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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7/10/13 17:41:35
Name Samothrace
Subject [일반] 블레이드 러너 초간단 리뷰(스포)
제가 뭐 전문가도 아니고, 철저히 주관적으로 쓰는 리뷰입니다. 그만큼 정말 간단하게 제가 느낀 점만을 전할 생각으로 글을 쓰겠습니다.

1. 지루함?
지루하다고는 느끼지 못했습니다. 제가 원작 팬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세간의 지루하다는 평은 별로 와닿지가 않더군요.
역으로 말해서 원작의 팬이었다면 지루함은 별 걱정 안 하고 가셔도 될 것 같습니다. 전작도 대중적으로 따지자면 지루한 영화였구요.

2. 휴머니즘
1에서 이어지는 얘긴데, 초중반부까지는 긴장감이 팽팽해서 지루하다기보단 오히려 생각 외로 꽤나 흥미진진했습니다.
그러나 케이가 목각 말을 찾아낼 때 절정을 이루던 서스펜스는 후반부에 가서 닳아빠진 휴머니즘이 되고 맙니다.
마치 우라사와 나오키 만화에나 나올 법한 휴머니즘 감성과 묘하게 비슷한 느낌이었는데요.
케이가 데커드에게 목각 말을 건네고 죽을 때의 그 묘사가 너무 담담해서 오히려 더 그랬습니다.
잔잔하면서 애달프고, 그래서 인간적인... 뭐 그런 감성을 너무 노렸다는 느낌이 들었네요.

3.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대체로 주제가 반복되는 느낌이지만, 전작과 뚜렷이 구별되는 지점이라면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그래서 더 휴머니즘을 지향하는 것 같은
그런 묘사와 결말을 선택했다는 겁니다. 개인적으론 아쉬워요. 그런 점이 오히려 인간 같지가 않았거든요 저는.
가령 전작에서 리플리컨트들의 목표는 일단 표면적으론 명확합니다. 수명이죠. 달리 말하면 생의 의지인데요.
걔네들은 사실 아주 막나가는 놈들이어서 목적을 위해서라면 인간성 따위 개나 줘버리기 일쑤였죠.
근데 그래서 저는 걔네들이 더 인간다웠다는 생각이 들었걸랑요. 로이의 최후는 그래서 더 인상에 남는 면이 있죠.

근데 케이의 경우.. 그의 정체성이나 감정을 가지고 영화가 장난을 친다는 느낌이 먼저 들었습니다.
물론 모든 영화가 일종의 장난질이고 창작 자체가 그런 유희겠지만 좀 작위적이란 느낌이 들었네요.
예를 들어 영화는 케이로 하여금 목각 말을 찾게 하고, 그 대가로 블레이드 러너로서의 일상을 앗아갑니다.
정체성 하나를 바치고 새로운 정체성을 획득하는 과정처럼 보이기도 하죠.
그러다가 또 조이를 덧없이 죽여버리고 케이가 애착하는 현실의 대상 하나를 또 앗아갑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마저 응 사실 기억 날조야~ 해버립니다
요컨대 가짜처럼 보이는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씩 제거해가면서
최후에는 케이로 하여금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선택, 즉 옳은 일을 하게끔 극을 밀고 나가는 거죠.

저는 이게 참 작위적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가짜(리플리컨트)처럼 보여도 그것을 진짜(인간)처럼 애착하고, 그렇게 가짜를 추구해감으로써 진짜를 추구한다는 식..
저에게는 그게 블레이드 러너였습니다.
전작의 리플리컨트들이 그랬고,
이번 편에서 드러난 데커드와 레이첼 사랑의 진실이 그러하죠. 그들 사랑의 대꾸인 조이와 케이의 사랑 역시 그러하구요.
레이첼이 데커드를 반하게 하기 위해 완벽하게 설계된 존재인지는 모릅니다.
조이의 사고원리가 소비자의 취향을 완벽하게 반영한다고 해서 그녀의 사랑마저도 가짜인지 또한 모르구요.
디자인된 감정은 가짜일까요?

데커드의 대사처럼 그건 자기 자신이 제일 잘 알 겁니다.

4. 다시 돌아와서, 하여튼 영화는 케이로 하여금 옳은 일을 하도록 극을 밀어붙입니다.
가짜를 모두 빼버리고 남은, 인간의 모조품일 뿐인 케이는 결국 스스로 진짜가 되기 위해 진짜스러운(인간스러운) 일을 달성합니다.
물론 데커드와 딸이 만날 때는 저도 좀 감동하긴 했지만, 케이가 죽어갈 때는.. 음... 이게 뭐하는 짓이지.... 같은 느낌이 들더란 거죠.
위에서도 말했지만 흡사 우라사와 나오키 만화에나 나올 법한 휴머니즘-너무나 전형적인 인간성, 그래서 너무나 이상적인 인간성이 나오길래 오히려 정교하게 디자인된 감정을 보는 것처럼 그런 인위적인 느낌이 들더란 겁니다.
전편에선 느껴본 적 없는 이질감, 당혹감이 느껴지더군요.

5. 이쯤에서 고백해야겠는데, 저는 이런 데 알레르기 있습니다.
신파 알레르기랑 좀 비슷한 건데, 전형적인 인간애 감성을 극에서 볼 때 좀 두드러기가 납니다.
그래서 저는 왜 이런 식으로 영화가 마무리될 수밖에 없었나를 생각해 보게 되네요.
그건 이 영화가 케이를 해탈시키기 위해 생의 집착들을 모조리 씻어낸 탓이 아니겠는가...
블레이드 러너로서의 일생도 씻겨버리고, 조이와의 사랑도 결국 단념시키고, 최후에는 진짜라고 믿었던 가능성까지 부정해버립니다.
아무래도 그 탓이 아니겠는가... 너무 깨끗하게 씻겨버리니 그런 깨끗한 인간성(저한테 두드러기 반응을 일으키는)이 나온 게 아닌가... 싶더라는 거죠.

6. 애매성. 진실의 불가능성.
일면 납득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집착할 것이 사라지니 타인을 위해 행동할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르죠. 그렇게 보면 합당해 보이기도 합니다.
다만 전편의 파이널씬이 저에게 정말로 전율적이었던 건, 정답을 딱 확실하게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었죠.
저는 애매성, 진실의 불가능성이 존재의 경계를 허문다고 생각합니다. 리플리컨트일 수도 있고, 인간일 수도 있고... 그런 식의 결말.
어떻게 보면 그게 픽션의 가치 그 자체죠. 허구를 상상하는 것 자체가 현실에 대한 대안 제시 그 자체입니다.
상술했듯 가짜처럼 보여도 그것을 진짜처럼 애착하고, 그렇게 가짜를 추구해감으로써 진짜를 추구한다는 식..
저에게는 그게 블레이드 러너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편에서는 주제의식은 비슷해도 그걸 너무 드러내놓고 보여주더군요. 게다가 결말도 인간성이란 이런 거야! 하고 보여주는 듯한, 딱딱 정답을 알려주는 것 같은 지나친 친절함. 그런 면에선 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영화였습니다.

7. 간단하게 쓰려고 하면 꼭 주저리주저리 말이 많아지네요. 그러다 보면 또 무계획적으로 쓴 게 돼버려서 글이 개판입니다.
개판인 글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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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용젤리
17/10/13 17:45
수정 아이콘
어제 집사람과 같이본후 집사람이 아주 심플하고 묵직하게 이 영화평을 했습니다.

[한국드라마 보는줄알았어]
17/10/13 17:46
수정 아이콘
전 엔딩이 기묘하다고 해야하나 그런점에서 여운이
많이 남습니다. 진짜 눈을 맞으며 죽어가는 가짜인간
가짜 눈을 맞으며 서있는 진짜인간의 모습이 참..
최소 한번은 더 보러 갈 예정입니다.
윌로우
17/10/13 17:58
수정 아이콘
전 친절해서 좋았어요. 흥행까지 고려하면 제작자들이 다른 모호한 결말은 허락안했을 것 같아요. 전 우라사와 나오키식 휴머니즘 느끼지 못했어요. 한번도 느끼하단 생각못했으니까요. 다시 보면 더 재밌을것 같은 기분이 든거 보면 1편이 그런 작품이니 이정도면 더할 나위없는 속편이라 여겨집니다. 잘 읽었어요.
Go2Universe
17/10/13 18:05
수정 아이콘
저와 정반대의 지점을 좋아해 너무 신기하네여!!!!!!! 그래서 더 흥미롭게 글을 읽었습니다. 참고로 전 원작을 정말 좋아해요!
Go2Universe
17/10/13 18:06
수정 아이콘
그리고 전 영화의 마지막에 느낀건... 이 세계가 여기서 끝나지 말고 더 계속되었어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마지막에 눈물까지 흘렀네요. Tears in rain.....
순수한사랑
17/10/13 18:20
수정 아이콘
조이 만들어 주세요
17/10/13 18:27
수정 아이콘
(수정됨) 생명체의 기적보다 이 영화의 주제는 ‘기억’이라 봤습니다. 기억이 인간을 존재케 한다. 블랙아웃이 리플리컨트의 메모리를 불분명하게 하는 특이점 사건으로 상징한다고 봅니다. K는 기억으로 조의 정체성을 깨닫지만, 조의 기억의 사라짐으로 존재가 사라지는 숙명을 맞이합니다.

드니 들뢰브의 전작 컨택트로 그렇고 영화볼때는 몰입되지만 결론은 항상 아무것고 남지않네요. 감독이 휴머니즘을 지향하는 것 같습니다.

이번 영화는 인물의 캐릭터보다 흐름에 중점을 둬서 월레스의 정체와 기적을 찾는 이유가 좀 애매하게 표현돼 있어 아쉬웠습니다.
라방백
17/10/13 19:05
수정 아이콘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웠지만 개인적으로는 호흡을 유지하면서 이야기를 끌고가려다보니 좀 편집된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길게 편집된 버전을 보고 싶어지더군요. 말씀하신대로 중반까지의 케이의 내면을 묘사하는데 들인 공에 비해 후반의 내면 묘사가 많이 생략되었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물론 많은 제작비가 들어간 블록버스터인만큼 플레이타임도 줄이고 결론부는 행동을 강요할 필요가 있었겠지만 초중반과 같은 흐름으로 케이의 감정을 계속 보여주는편이 더 완성도가 높았을것 같았습니다. 영화 구성과는 별개로 영화 주제에 있어서는 신파나 착한 캐릭터를 의도한 느낌이 약간 들기는 하나 전 등장인물들간의 관계를 더 흥미있게 보았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데커드가 "나는 너에게 있어서 무엇인가?" 를 물었을때 아무 대답을 하지 않은 부분에서 탄성이 나왔거든요. 한편 월레스는 참 흥미로운 캐릭터라 그를 주인공으로 작품을 한편 만들어도 되지 않을까 싶은데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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