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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3/26 10:42:34
Name 알고보면괜찮은
Subject [일반] 임금이 귀신의 이치를 묻다-성녕대군
제목과는 달리 무서운 내용은 아닙니다;;;  
  
  1418년 3월 4일 태종이 예문관 대제학 변계량을 불러 귀신의 이치를 물었습니다.  두 대군(효령대군, 충녕대군)으로 하여금 귀신이 감응하는 이치에 대해 묻게합니다.
  여기서 귀신이란 건 처녀귀신 이런 원혼을 말하는 게 아니라 신령이나 조상의 혼 이런 것을 말합니다.  유교 세계에서도 이런 데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죠.  제사를 지내야 하니까요.
  하지만 이 날의 분위기와 질문의 느낌은 평소와는 달랐습니다.  변계량도 이를 느꼈고 심지어는 이 기사를 기록한 사관도 이를 알고 있었습니다.  사관은 이 기사 말미에 이렇게 씁니다.
  "대개 임금이 성녕 대군의 죽음에 비통하여 이러한 물음이 있었다."
  
  이 일이 있기 한달 전인 2월 4일 성녕대군이 세상을 뜹니다.  그 나이 14세.  태종과 원경왕후 사이의 4남 4녀 중 가장 막내였으며 태종과 원경왕후의 사랑을 듬뿍 받은 아들이었죠.  어찌나 아끼고 사랑했던지 2년 전에 혼인했음에도 세자를 제외한 왕자녀는 혼인하면 궁 밖에 나가 살아야 한다는 법도를 어겨가면서까지 이 아들을 궁 안에 살게 합니다.
  이런 아들이 병에 걸립니다.  1월 26일이었죠.  실록에는 완두창으로 기록되어 있죠.  태종은 의관들로 하여금 치료하게 하는 한편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게 하고 이름난 무속인들을 모아 점도 치게 합니다.  그리고 태종 본인과 원경왕후도 간호를 했을 겁니다.  1월 30일 기사에 왕이 성녕대군의 병 때문에 정사를 보지 않았다는 얘기가 나오거든요.  바로 위의 형인 충녕대군(세종)도 의원들과 함께 의서를 펼쳐들고 간호를 합니다.  당시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단 얘기죠.
  하지만 이런 정성에도 불구하고 성녕대군은 세상을 떴습니다.  태종과 원경왕후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왕과 왕비는 아예 수라를 들지 않습니다.  신하들이 간청하고 간청한 뒤에야 겨우 수라를 들긴했지만 고기반찬을 다시 먹은 건 한달을 훨씬 넘어서였죠.  그리고 성녕대군 무덤 옆에 대자암이라는 암자를 지어 명복을 빌게 합니다.
   신하들도 태종을 위로하기 위해 성녕대군을 진료했던 의원들과 점궤를 잘못 낸 무녀와 판수를 벌주도록 청했습니다.(의원들은 파직당했으나 나중에 보면 다시 등용된듯 합니다.  무녀중 하나였던 국무 보문은 울산의 관비로 가던 중 성녕대군의 노비들에 의해 맞아 죽습니다.)

  그 이후에도 태종은 성녕대군을 종종 언급하는데 그 때마다 감정이 절절합니다.
  “죽은 자식 성녕은 우리 가문에서 얼굴을 바꾼 아이였다. 매양 중국의 사신에게 술을 청할 때에는 중국 사신 황엄 등은 주선하는 사이에 주의하여 보고 심히 그를 사랑하였었다. 장차 성취시켜서 노경을 위로하려 생각하였는데, 불행하게 단명하였으니 무엇으로써 마음을 잡겠느냐?”
  “성녕이 졸(卒)한 것은 제 명(命)이 아니었다.”
  "나는 성녕이 졸한 뒤에 정신이 없어졌으나,~"
  그리고 나중에 세종이 즉위한 후에도 세종에게 성녕대군의 처가였던 성씨 가문을 공신처럼 대우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합니다.  성녕대군의 처백부인 성엄에게 "너를 보니 성녕이 생각난다"고 말하기도 하죠.

  이런 와중에 변계량에게 귀신의 이치에 대해 질문을 한겁니다.  아마도 성녕대군이 이런 아비의 마음을 알까 이런 의미가 담겨 있었을 겁니다.  당대의 수재였던 변계량은 이렇게 답합니다.
"귀신은 본래 저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지만, 제사지내면 와서 흠향하는 것입니다. 그 정성이 있으면 그 귀신이 있고, 그 정성이 없으면 그 귀신이 없는 것이니, 내가 정성과 공경을 다하면 귀신은 나의 정성과 공경에서 이루어져 와서 감응하는 것입니다."
정성을 다한다면 성녕대군도 아비의 마음을 알 것이라는 뜻이겠죠.  
태종이 이 답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나와있지 않습니다.  그저 "불교의 설과 비슷하다."라고만 했을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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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시BBbr
13/03/26 10:53
수정 아이콘
호 이런 에피소드가 있군요 '-') 잘 읽었습니다
깃털티라노
13/03/26 12:24
수정 아이콘
한가지 확실한것은
태종과 원경왕후는 너무너무너무 욕심이 커서
삼왕재를 낳았다는 거지요
성녕대군은 너무 일찍 요절해 그 재질을 확실히 알긴 어렵지만 형들에 비해
못하지 않았다는 평이 있는걸 봐선 역시 한인물급이었을것 같고 태종쯤되는 사람이
저리 사랑한걸 보면 자품도 있었을 거라 봅니다.
허나 어떻든 한시대를 아우를 왕재를 동시대에 셋이나 낳아버렸으니....
저기 철종쯤 하나 선조,인조쯤에서 하나 중종이나 명종쯤해서 하나씩 나와줬슴 조선이 흥할건데
13/03/26 15:22
수정 아이콘
괜찮은 님의 글.. 언제나 재미있게 잘보고 있습니다.
간 큰 부마들에 이어서 저도 전혀 몰랐던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소개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스푼 카스텔
13/03/26 23:31
수정 아이콘
흐흐 저런 난처한질문을 직장상사가 던지면 참난간하죠 . 도대체 뭐라고 이야기해야 상사가 만족할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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