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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군은 독일군을 상대로 전면적인 남부 전선의 붕괴를 이끌어내고자 했습니다. 북쪽에서는 보로네시와 하리코프를 잇는 측선상의 약한 추축국군을 공격하여(오스트로고시스크-로소쉬 공세) 철저하게 북쪽을 찢어발겼고, 남쪽에서는 로스토프를 점령하여 제1기갑군의 퇴로를 차단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독일군은 독일군이었던지라, 비록 히틀러의 말도 안 되는 망상으로 인해 진작에 빠져나오거나 최소한의 병력만 남겨두었어야 할 쿠반 반도에 제1기갑군의 일부가 남아 있다는 - 어처구니없게도 캅카스 방면의 공세를 위하여 남겨둔 것입니다 - 문제만 제외하면, 로스토프를 사수할 때까지 어쨌든 퇴각에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이건 발등의 불이 꺼진 정도였고 독일군에게 있어서 위기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아오, 죄송합니다. 토요일에 몸 좀 썼더니 일요일에 그대로 뻗어버렸네요. 그것은 그렇고 우선 지난 글에서 어쩌면 모두의 기억에서 잊혀졌을... 스탈린그라드의 운명입니다.
계속해서 항복을 종용했던 소련군이었습니다만 파울루스는 처음에는 이를 거부했고, 결국 기다리다 안되겠다 싶은 소련군이 먼저 조이기에 들어갔습니다. 어째서 지도에 그 중요한 시설이 표기되지 않았는지 영 의문이긴 한데, 저 포위망의 중심부, 그러니까 파란색 6 A라 쓰여진 곳 인근에 피톰니크 공항이 있었습니다. 독일군은 바로 이 피톰니크 공항과 그 바로 오른쪽의 굼락 비행장으로부터 실낱 같은 보급을 받고 있었습니다.
일 주일 만에 소련군은 포위망의 절반을 좁혀들어갔습니다. 뭐, 애초에 탄약도 싸울 힘도 거의 소진된 독일군이었으니 밀어붙이는 것 자체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겠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소련군이 이 포위망을 처리하는 일을 가볍게 여긴 건 아니었습니다. 일단 지도에서 보시다시피 (구석에서 버티던 제62군 포함) 총 7개 군이 버티고 있었는데, 이 정도면 전선군이 하나거든요. 그래서 독일군이 캅카스를 탈출할 시간을 제6군이 벌어주었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는 겁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무튼 소련군은 제6군을 소멸시키기 위해 포위망을 줄여나가고 있었죠. 이미 승패가 거의 결정난 상황이었습니다.
마침내 굼락 비행장이 1월 21일에 날아가고 9만 명의 병력이 저 좁은 포위망에 갇혔습니다. 굼락 비행장이 떨어진 것은 독일군에게는 부상자를 후방으로 보낼 수 있는 능력이 사라졌음을 의미했다고 위키백과에서 이야기하기는 합니다만 탄약이고 자시고 거의 다 떨어진 독일군이 후방으로 부상자를 보낼 수 있는 능력이 애시당초 있기나 했는지가 의문이죠. 아무튼, 황당하게도 항복을 청원한 이후 - 거 참 어차피 옥쇄하라는 명령 어기면서 항복할 주제에 무슨 생각으로 히틀러에게 항복을 청원했는지가 의문입니다만 - 결국 2월 3일에 파울루스는 항복합니다.
사진 가장 왼쪽이 파울루스. 저는 솔직히 파울루스 안티에 가까운 인물이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좀 공정하게 다룰 필요는 있겠죠. 파울루스 개인적으로는 꽤나 신사적인 양반이기는 했던 모양입니다. 발터 폰 라이헤나우가 심장마비로 급사하면서 제6군 사령관에 취임했는데, 취임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악명높은 코미사르 명령 - 유대 인과 볼셰비키는 닥치는 대로 다 죽이라는 절멸 명령 말입니다 - 을 폐기한 일이었거든요. 출처는 독일어 위키백과의 파울루스 문서입니다. 여하간... 신사적인 인물이었고 귀족적인 면모가 강하게 있었음에도, 결국 많은 사람들의 증오를 받게 되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라고 할 수밖에 없군요. 애초에 제6군 사령관이라는 자리는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자리였을지도 모릅니다. 차라리 그가 제6군 사령관직을 사양하고 참모부에 남거나 했으면 더욱 능력을 발휘할 수도 있었겠죠. 파울루스에게 있어서 비극이라면 비극이죠. 그것도 수십만 장병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비극...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그 비극을 야기한 것이 방금 말한 폰 라이헤나우의 갑작스러운 죽음인데, 이 양반은 문자 그대로 악명높은 극렬 나치 인간말종이었다는 것입니다. 인간말종의 죽음이 시대를 잘못 타고난 신사에게 엄청난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킨 셈이죠. 그 절멸 명령 폐기가 필요에 의한 것이었는지 개인의 선의에 의한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게 역사일지도요.
하여간, 후방에서 섬멸당한 제6군의 파멸은 여기까지 다루고... 이제 하리코프로 돌아갑시다.
우선 2월 2일의 전황도로 다시 돌아갑시다. 여기서는 철길이 큰 의미가 없는 것이, 워낙 우크라이나 일대, 특히 하리코프 일대가 그 당시부터 철로가 잘 짜여져 있었기 때문이죠.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경제적인 이유였을 겁니다. 하리코프는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이은 소련 제3의 공업 도시였으니까요. 오죽하면 공산주의 유머에서도 성냥을 사러 하리코프까지 갈 수 있다 운운하는 이야기가 있었겠습니까? 하리코프는 철도망으로 벨고로드, 쿠르스크, 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 자포로제, 스탈리노(도네츠크), 보로실로프그라드(루한스크), 보로네시 등등으로 이어지는 사통팔달의 교통의 요지였습니다. 그만큼 양군이 탐을 낼 만한 이유는 충분했죠. 그게 붉은 군대의 공격이 이 도시로 집중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2월 17일의 전황. 붉은 군대는 일종의 전과확대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하리코프를 접수하고, 그 근처를 장악하여 적의 손길로부터 하리코프를 떼어놓는 그런 것이었죠. 독일군의 후퇴도 제법 기민했습니다. 사실 히틀러는 여기서도 공격과 현지 사수를 외쳐댔습니다만 그것이야말로 아마추어적인 생각이었고, 놀랍게도 이 명령에 불복종한 것은 다름아닌 히틀러의 사병인 SS 기갑군단이었습니다. 지휘관 파울 하우서가 히틀러의 현지사수 후퇴불가 명령을 과감히 씹어버리고 2월 14일에 아예 하리코프를 지나치며 후퇴한 거죠. 물론 히틀러는 길길이 날뛰었지만, 차마 자기 손으로 파울 하우서를 쫓아낼 수는 없었고, 애꿎은 상급자인 후베르트 란츠 산악대장을 면직시킵니다. 아, 지도상에 나와 있는 것은 B집단군이 2월 13일자로 남부 집단군으로 개칭되었다는 것.
히틀러의 생각은, 아마추어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분명히 일리가 있긴 있었습니다... 이 전쟁이 제1차 세계대전이었다면 말이죠. 하리코프는 몇 번이고 강조합니다만 매우 중요한 공업 도시였고, 따라서 분명히 점령할 만한 가치가 있는 도시였습니다. 게다가 시가전, 이게 보통 까다로운 일이어야 말이죠. 스탈린그라드에서 그렇게 털려 놓고, 한 번 도시를 잃으면 저걸 어떻게 점령하지?라는 생각이 들 법도 합니다. 여기에 더해서 유동적인 방어선이 아닌 고정 방어 및 선-방어 계획을 놓고 보았을 때 하리코프야말로 적의 방어를 저지할 수 있는 최상의 요새 중 하나다, 히틀러로서는 그렇게 생각했겠죠. 다시 말합니다만 이는 충분히 일리가 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었다면" 말이지만요. 하지만 전쟁의 양상은 변하고 있었고, 그래서 폰 만슈타인을 위시한 기동전의 선구자들이 더 돋보이는 것입니다.
아, 그리고 여담으로 저 날짜에, 그러니까 2월 17일에, 히틀러는 폰 만슈타인을 질책할 목적으로 자포로제로 날아가고 있었는데, 바로 그 시기에 소련군의 기갑 웨이브가 자포로제로 들이닥치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좀 아깝네요. 잘하면 콧수염 인간말종의 머리에 2년 정도 빨리 구멍을 내 줄 수 있었는데 말이죠.
하여튼 결국 폰 만슈타인은 부대 운용의 재량권을 히틀러로부터 따내는 데 성공했고, 여기에 더하여 폰 리히트호펜도 항공부대를 정비하여 세 배 이상의 출격을 달성하며 제공권을 장악, 확실한 지원을 해 줄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련군은 자기가 최종적인 승자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죠.
2월 22일. 딱 봐도 소련군의 공세가 좀 덜해 보이죠. 2월 3일에 스탈린그라드가 최종적으로 정리되면서 그 곳의 병력은 기다렸다는 듯이 최전선에 투입될 수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엄청나게 무리한 시간표가 나와 버렸습니다. 특히나 스탈린그라드와 로스토프를 잇는 철도망은 지난 글에서도 보셨다시피 매우 부실한 축이었는데, 독일군의 증원이 까다로운 것만큼이나 소련군의 이동이 까다롭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기에 더해 사정없이 엉키는 진흙탕길 - 그 유명한 라스푸티차 - 로 인해 더더욱 진격이 느렸고, 결국 소련군의 진격이 보잘것없어지게 된 겁니다. 그리고 딱 이 시기가 바로 소련군의 공세종말점이었죠.
중부 전선에서 소련군이 독일군 제2군을 엄청나게 밀어붙이고,
쿠르스크를 손에 넣었습니다만 그건 혼자 앞으로 나가고 있는 격이었고, 마침내 남부에서 재앙이 시작되었습니다.
남쪽에서 북동쪽 방면으로 시작된 공세는 곧 하리코프를 휩쓸어버렸고, 불룩 튀어나온 소련군의 전선을 다시 안으로 확 밀어버리는 계기가 되었죠. 이게 가능했던 건 역시 폰 만슈타인의 천재적인 발상 덕분이었습니다. 도시에 연연하지 않고 방어선을 최대한 뒤로 물려서 전선을 축소시키고 아군 전력을 보존한 후, 몰려오는 적을 상대로 카운터를 날리는, 그야말로 기동방어의 모범이라 할 만했죠. 보급이 부족하고 예상치 못한 강타를 얻어맞은 소련군은 그대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만 독일군의 전력 역시 상당히 빈약했던 터라 초기 포로는 채 1만 명도 되지 않았죠. 아무튼, 기회가 오자마자 폰 만슈타인은 그대로 하리코프로 폭풍처럼 몰아붙였고, 곧 하리코프를 거의 손에 넣었습니다. 아까 히틀러의 명령을 무시한 파울 하우서가 이번에 이 공격을 맡았는데, 이 양반, 명령 불복종이 주특기였기라도 했는지 이번에는 상식과 명령을 무시하고 아예 SS기갑사단을 하리코프에 밀어넣어 버립니다. 아무튼 도시는 탈환했죠.
폰 만슈타인의 "백핸드 블로"가 제대로 작렬한 것입니다.
결국 소련군은 상당 거리를 뒤로 밀려나야 했고, 한계에 달한 공세능력 때문에 결국 소련군의 공세는 여기까지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때맞춰 길이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고, 전선이 이렇게 굳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지도에서 보시다시피... 북쪽으로 상당히 큰 돌출부가 생겼죠. 독일군은 공세는커녕 수세를 메꾸는 데에 바빴고, 소련군도 공세한계에 도달했던 터라 자연스럽게 전투는 소강 상태로 접어듭니다. 실제로 전투 연혁을 보면 이 하리코프 바로 다음이 쿠르스크입니다. 일련의 연쇄적인 상황이 여기에서 일단락된 것이죠.
비록 하리코프에서 독일군이 대승을 거두기는 했습니다만 분명히 말씀드리건대 그것이 전쟁의 향방을 뒤바꿔놓을 승리였냐? 결단코 아니었습니다. 폰 만슈타인의 지휘는 대단했고 전술은 천재적이었지만 물량 앞에 장사 없고 독일군의 능력 또한 점차적으로 고갈되어 가고 있었던 상황이라, 이미 스탈린그라드에서 제6군이 박살난 순간 독일군의 패배는 7~80% 확정된 상황이었습니다. 하리코프에서의 독일군의 승리는 8 : 2의 불리한 상황을 7 : 3 내지는 6 : 4 (정말 잘 쳐줬을 때 이야기겠지만요) 정도로 막은 것에 불과합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바르바로사 작전이 실패한 순간 이미 7 : 3, 청색 작전 실패에서 8 : 2, 스탈린그라드에서의 패전이 9 : 1인데 그걸 8 : 2 정도로 맞춘 정도라고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여전히 전세는 독일군에게 뭐로 보나 불리했죠. 경제력으로 보나 전쟁 지속 가능성으로 보나 인력으로 보나. 그나마 남아 있던 마지막 도박수가 바로 그 유명한 쿠르스크 전투였고, 그것이야말로 독일군의 패배를 기정사실로 만들어버리는 마지막 헤드샷이었을 뿐입니다. 제3차 하리코프 전투가 전술과 작전술적인 면에서는 매우 중요할지언정 전략적으로 중요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아무튼 전황은 이렇게 되었고, 청색 작전도 이렇게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거의 끝났네요. 다음 글에서는 그 기간 동안 있었던 다른 곳에서의 전투 - 르제프 전투와 화성 작전을 위시한 - 를 둘러보며, 연재를 마무리짓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