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가를 떠나 혼자 산 지 벌써 12년째.

가정형편상 등록금을 벌어서 학교를 다녀야 했습니다.
가뜩이나 학비가 비싼 편인 학교에, 공대인지라 등록금 부담이 정말 컸어요.

학자금 대출만은 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돈을 모으면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식비, 교통비와 책값 및 문화비 등은 어떻게든 절약할 수 있었지만
매달 칼같이 돌아오는 월세만큼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죠.

정말 이사를 많이 다녔습니다. 같은 지역에서 계속 방을 옮기는 경우도 많았죠.
안산, 수원, 홍대, 신림, 신촌, 당산, 신대방, 상도, 안암, 일산, 파주, 화정

심할 때는 1년에 5번을 이사한 적도 있었어요.
대부분 무보증 단기임대였습니다. 100단위가 넘어가는 액수를 손에 쥐어 본 적이 없었거든요.

학교를 다니면서도 늘 일을 해야했고, 하루종일 일을 하는 주말은 가장 힘든 날이며 월요일이 가장 즐거웠습니다.
나는 정말 쉬지 않고 열심히 사는데 왜 항상 학식 먹는 것조차 경제적 부담으로 다가오는지.. 억울해서 그냥 혼자 운 적이 많았습니다.

대학교 4학년이 되기 전인 겨울에 1년 휴학을 하고 돈만 벌었습니다.
마지막 학년만큼은 대학생답게 살고 싶었어요.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시험을 걱정하며, 놀고 싶은 마음과 공부를 해야하는 상황을 놓고 자기자신과의 싸움을 벌이는 대학생다운 사치를 누려보고 싶었습니다.
시험기간이 코앞이지만 일을 해야 해서 공부할 시간을 내기 힘든 스케쥴이 진절머리가 났구요.

밤에는 바에서 일을 하고 낮에는 재수생 과외를 했습니다.
주말에는 학원에서 강의를 했구요.

운이 좋았는지 생각보다 잘 되어서 처음으로 통장에 돈이 쌓이기 시작했어요.
차를 샀습니다. 중고차요. 350만원짜리.
과외가 끝나고 새벽에 차가 끊겨 집에 돌아가지 못해 피시방에서 눈좀 붙이고 가는 상황이 너무 싫었거든요.

돈을 좀 더 모아서 다음 해에 복학을 했습니다.
번듯한 집으로 월세내며 들어갔어요.
공용 화장실이 아니고, 집에 냉장고도 있고 책상도 놓을 수 있고 싱크대도 있는 훌륭한 집이었습니다.
너무 좋아서 하루종일 구석구석 청소하며 행복했습니다.
당시 스타2 자유의 날개가 출시되었는데, 컴퓨터를 새로 사서 최고 옵션으로 게임을 돌리며 맛 본 희열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아요.
그 컴퓨터는 지금도 쓰고 있습니다.

그 후로도 지금까지 10여번 정도를 이사를 했습니다.
집 다운 집에서 살게 된 기쁨도 잠시일 뿐 매달 내야 하는 월세는 늘 족쇄였어요.

항상 모든 짐은 한 차에 실을 수 있을 정도로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언제 이사를 갈 지, 몇 번을 가게 될지 모르기에 매번 이삿짐 센터를 부르는 비용을 감수할 순 없었으니까요.

학교를 졸업하고 일이 안정되어 가면서 처음으로 2년 계약 보증금500에 월세 50짜리 집을 들어갔습니다.
투룸이었어요.
행복감에 날아갈 것 같았습니다.
항상 노는공간(컴퓨터)이 곧 밥 먹는 공간이고, 그 곳이 잠자는 공간이며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었습니다.

방이 따로 있고, 주방이 따로 있는 집은 처음이라 너무 생소하였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방을 나와 거실에서 잠을 깨면서 이제서야 사람답게 사는구나.. 라는 생각을 참 많이 했습니다.

가구도 샀습니다.
옷장도 사고 책상도 사고 수납장도 사고 책꽂이도 사고 화장대도 사고 테이블 쇼파 침대 등등
2년간 이사를 가지 않아도 되니까요.
당시 피지알에 올라온 모 회원분의 "가구를 샀습니다" 글을 보면서 괜히 북받치는 감정에 눈물이 났습니다.
딱 그 시기에 저도 가구를 사며 너무 좋았거든요.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돈을 떼이고
보증금 500외엔 가진게 없는 채로 2년 계약이 끝났습니다.

급하게 방을 구하다가 보증금500에 월세 65짜리 오피스텔로 들어왔고, 관리비는 30만원이 나오더군요.

발에 거대한 철구를 달고 뛰는 느낌이었습니다.(장거한같은)

지난 3년, 죽을 만큼 일했습니다.
올해는 좀 낫지만, 작년까진 1년에 딱 4일 쉬었어요. 설날당일, 추석당일, 크리스마스, 석가탄신일.
나름 기독교와 불교 밸런스를 맞춘 휴일이죠.

미친듯이 했습니다.
아이들 방학 땐 아침 9시부터 저녁 10시까지 13시간을 연달아 수업을 했어요.
쉬는 시간은 수업 사이의 10분정도.

잘 못 따라오는 학생이 있으면 저녁 10시에 수업 끝나고 학생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자정이고 새벽1시고 상관없이 모르는 부분 이해 시키고 집으로 돌아갔어요.
억울했어요. 집에서 하는 거라곤 잠 자는 것 밖에 없는데.. 휴일조차 없어서 집에서 쉬지도 않는데
매달 21일만 되면 어김없이 월세와 관리비등 100만원이 그냥 사라지니까요.
발에 달린 이놈의 철구는 언제쯤 사라질까 항상 생각했습니다.
맨날 철구모양의 족쇄만 떠올랐어요. 킹오파를 엄청 좋아하는데 장거한을 가장 좋아하거든요.

작년 5월.
갑자기 상황이 좋아졌습니다. 경제적으로요.
미친듯이 돈을 모았습니다.
모으고 모으고 또 모았어요. 지긋지긋한 월세 탈출하고 싶어서요.

그리고 오늘.
드디어 전세 계약을 했습니다.
대출을 좀 끼긴 했지만 뭐 어때요. 월세보단 훠어어얼씬 싼걸요.

소리라도 지르고 싶습니다.
지금 글 쓰는데 이유없이 눈물이 나네요.

집을 사는 날이 오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지 상상조차 되질 않아요.

기억은 잘 안 나지만 피지알에 가입한 지 14~5년쯤 된 것 같습니다.
월세는 12년 정도를 냈군요.

피지알도 참 오래했고 월세도 참 오래 냈습니다.
피지알은 계속 하지만 월세는 이제 그만합니다.

이게 뭐라고 글을 쓰다말다 울다말다 30분째 붙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너무 기쁜데 타지에서 혼자산지 오래라 곁에서 축하해줄 사람이 없네요. 축하받고싶어 글을 올립니다.

좋아하는 초밥 시켜서 먹으면서 자축할 거에요.
저 지금 너무 기뻐요. 더 열심히 살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