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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5/08 04:28:10
Name 눈시BBbr
Subject [일반] 일본, 근대화의 길로
자게는 오랜만이네요.
원래 병인-신미양요 이후에 나와야 할 얘기지만, 올해의 제 컨셉은 쓰고 싶을 때 쓴다는 거니 봐주세요 (...);

희한하게 일본 근대사 좋아하면서 이 부분은 딱히 파보질 않았네요. 더 팔 생각도 지금은 없구요 = =;;; 간단히나마 파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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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흑선이 내항합니다. 일본배도, 유일하게 통상을 허가한 네덜란드 배도 아니었습니다. 아직까지는 열강 중에 좋은 대접 못 받던 USA, 동양에서는 앞에 A는 딱히 대접 못 받은 미국의 배였죠. 제국주의 경쟁에 뒤쳐진만큼 새로운 곳을 노린 거겠죠. 개인적으로 온 것도 아니었습니다. 본국에서 전권을 위임받고 왔죠. 목표는 일본의 개항.

막부에서는 1년만 더 기다려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약속대로 1년후에 페리 제독은 돌아옵니다. 에도 막부는 쇄국 정책을 포기, 미일화친조약을 맺고 58년에는 미일수호통상조약까지 맺게 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영국과 러시아도 배 끌고 달려와서 조약을 맺습니다. 이렇게 일본은 서양이 이끄는 세계질서에 편입되죠.

에도 막부의 정책은 쇄국정책이었고, 국학이 유행했던 당시 일본의 상황 역시 기본은 양이였습니다. 이러니 어떻겠습니까? 안 그래도 중앙집권이 약했던 일본입니다. (에도 막부는 가장 강했지만) 기존 막부에 대한 불만에 서양에 개항한다는 것에 대한 불만이 터집니다.

그 중심은 조슈(혼슈 서쪽 끝 야마구치현), 사쓰마(큐슈 남쪽 가고시마현), 도사(시코쿠)번이었습니다. 이들은 덴노를 중심으로 서양을 배척하는 (존왕양이) 새로운 일본을 꿈꿉니다. 여기서 에도 막부 내의 대립도 좋은 기회가 됐죠.


당시 쇼군 도쿠가와 이에사다는 몸이 좋지 않았고, 휘하 로주(쇼군 직속)가 국정을 맡았습니다. 당시는 후쿠야마번의 아베 마사히로였죠.


주일 공사 해리스가 남긴 기록에선 쇼군이 뇌성마비가 아니었나 하는 추측도 가능하구요. 개그만화일에 나오는 그 해리스입니다.

1858년, 그가 죽은 후 후계 문제가 걸립니다. 도쿠가와 이에모치와 도쿠가와 요시노부였는데, 서로 미는 세력이 달랐죠. 그 중 실권은 역시 아베 마사히로를 이어 실권자가 된 이이 나오스케, 그가 미는 건 이에모치였습니다. 원래는 쇄국론자였다가 변했다는데 덕분에 그가 정말 개항을 원했는지에 대한 것도 논란이더군요.


이이 나오스케는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아버지 도쿠가와 나리아키와 대립했지만, 나오스케가 이깁니다. 이에모치가 덴노에 오르죠. 거기다 나오스케는 덴노의 허락도 없이 미국과 통상조약을 맺기도 했죠. 양이파가 반대하자 그들을 쫓아냅니다. 이것이 안세이 대옥(安政の大獄), 1858년에 존왕양이파를 대량 숙청한 사건입니다. 이걸로 미토번주 도쿠가와 나리아키도 연금 중에 사망합니다.


이 과정에서 유신지사들을 양성하다 죽은 요시다 쇼인, 메이지 유신의 사상적 기반을 만들었고... 정한론자였습니다. 그의 제자 중 우리에게 제일 유명한 사람은 바로 이토 히로부미.

+) 존왕양이 사상은 막부 말에 이미 나오고 있었습니다. 다름아닌 성리학을 바탕으로 말이죠. 일본에서 제일 유행한 성리학은 바로 퇴계 이황의 성리학이었구요 (...) 이 쪽 계열은 정한론도 반대했다고 합니다. 미토번에서 유행해서 미토학(水戶學)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 정작 아베 마사히로는 죽을 때까지 양쪽의 화합을 시도했고 서양 걸 받아들이면서 일본의 정치 안정에도 노력했습니다.

나오스케 개인의 경우 능력은 있었던 걸로 평가됩니다. 번의 개혁을 통해 백성들의 지지도 받았고 개인적으로도 무예와 풍류에 능숙했구요. 하지만... 그의 반대파가 너무 많았죠.


1860년, 사쿠라다 문 밖의 변(桜田門外の変)이 벌어집니다.

애초에 안세이 대옥이 벌어진 계기는 덴노가 다른 다이묘들에게 칙서를 내린 것 때문이었습니다. 덴노로서는 존왕양이 사상이 커지는 게 나쁜 건 아니었죠. 여기에 역시 존왕양이파였던 나리아키의 영향도 있었구요. 그 배후가 나리아키의 미토번이라 파악했고, 덕분에 그런 옥사가 일어났습니다.

미토번의 가신들은 나오스케를 증오했고, 복수를 꿈꿉니다. 여기에 사쓰마번이 끼어들었지만, 나리아키가 죽은 후 지원을 끊습니다. 이에 미토번 가신들은 자기들끼리라도 복수를 하겠다 결심하죠. 나오스케는 이 소식을 듣지만 이걸 인정하면 권위가 떨어지기에 경비를 강화하지 않습니다.

3월 24일, 폭설이 내려 칼을 숨길수도 있었고 호위무사들은 습기를 막으려고 칼을 주머니에 넣고 있었습니다. 거기다 앞을 노린 척하면서 뒤에선 총을 쐈습니다. (...) 칼이라면 모르겠습니다만 총을 썼는지라... 호위무사들이 전멸했고, 나오스케 역시 참수되죠.

이렇게 막부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고, 존왕양이파는 본격적으로 나섭니다.

+) 정작 막부에서는 병 때문이라고 둘러댑니다. (...) 근데 이 사실을 몰랐던 미토번주는 위문품을 보냈죠;;; 아무튼 덕분에 양쪽이 원수지간이었는데 70년에 화해했다 하네요.

이이의 뒤를 이어 막부의 중심이 된 안도 노부마사는 온건책을 시도합니다. 조정과 권력을 나누려 한 것(공무합체운동)이었죠. 하지만 그 역시 습격을 받고 책임론으로 몰락합니다. 62년에는 시마즈 히사미쓰(당시 번주 다다요시의 후견인)가 군대를 이끌고 상경, 양자를 중재합니다. 이 과정에서 데라다야 사건이 발생하죠. 히사미쓰가 급진파 9명을 여관에서 죽인 거였습니다.

하지만 조정이고 쇼군이고(쇼군은 덴노와 양이파의 요구를 받아들인 쪽이지만) 기본적인 기치는 양이였고, 5월 10일에 그걸 실행하기로 했죠. 이들이 정권을 잡은 조슈번에서는 이를 실행해 미국, 프랑스, 네덜란드 선박을 공격했지만... 한 달 후 달려온 미국 군함에 데꿀멍합니다 (...)


사쓰마번에서는 8월에 약간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니... 히사미츠는 쇼군 이에모치와 고우메이덴노의 여동생과의 결혼을 통해 공무합체운동을 진행하고 서양식 제도를 받아들이는 등 막부를 개혁해(분큐의 개혁) 존왕양이파를 누르려 했습니다. 그러려고 길을 가다 영국인 4명을 만나는데... 이들이 말에서 내리지도 않고 길을 비키지도 않았죠. 무사들은 무례를 꾸짖으며 한 명을 죽였구요 -_-; 막부에서는 이 둘을 중재했지만 사쓰마번은 거부, 둘 사이에 전쟁이 벌어집니다. =_=;;; 물론 신나게 얻어맞죠. 이후 사쓰마번은 양이를 버리고 서양의 기술과 제도를 받아들이고 부국강병을 이끌게 됩니다.


암스트롱포

+) 이 과정에서도 어쨌든 서양과 조약을 맺었기에 사절단은 계속 미국과 유럽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이 때 양변기를 앉지 않고 위에 발을 딛고 쌌다는 에피소드도 (...);;; 이 때 많이 간 사람이 바로 후쿠자와 유키치.

개항과 쇄국, 존왕은 하되 공무합체냐 아예 막부 꺼져라냐로 나뉘었던 당시 일본 상황, 혼란이 계속됩니다. 이런 격동기기에 일본인들은 좋아하는 시대죠.

시마즈 히사미쓰는 공무합체를 계속 추진하며 개혁을 이끌고, 존왕양이 급진파들을 쓸어버리려 합니다. 쇼군 후견인으로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교토 수호직에는 아이즈번의 마츠다이라(도쿠가와와 이어지는 가문이죠) 가타모리가 임명됐고, 63년 8월 18일에 급진파들을 쫓아냅니다.


이 때 활약한 것이 신센구미, 신선조죠. 공무합체파를 암살하려던 존왕양이파를 무찌릅니다.

조슈번의 과격파들은 이에 맞서 병력을 이끌고 상경하다가 사쓰마-아이즈번 연합에게 막히고 1차로 토벌당했고, 서양 연합함대에게도 당해서 막부가 또 중재하기도 했습니다. 사쓰마도 서양에 주는 보상금을 막부에 요구했는데 (막부가 중재했으니 -_-;) 조슈도 그래서 이게 막부가 경제적으로 망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죠 (...);;;

아무튼 이걸로 죠슈에는 좌막파(막부편)들이 정권을 잡습니다만... 곧 토막파(막부 토벌)들이 무력으로 다시 정권을 잡습니다. 유신지사들이 주도했고, 이들이 동원한 게 기(奇)병대, 무사들만이 아닌 농민들에게도 입대를 허용하는 군대였죠.

이런 조슈의 변화를 막기 위해 2차 죠슈 정벌이 결정됩니다만... 이제까지와는 달랐습니다. 사쓰마번이 뒤에서 도와주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이걸 주도한 것이 바로 사카모토 료마입니다. 그리고...


죠슈에서는 당연히 사쓰마에서 먼저 청해야 된다고 주장했고 (당할만큼 당했으니) 사쓰마에서 이를 받아들인 것이 바로 히사미쓰의 가신 사이고 다카모리였습니다. 막부 타도를 위해 사사로운 감정을 잊고 힘을 모아야 한다는 명분, 이것이 삿쵸동맹입니다.

막부는 결국 사쓰마의 도움 없이 전쟁을 시작, 5만의 병력으로 공격했지만 결국 패하게 됩니다. 한 나라를 이끄는 이들이 하나의 번에 패하고 만 것이죠. 여기에 쌀값 폭등 같은 내부 문제도 있었구요. 결국 쇼군 이에모치의 병사를 핑계로 철수합니다.


그의 뒤를 이어 요시노부가 쇼군이 됩니다. 그는 서양의 문물과 제도를 받아들이면서 군대 역시 서양식으로 제대로 만들려고 했죠.

그런 가운데 료마는 계속 움직입니다. 아예 쇼군 요시노부와 담판을 지어 덴노에게 권력을 넘길 것을 권고한 것이죠. 명목상 번주인 야마우치 도요시게의 이름으로 된 거였습니다만.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막부를 끝낼 결단을 내립니다.


이것이 1867년 11월 9일의 대정봉환입니다. 이 때의 덴노가 바로 메이지, 일단은 메이지 시대의 시작입니다.

하지만 사쓰마와 죠슈의 유신지사들은 거기에 만족하지 않았으니...


대정봉환이 결정나기 전에 이와쿠라 토모미의 집에 유신삼걸 중 하나인 오쿠보 도시미치가 옵니다. 그는 여기서 덴노의 칙서를 받죠. 간단했습니다. 토막.


오쿠보 도시미치

이들은 대정봉환을 넘어 왕정복고를 추진합니다. 이 와중에 11월 15일 료마도 죽습니다. 둘 사이를 중재해줄 이도 없었죠. 누가 그를 죽였는가 하는 건 아직도 떡밥으로 남아 있습니다. 도쿠가와 측일 수도, 사쓰마일 수도 있죠.

12월 9일, 구막부의 인물들은 배제한 채 왕정복고의 칙령이 떨어집니다. 덴노 친위쿠데타였죠. 반대하는 이는 당연히 없었습니다. 도사번주 야마우치 도요시게가 그나마 반대했지만 사이고 다카모리의 협박에 입을 다뭅니다. 이 때 사이고 다카모리는 에도에서 방화하는 등 도쿠가와 가문을 도발하고 있었죠. 도쿠가와 가문에서는 이에 분노, 에도의 사쓰마 번저를 불태웁니다.

다음해 1월 1일, 오사카성에 있던 요시노부는 반격을 시작합니다. 명목상 교토에 갈테니 왕정복고를 실시한 이들을 인도해 달라는 식이었습니다. 대세에 밀려 대정봉환을 했지만 다이묘 중 으뜸으로 세력을 여전히 가지려 한 요시노부, 하지만 토막파는 그 자신까지 없애려 했으니까요. 그 병력은 1만 5천, 서양식 군대였습니다.

3일, 조정이라는 명분을 가진 신정부군과 뚫고 가려는 구막부군과의 전투가 시작됩니다. 보신(무진. 그 해가 무진년이었죠)전쟁의 시작이었습니다. 이 날 오사카만에서 일본 최초의 서양식 해전도 벌어집니다.

병력 면에서는 양쪽이 큰 차이가 났습니다. 구막부는 여전히 일본 최강의 세력이었고, 신식 군대를 만오천명을 동원할 수 있었죠. 하지만 신정부군에서는 삼천명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초반 포격전에서 운 좋게 막부측 대포가 맞아 폭발, 대혼란이 벌어졌고 사쓰마 측에서 총격을 개시하면서 밀려버렸죠. 거기다 막부측 지휘관인 타키가와의 말이 맞으면서 주인이랑 같이 전장을 이탈해 버립니다. (...) 막부측의 미미와리구미가 시간을 벌어줬지만 역부족이었죠.

+) 이 때 막부군은 프랑스식으로, 신정부군은 영국식으로 교육을 받았습니다. 영국식은 총으로 최대의 화력을 쏟아붓는 거였고 프랑스는 1차 대전때 보이듯 대충 쏘고 돌격하는 식이었죠. = =; 신정부군이 우세했지만 의외의 돌격에 놀라기도 했다 합니다.

한편 다른 길로 간 막부군은 교토 외곽의 봉행소(치완과 재판을 맡는 기관)까지 진격했지만 신정부군이 길을 막고 대포를 쏘면서 막아냅니다. 그 유명한 신센구미가 돌격했지만 총 앞에 칼은 -_-;

다음 날은 막부군이 축성하면서 대치하려 했지만 사쓰마군에게 측면을 찔려 후퇴, 다른 쪽에서는 전날에 오기로 했다가 이제야 지원 온 다케나카 시게카타가(만약 한베에 후손이라면 -_-;;;) 후방으로 갔다가 부대간 연락이 안 돼 혼란 발생... 뭐 이런 식으로 밀립니다. (...); 이렇게 승승장구하자 조정에서는 막부측을 조적(朝敵)으로 규정, 모든 동맹이 풀리고 민충이 80이상으로 안 올라가는 일이 발생했고, 신정부군은 조정의 깃발을 쓸 수 있었으며 막부군은 반란군이 됩니다. 배신도 나오면서 막부군은 전의를 상실, 오사카성으로 후퇴하죠.

+) 동맹 어쩌고 드립은 신장의 야망 (...) 그리고 전국시대에 주인을 많이 바꾸기로 유명한 도도 다카도라(임진왜란 때 깨진 그 양반 맞습니다)의 츠번은 시작하자마자 신정부군에 합류해 역시 그 후손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그래도 희망이 없던 상황이 아닌데... 요시노부는 배를 타고 에도로 도주합니다. 이러면서 사태를 관망하던 서국의 번들은 신정부군에 붙어버리죠.

그리고 지금의 도쿄인 에도, 막부군은 신센구미를 보내 맞서려 했지만 목표였던 코부성에 신정부군이 먼저 도착해 버립니다. -_-; 이후의 전투에서도 패전, 에도로 도주하게 되죠. 이렇게 되자 요시노부는 무혈개성합니다. 일본의 중심이었던만큼 충분히 싸울 수 있는 상황에서 말이죠. 여러가지 설이 존재하나 봅니다. 어쨌든 온건파였으니 개전 자체가 강경파에 휘둘렸다거나 이런 상황까지 온만큼 일본에 더 큰 피해(외세가 호심탐탐 노리고 있으니)를 입기 전에 자기가 포기해야 된다고 했다거나 조적이 된 것 자체에 충격을 받았다거나... 어쨌든 대정봉환부터 이 때까지 그 덕분에 피가 비교적 적게 흐른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걸로 전쟁이 끝난 건 아니었습니다. 막부편은 많았으니까요. 특히 아이즈번, 현 후쿠시마에 있습니다 = =; 이제 배경은 관동으로 옮겨갔죠. 동국의 번들은 아이즈를 돕는 길을 선택합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신정부군이 승리, 막부측은 훗카이도까지 도주합니다.

+) 이후 아이즈번은 유신시대가 되면서 차별당합니다. 현재까지도 이 앙금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네요.


이런 옷 입다가

요렇게

그 해 9월 8일, 일본의 연호는 게이오에서 메이지로 바뀝니다. 진짜 메이지 시대의 시작이죠. 보통 안 좋은 일이 있으면 연호를 바꾸게 되는데 이 때부터 일본은 일세일원제를 채택합니다. 한 덴노는 하나의 연호만 가질 수 있는 것이죠. 지금 일본은 1989년부터 헤이세이 시대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연호는 제비뽑기로 결정됩니다. (...); 뭐 이건 조선에서도 많이 한 거니...

이렇게 메이지 유신으로 일본은 변했고, 메이지 시대가 시작됩니다. 犬일본제국의 시작이죠.

하지만 막부측은 이대로 끝내지 않았으니...


요시노부가 쓸쓸히 낙향하는 동안, 아이즈번이 맞서는 동안, 해군 부총재 에노모토 다케아키는 잔당을 이끌고 훗카이도로 향합니다. 아이즈가 패하면서 신센구미 등 잔당도 합류했구요. 훗카이도에서 아이누족과 싸우고 공존했던 마츠마에번은 순식간에 먹힙니다. 여기서 나온 것이 에조 공화국입니다. 직접 공화국이라 칭한 건 아니지만 영국 영사관에서 그리 칭했다 하네요. 그리고 에노모토는 대통령이 되죠. 대통령이라는 명칭의 시작입니다.

하지만... 서양도 그들 편을 들지 않은 상태에서 뭘 하겠습니까. 신정부군은 훗카이도까지 진출했고, 1869년 5월 18일, 에조 공화국은 멸망합니다. 그래도 구막부측 인사들이 다 숙청된 건 아니라는군요. 오히려 많이 남아서 유신에 함께 했다 합니다.

자, 최대의 적이 쓰러졌습니다. 그럼 이제 뭘 할까요? 새로운 일본 건설? 그것도 중요하지만 역시 중요한 건 이거죠. 내부 싸움 (...) 유신, 일본은 새롭게 바뀝니다. 하지만 유신의 주역들은 자기들에게 손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바꾸려고 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폐번치현입니다. 번을 없애고 현재처럼 현으로 행정구역을 바꾸는 것이었죠. 무엇보다 각 번의 사병을 없애고 덴노 중심으로 돌아간만큼, 천황만을 위한 군대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 무력을 가진 두 집단이 이걸 그냥 포기할 리가 있겠습니까. 천황제라 하는데 일본에서 덴노가 힘 가진 시가가 있어봐야 얼마나 되겠습니까. 이건 한 70년쯤 지난 2차 세계대전 때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사쓰마는 해군 중심, 죠슈는 육군 중심으로 가면서 일본 육해군간의 갈등이 엄청났죠. 아예 다른 군대라 해도 될만큼요.

또 하나는 이렇게 모인 힘을 외부로 발산하는 거였습니다. 혹은 자기들을 함포로 개항하게 하고 이것저것 가르쳐준 서양 열강들의 방식을 따라가는 것이겠죠.

내 참...

어디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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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 끝내긴 역시 무리인 듯 = =a 다음은 정한론과 서남전쟁을 다뤄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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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엔
13/05/08 04:32
수정 아이콘
일본사를 배우면서 '왜 유신 삼걸에 료마는 없나요 사실 이 인간이 판 뒤집었는데'라고 질문했더니 '걍 일찍 죽어서요...' 라는 답변을 들은 기억이(..)
눈시BBbr
13/05/08 04:36
수정 아이콘
크크
진짜 료마가 살아있었으면 좀 바뀌었을까 생각되긴 하죠. 근데 참 결정적인 일을 하고 결정적일 때 죽어서...
다음 편에서도 이 인간이 좀 살아있었다면 그나마? 라는 말을 할 건데 알고계실지 모르겠지만 좀 의외의 인물이죠 (...)
레지엔
13/05/08 04:51
수정 아이콘
흐흐 기대하겠습니다.
눈시BBbr
13/05/08 05:01
수정 아이콘
크크 어차피 그에 대한 적절한 반론도 있는터라 너무 기대하진 마세요 ㅠ
射殺巫女浅間
13/05/08 04:45
수정 아이콘
일본은 지리적으로 뒤는 바다밖에 없으니 진격 앞으로 였을텐데.
조선이 먼저 근대화에 성공했고 제국주의 노선을 탔다면 청을 먼저 조졌을까요 일본을 먼저 조졌을까요?
눈시BBbr
13/05/08 04:48
수정 아이콘
어느쪽이든 대국의 스승이 된다는 명분이나 조선인들이 간도 넘어가는 명분이 있으니 북부터 가지 않았을까 싶네요. 일본까지 갈 여유가 있다면 대마도 먹고 큐슈 북부(하카다라든가) 할양해서 일본 은 쪽쪽 빨아먹는 테크 탔을수도 있겠지만... 이 쪽도 왜구부터 임진왜란이라는 명분은 있으니까요. 못 배운 놈들 가르친다는 명분도 (...)a
일본도 아편전쟁 이후로 양이파가 좀 죽었으니 그 시점이라면 일본과 손 잡고 무조건 북으로 갔겠죠. 실제 일본에게 먹힐까 하는 시점에서도 간도는 계속 먹으려고 했으니까요
그대가있던계절
13/05/08 04:46
수정 아이콘
역사에 if는 무의미 하지만, 신선조를 위시로한 도쿠가와 막부가 이겼으면 침략은 안당했을라나요..흐흐;
눈시BBbr
13/05/08 04:50
수정 아이콘
조선처럼 과거의 관계를 계속 가길 바란 거라면 (혹은 욕심을 덜 부린다면) 같이 죽더라도 없었을 것 같긴 한데... 존왕파쪽과 함께 발전하긴 했어도 정한론은 막말부터 나왔으니 모를 일이죠 ㅠ 근데 역시 쇄국 고수하거나 근대화 시점에서 조선보다 힘이 약하지 않은 이상 (그랬다면 손 잡고 같이 대륙 고고)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죠 ㅠ
레지엔
13/05/08 04:53
수정 아이콘
어차피 정한론 자체가 일본의 팽창에 의해서 필연적이었던 거라(당장 정한론을 둘러싼 싸움은 지금하자 vs 나중에 하자지 하지말자가 아니었으니까요) 일본의 근대화가 한국보다 빨랐다면 어쩔 수 없었을 겁니다.
기시감
13/05/08 06:02
수정 아이콘
이번 편 보면서 바람의 검심이 제일 먼저 떠올랐으면 덕후인증인가요?

생판 모르는 남의 나라 역사가 자연스럽게 그려지다니 만화의 힘이란 참 대단한것 같습니다.
Je ne sais quoi
13/05/08 09:10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눈시님... 이거 끝나면 아시죠? 흐흐흐
13/05/08 09:32
수정 아이콘
쓰고 싶을때만 쓴다니...
어디 호이가 계속 되면 둘리가 되는걸 보셔야 정신차리시겠군요.
남양유업 영업사원 대기시켜 놓겠습니다.
사티레브
13/05/08 09:48
수정 아이콘
아버지가 료마를 참 존경?했었드래서 료마와 관련한 책을 제게 어릴때 많이 읽으라 했는데
얼추 읽고 아버지한테 내가 료마처럼 살면 좋겠냐고 하니 당연하다고 그럼 바랄게 없다고 하시길래 내가 30살에 죽어도? 그러니까 닥치라고..
우울한카즈
13/05/08 11:00
수정 아이콘
전 반대로 료마가 없었다면 지금의 일본이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거룩한황제
13/05/08 13:50
수정 아이콘
우리나라에서도 료마와 같은 인물이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만...
태어났다고 해도 일본 정치 보다 더 시기상으로도 보면 아주 썩어버린 조선을 생각한다면;;;

암튼 료마라는 인물에 대한 책이든 드라마든 꼭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일본 인물중에 정말로 대단하다라고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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