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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11/19 12:11:53
Name 콩원
Subject [일반] 와인을 조금씩 시작하면서
‘주는데로 폭폭 퍼무라’
‘음식을 냄새 맡지 마라’

제가 어릴 때 많이 듣고 자란 말입니다. 경상도 어딘가에서 자랐는데, 반찬투정 했다가 저녁도 못먹고 몇 시간동안 쫓겨난 옆집 아이와 놀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섬진강 주변을 여행했을 때 강의 이쪽과 저쪽(전라도와 경상도)의 음식 솜씨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을 느낀 후에 들었던 생각입니다. ‘맛을 따지지 말고 잘 먹어주는게 미덕이 되버리면 세월이 흘러 그 지방 전체의 음식 수준이 떨어지게 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 생각은 더 확고 해졌습니다. ‘아버님 식성이 까다로운 집일 수록 어머님 음식 솜씨가 좋더라.’ ‘입맛 까다로운 사람을 만나서 처음엔 힘들어 하더라도 젊었을 때 한 십년 고생하시고 나면 결국 온 집안이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되더라’ 마치 소비자가 시장에서 성공하는 제품의 수준을 결정하는 것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입니다. 정치 지도자도 비슷하다고 들 하는데 오늘은 이야기를 한정하고 싶습니다.

사실 어렸을 땐, 아주 입맛이 까다로웠습니다. 마치 무슨 큰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어른들의 훈계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다 자취하고 고생하면서.. 상하지 않은 음식이라면 대강 잘 먹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맛을 조금씩 느끼고 있습니다. 강제로, 억지로, 어쩔 수 없어서 외면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맛을 느끼는 감각이 어디 도망가지는 않았나 봅니다. 살림살이 나아지고나니 다시금 스멀스멀 올라오네요. 좀 더 맛있는걸 맛있게 먹어보자.


실은 와인이라는 음식 혹은 음료수에 대해서도 어떤 항변 같은 것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글을 시작했습니다.

‘스테이크 먹을 때 레드와인, 생선 먹을 땐 화이트’라는 말을 한 20여년 전에 처음 들었을 때는 제가 한창 형편이 어려울 때여서 그랬는지 속으로 ‘지랄하네. 잘난 척 하네’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그 말을 어느 정도 지키고 있습니다. 신라면 먹을 때 기왕이면 백김치 대신에 배추김치를 먹는 것과 정확히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어디서 책을 보다가 누가 생굴에 샤블리를 한 번 먹어보라고 추천하길래 먹어봤는데 괜찮았습니다. 삼겹살에 갓김치나 명이나물이 참 어울린다고 추천을 받아서 먹어보니 참 좋았는데 그와 비슷하게 괜찮았습니다.

저는 사실 ‘신의 물방울’이라는 만화책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2015년산 당조 고춧가루와 태백의 고랭지 배추로 담그고  40~60일 저온 숙성한 김치가 없으면 철원 오대쌀로 지은 밥을 먹지않겠어’ 정도의 오버라고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종류의 와인에 대한 이야기를 아무 실속없는 이야기로 치부해버리는 사람들을 몇 번 만나게 되면서 글로 한 번 싸질러 풀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나 봅니다.

말하고 싶던 포인트는 간단합니다. 김치랑 와인이랑 뭐 비슷한거 아니냐. 살다보니 김치 대신 와인 먹는 타이밍이 조금씩 늘고 있는데, 뭐 어떠냐. 선택의 폭 만큼 삶이 풍성해진 것 아니냐.

편의점에서 컵라면 먹을 때 꼬마김치를 꼭 챙기듯이, 식당에서 가서 음식을 먹을 때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와인을 한잔 씩 주문하고 있습니다. 쓰다보니 한잔 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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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1/19 12:24
수정 아이콘
그랑크뤼와 5대프리미에크뤼가 중요한건 아니죠.
코스트코에서 가장 아래티어 와인사서 식사와 먹으면 그것도 좋습니다. (가족과 함께면 더 좋고요)
한식이랑 레드 잘어울려요~~
다만 그러기에도 좀 비싸다능;;....
마스터충달
16/11/19 12:25
수정 아이콘
저는 맛의 요소에 양도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엉말 유명한 레스토랑에서 모두가 칭송하는 음식을 먹어도 양이 적으면 만족을 못 느껴요. ㅜㅜ. 왜 파스타는 두 젓가락 분량인지, 프렌치 레스토랑의 스테이크는 왜 손가락을 뺀 손바닥 보다도 작은지... 포만감이야말로 미식의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ㅜㅜ
16/11/19 12:41
수정 아이콘
그 파스타와 생선요리와 스테이크를... 한코스에...애피타이저와 샐러드와 후식과 함께 드셔야하는 거 아닐까요...?
프렌치식당가서 코스요리 시키면 그렇게 주더라구요;
마스터충달
16/11/19 13:02
수정 아이콘
그렇게 다먹어도 후련하지가 않으니까요 ㅜㅜ
16/11/19 12:31
수정 아이콘
그게 참 사다보면 점점 가격대는 올라가서 쟁여놓기는 하는데
소비는 그만큼 안 되네요.
와이프랑 같이 먹기엔 과일, 사이다 타서 상그리아 같은 거 만들어 먹는데
그러기엔 좀 아까운 와인들을 쓰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용도로 더 사자니 등짝 스매시 각이고요.
16/11/19 12:33
수정 아이콘
과도한 허세와 쇼맨쉽 때문에 개그, 풍자의 대상이 되긴 하지만 미식을 바보취급하는 쪽도 사실 무식하다고 할 수 있죠. 맛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걸 이상하게 여기는 풍토가 과거엔 좀 있었습니다. 주는대로 잘 먹어야지, 엄마의 손맛이면 따지지 말고 그냥 맛있는거다, 밥 두세공기 척척 퍼먹어야 복스럽다 등등...배고픈 보릿고개 시절에 살았던 세대가 주류였을땐 사실 맞는 말이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당장 굶어줄을 판인데 무슨 맛의 조화니 미식이니 타령하고 앉았냐. 하지만 지금은 풍요로운 21세기 대한민국이죠.
10여년 전 와인샵에서 주인 분이 따라주셨던 와인 맛은 정말 놀라웠습니다. 아니, 술이 뭐 이리 맛있지? 감탄이 나왔습니다. 그때 잠시 와인을 마셨지만 가난한 형편에 최소 1만원대 이상은 줘야 제대로 된 걸 구할 수 있는 술을 취미로 삼기엔 힘들더군요. 지금도 와인에 관심이 많지만 금전의 여유가 없어서 파고들기 힘드네요. 그래서 상대적으로 덜 비싼 커피 쪽을 파고 있습니다. 뭐, 커피도 비싼 건 장난없지만요. 향과 맛, 풍미가 와인만큼 다양한 세계라서 미식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 좋네요.
16/11/19 12:50
수정 아이콘
이번 프랑스 여행에서 Domaine Weinbach라는 곳을 들렀는데, 정말 감탄이 나오더군요.
거기서 여러 병을 사서 나중에 마셨을 때는 왜인지(???????) 그 맛이 안 나왔어요....
16/11/19 12:57
수정 아이콘
저도 이태리 몬탈치노에서 먹은 와인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분명 맛있었는데 한국가져오니 왜 별론거지? 하면서요.
인간입이 간사한거 같긴한데.. 유통 문제도 무시는 못하죠 (라고 합리화 해봅니다..)
데로롱
16/11/19 22:08
수정 아이콘
와인도 여독이 있어서 비행기 타고오면 와인셀러에 고이 몇주정도 보관해서 여독을 풀어주셔야 합니다 크크...
cluefake
16/11/19 13:06
수정 아이콘
음,어머니께서 저보고 주면 잘 먹기는 하는데 맛 자체는 귀신같이 뭐가 안들어갔고 오늘은 뭐가 이상하고 민감하게 구분한다고 하시더군요. 맛있는게 중요하다고 느낀 계기가 편도선 수술하고 한달간 죽과 아이스크림만 먹었는데 세상이 회색입니다. 진짜 재미가 없어요. 사는게 진짜 재미가 없음..미식은 정말 인생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워비
16/11/19 13:52
수정 아이콘
와인은 따면 너무빨리먹어야해서 슬픕니다
그래서 전 위스키와 브랜디를먹죠
Janzisuka
16/11/19 14:44
수정 아이콘
순대 2인붕에 보르도 와인 한잔도 맛나지요!!!츄릅...
저는 20대 초에 그래도 국내에서 좀 선구자라는 삼촌덕에 와인배우면서(착취당하며) 모으기도 하고 많이 마시고
관련 장사도 해봤네요...진짜 왠만한 와인들은 거의 다 마셔봤는데..결국..저도 10여년이 지나며 브르고뉴의 부드럼에....취합니다..
콘트롤 아티스
16/11/19 18:18
수정 아이콘
굳이 비싼 와인을 찾아서 매번 먹을 필요는 없지만, 대부분의 한식과 와인은 안 어울립니다
양념 맛으로 먹는 음식이 많아서 와인과는 마리아주가 영 별로입니다 일부 와인이 그나마 어울리긴 하지만 차라리 사케나 증류 소주가 한식과 궁합이 낫지 않나 싶습니다
16/11/19 18:34
수정 아이콘
와인 좋습니다... 신맛에 적응하는게 힘들지 않다면 한번쯤 권하고싶습니다 잔과 병속에서 맛과 향이 서서히변하는모습도 즐겁고 자기가 느낀맛을 분석하는것도 즐겁습니다.... 음식이 꼭 좋아야되는것도 아니고.. 솔직히 바게트같은 별맛없는 빵과 함께 서너시간정도 천천히 즐기기좋죠 의외로 혼술모드에 적합한 술입니다 전 롤챔스틀어놓고 먹습니다.. 브리딩 한시간정도하고 먹으면 좋죠
돈이아까워서라도 시음기에 나온 맛들 찾아볼테다라는 마음가짐으로 이것저것 느껴보시면좋습니다
데로롱
16/11/19 22:10
수정 아이콘
프랑스 살고 있는데 여기 있어서 제일 좋은점은 좋은 와인을 싼값 (병당 15유로)에 마실수 있다는 점인데.. 15유로짜리 와인이 한국가면 10만원이 넘어가는 매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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