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6/02/25 16:24:36
Name 王天君
File #1 movie_image_(2).jpg (2.13 MB), Download : 62
Subject [일반] [노스포] 소꿉놀이 보고 왔습니다.


영화는 식은 땀 나는 물건을 보여주며 시작합니다. 바로 두 줄이 그어진 분홍색 플라스틱 막대기! 23살인 수빈은 이 사태가 막막하지만 남자친구인 강웅은 별 걱정이 없어 보입니다. 마냥 싱글벙걸 뭐가 정해진 것도 아닌데 자기네 엄마한테 전화해서 자랑인지 선언인지 모를 알쏭달쏭한 통화를 하고 있어요. 밝고 희망찬 남편과 예비시부모님들의 지원을 받고 이들은 결혼을 서두릅니다. 나쁘지 않았어요. 행복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배가 불러오면 불러올 수록, 시집살이에 날짜가 더해질 수록 수빈의 하루하루는 까끌거립니다. 남편도 시어머니도 나쁜 사람이 아니고, 곧 우리 아가가 밖으로 나올텐데, 왜 그런 걸까요.

영화의 장르는 다큐멘터리입니다. 애를 뱄을 때부터 애가 나오고 자라나기까지의 자신의 인생을 직접 찍어낸 결과물이죠. 애 낳고 키우는 게 힘들다는 거 누가 모르겠습니까. 그런데 이 모든 이야기가 다큐멘터리에 담기면서 소위 "레알"이 됩니다. 말로만 들었던 이야기들이 눈 앞의 스크린 속에서 펼쳐지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정말 고역입니다. 아마 얘를 키워보신 분이라면 전쟁 같은 그 일상을 충분히 아시겠지요. 모르던 사람들에게는? 충격과 공포입니다. 갓 태어난 인간은 정말 번거롭기 짝이 없는 생명체입니다. 육아가 얼마나 고되고 짜증나는 일인지 그 실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픽션을 능가하는 감정을 줄 겁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애를 낳으면 안되겠다 할 정도로요.

애 키우는 게 다가 아니죠. 애 키우는 와중에도 생활이 계속 됩니다. 안 그래도 피곤하기 짝이 없는 일상이 중노동으로 변합니다. 수빈은 학생이고, 원래는 뮤지컬 조연출 일도 했고, 집에서는 번역일도 했습니다. 그런데 애를 키워야 하니까 뮤지컬 쪽은 일단 포기, 집에서는 번역일만 하고 학교는 짤리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나가야 하죠. 그리고 한 집의 며느리이자 아내이자 엄마로서 집안일도 해야 합니다. 노는 것도 아닌데 일에 일이 끼어듭니다. 빨래를 개고 있으면 안방에서 애가 울고, 애를 도닥이는데 갑자기 토하고, 토한 거 치우고 빨고 좀 누워있다 보니 아까 개던 빨래 생각이 나고. 번역일은 언제 다하죠? 그리고 남편이 들어와서 야단칩니다. 왜 이렇게 집안이 어질러져 있어?

이 영화는 여성의 실존을 다루고 있기도 합니다. 산후우울증은 특별한 병이 아닙니다. 아무리 성스럽고 거룩하다지만, 애 젖 물리고 빨래하는 게 인생의 꿈인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엄마가 된다는 건 이름대신 누구 엄마로 불리고, 하고 싶은 일은 다 접고, 잠깐 멍하게 창밖을 바라보다가도 이유식 끓는 냄비로 후다닥 튀어가야 하는 걸 뜻합니다. 김수빈이라는 개인은 한없이 옅어지죠. 임무와 책임이 있고 그 모든 것이 아기에 집중되는, 부차적 존재가 됩니다. 암만 애가 이쁘고 사랑스러워도 이 공허함은 달랠 길이 없어요.

남녀노소 누구나가 봐야 할 작품입니다. 집안일부터 해서 육아까지, 이 모든 게 당연하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걸 알려주는 영화죠. 그렇지만 심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속없고 천진해서 별 이야기를 다 한다며 멋적은 웃음이 계속 새어나오는 이야기에요. 명랑하지만 가볍지 않은 이 고민을 듣다보면 어떤 식으로든 엄마를 생각하게 될 겁니다. 나를 키운 엄마가 됐든, 내 아이의 엄마가 됐든, 엄마로서의 나 자신이 됐든.

@ 영화 말미에 이 영상 패러디가 나옵니다.



http://extmovie.maxmovie.com/xe/review/10165087 스포 포함 감상문입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세인트
16/02/25 17:17
수정 아이콘
와이프랑 영화정보 소개프로그램에서 우연히 이 영화 소개하는 걸 보고 보기가 무서워졌습니다.
그리고 소개에서만 그렇게 나오는지 몰라도 남편 되시는 분이 참... 제 와이프를 진심 빡치게 하는 재주가 있으시더군요.
王天君
16/02/25 19:10
수정 아이콘
남편에 대한 이야기는 아끼겠습니다....후휴휴휴
16/02/25 17:30
수정 아이콘
이거 보고 나면 시댁 스트레스가 많은 아내가 좀 풀릴까요? 아니면 오히려 더 쌓일까요? 王天君님 글 보고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보고나서 아내 반응이 어떨지 걱정되네요.
王天君
16/02/25 19:09
수정 아이콘
열받게 하는 영화 아닙니다 오히려 위로하고 격려하는 영화에요~~ 전체적으로 웃깁니다. 헉 소리 나오는 장면들이 있긴 하지만.
WeakandPowerless
16/02/25 20:33
수정 아이콘
비슷한 작품이 곧 나옵니다<B급 며느리>라고 크크 그건 비슷한데 남편 입장에서 그려지더라고요 비교해보면 재밌을거 같네요
王天君
16/02/25 20:38
수정 아이콘
검색해도 안나오네요? 다큐인가요?
WeakandPowerless
16/02/25 20:59
수정 아이콘
네 다큐고요 아직 제작중인 작품입니다. 작년까지 각종 영화제에서 제작지원 경쟁작으로 나왔던데 올해쯤 완성될거 같은데, 제작발표회 가보니 딱 <소꿉놀이> 남편 버전 같더군요 크크
王天君
16/02/25 21:02
수정 아이콘
재미있겠네요. 이것도 딱 봐야겠어요.
갈매기
16/02/26 02:19
수정 아이콘
결혼앞둔 커플들이 꼭 봐야겠네요
리니시아
16/02/26 09:14
수정 아이콘
재미있겠네요 봐야겠군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64300 [일반] [스포일러] 배트맨 v 슈퍼맨을 봤습니다. [88] 류지나9160 16/03/27 9160 10
64298 [일반] 내부로부터 분열되는 유럽 국가들 [17] santacroce9925 16/03/27 9925 47
64297 [일반] [프로듀스101] 김도연스토리 2화 - 판타지오 캐스팅 팀장인데 여기 치어리더 단장이 누구? [11] 작은기린9383 16/03/27 9383 2
64296 [일반] [프로듀스101] 출연계약서 상 면책조항의 효력 [33] 카우카우파이넌스7907 16/03/27 7907 6
64295 [일반] 농구모임 후기 + 반성글 올립니다 [50] 마티치7033 16/03/27 7033 5
64294 [일반] 우리는 왜 항문 주변에 털이 있나?... [40] Neanderthal42685 16/03/26 42685 21
64293 [일반] 짧게쓰는 멀티방 알바 후기. [6] 누구라도15888 16/03/26 15888 7
64292 [일반] 홋카이도 신칸센 오늘 개업했습니다 [16] 도연초6731 16/03/26 6731 0
64291 [일반] 대도시 집중화의 고민: 젊은이들의 런던과 인구감소의 유럽 중소 도시들 [21] santacroce10994 16/03/26 10994 22
64289 [일반] 국토의 완전한 균형발전은 꿈같은 일일까요? [43] 군디츠마라8296 16/03/26 8296 1
64288 [일반] [프로듀스101] 김도연스토리 - 감자별에서 온 그대 [36] 작은기린8999 16/03/26 8999 3
64287 [일반] 게시판 신설 시 검토사항 [13] 카우카우파이넌스5896 16/03/26 5896 5
64286 [일반] [프로듀스101] 주결경 김도연이 가장불쌍하죠. (스포) [104] naruto05113159 16/03/26 13159 0
64285 [일반] 서유럽의 테러는 감소추세 [39] 달과별8355 16/03/26 8355 8
64284 [일반] 고급 유머 게시판의 필요성과 운영방법 [71] kien9977 16/03/26 9977 50
64283 [일반] [자작] 인생이 덕질에 방해된다(1) [4] 좋아요3516 16/03/26 3516 5
64282 [일반] 날히스토리아 - 관용의 조건 (1,2) [15] 6년째도피중3747 16/03/26 3747 14
64281 [일반] <헤일, 시저!> 보고왔습니다. (스포?) [2] 빙봉2620 16/03/26 2620 0
64280 [일반] [프로듀스101] 대격변이 일어난 3차 투표 결과 [191] Leeka12627 16/03/26 12627 0
64279 [일반] 악운의 상 [12] 카서스4717 16/03/25 4717 1
64278 [일반] 스베누 18000원 [40] 순규하라민아쑥12637 16/03/25 12637 4
64277 [일반] 광고컨텐츠를 팬이 퍼온것은 광고게시물인가 아닌가? [72] 삭제됨8856 16/03/25 8856 13
64274 [일반] 응급실#2 [12] 지하생활자5821 16/03/25 5821 22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