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람이 치는 아침이었다. 비든 바람이든 하나만 불어도, 아니 화창한 날이어도 평일 아침에 집 밖을 나서야만 하는 건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닐텐데 하필 이런 날씨는 내 기분을 축 늘어지게 만들었다. 벌써부터 신발은 축축하고 바지 밑단도 젖어갔다. 바람에 이리 저리 움직이는 우산을 꽉 움켜잡으며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그런 내 앞에 한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며 길을 막아섰다. 비바람이 너무 세다고, 학교 가기가 무섭다고.
예상치 못한 일에 당황했다. 자그마한 남자아이는 한 손에 깁스를 한 채 다른 한 손으로 휘청거리는 우산을 고정하려 애썼지만 잘 안되었는지 온 몸에 물기가 가득했다. '어쩌지? 이 아이 부모님께 연락해야 하나?' 온갖 생각이 들며 아이에게 물었다.
"아저씨가 어떻게 해줄까?"
아이가 답했다.
"학교까지 같이 가 주실 수 있어요?"
피터 싱어는 자신의 값비싼 정장을 망치지 않으려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기를 망설이는 이를 질책했고 나는 그의 일갈에 고개를 끄덕였었다. 지금 내 옷은 고급과는 거리가 먼 대충 인터넷에서 산 싸구려지만 이 아이도 물에 빠져 허우적 대지는 않았다. 빗물은 이미 내 양말까지 스며들었고 어쩌면 속옷까지 적실지도 모른다. 버스 시간은 촉박하다. 짧은 순간 이 모든 걸 생각하진 않았지만 훅 지나간 사고는 대충 이런 식이었다. 하지만 내 입은 손익계산을 마치기도 전에 방정맞게 행동했다.
"그래, 아저씨가 데려다 줄게. 학교가 어디야?"
어쩌면 아이는 내 행로 근처의 초등학교에 다닐지 몰랐다. 그렇가면 나는 그냥 내가 가아하는 길 중간에 그 아이를 바래다 주면 됐다.
"A초등학교에 다녀요"
아, 그 아이의 학교는 뺑 돌아가야 했다. 어쩌겠는가. 이미 대답해 버린 것을. 난 그 아이의 옆에서, 때로는 앞서가며 아이의 학교로 향했다. 짧은 대화로 그 애가 초등학교 3학년이라는 것을, 팔은 장난치다 넘어져 다쳤다는 걸 알았다. 아이는 어느덧 눈물을 그쳤고 자기가 울었다는게 민망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등하교 도우미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도움을 받아(나 때는 학부모들이었는데!) 몇 개의 횡단보도를 건너 아이네 학교의 후문으로 도착했다. 아이는 감사하다 꾸벅 인사하고 학교 안으로 사라졌다.
이제 내 옷은 흠뻑 젖었고 버스는 다음 차를 타야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감사를 표하는 어린 아이가 기특해서일수도, 누군가의 도움이 되었다는 게 기뻐서일수도, 내가 그리 사회에 닳아버린 어른으로 늙은 건 아니라는 자기 만족일 수도 있겠다. 어쩌면 이 글을 피지알에 써 받을 따봉에 싱글벙글했을 수도 있고. (아이고 좋은 일 하셨습니다 회원님~)
그 아이는 내게 감사했지만 나는 그 아이에게 감사한다. 내가 그래도 이렇게나마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일 수 있다는 걸, 무가치한 사람은 아니라는 걸 알려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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