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을 위해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는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또다시 몇십 가닥의 머리카락을 잃었다. 아무리 조심스레 두피를 어루만져도 머리카락이 뽑혀나가는 것을 막을 길은 없다. 나날이 줄어드는 머리숱은 되돌릴 수 없는 엔트로피의 법칙을 말없이 웅변한다. 오늘도 하수구를 타고 내려가는 머리카락이 나는 슬프고 허탈하다. 문득 시리도록 아련한 가슴을 부여잡고 나는 오늘도 샤워기 아래에서 눈물을 흘린다. 머리카락. 내 머리카락.
어렸을 때부터 나는 나의 운명을 직감했다. 추석 차례상 앞에 일렬로 늘어서서 절하는 친척 어른들의 뒤통수는 하나같이 듬성했다. 아버지의 친구는 아버지를 가리켜 대통령의 기상이 있다고 칭찬했다. 그것이 전두환의 헤어스타일을 말하는 것임을 알아채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내가 막 십대로 접어들었을 무렵에 이미 아버지는 가르마를 포기했다. 남들보다 세수해야 할 면적이 넓었기에 아버지는 아침마다 화장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큰 제국을 건설한 징기즈칸의 후예에게 남은 것이 얼마 되지 않는 척박한 땅뿐인 것처럼, 한때나마 남들만큼은 숱이 있었던 내게 남은 것이라고는 한 줌조차 되지 않는 머리카락뿐임을 나는 항시 아파한다. 머리카락의 소실은 자존감을 박탈한다. 그렇기에 탈모는 곧 고통이다. 불타가 고해에서 벗어나고자 스스로의 몸을 고행으로 내던진 것처럼 사람들은 탈모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친다. 어떤 이들은 패션이라는 미명 하에 모자를 뒤집어쓰고 또다른 자들은 가발의 세계로 도피한다. 약을 쓰기도 하고 민간요법을 동원하기도 한다. 그러나 불타는 고행의 끝에서 진실을 깨달았다. 그 모든 노력이 결국 아무 소용도 없는 것임을. 머리숱의 감소를 막기 위한 몸부림의 끝에서 결국 우리가 만나는 것은 단 하나의 명징한 진실뿐이다. 탈모르파티.
예수는 황야에서 악마의 유혹을 이겨냈다. 그것은 그가 길고 풍성한 머리카락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가 머리숱이 남들보다 부족했고, 악마가 그에게 남들보다 더 굵고 풍성한 모발을 제시했다면 설령 예수라 한들 어찌 거부할 수 있었을까. 안타깝게도 그만큼 숱이 많지 못했던 고타마 싯다르타는 아예 머리를 밀어버리자는 대안을 제시했다. 너도 삭발 나도 삭발이라는 공평함 앞에서 머리숱의 많고 적음은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것이 곧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도리다. 소크라테스가 아내에게 매일같이 잔소리를 들은 이유는 그의 텅 빈 정수리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도 완전히 밀어버렸더라면 차라리 나았을 것이다.
그만두자. 그 어떤 헛소리로도 결국 머리를 되돌릴 수는 없다. 우주가 빅 프리즈를 향해 나아가듯 인류의 머리는 풍성에서 듬성으로 나아간다. 이는 불가역적인 변화다. 오늘의 머리는 어제보다 줄어들었을 것이고 내일의 머리는 오늘보다 더 부족할 것이다. 그렇게 매일 머리카락을 잃으며 나는 감당하기 힘든 대머리의 미래 앞에서 힘없이 비틀거린다. 언젠가 나의 머리는 아버지의 그것처럼 되겠지. 나는 그 전에 세상이 멸망해도 괜찮지 않겠느냐고 가끔씩 생각한다.
하지만 다행히도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다면, 바라건대 유인 우주선이 알파 센타우리에 도달할 때쯤에는 탈모 또한 정복될 수 있기를 나는 조심스레 기원하는 것이다. 부디 인류의 미래에 희망의 빛이 깃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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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렉의 피카드 선장를 볼 때 미래에도 고쳐지지 않는 걸로...는 그냥 무시하고
고쳐지겠죠. 대머리 유전인자를 찾아서 유전자 가위로 싹둑해버리거나(현재 진행중인 탈모는 못고치는 방법)
모발 이식도 유지가 잘 되는 방법으로...치료가 가능한 질병인가 하는 점은 의학계 지식이 부족한 관계로 읍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