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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7/03/20 15:42:49
Name 사악군
Subject [일반] [만화추천] 어제 뭐 먹었어?
'어제 뭐 먹었어?' 는 남자가 주인공인 순정만화이자 요리만화입니다.

작가인 요시나가 후미는 BL동인지로 시작한 작가이지만 단순한 야오이물과 달리
사람냄새나는 게이를 그리고 있고, 게이뿐만아니라 여러가지 성격과 여러가지 상황의
인물들에 대해 솔직담백하고 가능한 편견을 뺀 묘사가 뛰어난 작가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영화화된 적 있는 '서양골동양과자점'의 원작자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등장인물들이 가지는 성정체성이든 직업이든 어떠한 특질이 그 인물을 특정짓는 전부가 아니며,
평면적이 아닌 입체적인 면들을 전부 표현함으로써 작중인물들이 단순한 주인공과 독자,
스토리의 진행을 위한 '대상물'이 아니라 정말로 인격을 가진 사람처럼 느껴지게 하는
묘사가 뛰어납니다.

'어제 뭐 먹었어?'의 주인공은 40대의 변호사 게이로 미용사와 파트너관계를 맺고 있는데,
게이라는 점이 이야기 전체에 은은히 영향을 미치고 주된 주제이기는 하지만
그 외에도 단순한 이웃과의 관계, 직장동료와의 관계, 사건과의 관계, 부모님과의 관계,
애인과의 관계등 정말 일상에 관련한 잔잔한 에피소드들이 진행되면서
제목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주인공이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어떤 갈등이 있고 어떤 사건이
진행되고 있더라도 [먹어야 사는 만큼] 항상 뭘먹을지 무슨 반찬을 할지 신경을 쓰고
매 에피소드에서 요리를 합니다. 게다가 그 요리과정이 상당히 상세하여 모두 레시피 수준이면서
진짜 가정집의 비법처럼 '되도록 단순하고 어렵지 않게 만들수 있는 요리'를 지향합니다.

저도 몇가지는 따라 만들어 본 적 있습니다. 근데 나쁘진 않은데 역시 만화안에서처럼 맛있지는 않아서...흐흐
(이건 제탓일 수도 있습니다..)

즉 각각의 에피소드는 사건/요리/식사로 마무리됩니다. 그런데 이 단순한 구성이 제게는
꽤나 울림이 컸습니다. 이들의 생활과 에피소드가 정말 더 현실감있게 느껴지는거죠. 동성애자 변호사 커플의 이야기가
그냥 허구속의 인물들이 아니라, 속이 쓰려도 가슴아파도 파트너가 바람을 펴도 부모님이 암에 걸려도
'먹고 살아야 하는' '밥반찬을 만들어야 하는' '요리하면서 재료비, 설거지 걱정해야하는'
현실속의 이야기 같은 거죠. 뭣보다 이 만화속에서는 뭘 먹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
파트너와 싸운 다음에는 파트너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고 파트너도 그걸 눈치채고 마음을 정리하는 수준의
이야기이지 이 뛰어난 맛에 감동하여 마음을 돌리고..이런 건 안나와요.

현재 12권까지 나왔는데..세월의 흐름에 따라 작중인물도 나이를 먹어
40대였던 주인공이 이제 50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주인공의 지인들 중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이런 사람들도 생기고 그럴때 느끼는 주인공의 복잡미묘한 심리가 잘 그려져 있어요.
아니 사실 오히려 단순하게 그려져 있어서 더 잘 느껴지죠.

예를 들자면.. 주인공은 오랜만에 설날에 부모님집을 방문합니다.
그때 옆집 이웃이 꼬마들과 함께 집을 방문해요.
부모님은 꼬마들의 이름을 친숙히 부르고, 꼬마들도 주인공의 부모님에게 허물없이 이야기하고,
집의 구조도 잘 알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부모님과 옆집식구들, 아이들을 바라보다 (이 장면이 대사 없이 몇컷의 그림이 지나가고)

'그렇구나. 이분들은 이제 손자 대신 옆집 애들을 귀여워하기로 마음먹으신 거야..'

라는 생각을 합니다. 정말 솔직담백한 대사와 묘사이고, 주인공의 부모가 아들이 게이여서
이제 손주를 기대할 수 없어 포기에 이른 마음에 대해, 그리고 그에 대해 주인공이 가지는 심정이
구구절절한 설명이나 묘사 없이도 그 심정이 절절히 전해집니다.

MSG같은게 필요가 없죠. 저는 예전에 이 장면을 읽으면서 눈물을 찔끔 흘렸습니다.

저도 이 글을 쓰느라 찾아봤더니 작가는 게이오 법대를 나왔네요. 그래서 그런지
변호사 업무에도 상당히 해박한데, 실제 변호사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에 대해서도
이 작품보다 고증이 잘된 작품을 보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저한테는 그래서 더 재미있기도 하네요.

작중인물들은 현실속 인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어떤 면에서는 착하고 어떤 면에서는 악해요.
작중인물들도 그럴진대 현실속 인물들은 어떻겠습니까. 입체적인 인물에 대한 묘사를 보는것만으로도
현실의 인물들을 대할 때 제 태도를 점검해보는 계기가 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걸요.

악으로 느껴지는 사람들, 대체 왜 저러고 있나 싶은 사람들도 다 '밥먹고 살아야 하는'
먹고 자고 사랑하고 각자의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모르기 쉽습니다.

여러가지 인생을 담은 만화, '어제 뭐 먹었어?'를 추천합니다.

*그다지 본의는 아니지만..한겨레에서 같은 만화추천한 기사가 있군요.
선택하실때 도움이 되실까 하여 그림체라도 보시라고 링크 추가합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67269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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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3/20 15:47
수정 아이콘
전권 소장중입니다.
이것저것 해보고 싶긴한데 귀찮아서 레시피를 따라하지는 못하지만요 크크 (이마트에서 삿포로 이차방 라면을 팔아서 해먹어 볼까 진지하게 고민해본적이 있...)

본격 BL물도 많이 그렸지만 서양골동양과자점이나 어제 뭐 먹었어 처럼 거부감 없는 BL물을 그리는 능력이 탁월한 작가기도 하죠.

아무튼 좋은 만화입니다.

저도 추천합니다!
사악군
17/03/20 19:51
수정 아이콘
추천강화 감사드립니다 ^^
카롱카롱
17/03/20 21:20
수정 아이콘
서양골동과자점은 그래서 작가 본인이 본편 뒤 후속 이야기 동인지를 그렸더라구요...작가 팬이긴한데 본격 BL은 제 영역이 아니라 으아아
17/03/20 16:05
수정 아이콘
어제 뭐먹었어도 재미있지만..
같은 작가 '플라워 오브 라이프' 추천합니다.
사악군
17/03/20 19:50
수정 아이콘
이것도 참 수작이죠.
드라고나
17/03/20 16:21
수정 아이콘
이 작품 좋은 작품이죠.

변호사 소재 만화라면 '어떻게 좀 안 될까요' 가 정말 재미있습니다. 의뢰인을 신뢰할 수도 의심할 수도 없는 딜레마로 인해 벌어지는 일들 보면 엄청 웃기더군요. 혹시 보신 적 없다면 권해 봅니다

요리와 인간이 있는 순정계 작품이라면 다카스키 가의 도시락이란 작품도 좋은 만화인데 보신 적 없다면 이 작품도 살짝 권합니다
구름달
17/03/20 16:51
수정 아이콘
주 스토리가 요리와 게이 이야기라서.. 저도 변호사 소재관련이라면 '어떻게 좀 안 될까요' 이 작품 추천합니다.
사악군
17/03/20 19:52
수정 아이콘
그 작품도 재미있긴 한데 미묘한 기분에 4권에서 리타이어했습니다..흐흐 만화적 수사가 좀 들어갔지요.
카롱카롱
17/03/20 21:23
수정 아이콘
다카스키가의 도시락은 토끼드롭스 등이 자기와 안맞았다면 주화입마가능성이 약간 있으니 그점 고려하심이...뭐 토끼드롭스보다 약하긴하네요.그리고 그것보다는 남주땜에 답답해서 주화입마가능성이 흐후
17/03/20 17:13
수정 아이콘
같은 작가 '오오쿠' 추천합니다.
사악군
17/03/20 19:53
수정 아이콘
오오쿠는 약간의 BL및 일본문화 저항력이 필요할듯.
데오늬
17/03/20 17:48
수정 아이콘
저도 요시나가 후미 좋아해요. 이 사람은 만화적 수사가 없죠 만화인데 크크크. 무조건 돌직구!
게이 만화, 법대생 게이 만화, 식탐 만화를 그리더니 이번엔 게이 변호사가 밥해먹는 만화를 그리길래
아 요시나가의 인생은 게이와 법학과 식탐으로 이루어져 있구나 했습니다.
사악군
17/03/20 19:54
수정 아이콘
사랑이 없어도 먹고살수 있습니다 로 인생커밍아웃(?)이후 어제뭐먹었니로 이어지는 식도락..
소로리
17/03/20 18:23
수정 아이콘
정말 좋은 만화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이 만화를 필두로 먹방 만화에 빠져서 많이 봤네요.
사악군
17/03/20 19:56
수정 아이콘
정말 좋지요. 소소한, 실감나는 먹방!
소로리
17/03/20 21:02
수정 아이콘
하지만 매번 양하와 튀김두부가 없어서 요리에 좌절하곤 하네요 ㅠ
리스키
17/03/20 19:36
수정 아이콘
재밌게 본 만화입니다. 만화에서 변호사 업계가 잘 묘사되는 건 요시나가 후미가 게이오대 법학부 출신이라 그럴 것 같습니다. 주변에 변호사들이 많겠죠. 이 만화의 경우 레시피들이 실제로 해먹어보기도 괜찮습니다. 다만 일본이 아니다보니 기본 조미료 같은건 수입 마트가서 사와야 하는 것들이 있긴하지만요..

다만 한 가지... 등장인물들이 매력이 있는 것도 맞고 그 캐릭터들을 잘 살려서 표현하는 부분이 좋긴하지만, 게이의 경우... 오히려 이 사람은 스테레오타입의 게이 이미지에 묶여 있다는 느낌을 받긴 합니다. 편견에 기반한 게이라고 할까요?
사악군
17/03/20 19:50
수정 아이콘
음 오히려 등장하는 게이마다 모두 성격도 취향도 달라서 그런 느낌은 크게 받지 않았는데 주인공급 인물은 인기가 있는 특성을 갖춰야하다보니 그렇게 된것 아닐까요?
리스키
17/03/20 20:43
수정 아이콘
시로와 켄지가 처음 만나는 에피소드에서 '게이에게 인기있는 남자란 이러이러 하다'고 서술하는 부분이라든가, 게이스럽다와 게이스럽지 않다에 대해서 시로가 스트레스 받는 부분이라든가, 충동적이고 제멋대로 구는 성격의 게이들(와타루, 켄지 친구, 시로의 전 애인 등)...

저는 이런 부분들을 보면서 게이를 '이성애자들이 갖고 있는 게이의 스테레오타입'에 충실하게 그려낸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주로 동인지에서 bl물 그리는 여자애들이 갖는 이미지요... 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캐릭터들이 현실 속에서 겪을 일에 대해서는 인간적으로 재밌게 풀어내기도 하고 뭣보다 요리법도 흥미로워서 계속 보고 있긴 하지만요 크크
카롱카롱
17/03/20 21:24
수정 아이콘
정확한 지적같습니다. 실제로 작가 본인이 게이만화로 먹고가는데도 게이에 대하여 잘 모른다고(..) 진짜 본격 먹방만화 '사랑이 없어도 먹고 살 수 있습니다'에서 게이친구에게 사과하는 에피가 있죠
사악군
17/03/20 21:36
수정 아이콘
저는 그정도 고민을 하는 작가이기에 이정도로 세심하게 그려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하긴 훨씬 샘플링하기 쉬운 다수자들인 남자도 여자를 잘 모르고 여자도 남자를 잘 모르는데
이성애자가 동성애자를 잘 알기는 어렵겠지요.

요시나가 후미 작품에서 등장하는 동성애자들에 대한 동성애자들의 평가가 궁금하긴 하네요.
미나연
17/03/20 20:03
수정 아이콘
저도 이 만화 좋아해요 우선 좀 현실적인 느낌이 나더라구요
사악군
17/03/20 21:38
수정 아이콘
묘사는 현실적으로 설정은 파격적으로! 란 느낌이 매력이지요. 이 작품은 설정도 파격적이진 않지만..아니 이미 40대 꽃미남 게이 주부 변호사에서 파격설정인가..? 흐흐
17/03/20 23:07
수정 아이콘
요시나가 후미 "사랑해야하는 딸들!!" 이것도 강추합니다.
사악군
17/03/20 23:32
수정 아이콘
"그래 화풀이다 왜? 부모라고 항상 너에게 공정할거라 기대하지마."
17/03/21 13:40
수정 아이콘
명대사죠.. 수녀가 되는 스토리도 뭔지 모르지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구요.
사악군
17/03/21 14:23
수정 아이콘
사랑한다는건 사람을 차별하는거니까요.. 저는 그게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감싸주기
17/03/21 16:30
수정 아이콘
게이라고 해서 바로 글 내렸습니다.
사악군
17/03/21 16:36
수정 아이콘
그 점을 의식하지 않고서 볼 수 있는 수작이어서 추천했는데 아쉽네요..^^
재미있는 만화이니 읽어보셔도 후회하진 않으실겁니다!
서로감싸주기
17/03/21 16:51
수정 아이콘
그렇군요... 어렸을때 그림체가 이뻐서 봤다가 내상당한 기억이 많아서... 추천 감사드립니다.
하우두유두
17/03/21 16:57
수정 아이콘
누군가 했더니 예전에 서양골동양과자점작가군요.
추천해주셔서 감사히 잘봤습니다 행복하네요!
요즘은 이런 담담한 감성의 만화도 잼있어요.
사악군
17/03/21 17:02
수정 아이콘
추천작을 재미있게 보았다는 얘기를 듣는 것은 덕후에게 더할나위 없는 행복이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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