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포스 넘치는 바투의 동상. 그런데....
지상 최강의 전사들로 명성을 날린 몽골군의 군사 활동은 몽골 고원의 동남서 전방향으로 이루어졌지만, 현대에 이르러서 여러 유목 제국들에 비해 특별히 몽골이 더 유명해지고 명성을 날린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서방 원정' 때문일 것 같습니다. 몽골의 주력이 온 힘을 다해 치열하게 싸운 것으로 치면 금나라와의 전쟁에서 송나라 멸망까지 무려 60여년간 전투를 치룬 대중국 방면의 전선 등에서의 싸움이 시간도 규모도 모두 압도적이라고 할만하지만, 사실 가만히 보면 '위엄찬 몽골' 의 이야기를 할때는 이쪽의 이야기가 언급되는 비중은 별로 없는 것 같기도 하구요.
이것은 순전히 제 개인적인 감상일 뿐이지만, 서구에서는 서구대로 오리엔탈리즘도 좀 섞어서 '서구까지 들이닥친 동방 초원의 전사들' 이라는 이미지로 보고, 이쪽에선 이쪽대로 '서양 코쟁이들에게 한방 먹인 동방의 자존심'(?) 같은 묘한 심리가 섞여서 그렇지 않나 싶은데....
여하간에 그런 몽골의 강렬한 서방 원정 이미지의 큰 축을 차지하는 원정이 바투의 '장자원정군' 입니다. 흡사 지옥에서부터 올라온 15만에 달하는 군세가 마치 신벌처럼 서구세계의 동쪽을 강타하여 킵차크부터 러시아, 헝가리까지 나아가 연전 연승을 거두고, 서구세계의 중심부 지척 근처까지 나아가기 직전, 돌연 멈춰서 여러 사람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는 것입니다.
앞서 말한 이유로 동서양 모두에게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라, 여기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나 반박 및 if 놀이가 성행하곤 합니다. 아무튼 지식도 일천한 제가 여기에 대해 뭐라고 할 것은 아니고...
여하간 그런 엄청난 원정의 얼굴마담, 대표격이 바로 '바투' 였고, 때문에 바투 역시 막연하게 엄청나게 무시무시하면서 신들린 능력을 가진, 공포의 대왕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나무위키에서 '바투' 항목의 설명. '지근지근 밞았다' '개발살 내버렸다' 등등 설명만 들어도 덜덜덜 합니다.
코에이가 신작 좀 내줬으면 하는 가망없는 바램이 있는 징기스칸 4에 나오는 바투의 능력치. 거의 '걸리면 갈아버린다' 는 수준의 살육 머신급의 흉악한 전투 능력치 입니다. 게임 타이틀 주인공 격인 테무진에 필적하는 급.
그렇게 무시무시한 이미지인 바투였는데,
그런데 '원사' 등을 비롯해서 다른 기록을 조금 보니까 뭔가 생각했던 이미지와 괴리가...좀?
1. 킵차크 원정 때
'몽골의 서진' 첫번째 단계라고 할 수 있는게 킵차크 원정입니다. 대략 5만 정도로 출발했던 몽골군은 여기서 킵차크의 바치만八赤蠻을 격파한 후 킵차크의 남은 세력을 흡수하여 10여만에 가까운 병력을 단숨에 불려, 최대 15만에 달하는 서방 원정군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때 바치만을 정벌하라는 지시를 받은 사람은 바투였습니다. 그런데 바투를 사령관으로 보내는 우구데이 칸이 말하기를,
"내가 듣기로 바치만이 용감무쌍하다고 하던데, 수부타이 역시 그러하니 이길 수 있을 것이다!" (聞八赤蠻有膽勇,速不臺亦有膽勇,可以勝之)
명색이 바투가 총사령관인데, 바투가 어쩔 수 있을거다라는 말은 없고 "적 대장이 용감한 사람인데 수부타이라면 이길 순 있을 거다." 라며, 바투가 능력자니 이길거라는 말이 아니라 수부타이의 능력만 믿고 있습니다. 실제로 바치만과의 싸움은 수부타이가 선봉으로 나서 적을 격파해 승리했고, 이후 도주한 바치만을 수부타이가 추격해 카스피해까지 나아가서 잡아 끝을 냈습니다.
여기까진 그러려니 하는데....
2. 코젤스크 전투
5만 대군이 만들어진 몽골군은 이후 군사작전이 정해짐에 따라 러시아의 공국들을 공격했고, 전투가 펼쳐진 곳 대부분에서 승승장구 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바투는 '코젤스크' 라는 공격했는데, 7주가 되도록 함락을 시키지 못했습니다. 되려 이 전투에서 몽골군이 4천명이나 전사하여 '사악한 마을' 이라는 말까지 나왔다고 합니다. 물론 숫적으로 훨씬 열세였던 코젤스크 시민들은 결국은 패배해서 거의 다 참살되었지만, 몽골군의 전력에 비해서 영 시원찮은 전투였습니다.
3. 토르조크 전투
1241년, 바투는 토르조크를 포위했습니다. 이미 승기는 몽골군이 잡았고, 남은 것은 성에 들어가 끈덕지게 버티는 적을 함락해서 끝내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공격을 해도 함락이 안되는 겁니다.
Meanwhile Batu, with the other half of the Mongol army, had been held up two weeks at the town of Torzhok, which defended itself sturdily. The spring thaw came and it was too difficult for the Mongols, with their thousands of horses, to penetrate the woods and swamps on the way to Novgorod, so that city was spared. - Warriors Of The Steppe: Military History Of Central Asia, Erik Hildinger
바투는 여기서 2주를 허비했고, 결국 어떻게든 함락을 시키기는 했지만 그 사이에 봄이 왔습니다. 악명 높은 러시아의 눈 녹은 진흙길 때문에 군사의 이동 및 보급 등이 거의 무용지물이 되어버려서, 이후에 있을 예정이었던 노브고로드 공략 계획은 백지가 되어버려 노브고로드는 몽골의 피해를 입지 않은 도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원사' 를 보면 충격적인 내용이 있습니다. 바투는 2주가 걸려서 겨우 토르조크를 함락시켰는데, 심지어 이것도 본인의 힘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拔都奏遣速不臺督戰,速不臺選哈必赤軍怯憐口等五十人赴之,一戰獲也烈班。進攻禿裏思哥城,三日克之,盡取兀魯思所部而還。
원사에 따르면 독리사가(禿裏思哥城 토르조크)에서 쩔쩔매던 바투는 "수부타이를 보내주세요." 라고 요청했고, 이에 수부타이가 와서 단 3일만에 성을 함락시켰습니다. 아예 수부타이도 고생 했으면 요새가 너무 단단하구나 라고 생각할텐데, 3일만에 함락시킨 요새에서 쩔쩔 맺었다는 겁니다.
4. 모히 전투(사요강 전투)
러시아에서 성공적인 군사 작전을 펼친 몽골군은 헝가리에도 이르렀습니다. 이때 헝가리의 국왕 벨러 4세 이끄는 부대를 본 바투를 비롯한 제왕들은 "적이 너무 강해보인다. 위험할 것 같다." 며 몸을 사렸고, 이에 수부타이가 직접 전략을 내놓았습니다. 강가로 적을 유인한 뒤, 몽골군의 주특기인 기동력을 살려 일부가 강을 멀리 우회해 적의 뒤를 치자는 계책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바투를 비롯한 제왕들은 강의 얆은 상류에서, 수부타이는 하류에서 우회하는 별동대를 이끌게 되었습니다. 상류에서는 다리도 있었고, 애초에 강물도 얆아서 쉽게 강을 건널 수 있었지만 하류에서는 뗏목을 만들어 타서 이동해야만 했습니다.
문제는 수부타이가 강을 건너기도 전에 바투를 비롯한 제왕들이 먼저 강을 버렸다는 겁니다. 하류에서는 죽어라 뗏목을 만들어서 타고 이동하고 있는데 상류에서는 강을 벌써 건너갔으니, 우회해서 적을 치는게 아니라 그냥 분산된 상태로 각개격파 되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와중에 바투의 군은 다리 부근에서 적에게 포위되며 바투 휘하의 장군 팔합독八哈禿 등이 전사하는 등 난장판이 되어갔습니다.
겨우겨우 수부타이가 늦지 않게 죽어라 달려 전장에 도착했지만, 바투를 비롯한 제왕들은 이미 헝가리군에게 된통 당해 얼이 빠져서 "안되겠다. 돌아가서 훗날을 도모하자." 고 권했지만, 수부타이는 화가 나서 "대왕들께서는 돌아가려면 돌아가십시오. 신은 독납하(禿納河 도나우 강)와 마다성(馬茶城 마자르성)에 이르기 전에는 결코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 하며 적을 향해 돌격하자 내키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따라서 돌격했고, 결국 대승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승리를 거두고 다들 모이고 난 후, 바투는 되려 수부타이에게 화를 냈습니다.
"곽녕하(漷寧河)의 싸움에서 수부타이가 늦장을 부리는 바람에 내 부하 팔합독이 전사했다. 어찌하겠느냐?"
그러자 울컥한 수부타이도 화가 나서 대꾸했습니다.
"대왕께서는 상류의 물이 얆고 다리가 있는 것만 아시고 바로 건너가서 싸우셨는데, 저는 하류에서 뗏목을 엮느라 시일이 걸린 것입니다. 어찌 저의 늦음만 말하시고 늦은 이유는 알아주지 않으신 겁니까?"
그때가 되서야 바투도 납득했다고 합니다.
이후에도 그때를 바투가 회상하면서 "그때는 순전히 수부타이 덕분에 이겼다." (當時所獲,皆速不臺功也) 고 하며 숫제 가슴을 쓸어내리는 둥...
뭔가 무시무시한 말 위의 공포의 대왕이라기보다는,
군웅할거 형세일때 자기는 싸움엔 별 재능 없는데 전쟁은 순전히 뛰어난 장군 덕에 승리하는, 밑에 손견 둔 원술 같은 뭔가 푸근한(?) 인상으로 다가오더군요. 물론 전쟁에서 허당끼 부렸을때와는 별개로 권세가 절정이던 무렵의 바투를 만난 카르피니 등의 서양인 여행자들에게 바투는 동방의 왕 그 자체로 보였을 테지만요.
상관 있는듯 없는듯한 후일담이지만, 이 서방 원정이 거의 끝날 무렵 바투는 우구데이 칸의 아들이자 훗날 몽골 제국의 대 칸이 되는 구육 칸 등과 크게 언쟁을 펼치고 싸웠습니다. 싸운 이유가 (바투가 우구데이 칸에게 보고하길) "내가 연장자인데 연장자로서 술 좀 먼저 먹었다고 저 놈들이 날 욕하면서 자리를 나가던데 이게 말입니까 당나귀입니까?" 라는, 지옥에서 올라온 공포의 대왕들치고는 엄청 찌질한 싸움을 했는데, 구육 등이 화를 낸 이유가 바투가 전투에서 보여준 졸렬한 지휘 탓에 짜증이 나서 그랬을 거다..라는 시각도 있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