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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5/06/21 19:42:46
Name
번개맞은씨앗
Subject
[일반] 근거를 대지 말라
:: 근거와 자유 ::
합리적 세상에서는
이유와 근거가 있어야 하며
이것이 잘 소통되어야 한다라는게 상식적입니다.
이는 기본적으로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꼭 맞기만 한 건 아닙니다.
그렇게만 알고 있으면 곤란합니다.
어떤 문제가 있는지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습관적으로 이유를 묻고
습관적으로 근거를 대는 것에는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주목할 것은
직관입니다.
기본적으로 의사결정이란
직관을 포함해서 이뤄집니다.
즉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이유와 근거가 있습니다.
두 번째로 주목할 것은
누가 결정권자인가 하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결정권자는 이유와 근거를 댈 필요가 없습니다.
이유와 근거는
부탁하는자, 권유하는자, 조언하는자가 대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개인의 삶의 결정권자는 그 개인입니다.
그런데 이유나 근거를 묻는 일이 습관처럼 반복되자,
마치 타인이 결정권자인 것처럼 되어버립니다.
이유를 대지 못한단다면,
그걸 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되어버립니다.
타인이 묻지 않더라도
스스로 이유나 근거를
습관적으로 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로,
결정권이 타인 또는 집단에 있는 것처럼 되어버릴 수 있습니다.
즉 누가 결정권자인지를 인식해야 합니다.
결정권자는 이유와 근거를 대지 않을 권리가 있습니다.
물론 타인의 협조를 얻는 등의 부가적인 목적이 있다면
이유나 근거를 대면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건 예외적인 것입니다.
특히 인격적으로 취약한 사람은
습관적으로 이유나 근거를 대려고 하는데
때로는 꾹 참고 이에 침묵해야 합니다.
주장만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
그것은 자기책임을 덜어보겠다는 심리에서 비롯될 수도 있습니다.
자기 인생은
자기가 결정하고,
자기가 책임지는 것입니다.
습관적으로 이유를 대는 사람 중 일부는
습관적으로 남탓을 합니다.
세 번째로 주목할 것은
시간입니다.
의사결정은 때로는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지만,
때로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그런데 신속성의 문화에서는
매번 이유와 근거를 묻고
빨리빨리 결론을 매듭지어두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단 다양한 생각을 들어보고
다양한 가능성을 검토해보고
그리고 그 이유와 근거를 다루어보고
이럴 시간이 없고
바로바로 결정해야 합니다.
발산적 과정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경우들이 있는데,
바로바로 하나의 답으로 수렴시키기 위해
이유와 근거를 대라며 압박합니다.
즉
습관적으로 이유를 묻고
습관적으로 근거를 대는 것이
'성급함'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법원에서도 마찬가지로
1차 변론으로만 끝나지 않고
여러 날을 거쳐서 해야 할 수 있으며,
일단은 각자 어떤 주장을 하고 있는지 들어보고,
어떤 부분에 주장이 엇갈리는지 확인한 뒤에
순서를 잘 맞춰서
하나하나 근거를 다루는 식으로 진행되곤 합니다.
법원밖에서
개인간 분쟁에 있어서도
성급하면 오히려 효율이 떨어집니다.
시간이 더 오래 걸리거나
혹은 아예 해결이 안 됩니다.
생각 차이가 많고
사안이 복잡하면
인내심을 갖고 일단 주장부터 주욱 들어봐야 합니다.
직관, 결정권자, 시간
이밖에도 다른 문제가 있는데,
어떤 건
경험부족으로, 지식부족으로,
혹은 사고력부족으로, 주의산만으로
혹은 오만함이나 성급함 등 인격부족으로
어차피 말해줘봐야 못 알아듣습니다.
잘못 알아듣고 오히려 갈등이 심해질 수도 있습니다.
어떤 건
그 합리성을 납득시킬 수 있는 근거이지만,
감정적으로 민감한 것이어서 과도하게 불쾌감이 일어납니다.
합리성은 높아졌는지 몰라도
감정이 손상되므로 근거를 소통하지 말고
그냥 믿고 맡기는게 나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다시 강조하자면,
인간의 선택은 상당부분 직관에 의합니다.
그걸 일일이 말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 말로 설명할 것은 계속 요구하면
두 가지 일이 벌어질 개연성이 있습니다.
그 첫째는
'그냥' — 이라고 답하는 것입니다.
'그냥'은
이유나 근거가 없다는게 아닐 수 있습니다.
그걸 말로 표현하기 곤란하다는 것일 수 있습니다.
매우 깊이있는 이유일지라도 말로 설명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냥이라고 답한다고 그게 이유가 없거나,
이유가 가벼울 거라 단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둘째는
'가짜 이유'를 지어내는 것입니다.
즉
직관적 선택에 있어서
자꾸 이유나 근거를 내놓으라 압박할 때
'거짓'이 양산될 수 있습니다.
습관적으로 이유를 묻고
습관적으로 근거를 대는 문화에서
가짜 이유들이 생겨납니다.
가짜 근거들이 생겨납니다.
그로인해 혼돈과 갈등이 늘어날 수 있습니다.
특히 주목해야 할 하나는
도덕입니다.
습관적으로 이유를 묻는 사람이 있다고 해봅시다.
그로인해
습관적으로 이유를 대는 사람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말끝마다 '왜?'라고 묻는데
그 다음에 흔히 일어나는 일은
비난하는 것입니다.
즉 '왜?'라는 언어는 그에게
호기심의 언어가 아니라,
문책의 언어인 것입니다.
도덕적으로 잘못을 했거나,
어리석은 판단을 했다는 비난을 하는 그 예비행동으로
'왜?' — 라는 말을 습관처럼 붙이고 다니는 것이며,
아마도 머릿속으로도 그런 습관이 붙어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방어적으로 변해서
자신의 도덕적 정당성을 위해서
'남탓'과 '피해의식'으로 머릿속을 채우게 될 수 있습니다.
남을 공격하기 위해서 남탓하는게 아니라,
누군가 비난할 준비를 하고서,
자기에게 '왜?'라고 물을 때
방어하기 위해서
남의 잘못을 주목하고 기억하고 다니는 것입니다.
남이 A를 해서 → 내가 B를 했습니다.
또다른 일은
집단동조 경향이 커지는 것입니다.
남들 따라하면, '왜?'라고 묻더라도
남들도 C 하니 → 저도 C 했습니다.
하면서 비난을 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강조하자면,
직관적 선택에 있어서
자꾸 이유나 근거를 내놓으라 압박할 때
'거짓'이 양산될 수 있습니다.
가짜 이유들이 생겨납니다.
가짜 근거들이 생겨납니다.
그로인해 혼돈과 갈등이 늘어날 수 있습니다.
비난을 피하기 위해
타인이 하지도 않았는데 했다고 거짓을 늘리거나,
혹은 조그만 일을 커다란 것처럼 과장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일상에서
사실파악과 사실기억은 그리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별 문제없는 경우가 많지만,
자꾸 이유나 근거를 내놓으라 압박하는 문화에서는
그리고 비난과 비방이 많은 환경에서는
자기방어적으로
방어에 유리하게끔
사실을 과장하거나 혹은 거짓을 지어내고
이를 믿어버릴 가능성이 큽니다.
그럴지도 모른다 — 이 정도로 생각했던 것도
이유나 근거를 대라며
심리적으로 궁박한 상황에 몰리자 — 발언을 해버리게 되며,
일단 말로 내뱉은 이상 그걸 고집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40% 정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인데
일단 말로 내뱉은 이상, 그게 참이라고 우겨야 합니다.
혹은 일단 말로 내뱉는 순간,
자기 자신도 믿어버리는 수가 있습니다.
마녀 맞아요. 제가 봤어요!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중요한 하나는
결정권자라 봅니다.
자신이 결정권자일 때에,
이유를 대지 않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근거를 대지 않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일단 그렇게 훈련된 사람은,
타인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타인도 그럴 권리가 있는 부분들이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자유주의 문화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봅니다.
개인은 이유나 근거를 대지 않는 영역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럴 권리가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타인도 그렇다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이는 다원주의와도 관련되어 있습니다.
상당부분
창의성은 다양성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것들이 생존하고 발달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발산적 시간을 충분히 갖지 않고,
성급하게 하나의 답으로 수렴시키려는 것,
그것은 다양성을 말살시킬 위험이 큽니다.
아직은 불완전한 가설도
시간을 두고 양육하면 점점 보완을 하면서 다듬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속하게 답에 이르러야 하는 문화는
그러한 가설을 모욕하고 폐기해버리기 쉽습니다.
그리고 대개는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그 신속성이 권위로 회귀합니다.
특히 전통권위와 대중권위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통의 결론은 G입니다.
새로운 가설은 H입니다.
법에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있죠.
전통은 무죄추정입니다.
가설은 유죄추정입니다.
전통은 근거가 없어도 참이라 인정됩니다.
가설은 확증이 없으면 거짓이라 간주됩니다.
전통이 없거나 전통이 무시되는 곳에서는
대중권위가 이를 대신할 수 있습니다.
다수는 무죄추정입니다.
개인은 유죄추정입니다.
다수는 근거가 없어도 참이라 인정됩니다.
개인은 확증이 없으면 거짓이라 간주됩니다.
지적 관점에서 볼 때,
별로 공정하진 않죠.
공정하지 못하다면, 결국 힘싸움으로 보는게 적절합니다.
개인이 자신의 의견을
아직 전파하지는 못하더라도
자기 내면에서 지켜내긴 해야 할 것입니다.
일단 이를 보호하고 양육해야 하는 거죠.
이때 필요한 것은
근거를 대지 않는 것입니다.
아예 주장을 하지 말거나,
주장만 해놓고 근거를 대지 않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골대를 1개 놓고 축구하길 좋아합니다.
골대가 1개이니, 오프사이드 규칙은 없는 걸로 합니다.
그러면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유리하니까요.
즉 상호성이 돌아가지 않으면서
규칙이 엉망이 됩니다.
그런 가운데
이유나 근거를 논한다면
그리 생산적인게 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공정하지 못하다면, 결국 힘싸움으로 보거나
혹은 전쟁으로 보는게 적절하고,
전쟁에서 기본은 줄행랑이며,
근거를 대는 것은 전투가 깊어지게 만드는 것이므로
아직 전투할 병력규모가 갖춰지지 않았을 때에는
혹은 전투하기에 유리한 환경이 아닐 때에는
근거를 대지 않고 주장만 하고 빠져야 합니다.
심리에는 이런 게 있습니다.
'수면자 효과'
사람들은 신속하게 판단하기 위해서
내용을 찬찬히 살피지 않고,
화자의 권위를 보곤 하는데
'L이 M이라고 말했다.' — 라고 할 때
시간이 지나자
M을 누가 말했는지를 망각해버립니다.
L이 적대적인 사람이거나 혹은 권위없는 사람이라 해봅시다.
L이 말했기 때문에 M은 엉터리 의견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화자 L이 말한 거란 걸 잊어먹자
내용 M의 신뢰도가 상승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생각해보니 M이 맞다거나
자기 경험이 M가 잘 맞는다거나
이러면서 M이 힘을 얻고 다시 부상하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때 그는 그 출처가 다른 사람이라 생각하거나,
혹은 스스로 M을 떠올렸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주장만 하고 줄행랑할 때,
비난당했을 수 있지만,
그래도 그것이 의미를 갖게 되는 건,
그 주장을 누가 했는지를 망각했을 때,
설득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말했는지를 망각해야 하므로,
근거를 대고 일을 자꾸 키우면 곤란합니다.
그러면 잘 안 잊어먹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근거를 대더라도,
역시 수면자효과로 힘을 발휘할만한 그런 것만 간단히 심고
줄행랑하는게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야기할 것은 수학입니다.
공리계에 있어서
공리란 참이라 간주된 것입니다.
공리는 근거에 의해 입증된게 아닙니다.
수학도 물리학도 '공리'가 있습니다.
심지어 그렇게 엄격한 학문도
근거를 대지 않는 주장들이 있는데,
개인이 자기 인생을 살면서도
근거를 대지 않아도 되는 부분이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각자 자기 내부에
'공리'에 해당하는 것들을 품고 있을 수 있으며
그게 또한 자유주의를 의미하는 거라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개인이 오직 집단공리에 의해서만 움직인다면,
자유가 있다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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