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찮아서 쓸까 말까 했는데, 역시 쓰는게 좋을거 같아, 그리고 피지알에서 그 양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조문갔다 올 사람이라곤 저 밖에 없을 거 같아 굳이 남겨봅네다.
김종필이란 인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라고 한다면 그 또한 이래저래 말이 많을 이야기입니다.
제가 그 양반을, 저 자신 한국현실에서 꽤나 진보적인 입장에 있음에도 싫어하지 않는다, 라고 한다면 두 가지 측면에서 이유가 있습니다.
정치내적으로는 그 처세술의 문제입니다. 처세술이란 것이 그렇게 바람직한 가치는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까딱하면 천길낭떠러지로 떨어지기 십상인 정치판에서 살아남는다 라는 것은 그 자체가 일종의 퍼포먼스인 것이지요. 정치인으로서의 수완이 있으니까 가능하다, 라는 것. 저는 기본적으로 실력있는 사람을 좋아하는지라. 김종필의 처세술에 대해서라면 한국정치를 아는 사람이라면 토달 사람은 없을테지요.
정치외적으로는 교양인으로서의 면모 때문입니다. 시서화에 능했고, 여러 잡기에도 능했으며 능글능글한듯 하면서도 뼈가 있는 그의 언행들은 그가 다분히 문과적인 깊이가 있는 인물이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고, 저 자신 문과로서 그런 점에서 묘한 동질감을 느꼈달까나요.
과도 많고 비판할 부분도 많지만, 가는 날에 그런 이야기하는 것도 야박한 일이니 일단은 덮어두는 것으로.
오는 6월 28일이 제 할머니 기일인데, 25일날 가고시마여행을 가는지라, 산소에 미리 갔다오기로 마음먹은 날이었습니다. 아침에 같이 가기로 한 양반과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그 양반이 갑자기 김종필이 죽었다고 말을 하더군요. 뉴우쓰를 확인해보니 오늘 아침에 사망했다는 소식들이 타전되던... 정치적으로 그 양반과 같은 편에 섰던 적은 없고, 역사에 큰 죄를 지은 인물이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그 양반이 아니었더라면 김대중이 사상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할 수도 없었던 일이기도 하기에, 그걸로 군사반란에 대한 죄를 참작해주기로 한다면, 위에 말씀드린 이유로 나름대로 의미있는 인물이라고 보았던지라, 기분이 착잡해지더군요. 어쨌거나 저는 소위 3김(물론 저도 김종필이 감히 양김에 비할바라고 보진 않습니다만, 양김이 구시대와 맞닿는 고리역할을 꽤나 크게 했던 자체는 사실이니)시대라 일컬어지는 시대 거의 내내 정치를 봐 왔고, 그 한 축이면서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양반이 떠났다 하니... 가는 사람에 대한 예의라는 측면과 어쨌건 한 시대가 끝나는 역사의 현장을 지킨다, 라는 생각하에, 산소에 갔다 오는 길에 빈소에 들르기로 마음먹고 길을 나섰십니다. 하루종일 간 사람들 보러 오가는 날이 된 꼴인...^^
산소는 충북음성이라 강변터미널에서 버스타고 갔다와야 허는디, 빈소가 마침 거기서 다리 하나 건너면 있는 아산병원이라 하니 코스가 딱 잡히더군요. 산소갔다 오는 길에, 걸어서 잠실철교를 건너 병원에 들러 조문하는 것으로. 산소를 갔다오니 저녁 6시쯤이 되었고, 뙤약볕도 많이 저문지라 선선한 강바람 맞으면서 건너갔습니다.
전에 김대중이 사망했을 때, 세브란스 병원의 빈소에도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빈소를 찾았고 줄을 서서 조문을 해야했기에 한참 기다렸었는데... 김종필이 이름있는 사람이라곤 하지만, 김대중처럼 확고한 지지기반과 수 많은 존경하는 사람들을 지닌 것도 아니고 만년의 정치적 영향력이나 위신도 비할바는 아니었기에, 그 정도는 아니겠거니, 하긴 했는데... 가 보니까, 일반인 조문은 저 말고는 거의 없는 거 같습디다. 제 앞에 줄 서 있던 사람도 한 세 팀정도? 식당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만, 보아허니 대개 아는 사람들끼리 이야기하느라 오래 있는 각이었고.
빈소는 장례식장 3층이었는데, 장례식장 입구에 KBS와 MBC등의 차량이 와 있더군요. 그리고 3층으로 올라가려니 2층부터 줄지어서 수십명의 기자들이 앉아있고. 아마 빈소를 방문하는 유명인사들 취재하는 게 주 목적중 하나였던지,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누가 지나가나 고개를 들어 보기에 기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영광을... 후후~ 내심, 유명한 정치인들 실물로 볼 기회도 있지 않을까, 생각혔는디, 아쉽게도 제가 조문다녀간 그 시간대엔 그런 사람은 없더군요.
장례식장이란게 구경하러 가는 곳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장례식장에 볼 거리라면 화환의 행렬들일테죠. 생전에 어떤 사람들과 얼마나 폭 넓게 인연을 맺고 살았나, 하는. 아마 제 장례식장에는 화환 하나도 오지 않을...-- 마, 당연히 한국정계 최고 거물중 하나였던 사람의 장례식장이니 화환이 즐비했죠. 기업회장, 정치인, 사회유력인사, 일본쪽 화환도 있었고. 기억에 남는 화환이라면 이명박화환이 어쨌거나 전직대통령이라고 장례식장 제일 안쪽 빈소 바로 옆에 놓여 있었다는 거하고, 어쨌거나 충청도가 낳은 인물이다보니, 신격호나 정몽구 화환 틈에 있을 계제는 아닌거 같지만, 아직 당선자에 지나지 않는 충남도지사 당선자 양승조 이름의 화환이 생각보다 높은 서열로 있었다는 것과 전국적 지명도는 거의 없을 게 확실한 충남지방지 중도일보에서 온 화환이 또 꽤 높은 서열로 있었다는 정도... 좀 더 찬찬히 구경하고 싶었는데, 장례식장에서 그것도 고인과 실질적인 관계도 없는 찌질이가 돌아다닐 일은 아니지 싶어서 제대로 못 본게 좀 아쉬웠네요. 박근혜 화환은 왔나 찾아보고 싶었는디.
빈소앞에 서니 예의 착잡한 기분이 깊어지더군요. 단순히 한 사람의 죽음앞에 섰다는 것에서부터, 시대를 풍미한 사람의 지난 날이 - 내가 죽는 것도 아닌데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기분이었달까나. 깊은 숨을 쉬고 두번 큰절 한번 반절하고 상주들하고 맞절 한번 하고 나왔습니다. 밥 먹고 가라 그러는데, 역시 얻어먹을 계제는 아닌 거 같고 끼어봐야 개밥에 도토리 신세인데 뭘 얻어먹냐, 하는 심뽀에 그냥 나왔네요. 전에 삼성병원 장례식장 밥은 맛있었기에, 아산병원 밥은 어떤지 궁금하기는 혔습니다만.
아산병원에서 성내역까지 걸어가는 길이 좀 됩니다. 그 길을 걸으면서 오자니 또 이 생각 저 생각 들더군요. 그 길을 걷다보면 바로 앞에 선명히 잘 보이는게 롯데타워입니다. 그걸 보니 또 신격호 화환도 생각이 나더군요. 산 송장이기야 이 양반이 훨씬 더 한데 어쨌거나 명줄이야 이어지고 있다고 화환을 보낸거 보면 산 사람들 일 같지가 않다는 느낌도 들었달까나. 글구보니 이건희 화환도 못본. 현재 '그' 바닥에선 가장 유명인일텐데 말이죠. 아직 먼 일이기야 하겠습니다만, 노무현 보냈고 김대중 보냈고 김종필 보냈고 신격호 보낼거고 이건희 보낼거고 문재인도 언젠가는 보낼거고 아직은 꼬꼬마같은 김경수도 보낼거고 그렇게 보내고 보내다 보면 내가 갈 차례도 올테고. 결국 죽은 사람 빈소에 가는건 그 날을 위해서 가는 거라는 건 뻔한 생각이지만, 이렇게 직접 맞닥뜨릴 때마다 싱숭생숭해지는게 또 인지상정일테죠. 지금이야 멀었으니 죽는거 두렵지 않다 하지만, 죽음앞에 두고 어떨지는 또 모르는거고. 제가 죽은 사람 빈소 잘 찾아다니고, 신문(그 악독하다는 한겨레 봅니다)볼때도 부고란은 꼭 챙겨보는 이유도 그 기분이 뭔가 탐탁치는 않지만, 외면해서는 안될거 같기도 하고 생각해보면 그 기분을 딱히 싫어하는 것도 아니어서 그렇기도 합니다.
개인적인 착잡함과 역사의 착잡함이 착종되는 묘한 기분이 드는 하루였습니다. 유력인사가 날이면 날마다 가는게 아니기에, 이런 날의 기분은 그 자체로 독특한 경험이랄까 그런 생각이 드네요. 다음엔 어떤 유력자가 갈 지 모르겠지만, 그 때도 어지간하면 참배하러 갈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