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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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PGR 추천게시판(完) 오스만 가문의 이슬람 연대기:
[알라후 아크바르!] https://pgr21.com/?b=1&n=2558<-먼저 읽어주세요
[2]
- 1화: 울핑 가문의 울프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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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화: 산 제물을 바쳐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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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화: 광전사의 돌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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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화: 반란을 분쇄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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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화: 영웅 시구르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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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화: 그 누구도 나를 비난할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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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화: The Heir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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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화: 발할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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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화: 소년왕 에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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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화: 형과 아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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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화: 바다의 재앙, 공포의 에실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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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화: 루테니아 방위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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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화: 서프랑크 침공 -
https://pgr21.com/?b=6&n=56754
- 14화: 야만스럽지도, 미개하지도 않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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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화: 이해 받지 못한 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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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화: 호구왕 울프르 2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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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화: 토르의 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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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화: 마음은 결코 꺾이지 않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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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화: 하느님의 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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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화: 스비티오드의 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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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화: 바랑기안 친위대의 아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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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화: 더이상 스비티오드는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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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화: Talvisota(겨울전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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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화: 공작들의 반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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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화: 제 2차 핀란드 전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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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화: 제국의 역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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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화: 플랑드르 방어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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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화: 제1차 십자군 전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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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화: 보헤미아 동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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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화: 바이킹 삼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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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화: 합종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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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화: 롬바르디아 대성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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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화: 이탈리아 왕국 -
https://pgr21.com/?b=6&n=57079
- 34화: 내가 곧 황제다. -
https://pgr21.com/?b=6&n=57092
- 35화: 악령이 보인다... -
https://pgr21.com/?b=6&n=57127
- 36화: 바이킹 제국의 위용 -
https://pgr21.com/?b=6&n=57151
- 37화: 보헤미아 침공 -
https://pgr21.com/?b=6&n=57170
- 38화: '토르' 소환의식 -
https://pgr21.com/?b=6&n=57182
울핑 가문은 769년 초대 가주 울프르1세에 의하여 시작되었습니다.
울프르 1세 - 에실 1세 - 울프르 2세 - 에실 2세 - 튀케 1세 - 에실 3세 - 튀케 2세............
처음에는 너무나 작은 세력이었던 울핑 가문은 훌륭한 후계자들에게 계승 되어왔고
957년 현재는 유럽에서 가장 넓고 강한 제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울핑 가문과 끝없이 싸워왔던 숙적... 샤를마뉴 대왕의 후예 카롤링거 가문은
프랑키아 제국이라는 이름으로 울핑 가문 앞에 서있습니다.
그들을 넘어서지 못한다면 진정한 유럽의 지배자가 되지 못할 것이고, 이 전쟁에서 패한다면
이탈리아를 빼앗겨 영원히 그들에게 굴복하게 될 것입니다.
반드시 승리해서 울핑 가문의 영광과 승리를 토르께 바칠 것입니다. 진정한 바이킹 전사들의 힘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 토르를 위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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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보유한 모든 군대, 용병 군단, 욤스바이킹을 전부 긁어 모읍니다.
4만1천명이라는 울핑 가문 역사상 최대규모의 군대가 징집 됩니다!
그러나 제가 한계까지 군대를 긁어 모았지만, 역시나 프랑키아 제국의 병사수는 우리 군대를 웃돕니다.
이탈리아 6882명, 브리타니아 4994명, 스칸디나비아 5577명의 군대를 전부 배에 태워
수도 브루게로 전부 모아야 합니다. 무조건 적보다 군대를 빨리 모으는 것이 승리의 열쇠입니다.
정말 고마움의 눈물이 나는군요...
이탈리아의 봉신들이 그들의 사병을 동원하여, 프랑키아의 군대와 싸워주고 있습니다.
만약 이 전쟁에서 패한다면 그들은 프랑키아 제국에게 영토를 전부 빼앗길 상황이니 당연하긴 합니다만...
멍청한 프랑키아의 군대가 우리 수도 브루게를 노리고 오지만... 전 이미 준비가 되었습니다.
[ 올라프, 구드뢰드 장군! 나에게 그대들 삼대장의 힘을 빌려주게! ]
적들의 지원군이 올 것이므로, 그 전에 전투를 끝내야 합니다!
우리의 주인공 튀케가 '탁월한 방어전술' 을 터트리며 강력한 버프를 걸었습니다!
정말 훌륭한 것은, 올라프와 구드뢰드의 추격 전술 때문에 적의 군대를 완전히 '전멸' 시켰다는 것입니다!
보통 전투에서 승리해도 절반쯤 죽고 나머지는 사기를 잃고 자동 후퇴하기 마련이지만, 역시 삼대장은 믿을만합니다.
전쟁 점수가 한번에 14%로 오릅니다.
드디어 모든 군대가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군요.
[ 이제 작전을 설명한다. ]
혹시 프랑스를 공격할 크킹 유저분들이라면 새겨들으세요.
일단 군대를 1만명씩 4부대로 나눌 것입니다. 그리고 우, 루앙, 백생, 마지막으로 적의 수도 파리를 공격할 것입니다.
왜냐? 보시면 아시겠지만 푸른선의 센느강이 저 지역들을 흐르고 있습니다.
제가 여태껏 수없이 강조했지만, 강이나 바다를 끼고 싸우면 병력이 2배 차이나지 않는 이상은 무조건 이기게 되어있습니다.
당연히 저 지역들을 먼저 선점하는것이 중요합니다.
1군은 튀케황제 + 구드뢰드의 정예병
2군은 대전사 PALNATOKE가 이끄는 강력한 욤스바이킹 군단
3군은 제가 가장 믿는 장군 올라프가 이끌 것이며.
4군은 비록 예전 반역자였지만, 현재 우리 울핑 가문 최강의 무력 29를 자랑하는 제 사촌
'사자의 심장' 토르브란드가 용병군단을 이끌 것입니다. 한때 서로 죽고 죽이는 관계였지만, 현재는 제 유능한 지휘관일 뿐입니다.
[ 전군, 출동하라! ]
우리가 먼저 강을 건너는 패널티가 달리지만, 우리 군대가 훨씬 많으므로 문제는 없습니다.
일단 적들이 모이기 전에 적을 각개격파하고, 중요 지역을 선점하는게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프랑키아의 군대는 제대로 모이지 않고 사방에 흩어져 있습니다.
[ 좋아, 파리와 백생을 점거했다. 작전대로 되어가고 있어... ]
파리를 보십시오. 도시를 둘러싼 센느강 덕분에, 주변 모든 지역에서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적의 수도이므로, 점령할 경우 강력한 전쟁 점수가 부가됩니다.
즉, 이 지역을 일단 점거한다면 승리가 보장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프랑키아의 군대가 파리를 방어하고 있었다면, 저에게 몹시 불리하게 전쟁이 진행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파리 이외에도 백생, 루앙등을 점거했기 때문에 적들의 군대는 무조건 센느강을 넘어야만 저를 공격할 수 있죠!
어떤 위치에서 공격을 받던간에, 적들은 강을 건너야 되고 저는 강력한 전투 버프를 받게 됩니다.
센느강을 이용하라... 이것이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 입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병력의 수)
그리고 이자벨의 동프랑크 군대가 적을 교란하고 있습니다. 적은 하나로 뭉치지 못하고 쪼개질 것입니다.
물론 프랑키아도 배에 군대를 태워 제 영토를 점거하고 있지만, 제가 위치적으로 유리한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적의 수도 파리를 점거했기에 전쟁 점수는 43으로 오릅니다.
[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 ]
괘씸한 프랑키아 놈들은 무조건 사형이야!!
센느강을 넘어오던 프랑키아의 군대는 전부 제 군대에게 격파 당했습니다.
이 전쟁은 우리가 이겼습니다.
동프랑크 + 제 봉신들의 군대도 최선을 다해 적들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아니, 덤벼도 너희 못이긴다니까???
몇번이고 강을 건너다 깨지던 프랑키아가 또다시 공격 해오는군요.
센느강 때문에 너흰 죽어도 못이겨...
프랑키아가 이기기 위해서는 루앙, 아미앵을 미리 점거해서 프리지아에서 내려오는 제 군대를 사전에 차단하고
파리와 백생을 지키면 됩니다. 그렇게 본대는 수비를 하는사이, 이탈리아에 소수의 별동대를 보내서 텅텅 비어버린 제 영토를
전부 점령 해버리면 프랑키아가 무조건 이깁니다. 질 수가 없습니다.
지도자 PALNATOKE가 직접 지휘하는 욤스바이킹의 군대는 강했고 적은 패퇴하여 전쟁 점수가 97로 올랐습니다.
그리고 전쟁은 승리합니다. 제가 72%, 동프랑크가 27%의 활약을 했군요.
분명 프랑키아의 군대가 더 많았지만 전략 전술에서 패배했습니다.
프랑키아 제국의 황제 리그노메르2세는 이 전쟁에서 패배하였기에,
설령 영토는 잃지 않았지만 '이탈리아 왕국의 강력한 클레임' 을 잃었습니다. 다시는 이탈리아를 빼앗지 못할 것입니다.
비록 제 전쟁은 끝났지만, 제 사위 프르셰미슬은 여전히 폴란드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제가 포기하고 GG쳤던 폴란드를 상대로, 전쟁에서 53%로 크게 이기고 있군요. 훌륭합니다.
그렇게 프랑키아와의 전쟁이 끝난지 4년이 흐르고...
우리의 주인공 튀케2세가 61세의 나이로 사망합니다. 사망 원인은 지병(질병)...
그의 아들 에실4세가 새로운 황제에 오릅니다.
그리고 몇개월이 지나, 근성의 프르셰미슬은 결국 스스로의 힘으로 폴란드를 정복합니다.
형과 동생을 모두 쓰러뜨리고 보헤미아와 폴란드의 왕으로 즉위했군요. 덕분에 우리 제국의 영토가 크게 넓어졌습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나, 964년 동프랑크의 여왕 이자벨도 63세의 나이로 자연사하여 남편을 따라갑니다.
그녀의 동프랑크 왕국은 모두 에실4세에게 돌아갑니다.
폴란드와 동프랑크가 제국에 편입되면서 스칸디나비아 제국의 영토는 어마어마하게 넓어졌습니다.
약 30년전, 천재 황제 에실3세로부터 시작된 결혼/동맹 전략이 뒤늦게 탐스러운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러나, 이자벨이 남기고 간것은 단지 동프랑크 뿐만이 아닙니다.
그녀는 카롤링거 가문이었고 프랑키아 제국의 공주였기에. 비록 전쟁 외에는 물려받지 못하는 약한 권한임에도 불구하고
아들 에실4세에게 프랑키아 제국의 클레임을 물려주었습니다.
이것이, 에실3세의 최후의 설계였습니다....
[ 내 몸의 절반에는 카롤링거의 피가 흐른다. 내가 프랑키아 제국의 황제가 되지 말란 법이 있는가? 나에게도 계승권이 있다! ]
젊은 황제 에실4세는 프랑키아 제국에 대성전을 선포합니다!
프랑키아 제국은 현재 약 2만8천명의 군대만 남아있을 뿐입니다.
그에 비하여 우리 스칸디나비아 제국은 4만8천명이 넘는 군대가 에실 4세의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비록 이제는 노장이지만, 제국의 명장들도 여전합니다.
[ 프랑키아를 먹어치워서 우리가 유럽의 지배자가 되는 것이다. 올라프, 구드뢰드 장군은 지금 즉시 출진하라! ]
진정한 노르드 바이킹, 울핑 가문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젊은 황제 에실 4세는 프랑키아를 정복하여 유럽을 통일할 수 있을까요?
그 뒷 이야기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오^)
여태껏 부족한 이 연재를 응원해주시고, 관심을 가져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그저 크킹을 하시다가 아주 가끔씩 제 연재글을 생각해 주신다면 더이상 바랄게 없을듯 합니다.
[ 토르를 위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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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프르 1세 ]
-영토 확장
울프르는 울핑 가문의 시조로서 아우스테르가우틀란드의 영주였다. 그는 매우 강력한 게르만 신화의 전사였는데
적은 병사들을 이끌고 당시 분열되어 있던 스웨덴(스비티오드)과 덴마크(단마르크) 지방을 지속적으로 공격하여
지방 영주들을 부하로 삼아 급격히 영토를 늘리는데 성공했다.
- 라이벌 시구르드와의 전쟁
당연히 그에 불만을 품은 피정복자들의 몇번에 걸친 반란을 전부 찍어누른 울프르는 마치 패배를 모르는듯 하였으나
울프르 이상의 세력과 무용을 자랑하던, 스칸디나비아 최고의 영웅 시구르드와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그 기세가 크게 꺾인다.
그러나, 시구르드가 병으로 쓰러지고 매국노 트리그베가 울프르에게 나라를 팔아버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재차 침공한 울프르는 쉽게 시구르드의 영토를 접수하고 그의 아들들을 봉신으로 만든다.
- 스비티오드의 왕이 되다.
787년 8월 9일. 스비티오드를 통일한 울프르1세는 스비티오드의 왕으로 즉위했다.
스칸디나비아 제도의 유일한 왕이 된 울프르는 노르웨이 지방의 영주들을 설득하여 봉신으로 삼고,
스칸디나비아의 대부분을 통일하는 업적을 달성하게 된다.
- 용맹한 죽음
아버지 시구르드의 원한을 품고있던 젊은 영웅 '라그나르 로드브록'이 울프르에게 목숨을 건 결투를 신청하는 일이 벌어졌다.
전사의 피를 숨기지 못한 울프르는 당당하게 결투에 임했고, 결국 패배하여 그 자리에서 사망한다.
792년 3월 7일. 39세의 나이였다.
- 기타
재롱이라는 사냥개를 오랫동안 키웠고, 재롱이가 죽었을때 눈물을 흘리며 성대한 무덤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뼛속까지 게르만 신화의 전사였던 그는 28세까지 여자를 피한 동정이었다.
게르만 신화에서 30살까지 동정을 지킨 전사는 최고의 영웅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왕의 입장에서 후사를 보아야 했기 때문에, 2년을 채우지 못하고 결국 결혼을 했고 본인은 그것을 매우 괴로워했다고 한다.
- 평가
약한 세력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무력과 리더쉽으로 스칸디나비아의 대부분을 통일하고
스비티오드의 왕이 된 그의 활약은 눈부셨다. 평생을 전쟁터에서 싸워왔고 정정당당한 결투에서 죽었던 그는
전형적인 바이킹의 전사였다. 울핑 가문의 토대를 세운 초대 가주.
[ 에실 1세 ]
- 출생
울프르 1세의 장남이었다. 그러나 그는 천한 신분의 첩 소생이었기 때문에 많은 봉신들은 그를 정당한 후계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의 남동생 홀름게르는 정실 부인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매우 위협적인 경쟁자였다.
- 왕이 되다.
아버지 울프르1세가 라그나르 로드브록과의 결투에서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장남 에실은 스비티오드의 왕이 되고,
홀름게르는 단마르크의 왕이 되어 독립했다. 에실은 그 당시 겨우 9살이었는데, 몹시 정치적으로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 하프리드가 섭정과 첩보관으로 뽑혔기 때문에 위험한 사태는 운좋게 벌어지지 않았다
- 홀름게르의 요청을 무시하다.
794년 동생 홀름게르가 리투아니아를 침공하는데 형인 에실에게 군대를 요청하나, 에실은 요청을 무시했다.
그 사건 이후 두사람의 관계는 완전히 단절되었다.
- 트리그베의 반란
시구르드를 배신하고 울프르에게 나라를 팔았던 매국노 트리그베는 스비티오드의 왕이 되고자 하는 욕심을 오래전부터 품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음모는 에실의 어머니 하프리드에게 적발되어 감옥에 갇힐 상황에 처한다.
투옥을 거부한 트리그베의 반란은 매우 위협적이어서 한때 에실의 군대가 위기에 몰리는 상황이 벌어졌으나
당시의 수도 우플란드에 충성스러운 노르드 전사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에실왕을 도와 트리그베를 물리쳤다.
트리그베는 전쟁에서 패배하여 감옥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 단마르크를 공격하다
799년 에실은 동생 홀름게르를 기습 공격했다.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홀름게르는 그에 대응하지 못하고 급격히 무너져 형에게 패배했다.
에실은 단마르크의 왕을 겸하게 되고, 홀름게르는 공작으로 강등되어 형의 봉신이 되었다.
- 홀름게르를 죽이다
805년 18세가 된 홀름게르는 형에게 복수하기 위하여 결투를 신청하고, 두 형제는 목숨을 건 싸움을 하게 된다.
결국 에실이 홀름게르를 죽여 동생의 영토와 작위를 모두 빼앗았다. 당시 동생 홀름게르는 미혼이라 자식이 없었다.
- 바이킹의 약탈
에실1세는 척박한 스칸디나비아의 농민들을 먹여 살리기 위하여 적극적인 약탈을 시행했다.
베네치아, 로마, 브루게, 레옹, 낭트등 유럽 곳곳을 약탈하여 공포스러운 악명을 떨쳤다.
그의 잔인한 약탈 때문에 사람들은 그가 언데드 바이킹 전사를 끌고 다니는 바다의 재앙, 공포의 에실왕이라며 두려워했다.
- 제일란드 공격
817년 성지 제일란드를 서프랑크에게 되찾기 위하여 동맹국 루테니아 왕국과 함께 공격한다.
당시 서프랑크는 혼란스러운 상황이었고, 스비티오드 + 루테니아 동맹군의 각개격파에 말려들어 결국 제일란드를 넘겨주게 된다.
- 필키르에 오르다
당시 게르만 신화는 지역 종교에 불과하여 많은 유럽인들에게 무시받았으며
스칸디나비아의 노르드인들은 야만인 취급을 벗어나지 못했다.
에실왕은 좀더 발전된 종교와 문화를 가지길 원했기에, 게르만 신화의 사제들과 함께
종교를 개혁하여 스스로 필키르(대사제)의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부족정을 탈피하고 봉건정을 받아들이는 개혁을 단행했다.
- 끝없는 반란과 죽음
그러나 에실왕의 적극적인 개혁은 시대를 지나치게 앞서가는 것이었다.
봉신들은 물론, 농민들마저 그에게 등을 돌려 구시대로 돌아가기 위한 끝없는 반란이 터지게 된다.
사방에서 일어나는 반란을 진압하던 에실왕은 결국 833년 51세의 나이에 병약한 건강으로 사망했다.
- 평가
야만족이던 노르드인과 게르만 신화를 개혁하여 프랑크 왕국이나 비잔틴 제국등의 기성 국가들과
동등한 위치에 서게 만든 그의 공은 매우 컸다. 먼 훗날 만들어지는 '스칸디나비아 제국'의 기틀을 혼자서 만든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나 너무 급진적인 그의 사고방식은 수많은 문제점을 낳았고, 그의 아들 울프르2세에게 폭탄을 떠넘기는 심각한 사태를 초래했다.
당시에는 이해받지 못한 왕이라 민중들에게 인기를 얻지 못했고, 형제 살인과 약탈 등으로 많은 악명을 떨쳤지만
백년이 넘게 지나 그의 업적은 재평가를 받게 된다.
[ 울프르 2세 ]
- 즉위
에실1세의 장남으로 22세의 나이에 스비티오드와 단마르크의 왕으로 즉위했다.
왕이 된 즉시 아버지 에실을 '에실 대왕' 으로 기리기 위한 룬스톤을 세웠다.
당시 스비티오드는 에실왕의 개혁에 불만을 품은 수많은 봉신들이 울프르2세를 노리고 있었기 때문에 숨죽인 생활을 해야했다
- 호구왕
바이에른의 프로틀릴디스 여왕과의 전쟁에서 항복하고, 봉신들에게 항상 비굴하게 행동하여 호구왕이라는 놀림을 받았다
베르그슬라겐의 공작 부들리가 대놓고 그의 왕위를 빼앗으려고 음모를 꾸몄지만
왕은 차마 전쟁을 하지 못하고 모른척 넘겼고, 그 사실을 알게된 봉신들은 더욱 왕을 만만하게 대했다.
울프르2세는 그런 조롱에도 불구하고 봉신들과 가까이 하면서 자주 연회를 베풀어 환심을 샀으며 항상 겸손하고 예의바르게 행동했다.
- 칼을 빼들다
843년 8월 24일, 울프르2세가 왕이 되고 10년이 지나 32살이 되자 그는 갑자기 태도를 돌변했다.
여태껏 친구로 지내던 봉신들을 감옥에 가두고 강제적으로 법률을 바꾸는 등 서슬퍼런 칼날을 휘둘렀다.
10년간 그를 호구왕으로 만만하게 보던 봉신들은 울프르2세에게 쉽게 제압당했고
울프르2세는 드디어 자신의 왕권을 되찾아 진정한 왕이 되었다.
- 브리타니아를 침공하다
스칸디나비아를 벗어나지 않은 울프르1세, 정복 보다는 약탈을 중시하던 에실왕과는 달리, 울프르2세는 직접 타국을 정복하길 바랬다.
844년 브리타니아를 침공한 그는 더 많은 수의 브리타니아 카톨릭 연합군의 대군에 맞서
용병군단을 모루로 삼아 수비를 맡기고, 왕의 친위대는 망치가 되어 적의 옆구리를 공격하는 적절한 전술을 통하여 대승리를 거두었다.
결과적으로 울핑 가문 처음으로 브리타니아의 노퍽 지방을 정복하여 '토르의 검' 이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다.
- 서프랑크의 공격
852년 서프랑크의 왕 오트베르트의 대군에 맞서 큰 위기를 겪게 된다. 성지 제일란드를 점령 당하며 한때 궁지에 몰렸지만
운이 좋게도 오트베르트의 장남 '리그노메르' 왕자를 포로로 붙잡게 되어 그를 인질로 전쟁에서 승리하게 된다.
- 죽음
전쟁은 끝났지만, 서프랑크의 가장 발달되고 부유한 플랑드르 지방을 탐내던 그는 서프랑크에게 성전을 선포했다.
함부르크 근처의 강쪽으로 적의 군대를 유인하여 대승을 거두며 승승장구를 했지만,
서프랑크의 동맹국으로 참전한 바이에른의 여왕 프로틀릴디스에 의하여 전쟁터에서 사망했다. 854년, 43세의 나이였다.
- 기타
이탈리아인 아내 카라코사를 몹시 사랑하여 루비 귀걸이를 사주는 등, 애처가였다고 한다.
10년간 굴욕을 참으며 와신상담을 했을만큼 인내심이 매우 뛰어났다고 한다.
일생동안 딱 2번 패배 했는데, 유감스럽게도 모두 바이에른의 프로틀릴디스 여왕이었다는것이 아이러니.
2번째 패배에서 결국 그녀에게 목숨을 빼앗겼다.
- 평가
그가 왕이 되었을때 울핑 가문이 스칸디나비아에서 축출될 위험이 컸고 후계자 자리도 빼앗긴 상태였다.
그러나 그의 인내심으로 인하여 후계자 자리를 울핑 가문으로 되찾았고 처음으로 브리타니아를 정복했으며
서프랑크의 공격을 막아냈고 오히려 역습까지 실행했다. 울핑 가문을 지켜낸 수호자라고 할수 있다.
[ 에실 2세 ]
- 즉위
운이 나쁘게도. 전쟁 중에 왕이 되었기 때문에 봉신들의 반란은 몹시 위협적이었다.
그런 위기를 벗어나기 위하여 에실2세가 취했던 전략은 '근친결혼' 이었다.
여동생들을 친척 공작들에게 결혼 시키고, 자신의 아들에게도(고모와 결혼) 결혼시켜 가문의 친목을 도모했다.
- 결투에서 패배하다.
855년 공작 오르드가 에실2세에게 결투를 신청하게 되는데, 강력한 바랑기안의 전사였던 공작에게
에실2세는 결국 패배하여 목숨을 구걸하게 되는 비참하고 굴욕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 플랑드르를 정복하다
비록 비굴하게 살아남은 에실2세였지만, 서프랑크와의 전쟁에서는 승리하여 플랑드르를 정복하게 된다.
당시 서프랑크는 농민 반란에 시달렸고, 남쪽 이슬람 세력들과의 전쟁때문에 오랜 전쟁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이 승리로 인하여 그는 '하느님의 검' 이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다.
어쨌든 플랑드르를 얻게된 에실2세는 수도를 브루게로 옮겨 3대가 머무르던 스칸디나비아를 떠나게 된다.
이때부터 울핑 가문의 수도는 브루게로 확정된다.
왜냐하면 춥고 가난하던 스칸디나비아에 비하여, 플랑드르는 너무나 풍요롭고 살기 좋은 지역이었기 때문이었다.
- 봉신들에게 항복하다.
그러나 이미 스칸디나비아는 첩보관 토르스테인을 중심으로 강력한 반란 파벌세력이 형성된 상태였다.
그들은 에실2세에게 왕권을 낮추라고 강력히 요구했고, 이를 승낙하지 않으면 전쟁을 할 것이라 선언했다.
결국 봉신들과 전쟁에서 이길 군대가 없었던 에실2세는 항복하는 굴욕을 또다시 맛본다.
게다가 그것에 만족하지 못한 공작들은 왕을 암살하기 위하여 계획을 꾸몄다.
- 브리타니아 연합군과 폴란드의 공격
856년 브리타니아 연합군과 폴란드 왕국의 선제공격을 받아 스비티오드는 큰 위기에 빠졌다
에실2세는 여동생 일리아나를 러시아 왕국에 보내어, 지원군을 얻어 전쟁에 대비하고, 청야전술을 통하여 전쟁을 질질끌어
적들을 괴롭혔다. 작전은 성공하여 브리타니아 연합군의 일부와는 화평하여 전쟁을 끝냈고, 일부는 역습에 성공하여 전쟁에서 승리했다.
게다가 운이 좋게도 폴란드의 왕 비토시2세가 갑자기 사망하고 그의 조카가 새롭게 왕이 되어
평화협정이 체결, 폴란드와의 전쟁도 종결된다. 더불어, 카톨릭 반란군들도 제압하여 위기를 극복한다.
- 죽음
874년, 44세의 이른 나이로 사망했다. 죽기 전, '울핑 가문이여, 영원하리라.....' 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 기타
결투중에 옆구리에 도끼를 맞아 큰 상처를 입게 되어 불구가 되었다. 그 때문에 평생을 누워서 생활 했다고 전해진다.
44세의 이른 죽음도, 그 후유증 때문이라고 한다.
- 평가
에실2세는 울핑 가문의 역대 군주들 중, 가장 고통스럽고 힘든 삶을 살았다고 평가된다.
재위기간 내내 봉신들의 끝없는 반란, 브리타니아와 폴란드등의 침략등으로 방위전을 치루어야 했다.
결투에서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 하기도 했고, 봉신들에게 백기를 들고 항복하는 등의 굴욕을 수없이 겪었지만
결국 가문과 영토를 지키는데 온 힘을 쏟다가, 힘이 다해 사망했다.
[ 튀케 1세 ]
- 즉위
튀케1세가 아직 소년이었을 때, 하우르크 공작의 모친 륑프리드에게 암살 시도를 당해 죽을뻔한 경험이 있었다.
다행히 운좋게 목숨을 부지했고, 당시 에실2세는 크게 분노하여 륑프리드를 제물로 바쳤다.
성인이 되어 비잔틴 제국의 바랑기안으로 복무하던 그는 부고를 듣는 즉시 브루게로 되돌아와 왕으로 즉위했다.
- 미들식스 정복
에실2세는 스비티오드와 플랑드르의 풍족한 군대를 남겨주었기에 튀케왕은 브리타니아의 미들식스를 선제 공격하여
베드퍼드 공작령을 정복하고, 동생 에이일 왕자에게 그 영토를 모두 넘겨주었다.
- 프리지아 왕국을 선포하다
882년, 2번째 왕비인 비에르그가 차남 '폴시'를 낳게 되는데 이 아이는 태어나면서 왕위 계승권을 심각하게 위협하게 되었다.
법률상, 플랑드르 공작령을 전부 폴시에게 상속하게 되어버린 것이었다. 이것은 후계자인 장남 에실에게 크나큰 위협이었는데
수도인 브루게와 알짜배기땅 플랑드르를 빼앗기고 말 것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것을 염려한 튀케1세는 프리지아 왕국을 선포하여 에실에게 넘겨주고, 대신 폴시에게는 스비티오드 왕국을 넘겨주게 된다
- 1차 수오미(핀란드) 원정과 반란
886년, 튀케1세는 동쪽의 수오미를 공격했다.왜냐하면 스칸디나비아를 통일하여 황제로 즉위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수오미는 너무나 추운 동토였기에, 대다수의 군대는 얼어죽고 원정은 실패로 돌아갔다.
게다가 왕이 원정을 나간 사이, 공작 봉신들이 동생 에이일 왕자를 스비티오드의 왕으로 내세우며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에,
왕은 급히 군대를 물릴수 밖에 없었다.
- 2차 수오미 원정과 황제 즉위
893년 튀케1세는 지난번 패배를 거울삼아 착실히 준비를 한 후 재차 수오미를 침공, 4년에 걸친 오랜 전쟁 끝에 결국 전쟁에서 승리했다.
얼마나 처절한 싸움이였냐면, 1만명의 군대 중, 살아남은 병사는 겨우 883명뿐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리하여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통일한 튀케1세는 스칸디나비아 제국을 선포하고 스스로 황제에 즉위했다.
- 프랑키아 제국의 침공
당시 서유럽은 샤를마뉴 대왕의 카롤링거 가문의 후손들이 각자 왕이되어 약 1백년에 걸친 전쟁을 하고 있었다.
결국 서프랑크의 왕 리그노메르2세가 카롤링거 가문을 통일하여 프랑키아 제국을 세우고
튀케1세의 플랑드르를 되찾기 위하여 성전을 선포했기에, 스칸디나비아 제국은 위기에 빠졌다.
그러나 젤레평야에서 16094 vs 17677의 전군이 격돌한 결과, 튀케황제의 백병전 돌격으로 인하여
스칸디나비아는 대승을 거두고, 여세를 몰아 프랑키아의 수도를 점령하여 전쟁에 승리했다.
- 십자군 전쟁
프랑키아의 기세를 꺾었기에, 재차 침공은 불가능할 것이라 판단한 튀케황제는 동프랑크를 공격하여
게르만 신화의 성지 브라운슈바이크를 수복하는데 성공했다.
결국 울핑 가문은 역사상 처음으로 게르만 신화의 성지 5개를 모두 수복했는데, 908년의 일이었다.
그러나, 그 때문에 결국 로마 교황의 십자군 전쟁이 발발, 수많은 카톨릭 국가들의 침공으로 인하여
스칸디나비아 제국은 버텨내지 못하고 항복했다. 작센 지방의 영토를 모두 잃고 성지 브라운슈바이크도 다시 빼앗겼다.
- 죽음
십자군 전쟁에서 패배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심에 빠진 튀케황제는 힘없이 사망했다. 912년 63세의 나이였다.
- 기타
그의 고모 그리마와 근친결혼을 하는 바람에, 둘째딸 위르사가 근친상간으로 인한 유전병으로 일찍 사망,
막내딸은 미치광이가 되었다. 둘째 아내 비에르그는 폐결핵으로 사망, 아들 폴시와 손녀도 일찍 사망하여
황제 개인은 몹시나 불우한 가정사를 보냈다고 한다.
- 평가
프리지아 왕국과 스칸디나비아 제국을 건설하여 초대 황제로 즉위하여 울핑 가문의 명성을 드높였다.
실패도 했지만 수오미를 정복했고 프랑키아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러나 십자군 전쟁에서 패배하여 많은 영토를 잃었고, 그로 인한 실망으로 죽어버렸기에 마무리는 좋지 못했다.
[ 에실 3세 ]
- 즉위
튀케1세가 이른 나이에 얻은 장남이었기에 나이차가 크지 않아, 41세의 늦은 나이에 황제에 올랐다.
게다가 십자군 전쟁에서 패배하여 영토를 모두 프랑키아에게 빼앗겼기 때문에 강력한 프랑키아의 공격을 막아낼 방법이 없었다.
분명히 위기의 상황이었다
- 천재의 능력을 발휘하다
어렸을때부터 천재라고 불렸던 그는 뛰어난 수완을 발휘하여, 프랑키아에 외교관을 보내
친목을 다지는 동시에 뇌물을 풀어 환심을 사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여동생 크리스티나 공주를 보헤미아 왕국에 보내어 동맹을 맺어 프랑키아의 공격에 대비했다.
프랑키아 제국의 공주 이자벨을 직접 교육시키며 후일을 위한 발판으로 삼았다. 차후 크로아티아도 동맹으로 만들어 합종책을 완성시켰다.
- 로마 공격
916년 에실3세는 셰틸, 구드뢰드, 올라프라는 강력한 장군들을 내세워 로마를 침공했다.
교황의 영토를 모두 정복 해버리면, 십자군 전쟁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고 결과적으로 그 판단은 옳았다.
튜튼기사단의 강력한 반격이 있었지만, 바이킹 3대장의 활약으로 로마를 점거하게 되었다.
차후 몇번이고 교황이 로마를 되찾기 위해 공격했으나 전부 막아냈다.
- 며느리를 꼭두각시로 내세우다
에실3세는 이자벨을 장남 튀케와 결혼시킨 뒤, 동프랑크의 왕 시지스몽과 그의 아들 위르겐을 암살 해버렸다.
그리고 며느리 이자벨을 새로운 동프랑크의 왕으로 내세우며, 동프랑크에 선제 공격을 하게 된다.
결국 전쟁에서 승리하여, 이자벨은 새로운 동프랑크의 여왕이 되었다.
그뒤 보헤미아와 동프랑크의 내전에 끼어들어 그들의 세력을 회복 시켜주는데, 이것은 결과적으로 미래를 위한 투자였다.
- 롬바르디아 대성전
927년, 프랑키아는 3군데에서 전쟁중이었고 롬바르디아는 비잔틴과의 전쟁 중이었기에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에실3세는 롬바르디아에 대대적인 침공을 시도했다.
그의 전략은 매우 성공적이었기에 카톨릭 기사단의 반격에도 불구하고 전쟁에서 승리하였다.
결국 롬바르디아를 멸망시키고 이탈리아 왕국이라는 새로운 나라를 선포했다.
원정 도중, 봉신들의 반란이 터졌지만 보헤미아, 크로아티아, 동프랑크의 동맹군의 참전으로 막아내는데 성공했다.
- 죽음
이탈리아 영토를 분배하고, 바이에른을 공격하는 며느리 이자벨을 지원하던 도중 61세의 나이로 자연사했다. 932년의 일이었다.
- 기타&평가
에실3세는 울핑 가문의 역대 군주중 최초의 천재군주로서, 매우 뛰어난 전략가였다.
그의 계획된 설계 때문에 수십년 후 강력한 동프랑크 왕국이 제국에 편입되었다.
한평생 패배를 몰랐고, 그가 계획한 것은 모두 성공하여 울핑 가문의 패권에 크나큰 역할을 했다.
3대장의 충성을 받았고, 욤스바이킹을 봉신으로 만들어 정예화된 군대를 창설했으며
이탈리아의 거대한 영토를 모두 먹어치운 강력한 정복 황제였다.
여담으로, 많은 사람들이 무능하다고 평가하던 장남 튀케2세에게 무한한 애정을 쏟은 아버지였다고 전해진다.
[ 튀케 2세 ]
- 즉위
튀케2세는 아버지 에실3세의 엄청난 재능에 비하여 몹시 무능한 왕자로 평가되었다.
많은 봉신들은 그가 장남임에도 불구하고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에실3세를 빼닮은 차남 로드가르 왕자를 후계자로 평가했다.
게다가 튀케2세는 오랫동안 아내 이자벨 여왕의 봉신으로 동프랑크에서 지냈기 때문에
스칸디나비아의 봉신들과 좋은 관계를 쌓을 시간도 없었다.
그러나 프랑키아 제국의 황제는 그의 장인이었고, 아내는 동프랑크의 여왕이었으니 배경은 매우 든든했다.
932년, 32세의 나이에 브루게로 돌아와 황제가 되었다.
- 내전 발발
그의 장인어른과 아내는 자신들의 전쟁에 군대를 보내라고 강하게 압박을 했기에 튀케 2세는 어쩔 수 없이 군대를 보내야만 했다.
게다가 카톨릭 반란군도 터졌다.
더불어 동생 로드가르를 황제로 만들려는 내전이 발생했는데, 봉신의 대다수가 이에 호응하여 황제를 배신했다.
겨우 6천명이 넘는 튀케2세의 군대에 비해, 반란군의 군대는 2만9천명을 웃돌았다. 사태는 매우 절망적이었다.
- 내전의 결과
튀케2세의 군대는 도저히 반란군을 막을 수가 없었기에 프랑키아, 동프랑크, 크로아티아에 지원을 요청했다.
그리고 전군을 배에 실어서 브리타니아로 보내 적의 수도를 점거하는데 성공.
프랑키아를 위시한 동맹군이 나머지 반란군을 격파하여 내전에서 승리하게 되었다. 6년이나 계속된 이 내전은 938년에 끝났다.
반란군의 수괴와, 동생 로드가르는 산제물로 바쳐져 사망하고 튀케2세는 친족 살해자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 교황의 몰락과 베네치아 정복
아버지의 뒤를 이어 교황을 재침공, 그의 영토를 모두 빼앗아 교황을 몰락시켰다.
결국 교황의 몰락으로 인하여 십자군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베네치아에 엠바고 전쟁을 벌여 그들의 군대를 괴멸시킨 후, 3대장 올라프가 베네치아를 완전 정복하는데 성공했다.
- 보헤미아 + 폴란드 침공
947년까지 프랑키아, 보헤미아, 동프랑크, 크로아티아는 모두 스칸디나비아의 동맹국이었다.
에실3세의 훌륭한 결혼 정책이 빛을 발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음해, 보헤미아와 폴란드의 왕이었던 코야타왕이 사망하여 두 나라가 쪼개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튀케2세의 딸 구드룬은 자신의 남편 프르셰미슬을 보헤미아의 왕으로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고, 황제는 그것을 받아들여 전쟁이 발발했다.
동맹국을 공격해버린 이 불명예스러운 전쟁은 결국 승리하여 프르셰미슬은 보헤미아의 왕이 되었다.
그러나, 폴란드마저 정복하겠다는 욕심을 부리던 튀케2세는 폴란드의 청야전술에 휘말려 대다수의 군대가 굶어죽고
판노니아와 크로아티아가 배신하여 폴란드에게 붙어버리는 바람에 결국 전쟁은 무승부로 종결되었다.
- 2차 내전
폴란드의 원정으로 황제가 자리를 비우자, 또다시 제국의 내전이 발생했다.
'사자의 심장'이라는 별명을 가진 유능한 장군이자 황제의 사촌이었던 토르브란드의 대군이었다.
강력한 반란군의 공격으로 한때 위기에 빠졌지만, 아내 이자벨이 참전하여 전쟁이 장기화된 결과 955년, 전쟁은 무승부로 종결되었다.
- 프랑키아 제국의 이탈리아 침공
한때 동맹국이었던 프랑키아는 957년 당시에는 리그노메르2세 황제의 즉위로 인하여 동맹이 끊어진 상태였다.
이탈리아 왕국의 강력한 계승권을 가지고 있던 프랑키아 황제는 즉시 스칸디나비아를 침공했다.
그러나 튀케2세는 리그노메르2세보다 빠르게 병력을 규합하여 적의 기세를 꺾고, 파리와 인근 센느강 지방을 점거하여
적의 접근을 막았으며 아내 이자벨의 동프랑크군이 적을 교란하는데 성공하여 프랑키아의 야욕을 꺾었다.
- 죽음
프랑키아의 공격을 막고 4년이 지나 61세의 나이에 지병으로 사망.
- 기타 & 평가
튀케2세는 수많은 전쟁을 치루었지만, 사실 많은 승리를 거두지는 못했다.
상당수의 전쟁은 무승부로 끝났고, 기타 전쟁은 아내 이자벨의 지원 전쟁이었다.
그러나 프랑키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했고, 결과적으로 튀케2세의 공헌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 아들 에실4세에 이르러 보헤미아와 폴란드가 스칸디나비아에 합병될 수 있었다.
가끔 그가 귀신을 보았다거나, 괴물을 죽였다고 주장했기에 측근들은 그가 완전히 미쳤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물론 정말로 미쳤는지 아닌지 진실은 알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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