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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12/21 15:54:11
Name 이치죠 호타루
Subject [일반] 조금 빨리 한 해를 되짚어보며 (신변잡기)
올해는 참... 외적으로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정신 못 차릴 정도의 한 해였죠. 그나마도 다른 해에 터졌으면 역대급이었을 그 모든 이슈를 10월경의 최순실 게이트가 모조리 다 씹어드셨고.



제가 한 해간 PGR에 쓴 글을 보면... 올 한 해도 학술적인 글에 매우 치중해 있었습니다. 이 글과 독소전 시리즈 - 아 이게 연재 재개할라치면 신변상의 일이 자꾸 터져대서 늦어지네요 - 까지 포함해서... 올해는 글을 많이 쓴 편이군요. 자게에 40개의 글을 썼으니 월 평균 서너 개는 쓴 셈이죠. 대충 열흘에 하나 정도는 던진 셈이군요. 이 중에서 역사와 지리 분야를 합치면 80% 가량 됩니다. 참... 묘하기는 하네요. 전 본업이 화학인데...

제 특기(?)가 장광설입니다. 했던 말 또 하는 걸로 악명이 꽤 높죠. 글을 쓸 때 중요하다 싶으면 두번 세번을 넘어서 거의 단락마다 강조하는 건 기본이고 대화를 함에 있어서도 되짚어보면 했던 말을 다시 안 했던 적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는데 저는 글을 쓸 때마다 몇천 자를 기본으로 찍게 되죠. 그게 글이 길어지는 큰 이유고, 이거 어째 작년에도 이야기했던 것 같긴 한데 결국 올해도 못 고쳤습니다. 근데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다 보니 한 번 글을 쓸 때 들어가게 되는 에너지가 더 커진다는 단점이 생기더군요.

그래서 글을 더 많이 쓸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이 정도로 만족해야 하지 싶습니다. 사실 글감이야 많죠.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썰을 풀어놓을 만한 주제를 가져오는 건 일도 아닌데 어찌 글감이 없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쓸 이야기가 없어서 못 썼다는 건 역사 외에 다른 곳에 - 차마 게임이라고는 말 못... 읍읍!! - 정신이 팔렸다는 반증이기도 하죠, 뭐. 적어도 저 스스로에게만은 그렇습니다. 그게 참 못내 아쉬워요. 그래도 올해에는 청색 작전 이전까지는 썰을 풀어놓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리고 학술적인 글에 많이 치중했는데, 사실 이건 의도...적인 겁니다. 저는 정치 토론을, 아니 어쩌면 토론 자체를 상당히 질색하는 편입니다. 한 번 올라오면 수백 개씩 댓글이 달리는 곳에는 웬만해서는 댓글도 잘 달지 않죠.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일단 키보드 들고 달려들자니 제가 밑천, 그러니까 아는 게 모자라서 어째 달려들기가 꺼림칙하다는 게 첫 번째 이유입니다. 그리고 만에 하나 녹음기(눈 막고 귀 막고 같은 말을 반복하는 상대)를 상대하게 될 때 제가 받게 될 스트레스는... 상상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네요. 그게 두 번째 이유입니다.

문제는 사람이 생각하는 건 다 비슷하다고는 하지만 개개인의 생각은 다 다르고 그러다 보니 그걸 서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자신의 주장을 반복하는 게 당연한데 - 당장 제가 글을 쓸 때도 중언부언이 패시브 아닙니까 - 그럴 때마다 머리로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가슴으로는 아놔 또 녹음기 걸렸네 하게 된다는 거죠. 토론에 있어서 굉장히 나쁜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나쁜 자세를 가질 '위험성'을 안고 뛰어드느니 아예 그냥 입을 닫아버려야지 하게 되더군요. 학술적인 이야기야 사실관계를 바로잡고 새로운 걸 알아가는 즐거움이 토론을 할 때 드는 정신적인 피곤함을 훨씬 상회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환영입니다만(물론 광주 폭동설 같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는 사양입니다), 이상하게 정치 분야는 그러운 '즐거움'이 없더군요.

그러다 보니 정치 관련해서 글을 쓰고 싶어도 - 손가락이 근질거렸던 게 하루 이틀이 아닙니다 - 콜로세움을 열어제끼고 상대하는 게 겁이 나서 스스로 접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 글은 9.5할이 학술적인 글이 된 것이구요. 이건 아마 계속해서 그렇게 될 겁니다.

그래도 이 곳에서 글을 쓰는 건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어떤 주제로 글을 써 볼까 하면 그냥 이 곳부터 켜서 키보드를 두들기는 것이 이제는 거의 패시브가 될 수준에까지 이르렀죠. 학술적인 이야기를 비전문가의 입장에서 교환한다는 것도 충분히 재미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전문가들 앞에서는 고개를 숙이고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만(당장 저부터가 대학원 생활을 겪어 본 터라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정도는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내년에도 계속해서 그 즐거움을 누릴 수 있으면 좋겠네요.



외적으로는 너무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팝콘 씹는 한 해라고 불러도 될 정도였죠. 총선 이전부터 아주 볼 만했습니다. 솔직히 누가 상황을 낙관할 수 있었겠습니까(저는 민주당 지지자입니다. 본래는 정의당 쪽에 가까웠는데 올해 다들 아실 그 폭풍으로 인해 갈아탔죠). 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참패하면서 점점 일이 커지더니 어째 지금은 뉴스거리가 없으면 심심한 지경까지 이르렀으니 말 다 한 거죠. 잠잠해질 만하면 터진 수준이 아니라 그냥 하루가 멀다 하고 뻥뻥 터지는데 터질 때마다 화력이 증폭되는 느낌이었으니... 올 한 해는 뭐라고 정리하기조차 힘든 한 해였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한 줄로 정리하면 이렇겠네요. "볼 만한 한 해였다."



개인적으로는 두 가지 목표가 있었네요. 하나는 전문연구요원 편입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책을 쓰는 것이었는데...

책 쓰는 것은, 쓰고는 있고 쓴 게 많아서 - 신국판 기준 120페이지 가량 + 전에 써 두었던 글들 - 접을 생각은 없습니다만,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선 비전문가 신세에(역사학 학사조차 없으니 말입니다), 표절 문제가 심심하면 뜨다 보니 인용 하나하나에도 주석 처리를 하는 것은 기본이고 남의 책을 통째로 베끼는 결과가 나오지 않도록 오만가지 신경을 다 써야 하다 보니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더군요. 그것 때문에 펜을 자꾸 들었다 놨다 하는 수준이죠. 뭐 팔아먹을 생각이 아예 없다면 거짓말이겠습니다만 제가 가장 크게 목표로 하는 것은 국회도서관에 제 이름으로 된 책을 한 권 정도는 만들어 보자는 거라서 투고 단계에서 최대한 심혈을 기울여보고 있기는 합니다. 지도도 저작권 문제가 걸릴까봐 아예 OpenStreetMap을 기반으로 해서 손수 제작하고 있구요(이래도 걸릴 가능성이 여전히 높다는 건 함정).

뭐, 그 결과물이 잘 되면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 정도일 것이고(이 책도 출처 표기 문제로 논란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진순신 선생님의 책을 통째로 표절한 이야기 중국사가 될 판이라서... 기대되는 결과물의 퀄리티도 한숨나오는데 쓰면서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을 안 받을 수 없다는 게 문제겠네요. 아예 진지하게 변호사 상담을 받아야 하나 고민 중입니다. 총알만 충분하면 진작에 깔끔하게 변호사 상담받고 접던지 말던지 했겠습니다마는...

전문연구요원 편입은... 올 한 해의 시작부터 경쟁자에게 줄줄 밀리더니 벼랑 끝에 몰리고서야 간신히 붙었습니다. 누군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1승 99패였는데 99패보다 1승이 더 큰 그런 느낌이었죠. 어쨌든 지독한 취업난에 어찌어찌 살아남을 판이기는 한가 봅니다. 이제 행정처리와 신입사원 연수가 남았네요. 언젠가부터 - 아마 올 초에 반드시 될 거라고 기대했던 곳에서 떨어지고서부터였던 것 같은데 - 저는 "어디에서 일이 터질지 모른다"는 생각을 항상 머릿속에 담아두고 살고 있었는데, 사실 지금도 그렇습니다. 붙었다고 해서 아직도 제대로 안심하지도 못하겠네요. 모든 처리가 끝나고 책임소재가 제 손을 떠나는 순간까지는 마음을 놓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것이고 어쨌든 취업에 성공한 것은 사실...입니다.

저는 사실 굉장히 운이 좋았던 케이스였던지라, 취업준비하시는 분들에게 뭐라고 딱히 조언을 해 드릴 처지는 못 됩니다. 면접 때 제 장점을 어필하지는 못할망정 스스로 단점을 까발리기까지 했으니 거의 떨어졌다고 생각하고 있던 판이었죠. 근데 합격통보가 날아오더라구요. 때로는 거꾸로 가는 것도 길이 되기는 하는 모양입니다. 제 스펙이 꽤나 좋은 편인지라(물석사라도 석사는 석사죠) "그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스펙이 그걸 커버할 정도가 되었다"고 봐야 옳을 것 같기는 합니다만... 어쩌면 솔직함이라는 게 장점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습니다. 아 그렇다고 저처럼 면접 봤다가는 99%의 확률로 떨어지는 게 자명하니 추천해드릴 수는 없는 노릇이고... (농담조로 늘 저는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저처럼 인생 살지 말라고. 그거 내가 다시 그대로 따라해도 99% 확률로 망한다고 말이죠.)



개인적으로는 그런대로 참 재미있는 한 해였습니다. 결과가 좋아서 다 좋은 감이 없잖아 있습니다만... 11월까지는 먹구름도 이렇게 낄 수는 없다 싶을 정도로 깝깝했는데 정치고 사적인 일이고 뭐고 12월이 되자 거짓말같이 술술 풀린 게 드라마를 쓰라고 해도 이렇게 쓰면 개연성 없다고 몇 소리 들을 판이네요. 그래서 인생은 드라마라고 하는가봅니다.

제가 결과가 좋기는 하지만, 그만큼 결과가 안 좋은 사람들도 아마 차고 넘칠 겁니다. 특히나 요즘같이 힘든 시기에는 더더욱 그렇죠. 뭐 국회의원들이 단체로 약을 한 사발 드링킹하셔서 대기업은 몇 세 이하의 청년들이 지원하면 어떻게든 자리를 만들어서 정규직에 꽂아넣어야 한다, 이런 법안이 통과된다면 또 모를까... 그래도 내년에는 올해보다는 나은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내년에도 이 곳에 글 쓰는 즐거움을 누리면서 일도 하면 정말 좋겠습니다.

연말 연시 잘 마무리하시고, 내년 한 해에 원하시는 일이 모두 이루어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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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2/21 17:01
수정 아이콘
올해는 정덕 입장에서 이래저래 스펙타클한 한해가 되는거 같습니다. 더민주 지지자 입장에서 지옥과 천국 그리고 카오스를 모두 경험하는 한해이기도 했죠. 하하;;;;

내년에는 모두가 좋은 일만 가득하길 바라요. 요즘 독감이 유행한다고 하니 모두 몸 건강하게 연말을 보내시길 기도합니다. 이치죠 호타루님도 남은 2016년 건강하게 마무리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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