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우째 지내노?"
"뭐 별 일 없이 살지"
오랜만에 전화가 온 대학동기에게 문돌이가 시큰둥하게 대답한다.
"소식 들었제? 토요일에 용진이햄 장가가는거. 니도 올꺼제?"
"아..참 맞다. 내 그 날 못갈거 같은데. 일이 있어가지고"
"무슨 일? 요새 일 댕기나?"
"그건 아니고. 그 날 어디가야해서"
"어디가는데?"
"집안 일. 집안 일"
"왜 느그집에 무슨 일있나?"
문돌이는 속으로 '이 집요한 새끼는 궁금한것도 참 많아요.'라고 생각한다.
"그런게 있다. 용진이햄한테는 내가 따로 연락할께"
"용진이 햄이 우리 동기들 다 데리고 오라든데"
"아무튼 나는 못 간다. 담에 얼굴이나 한번 보자"
문돌이는 전화기를 던지듯 침대위에 놓는다. 용진이형은 문돌이가 대학시절 친하게 지내던 3년 선배이다. 용진이 형의 결혼식에는 당연히 참석해야 하지만 문돌이에겐 지금 그럴 여력이 없다. 식장도 부산이 아닌 지방이라서 왕복 차비에 축의금에 가서 쓸 여비에 돈 한두푼으론 어림도 없다. 문득 자신의 이런 처지가 문돌이는 서글퍼진다. 부모님한테 손 벌리기에도 죄송스럽다. 직장은 물론이고 알바도 잘 구해지지 않고 돈이 없어 친한 형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하고... 문돌이의 가슴이 답답해진다. 급한대로 단기알바라도 해야겠다고 마음 먹고 인터넷을 켜 알*천국에 들어가 알바를 살펴본다. 그때 침대 위에 있던 전화기로 카톡이 온다. 책상에 앉아있던 문돌이가 침대로 가 전화기를 집어든다.
방금 통화했던 동기 녀석이다.
'내한테 계좌 입금해라. 내가 축의금 같이 내줄께. 경남은행 xxx-xxx-.....'
"이 x발새끼가 진짜!"
육성으로 욕이 터진다. 전화를 해서 쌍욕을 퍼부을까 생각해보지만 명분이 없다. 짜증이 하늘 끝까지 솓구치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다. 아까보다 더 강하게 침대위에 전화기를 던지고 컴퓨터 앞에 앉아 아까 하던 일을 계속한다. 5분쯤 지났을까 다시 카톡이 온다. 문돌이도 카톡은 나중에 확인하고 하던걸 마저하면 될텐데 굳이 카톡을 확인한다. 다시 침대로 가는 문돌이. '이번에도 그 새끼면 진짜 전화해서 쌍욕한다'
다행인지 이번에는 동기녀석이 아니다. 플러스친구....
'(광고)지만 놓치면 후회할 대박 이벤트! .....'
'하...시바' 이번에는 더욱 세게 침대로 전화기를 던진다. 너무 세게 던져 자칫하면 침대 밑으로 떨어질뻔 한 걸 문돌이가 반사적으로 잡는다.
아주 놀라운 반사 신경이다. 문돌이 스스로도 방금전엔 좀 쩔었다고 생각한다. 침대 위에 살짝 전화기를 얹어 놓고 결국 컴퓨터에 PC용 카톡을 설치하기로 한다. 귀찮아서 지금까지 설치하지 않았는데 이게 없으니 더 귀찮다. 이제 컴퓨터로 카톡을 할 수 있으니 꾸준히 자리에 앉아 있을수 있다. 근데 이번에는 전화가 온다. 또 다시 육성으로 욕이 터지는 문돌이. 또 다시 일어서 침대로 간다.
그럴꺼면 처음부터 책상에 전화기를 놔뒀으면 됐을텐데 말이다.... 왜 자꾸 침대에 전화기를 놔두는 것인지 문돌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전화기를 들어 누군지 확인하는 문돌이. 문돌이의 초중고등학교 동창이자 같은 동네 주민인 혁수다. 아마 지금껏 문돌이가 마셔온 술의 절반
이상은 혁수와 함께 마신 것일 것이다.
"머하노. 집이가."
"어"
"저녁에 술 한잔 할까"
"바쁘다"
"백수새끼가 뭐가 바쁘노. 한잔하자"
"바쁘다고 x새끼야."
"사줄께"
"어디서?"
사준다는 말 한마디에 문돌이는 태세를 급격하게 전환한다. 아마 덜 친한 친구나 대학동기들이 문돌이에게' 백수새끼'니 '니가 왜 바쁘냐'니
한다면 문돌이는 결코 참지 않고 지랄발광을 해댔을 것 이다. 하지만 혁수가 그러는건 괜찮다. 문돌이 인생의 반평생 이상을 함께 한 놈이기에.
서둘러 샤워를 하고 옷을 입는다. 동네 근처에서 남자 만나러 가는거지만 오랜만에 외출이라서 그런지 문돌이는 옷차림에 신경을 쓴다.
그리곤 약속시간 보다 일찍 집을 나선다. 이럴땐 말곤 요샌 통 밖에 나갈 일이 없다. 넘쳐흐르는게 시간이지만 돈이 없으니 밖에서 할 수 있는게 없다. 그래서 의도치 않은 칩거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처럼 누가 불러주는 날이면 절로 신이 난다. 약속시간 보다 일찍 도착한 동네 근처 이자까야. 먼저 들어가 자리를 잡고 혁수를 기다린다. 기다리는 동안 먹을 요량으로 소주 하나랑 소세지베이컨말이를 하나 주문한다.
주문한 소세지베이컨 말이가 나올때 쯤 혁수가 도착한다.
"오~ 타이밍 좋네. 내가 언제 올지 우째알고 딱 맞춰서 시켰노"
"임마. 이 정도는 중학교 2학년때 다 때고 나오지"
문돌이가 태연하게 대답한다.
"근데 왜 안주를 하나만 시켰노. 다른거는?"
"이제 시켜야지. 니 뭐 물래?"
문돌이 혼자 먹으려한 소세지 베이컨말이였지만 혁수가 평소와는 달리 약속시간에 딱 맞춰 나와 실패했다. 원래라면 약속 시간 20분쯤 뒤에 오는게 정상이고 그러면 기다리는 동안 할게 없어서 먼저 먹었다라는 핑계를 댈 생각이였는데 말이다.
"백수새끼 팔자 좋네. 얼굴 하얀거 보소"
"원래 뽀얗다. x새야"
"그래서 말인데...."
혁수가 갑자기 소주를 급하게 한잔 비우더니 분위기를 잡는다.
"니 내랑 일 하나 같이 할래?"
"다단계면 죽인다. 진짜."
"x바 내가 이 나이먹고 다단계에 넘어갈만큼 그리 멍청해보이나?"
"가끔"
"하.... 아무튼 다단계는 아니고...."
"보험. 폰팔이 이런것도 죽인다."
"백수새끼가 따지는건 x나 많네. 아무튼 그런 것도 아니고. 우리 회사 자재과에 사람 한명 비어서 몇 일 동안 알바 할래?"
"x발롬이 말은 무슨 일 하나 같이 하자 길래. 뭐 x나 대단한 일인줄 알았드만 즈그 회사 알바 구하는거 였나"
"대단한 일은 x바. 내가 그럴 능력이 있나 달에 이백도 못 받고 사는데'
"자랑이다. 일당은 얼만데?"
"세금떼고 4만 얼마라든데. 자세한건 갱리한테 물어봐야 된다.하루에 8시간"
"알바도 세금떼나?"
"납세의 의무는 좀 지키고 살아라. 국방의 의무만 지켰다고 니 할 일이 끝난게 아니에요"
"밥은 주고?"
"물론이지. 우리 회사 점심 훌륭하다."
"근데 x바 나는 자꾸 자재과에서 일 시킬라고 그라노"
"또 누가 니보고 자재과에서 일 하라드나?"
"접때 대학교 후배 만났는데 즈그 회사 자재과 사람비었다고 오라데"
"여자?"
"어"
"이쁘나?"
"뭐 그럭저럭"
"만나서 뭐 했는데?"
"커피 먹고 밥 먹고 술도 먹고"
"다른거는?"
"하.. 이 쓰레기 같은 새끼야. 느그 회사 갱리 아가씨나 꼬시라. 물론 니 얼굴론 안되겠지만"
"뭐가 안돼. 요새 갱리도 내한테 관심있는거 같든데"
"그 병 아직도 못 고쳤네. 술이나 무라"
"진짜라니까"
"닥치고 잡수세요 그냥"
오랜만에 수현이가 생각나는 문돌이. '수현이한테 자재과 사람 구했냐고 물어볼까? 내일 일어나서 연락 한번 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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