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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5/09/30 14:14:52
Name 라이징패스트볼
Subject [일반] <어쩔수가 없다> 후기(노스포)
* 스포일러가 없다고 했지만 시놉시스로 언급된 내용에 대한 언급은 있습니다.



박찬욱은 저에게 있어서는 다소 낮선 느낌이 드는 감독입니다. 보통 같이 언급되는 봉준호의 경우 대표작들은 대부분 늦게라도 찾아서 본 반면에, 제가 본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딱 <올드보이> 하나였습니다. 의도적으로 피했다기 보다는 항상 뭔가 미묘하게 타이밍이 안맞았던 것 같습니다. <헤어질 결심>도 봐야지 봐야지 하다가 결국은 놓치고 어쩌다보니 지금까지도 '언젠가 볼 영화' 리스트에만 적혀있네요. 아무튼 지금까지 제게 있어서 박찬욱 감독을 정의하는 영화는 <올드보이>였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박찬욱 스타일을 강렬하고, 기괴하고, 하드코어하다고 생각해왔었죠. 이번 기회로 그런 이미지에 새로운 색을 추가하게 된 점이 기쁘기도 합니다. 근데 또 엄청나게 다른 색, 다른 스타일인가? 하면 또 아닌것 같기고 하고...하여튼 복잡미묘합니다.

<어쩔수가 없다>는 서투르고 어설픈 살인 영화입니다. 뭐 연출이 별로고, 연기가 나쁘고...이런 얘기를 하는게 아닐 거라는 건 다들 아실 겁니다. 그도 그럴게 감독이 박찬욱에 주연은 이병헌이잖아요. <올드보이>를 보면 박찬욱 감독이 죽음과 폭력을 얼마나 감각적으로, 유려하게, 심지어 아름답게 연출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또 <달콤한 인생>이나 <악마를 보았다> 같은 작품을 보면 이병헌이 얼마나 섹시하게 사람을 패거나 죽이는 연기를 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죠. 근데 이 영화에서는 감독이나 배우나 전혀 그렇지 않아요. 살인을 포함하여 이 영화에서 주인공이 보여주는 거의 대부분의 행동들은 어딘가 어색하고 답답합니다. 첫 살인조차 엄청나게 우물쭈물하고 갈팡질팡하는 준비기간을 거친 뒤에 벌어지죠. 공교롭게도 어제는 오랜만에 <양들의 침묵>을 봤었는데, 한니발 렉터의 우아하고 기능적이고 세련된 살인자로서의 면모와 오늘 본 이병헌이 엄청나게 비교되더군요.

그렇기 떄문에 보는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꽤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듭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차라리 코미디에 가깝고, 그게 취향에 맞으면 재밌게 볼 수 있습니다. 일단 전 그랬어요. 느리고 약간은 단조롭게 쌓아올린 인물들 간 관계와 갈등, 위기의 빌드업이 본격적인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신기하게도 잘 작동한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초반에는 조금 지루하다고까지 생각했는데 어느순간부터 영화에 정신없이 빠져들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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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꿈은세계정복
25/09/30 14:42
수정 아이콘
(적고 보니 살짝 스포가 있네요)

영화 내용과 별 상관없는 이야기 해보면 '헤어질 결심' 때 카발란 솔리스트 올로로소 셰리를 소품으로 활용한 거나 이번에 스프링뱅크 15년을 소품으로 활용한 걸 보면 박찬욱 감독이 위스키를 좋아하는 거 같긴 합니다. 단순히 비싸거나 이쁜 위스키를 고르는 게 아니라 딱 그 시대에 제일 유행하는 증류소를 잘 고르는 거 같아요. '헤어질 결심' 때는 별 생각없이 카발란 골랐다고는 하지만...

그런데 본인의 그런 취미에 대해 뭔가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거 같기도 합니다. 영화에서 위스키는 항상 부정적인 인물이 즐기는 부정한 취미에요. '헤어질 결심' 에서 카발란을 즐기는 기도수는 사치스러운 취미를 즐기며 아내를 폭행하고 아내에게 자기 문신을 새기는 인물이죠. 송서래가 중국인이라는 걸 감안하면 카발란은 아내의 영혼을 착취하는 걸 상징하는 거 같기도 하고요.

최선출의 위스키 취미 역시 부정적입니다. 영화 전체적으로 알콜이 부정적인 이미지로 나오지만, 그 중에서도 최선출의 위스키 취미는 초반부터 내내 부정적인 방향으로 강조되죠. 최선출은 공허한 영혼을 채우기 위해 비싼 위스키를 탐닉하지만 결국 그로 인해 파멸하고요.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 그 부분이 재미있었어요. 헤어질 결심에서도 그렇고 어쩔수가없다 에서도 그렇고 위스키라는 소품을 다루는 방식을 보면 그때 그때 유행하는 위스키를 잘 꿰고 있을 정도로 잘 알고, 또 비주얼 적으로 아름답고 멋있게, 퇴폐적으로 묘사하는데 항상 부정적인 가치를 상징해요. 그래서 박찬욱 감독이 위스키를 즐기면서도 '아...내가 이런 거 마셔도 되나?' 라는 죄책감을 계속 안고 있는 건가? 라는 상상을 하게 되네요 크크.
25/09/30 15:18
수정 아이콘
다른 작품까지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 해결과의 공통점이라면 오디오도 있겠죠. 기도수가 사용 하던 오디오는 (저는 잘 모릅니다만) 상당히 올드&고급 기기 인걸로 알고 있고, 어쩔수가없다 에서도 이성민씨 집에는 상당한 기기가 비치되어 있는거 같더라고요. 언듯보기엔 매킨토시 진공관 앰프 종류가 있는 걸로 봤습니다. 위스키나 오디오나 둘 다 감독의 개인적인 취향이 반영되어 있는거겠지만... 형사들 삼겹살 회식 자리에 카발란 들고 온 박해일은, 진짜 미친놈 같았습니다 크크크
Dr.Strange
25/09/30 14:49
수정 아이콘
아직 관람 전인데 말씀하신 내용으로는 박찬욱도 나이가 들었다 싶군요 크크
어느 순간에 한니발이라는 캐릭터가 미학적인 캐릭터가 아니라 황당한 캐릭터로 느껴지는 시점이 있었는데 그게 인생의 재미 중 반을 상실한 때 같습니다... 스티븐 킹도 젊을 때 쓴 글과 노년에 쓴 글이 분명히 차이가 나는데 어떤 매력적인 거침없음이 많이 깎여서 사라진 게 보이긴 하지요 말씀하신대로 다른 부분의 구조적 매력이 작동하기 시작하고요... 전작 헤어질 결심에서 어떤 방향으로 더 나아갔는지 궁금해집니다
빼사스
25/09/30 16:38
수정 아이콘
하지만 스티븐 킹도 80 다 되가는 중에도 글 쓰는 속도 하나만큼은 번쩍번쩍하지요. 다만 2000년대 이후 소설들은 늙어서라기보단 대형 교통사고 이후 죽음까지 갔다가 온 이유 때문에 강한 걸 못 쓰기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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