았어서 성교육을 제대로 못 받은 것이 원인인가 하여 ‘구성애의 아우성’을 인터넷에서 여러 번 집중해서 봤는데도 영 신통치 않았다. 그래서 민간요법을 하기 보다는 현대의학에게 물어보기로 한 것이다.
아내는 산부인과에 며칠을 꼬박 고생하며 다녀야 했다. 이것저것해서 피곤하기도 하고 몸이 아프기도 한 모양이었다. 이에 반해서 나는 하루만 가면 되었다. 다만 문제는 있었다. 병원에 가서 인위적으로 정자를 뽑아내야한다는 것이었다. 그랬다. 서른여섯 먹고 병원에서 자위행위를 해야 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기독교 교육을 받고 자라서인지 ‘행위’를 생각하면 죄책감이 든다. ‘오른손을 찍어버려라’ 이런 비슷한 구절도 있고 아무튼 뭐 그렇다. 흑흑. 이걸 사회상규에 어긋나지 않고 합법적으로 하라니 좋아해야 하는 건지 슬퍼해야 하는 건지.
검사 날 아침이 되자 부리나케 청소를 시작했다. 설거지를 하고 다림질도 했다. 얼마나 가기싫었는지 집안일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 없었다. 그래도 11시까지는 가야했기에 나가기는 해야했다.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자 누워 있던 아내가 말했다.
“잘 다녀와. 올 때 참치야채죽과 마이쮸도 사오고, 게토레이도...”
“......너무 서둘러 하면 아프겠지? 상처 나서 피 날지도 몰라.”
“로션이라도 줄까? 느낌이 괜찮대...”
울면서 집에서 뛰어 나갔다.
느릿느릿 규정속도를 준수하는 안전운전을 해서 병원으로 갔다. 산부인과에는 여자들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들어갔다. 예상보다 훨씬 더 많았다. 괜히 혼자 왔나 싶었다. 남자가 혼자 들어오길래 다들 쳐다보나 싶었지만, 별로 볼게 없었는지 고개를 다들 돌리셨다. 나도 이해한다.
간호사님께 아무개 환자의 남편이라고 하니 정자검사하러 오셨냐고 해서 그렇다고 했다. 처음에는 소변검사를 시켜서 받아왔다. 그랬더니 따로 컵을 주며 따라오라고 했다. 운명의 그 시간이 온 것이다. 어린 시절 치과에 들어갔던 것보다 더 떨렸다. 복도가 구불구불 길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차분하면 안됐다. 이글이글 정욕이 넘쳐야 했다. 그렇지만 점차 더 침착해져갔다. 온 몸이 그랬다.
장소는 골방이었다. 다행인 것은 ‘수음실’이나 ‘정자채취방’ 같은 이름이 아닌 ‘IVF 부속실’ 이라는 건조한 명칭이 붙어 있었다. 어디서 주워 읽기론 충격적인 사건을 지칭할 때는 외래어나 학술용어로 심리적 거리를 두어 충격을 완화 한다고 했다. 더 긴장이 되었다. 들어가 보니 장소 배치는 더 적나라했다. 정면에는 컴퓨터 한 대, 옆에는 티슈, 의자, 그리고 뒤쪽에는 소파가 있었다. 간호사님은 컵을 가리키며 ‘여기에 받아주세요’ 하고 나가셨다. 그리고 한 말씀 더 하셨다,
“문은 잠가주세요.”
으흑흑흑....
넋을 놓고 있다가 다시 정신을 불러들여서 주변을 살폈다. 일단 컴퓨터 앞에는 앉았다. 아직 바지를 내리지는 않았다. 모니터에는 일본영상, 미국영상, 한국영상, 세 폴더가 있었다. ‘직박구리’ 같은 비겁한 폴더명이 아니라 당당히 원산지를 밝히고 있었다. 미국폴더 안에는 라틴영상도 있었다. 미국 내 히스패닉계 인구 증가를 반영한 것일까.
머릿속에는 인간 실존의 딜레마가 떠올랐다. 내가 흥분하지 못하고 검사시료 채취에 실패한다면 인간 남성으로서 자격 미달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흥분해서 무사히 검사에 필요한 충분한 양을 플라스틱 컵에 담는다면 내 인격 존엄성에 심대한 타격을 입을 것 같았다. 서른 즈음에 군대 끌려가서 이등병으로 새벽 두시 고라니가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며 초병을 설 때보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고민이 더 들었다.
생각할 시간은 사실 없었다. 부속실은 하나였다. 뒤에서 어떤 가련한 남정네가 순서를 기다리고 있을지 몰랐다. 그는 여자들 사이에서 점점 더 초조하게 식어가고 있을 것이다. 내가 늦을수록 그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었다. 그래도 너무 빨리 나갈 수는 없었다. 바로 나가면 저 짐승이라는 소리를 들을까봐서였다.
일단 모니터에는 제3세계 것을 틀어놓았다. 이건 본 적이 없어서 궁금해서 였다. 어디서 구해왔을까. 바지는 내렸지만 속옷은 차마 그럴 수 없었다. 그 사이로 에어컨 바람이 들어와 시원했다. 기미가 보일 때면 바람이 들어와 차분히 그곳을 진정시켜 주었다. 이러면 안됐다. 머릿속에는 온갖 실존적 물음과 사유가, 눈앞에는 라틴의 정열이, 하의는 실종도 아닌 묘한 위치에, 손은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여기 손이 있으면 안 되는데. 머리카락은 몇 개 있지도 않은데.
그냥 일어나서 벽을 보았다. 그게 차라리 나았다. 그 순간 보았다. 휴지통 안에 있는 서글픈 몇 장의 티슈들이 있었다. 내가 떠들고 마시고 놀고 있을 동안, 누군가 이 곳에서 초라하게 유사생식을 하고 있었겠구나. 순간 위로가 되었다. 나는 마음으로 외쳤다. ‘티슈의 주인들아 나에게 힘을줘!!!’
‘색즉시공 공즉시색...’
‘옴마니 반메홈...’
‘힘세고 강한 남자....’
‘너희 중 잘못이 없는 자만 내게 돌을 던져라...’
정자는 마침내 세상구경을 할 수 있었다. 눈에는 무언가 흘렀다. 땀일까 눈물일까. 플라스틱 컵에 소중히 담았다. 병원에서는 종이컵을 하나 겹칠 수 있게 해주어서 최소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켜주었다. 검사실에 내 염색체들을 내고 좀비처럼 걸어 나왔다. 차에 시동을 걸고 난 누군가 여긴 어딘가를 읊조리며 가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그냥 가시면 어떡해요. 결제도 하시고 상담도 받아야 하는데...”
아 그랬구나. 나는 그냥 튄 거구나. 신고는 안 당해서 다행이었다. 검사를 하고 경찰서로 가게 되면 정말 울어버릴 것 같았다. 다시 병원에 갔다. 간호사님을 보고 ‘제가 내상을 크게 입어서...’ 하고 변명했다. 그 분들은 다들 웃으며 그러시는 분들 많다고 하셨다. 다행이었다. 나는 그저 무난한 사람이었다.
선생님께 설명을 듣고 집에 왔다. 검사결과는 오후 1시나 되어야 나온다고 했다. 시무룩하게 벽을 보며 등을 구부려 누워있자 아내가 토닥여 주었다.
“남편, 충격이 컸어?”
“내가 그간 생각 했던 것과 말했던 거를 모두 부정하는 느낌이었어.”
“눈이 너무 슬퍼 보여.”
“자괴감이 들고 괴로워.”
차마 다른 곳이 더 슬프고 아프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1시에 전화가 왔다. 할아버지 의사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선생님은 정자왕이시네요.”
그 말은 내가 살면서 들었던 어떤 말보다 따뜻했다. 상처받은 마음에 대한 위로는 이렇게 해야 하는구나. 입가에는 은은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래도 앞으로는 있는척하지 말아야겠다. 나도 한 마리 짐승에 불과하다는 걸 알게 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