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러분, 40살 피린이 모래반지빵야빵야입니다.
약 4달 전에 이곳에 처음으로 글을 썼을 때, 횡설수설로 글을 썼음에도 많은 분들께서 진심어린 응원을 해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첫 글:
https://pgr21.com/freedom/102478
그때로부터 약 4~5개월이 지났습니다. 더 좋은 결과를 전해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사실 생명이 위독한 상태입니다.
작년 추석 즈음부터 항암제를 먹는 항암제인 론서프, 그리고 스티바가로 바꿔가면서 먹어봤어요. 아산병원은 대략 두 달 간격으로 CT를 찍으면서 약효를 평가하기에, 두 약을 평가하는 데에는 약 넉달이 걸렸죠.
1월 21일, 종양내과 외래에서 더 이상의 치료는 무의미하다. 더 이상 자기들이 해줄 수 있는 치료는 없다라고 판정을 했습니다. 호스피스병동 준비를 하고, 연명치료포기각서에 서명하는 것을 고려해보라고. 6개월 시한부. 그리고 암 성장속도가 더 빨라질 것이라 했습니다.
1월 22일, 얼마 전에 약 1년반동안 휴직으로 버티던 회사에서 더 이상의 병가휴직 연장이 불가능하다고 통지가 왔습니다. 잠시 복직했다가 다시 휴직하는 것은 가능한데, 문제는 진단서에 찍히는 질병코드가 달라야한다고 하더군요. 전날 주치의에게 문의해봤지만 당연히 씨알머리도 안 먹혔습니다. 결국 이날 회사 본사에 가서 퇴직절차를 밟고, 사원증을 수거당했습니다. 그나마 처음에 "자발적 퇴사"라고 되어있길래 입에 거품물면서 이게 어떻게 자발적퇴사냐고 회사에 의한 권고사직이지라고 항의해서 그건 고쳤습니다 (그래야 실업급여라도 신청할 수 있거든요).
이틀 연속으로 감당하기 힘든 선고를 받았지만 어찌하겠습니까. 제 힘으로 어찌할 수 있는 부분들이 아닌 것을. 하지만 힘든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하염없이 눈물이 나고, 와이프 앞에선 눈물을 안 흘리겠노라고 다짐했지만 그 다짐은 너무 쉽게 무너져버렸습니다.
1월 22일, 퇴사당한 직후 의료기록들을 들고 경기도 군포에 있는 모 2차병원으로 갔습니다. 항암 쪽으로는 유명한 병원이래서요. 저와 비슷한 케이스가 있는데, 이러이러한 약 조합을 썼더니 빠르게 좋아지더라 ㅡ 해서 즉시 항암을 시작했습니다. 항암을 하니 저의 고질적 통증인 꼬리뼈와 골반통증이 깨끗하게 사라지길래 기적이 드디어 나타났나했어요. 그렇게 2주 간격으로 두 번의 항암을 하고 한 달이 지났습니다.
2월초. 거울을 보니 제 눈과 얼굴, 피부가 전부 노래졌습니다. 간기능이 안 좋아지면서 황달이 온 것입니다. 간수치는 약 100정도에서 왔다갔다 했지만, 빌리루빈 수치가 0.몇, 1.몇이던 것이 갑자기 6, 8로 치솟은 겁니다. 빌리루빈은 담즙이 원활히 간에서 해독이 안 될때 남는 독성물질인데, 이것이피 속에 남아서 피부가 노랗게 됩니다. 이것이 항암제 부작용인지, 아니면 항암제 효과가 없어서 암이 간에서 악화가 된건지를 판단해야 했는데 결국은 후자가 됐습니다.
문제는 황달이 이렇게 심해지면 항암을 진행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무조건 황달과 빌리루빈 수치를 낮춰야 하는데, 그 방법은 담관배액술 (PTBD)이라는 시술로 담관의 담즙을 빼내고, 담관에 단단한 관을 박아서 암세포에 의해 담관이 눌려도 담관이 고이지 않게 하는 시술입니다. 시술 자체는 한 시간 정도만에 끝내는 간단한 시술인데, 저의 경우 담관이 한 곳이 막힌 건이 아니라서 좀 더 난이도가 있는 시술이고, 또 시술이 잘 되더라도 담즙을 제거해주는 간 기능이 빨리 회복이 안 되면 생각보다 황달이 빨리 안 잡힐 수 있다는 위험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안 하면 결국 패혈증으로 발달하고 그땐 진짜 골로 갈 수 있어요. 그리고 애초에 염증이 있으니 명치와 갈비뼈, 어깨에 통증이 심하고 열도 심하게 나고 있었죠.
일단 지난주에 현재 다니는 군포 병원에 읍소하다시피해서 (여기서도 처음에는 안 해주려 했습니다) 겨우 내일 오전으로 시술 스케줄을 잡았습니다. 반려하려 했지만 나는 아직 항암 포기 안했다. 마지막 지푸라기만이라도 짚게 해달라고 읍소해서 간신히 예약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주말을 무사히 보내길 기원하며 동시에 또다른 의사, 소위말하는 재야의 고수를 추천받아서 (물론 모든것이 비보험 비급여이니 비용은...휴...) 암유전자 검사를 초기에 아산병원에서 했던 것보다 훨씬 넓고 빡세게 했어요. 그 결과 일단 유전자 검사를 통해서 사용할 수 있는 조합 (어비툭스 또는 벡티빅스 + 키트루다 + NK세포)을 찾아서 이를 시행할 예정입니다. 물론 이 역시 황달이 잡혀야죠. 즉 저는 무조건 황달을 잡아야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일요일 밤 - 월요일 새벽에 예전과는 달리 열이 도무지 38.3도에서 떨어지질 않아서 급히 택시를 타고 아산병원 응급실로 갔습니다. 혹시 담관배액술을 받을 수 있으면 술기가 더 뛰어난 아산병원에서 받는게 좋고, 안 되도 군포 병원에 일단 안전빵은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아산병원에서 받은 상처는 너무나도 컸습니다. 사람이 가장 적은 아침에 가서 대기는 비교적 적었으나, 응급실 침대가 짧고 좁아서 도저히 다리를 필 수도 없고 몸을 돌릴 수도 없었어요. 마치 과거에 죄수들 잠 못자게 고문하던 것처럼요. 하지만 저보다 조금 일찍 왔던 맞은 편 환자가 저와 완벽히 똑같은 시술을 한시간만에 받고 돌아오길래 "아 나도 받을 수 있겠다" 생각했는데...
제 종양내과 주치의가 직접오더니 시술 못 해준다. 시술한다고 해도 효과가 미미하고 득보다 실이 많다. 환자가 지푸라기를 자꾸 잡으려 하지 말고 호스피스를 얼른 (항암 중이면 호스피스 신청 자체가 안 됩니다) 신청해야 한다 뒤에 가면 늦는다, 이런 얘기를 하더군요. 그래도 시술 해주실 수 있지 않냐라 하니 시술 담당인 소화기내과에서도 거절했다 했습니다.
진짜 그 좁은 응급실 공간에서 숨이 콱 막히고 정신이 혼미해지는게 느껴졌습니다. 아무리 대형병원 의사일수록 더욱 프로토콜에 묶여서 행동이 제약이 되더라도, "넌 이미 시한부선고를 받았어. 조용히 죽음을 맞을 준비나 해. 뭔 시술이야."를 면전에 들으니...뭘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 와중에 어쨌든 지금 상황이 위험하고 실시간으로 항생제 투여 여부를 판단해야하니 전원할 수 있는 병원을 찾아주겠다더군요. 아니, 당신들이 판단하기에 그 정도로 위험하다면 일단 시술을 먼저 해서 급한 불을 꺼줘야 하는 것 아닌가? 위험하지만 시술은 못 해주고, 그래도 최후의 자비심을 발휘해주겠다? 이게 사람이 삐딱해지니 한도끝도 없이 삐딱해지더군요. 그래도 차마 앞으로 어떻게 엮일지 모르니 주치의 앞에선 침착을 유지했습니다. 병원은 우리 갈곳 있으니 거기로 해달라 했는데 사정상 시간이 소요되어 그 상태에서 한 시간 반 더 응급실에 누워있었습니다.
멘탈이 완전 박살났고, 혹시 시술이나 검사하게 되면 금식 필요할까봐 밥도 아무것도 안 먹고 새벽부터 버텼기에 정신도 육체도 극한으로 스트레스가 오고 탈진한 상태였습니다.
의사들이 프로토콜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이 머리로는 이해가 돼요. 하지만... 환자의 입장에서는, 가슴으로는... 도무지 참을 수가 없더라고요... 너무 억울하고, 의사라면 환자가 포기하지 않았는데 먼저 저렇게 죽을 준비하라고, 피검사 결과 위험한게 뻔히 보이는데 그냥 죽음을 기다리게 하는게 이게 맞는건가... 저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고...
여하튼 그렇게 지금은 군포의 병원에서 내일 있을 시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나마 어제보단 컨디션이 좋아져서 이렇게 장문의 뻘글을 쓰네요.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더 좋은 소식으로 못 찾아봬서 참 죄송하고 ㅠ 얼마나 고통스럽든 전 절대 먼저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만 다시금 다짐해드릴 수 밖에 없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